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98화 (98/218)

98화 직접 확인할 거라면서. 창 들어

백유진과의 첫 대련 이후.

나는 매일 그와 대련하며 분광십삼뢰의 수련을 도왔다.

대련 초기에는 내가 우위를 점했다.

마나 출력의 우위부터, 분광십삼뢰에 유효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벽뢰수의 존재 등.

다양한 이점을 가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백유진은 부족한 부분을 특유의 천재성으로 메웠고, 그 결과 치열한 양상을 띠게 됐다.

그렇게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련을 지속한 끝에 3일째 되는 금요일 저녁 무렵.

“슬슬 때가 된 것 같아.”

백유진은 내게 분광십삼뢰를 체득할 준비가 끝났음을 밝혔다.

때문에 오늘은 대련에 앞서 스킬부터 체득하기로 했다.

‘과연 등급은 어느 정도일지.’

기대감을 품고 있을 때, 백유진은 자세를 갖추었다.

나는 그를 향해 마지막으로 점검할 겸 질문을 던졌다.

“구결은 기억하고 있지?”

“응. 네가 알려 준 그날 밤에 다 외웠어.”

보아하니, 그림자 녀석이 첫날에 구결까지 전해 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바로 외우다니.’

사소한 부분에서도 백유진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시답잖은 감상을 뒤로한 채 말을 이어 갔다.

“체득하고 나면 등급을 알려 줘.”

“등급? 최소한 B급은 될 것 같은데. 일단 알겠어.”

살짝 의아한 눈치였으나 백유진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분광십삼뢰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 상태로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더니.

휘익-!

무언가에 홀린 듯 느닷없이 빠르게 세 번, 허공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다름 아닌 첫 번째 초식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물 흐르듯 분광십삼뢰를 전개했다.

지켜 보는 것만으로 무공의 묘리가 생생하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살짝 투박하게 느껴졌던 그림자 녀석의 분광십삼뢰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날카롭다.’

눈이 호강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무의식적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완전히 몰입해서 지켜보는 사이.

“……후우.”

백유진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창을 회수했다.

아무래도 체득이 끝난 모양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체득했어?”

“응, 그런 것 같아.”

“축하해.”

“……다 네 덕분이지.”

백유진은 멋쩍은 듯,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 등급 확인해 볼게.”

그대로 허공을 조작하더니, 일순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반응으로 보아 등급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확인을 위해 곧바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때?”

“……B+급이야.”

B+급.

복마구권과 무영귀살각 사이의 등급이었다.

‘탈혼지하고 벽뢰수랑 동급이네.’

그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스킬이라 봐도 무방했다.

다만 내겐 S급 스킬, 혼원현천신공을 비롯하여 고차원의 무공이 많아서 그런지 감흥은 덜했다.

반면 백유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야. 타인이 별다른 대가조차 없이 제공하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등급일 테니까.’

그 정도로 납득하는 나와는 달리 백유진은 감격에 겨운 듯,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내게 맞는 무공을 손에 넣었어…….”

백유진의 반응을 보니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가 얼마만큼이나 자신에게 적합한 무공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정중하게 허리까지 숙여가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을게.”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계속 인사를 받기도 민망한 까닭에 나는 백유진의 어깨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소원 한 가지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거면 충분해.”

실제로는 딱히 바라는 건 없었다.

하지만.

‘배경도 짱짱하고, 게다가 명실상부한 천재인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게 될 날이 오겠지.’

백유진만한 사람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극히 드문 편에 속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간 내게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런 계산을 바탕으로 소원권을 제시한 것이었다.

하나 이런 속내를 알 턱이 없는 백유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랬지.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게. 약속하지.”

백유진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보답을 약속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감상과는 별개로 슬슬 부담스러운 까닭에 나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얻었으면 한번 써 봐야겠지?”

가볍게 몸을 풀어주며 운을 뗐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백유진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대련은 좀 힘들 것 같아.”

“왜?”

“으음, 일단 보여 준 다음에 말해 줄게.”

백유진은 왠지 난처한 기색으로 얼버무렸다.

굳은 낯빛으로 돌아서는 게, 뭔가 생각할 문제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는 다시금 분광십삼뢰의 기수식을 취했다.

“마나까지 활용해서 제대로 갈 거야.”

“어.”

내 대답을 듣는 즉시 백유진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선명한 청록색의 빛무리가 창날을 휘감은 순간.

“흐읍!”

세 갈래의 섬광이 허공을 꿰뚫었다.

백유진은 그대로 분광십삼뢰의 나머지 초식들을 연거푸 전개했다.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창날이 쇄도하고, 창끝은 수십 갈래로 갈라지며 눈앞을 일제히 꿰뚫었다.

마치 혜성의 꼬리처럼 청록색 마나의 자취가 어지러이 허공을 뒤덮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백유진은 정면을 향해 창을 찔러넣었다.

후웅-!

그의 창끝으로부터 한 줄기 섬광이 발출됐다.

청록색 마나가 날카로운 창끝의 형태로 화했다.

그대로 훈련실 내부를 가로지른 끝에.

콰앙-!

청록색 참격은 반대편 벽에 부딪혀 폭발했다.

첫 초식부터 마지막 초식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위력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거라면 쉽지 않겠는데.’

속도부터 간격, 범위에 이르기까지.

완성된 분광십삼뢰의 위력은 체감상 B+급 이상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대처법을 가늠해 봤다.

‘복마구권은 느려서 따라가지 못할 것 같고, 무영귀살각은 동작이 너무 커. 여기선 벽뢰수를 바탕으로…….’

백유진과의 구도를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있을 때.

“후우, 이제야 좀 개운해졌네.”

백유진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그에게 솔직한 감상을 털어놨다.

“대단한데.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마치 널 위해 준비된 무공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야.”

“과찬이야. 그보다 네게 알려 줄 게 있어.”

“알려 줄 거라니?”

고개를 갸웃거리자 백유진은 살짝 굳은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나, 집안 문제가 조금 있거든.”

“……아.”

집안 문제, 듣는 순간 감이 왔다.

가전무공을 거부한 이유, 그 너머의 자초지종을 내게 설명하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전무공을 거부한 이유는 뭐, 이미 네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넘어갈게. 그것 때문에 문제가 있었어.”

“혹시 저번 주에 너희 형이 찾아왔을 때 이야기야?”

“……알고 있었구나. 맞아.”

백유진은 씁쓸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통첩을 하더라고. 가전무공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에 따른 모든 불이익을 감당할지.”

“……불이익이라니.”

“그만큼 가문으로부터 받은 게 많으니까. 어쨌든, 그게 내일까지야.”

“내일, 토요일?”

“응. 그래서 오늘 외출 신청을 해 뒀어. 조금 이따가 출발해야 해서.”

그제야 백유진이 대련을 사양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납득하는 한편, 새삼스럽게 떠오른 의문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유진, 혹시 가전무공을 거부한 이유도 알려 줄 수 있어?”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네 성향에 안 맞아서잖아? 그것만으로는 조금…….”

“아하, 이해하기 힘들지? 하기야.”

내 의문이 충분히 납득된다는 듯, 백유진은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사실을 밝혔다.

“조금 재수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가문의 가전무공, 창룡격은 강해. 분광십삼뢰보다 등급도 높으니까.”

“그런데?”

“하지만 난 알 수 있어. 창룡격으론 내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올라갈 순 있겠지만.”

백유진의 대답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분광십삼뢰보다 높은 등급의 무공으로 어느 정도라니.’

듣고 있으면서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천재는 바라보는 시야조차도 범인과는 다른 걸까?

그런 식으로 본다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 정도로 납득하고 있을 때, 백유진이 재차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요 며칠간 날카로웠어. 하지만 이젠 괜찮아.”

“괜찮다니?”

“확신이 생겼어. 더불어 가문에 내 방식을 증명할 방법까지도.”

백유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맺었다.

그의 나직한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왠지 믿음이 갔다.

‘이 정도면 백유진의 문제는 거의 해결했다고 봐도 되려나.’

일전에 그림자 녀석이 알려 준 바에 따르면, 백유진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공의 부재’에서 비롯된 모양이었다.

즉, 가문의 문제 이전에 본인 스스로의 문제로 인해 틈새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분광십삼뢰를 익힌 순간 해결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기왕이면 가문의 문제까지 깔끔하게 해결해서 뒤탈이 아예 없는 편이 낫겠지.’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확실하겠지. 부디 잘 풀리길 바랄게.”

“응, 고마워. 나중에 결과도 알려 줄게.”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백유진은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답했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요 며칠간 대련하는 과정에서 그의 마음의 문이 열린 모양이었다.

‘이제 남은 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며 백유진에게 운을 뗐다.

“그럼 슬슬 출발해야겠네.”

“응.”

“잘하고 와.”

백유진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먼저 훈련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왠지 오윤서 때와 느낌이 비슷하네.’

체감상으론 그때보다 지금이 더 불확실했다.

당시에는 오윤서뿐만 아니라 오윤진과도 연락할 방법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까닭이었다.

‘백유성,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 감이 안 잡혔으니까.’

다만 기억하기론 마냥 백유진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느낌은 아니었다.

거기에 희망을 걸며 나도 훈련실을 벗어났다.

* * *

다음 날, 오전.

무가(武家)를 지향하는 신창백가답게, 주말 오전임에도 가문의 구성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중에는 금요일 저녁에 가문에 복귀한 백유진은 물론.

“그래서, 대답은?”

백유진의 둘째 형, 백유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유성의 물음에 백유진은 대답 대신 미리 챙겨 둔 창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에 백유성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대련실로 부른 거냐.”

백유진의 제안에 따라 두 사람은 현재 신창백가 내부에 마련된 대련실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이 점을 들어 묻는 말에 백유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직접 확인할 거라면서. 창 들어.”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백유진은 자세를 취했다.

처음 보는 기수식이었다.

백유성은 이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이는 아카데미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무공의 기수식과도 다른 것이었다.

“……그게 네 대답이냐? 그래서 창을 들고 오라고 한 거였군.”

백유성은 대답과 함께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해 둔 창을 집어들었다.

언제라도 뛰어들 준비를 갖춘 백유진과는 달리, 백유성은 창대를 쥔 손을 가만히 늘어뜨렸다.

“어디서 얻었지?”

“그건 중요치 않잖아? 중요한 건 내가 준비한 무공이 가문의 체면을 깎아먹는지에 대한 여부 아니야?”

“……변함없이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구나, 동생아.”

백유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자세를 갖췄다.

익숙한 기수식, 창룡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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