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너, 생각보다 무지막지하구나?
방과 후, 무기 훈련실.
“왔어?”
백유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보다 한발 앞서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건넸다.
“변함없이 빠르네.”
그는 이전보단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간단하게 몸을 풀며 나를 향해 물었다.
“바로 할 거지?”
“어.”
지체할 이유도 없겠다, 나는 준비해 둔 건틀렛을 착용하며 그리 답했다.
그러자 백유진은 창을 비스듬히 세우며 자세를 갖췄다.
말없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백유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력을 다해도 괜찮지?”
다름 아닌 대련 방식에 관한 물음이었다.
고태식 교관의 개인 교습을 생각하면 내가 백유진에게 맞춰 줘야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관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백유진은 애초에 내가 맞춰 주면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창술의 부재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으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으니까.’
자세한 건 붙어봐야 알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유진은 결코 나보다 아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전력을 다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서로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런 의미를 담아 묻는 말에 백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마나의 유형화까지 전부 사용한다는 거지?”
“일단은. 그리고 상황 봐서 무공도 제대로 사용해 볼까 하는데.”
“으음, 그건 좀 무섭네.”
백유진은 옅은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내뱉은 말과는 다르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기야, 창술만 배우지 않았을 뿐이지. 마나 심법이나 보법은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백유진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터.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한 채 본격적으로 코어를 활성화시키며 혼원현천신공을 운용했다.
백은의 마나가 두 주먹을 휘감는 광경에 백유진은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엄청나네, 그거.”
내 마나 심법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는지, 백유진의 두 눈에 경계심이 서렸다.
‘감이 좋네. 천재라 그런 건가?’
이런 느낌은 일전에 윤설하를 상대했을 때 이후로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일순 호승심이 끓어올랐으나 빠르게 감정을 다스렸다.
‘주요 목적은 어디까지나 백유진의 스킬 체득을 돕는 거니까.’
전력을 다하되, 그 점을 망각하지 말자.
그리 다짐하는 사이 백유진 또한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선명한 청록색 마나가 창날을 뒤덮었다.
이를 신호 삼아 나는 곧바로 지면을 박찼다.
타닷-
흑영보를 펼치며 나아가는 가운데.
백유진 또한 도약했다.
일전의 허공을 누비는 듯한 바로 그 보법이었다.
이를 확인한 즉시 나는 계획을 변경했다.
‘여기선 선공을 취하는 대신 반격을 가하는 쪽으로.’
판단 즉시 흑영보에 몸을 맡겼다.
그 상태로 백유진의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스르륵-
그 또한 정면 대결을 피할 생각이 없는지.
“흐읍!”
기합을 터뜨리며 위에서 아래로, 창을 내질렀다.
그의 일격에 맞서기 위해 나는 양 주먹에 서린 마나를 호신의 형태로 바꿨다.
이에 백은의 마나가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반발력을 양손에 두른 채 충격에 대비하는 순간.
휘릭-
백유진의 창끝이 매섭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창날이 세 갈래로 갈라진 것이다.
다름 아닌 분광십삼뢰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창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지만 분광십삼뢰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덕분에 파훼법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 번의 찌르기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 같지만.’
단지 그렇게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속도가 빠를 뿐.
실제로는 미세한 시간 차이가 존재했다.
그러니 세 차례의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는 대신, 머리를 향해 들어오는 첫 번째 일격을 노렸다.
휘익-!
복마구권 특유의 고양감이 전신에 들끓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매섭게 일권을 내질렀다.
카가가강-!
예상대로 건틀렛이 창날과 맞닥뜨렸다.
살벌한 소리와 함께 백유진의 창끝은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마나의 출력은 내가 더 위다.’
그렇다면 이대로 걷어내고 후속타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판단과 함께 창날을 튕겨 내려는 순간.
씨익-
문득 백유진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속임수다.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감각이 경종을 울려대는 가운데, 나는 감을 믿고 전략을 수정했다.
츠즛-
한 발짝 물러나며 방어 위주의 초식을 전개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동작이 바뀌는 것과 동시에 백유진의 창끝이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의 창끝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두 갈래로 갈라졌다.
이는 분명 분광십삼뢰의 중반부에 속하는 초식이었다.
하지만 타이밍과 리치가 기억 속의 초식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정석적인 초식에 응용을 가미한 것 같았다.
‘……회수조차 안 하고 바로 넘어갔다는 건.’
백유진의 공세는 시간 차가 거의 없다시피 날아들었다.
이는 곧 내 반격을 이미 예상하고 대책을 세워 뒀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불과 하루 만에 이만한 성취라니.’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준의 성장 속도였다.
하지만.
캉! 카강-!
찰나지간 정확한 판단을 내린 덕분일까.
나는 어렵지 않게 두 갈래로 짓쳐드는 섬광을 모조리 쳐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백유진은 조금도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다음 일격을 준비했다.
요란하게 흔들리고, 면면부절 이어지며, 빛을 쪼개듯 산산이 갈라진 채로 쇄도해 오는 공세.
그게 바로 분광십삼뢰의 진정한 묘리임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한편.
내 나름의 파훼법을 떠올렸다.
‘아직은 초식의 형(形)에 마나의 유형화로 위력을 보강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공격의 위력은 내 쪽이 우위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단순한 논리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쿠구구궁-!
혼원현천신공의 출력을 가일층 끌어올리는 한편.
보폭을 크게 넓히고, 상체를 비스듬히 세웠다.
그대로 눈앞을 양단할 기세로 발을 사선으로 차올렸다.
내가 가진 스킬 중 최강의 창이라 할 수 있는 무공.
무영귀살각이었다.
쐐애액-!
백은의 참격이 솟구치는 순간.
“……!”
백유진의 동공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위력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치잇!”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양, 신속하게 대처했다.
특유의 허공을 노니는 듯한 보법을 통해 참격의 범위로부터 발 빠르게 벗어나는 한편.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걸 진즉에 알아차렸는지, 호신을 두른 창날로 참격을 비스듬히 흘려냈다.
그 결과.
콰앙-!
백은색의 참격은 훈련실의 벽면에 맞고 사라졌다.
이를 확인하며 자세를 갖추는 사이, 백유진 또한 가벼운 몸놀림으로 착지했다.
충분한 간격을 두고 다시금 대치하는 상황.
백유진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일한이 너, 생각보다 무지막지하구나?”
단순한 일격의 위력부터, 내가 택한 힘의 논리에 따른 전략까지.
그의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이는 100% 진심이었다.
실제로 방금 나눈 두 번의 합을 봐도 그랬다.
백유진은 불과 하루 만에 분광십삼뢰의 정석을 완숙하게 익혔음을 증명하듯, 응용까지 선보였다.
게다가 감은 물론 순간적인 판단력도 발군이었다.
‘어중간하게 임했다간 스킬 체득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밀릴 거야.’
그런 위기감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우습게도 자존심이었다.
아무리 백유진이 천재라 한들, 그에겐 결정적인 무기라 할 수 있는 창술이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패배한다면, 훗날에는 더더욱 상대가 안 될 것이다.
‘그럴 순 없지.’
그러니 반드시 이긴다.
비록 대련일지라도 말이다.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다시금 자세를 취했다.
거기에 반응해 백유진 또한 전투 준비를 갖추는 한편.
어느새 차분해진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방금 같은 스킬, 또 있어?”
“왜?”
“그만한 규모의 공격을 별다른 대비 없이 맞닥뜨렸다간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
백유진은 잘게 몸서리치는 시늉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것만으로도 강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더더욱 알려 줘선 안 되겠지?’
생각과 함께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글쎄, 이것저것 있어.”
“……이것저것이란 말이지. 그건 좀 무서운데.”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말투와는 달리 그의 눈빛은 어느새 날이 바짝 서 있었다.
나 또한 다시금 코어를 활성화시키며, 이번에는 탈혼지까지 발휘했다.
‘다시 전력으로 가자.’
준비를 끝마친 즉시.
타닷-
백유진을 향해 쇄도해 갔다.
* * *
다음 날, 점심.
“유진아! 이쪽!”
백유진은 오윤서의 부름에 발길을 틀었다.
식탁에는 그녀와 더불어 심인욱이 먼저 자리를 잡아둔 상태였다.
자리를 확인한 백유진은 그대로 다가가 심인욱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식판을 내려놓은 순간.
“유진, 무슨 일이지? 팔이 떨리는 것 같은데.”
심인욱이 무심한 어조로 물어왔다.
실제로 백유진의 양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질문에 백유진은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 이거? 대련을 좀 무리하게 해서 그런 것 같은데.”
“대련? B반에 너를 고전하게 만들 만한 녀석이 있었나?”
“으음, 수업 시간에 한 대련은 아니고.”
“수업 이외의 대련인가? 별일이군.”
심인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오랜 시간 백유진과 친구로 지내온 심인욱이었다.
따라서 백유진의 성향은 물론, 현재 그가 처한 상황과 그로 인해 대련을 꺼린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가 담긴 반응에 백유진은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응. 일한이가 도와주고 있거든.”
“……일한이라면, 안일한?”
백유진의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심인욱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되물었다.
여태 가만히 듣고 있던 오윤서도 안일한이란 이름 석 자에 반응하는 눈치였다.
두 사람의 모습에 백유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일한이한테 도움을 받았다더니, 진짜였구나.’
굳이 따지자면 안일한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은 호의에 가까웠다.
그게 새삼스럽지만 신기하게 느껴지는 한편.
안일한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체 정체가 뭐길래.’
분광십삼뢰 같은 공전절후의 무공을 선뜻 전수해 주는 점부터.
안일한이 대련에서 선보인 예사롭지 않은 스킬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상대가 안일한이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군. 그 녀석, 벌써 그렇게 강해진 건가.”
심인욱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심지어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이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수행평가도 끝났겠다, 조만간 나도 붙어봐야겠군.”
“일한이랑?”
“안일한과는 건틀렛 심화 수업을 같이 듣는 만큼 종종 대련했었다. 그리고, 유진.”
“응?”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나와도 한번 대련해 줬으면 좋겠군.”
심인욱은 무심한 어조로 제안을 건넸다.
무표정한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눈빛 속에는 호승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역시 인욱이도 많이 달라졌네.’
백유진은 잠깐 동안 심인욱의 눈빛을 받아냈다.
그러고는 속으로 날짜를 헤아렸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략 3일. 그렇다면…….’
가문의 문제에 관해 결착을 짓고 난 다음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때문에 백유진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일주일 후에 적당히 시간을 맞춰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