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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96화 (96/218)

96화 이 정도면 충분한가?

2시간 후.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39%]

-[????의 그림자]가 정상적인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림자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기억을 더듬었다.

-두 가지만 확실히 기억해 주면 돼.

조금 전, 안일한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 것이다.

그림자는 그가 강조한 부분을 다시금 되새기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기숙사를 빠져나와 무기 훈련실을 향해 갔다.

훈련실 내부에는 한 청년이 두 자루의 창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림자는 청년을 향해 무심하게 물었다.

“백유진?”

나직한 목소리에 청년, 백유진이 돌아봤다.

그의 표정에는 왠지 마땅찮다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백유진은 불퉁스러운 말투로 대꾸했다.

“그래서? 네가 말한 대로 창 두 자루를 가져왔다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지.

2시간이 흘렀다고 대체 뭐가 달라지는 건지.

백유진의 대답에는 그런 뉘앙스가 풍겼다.

하지만 그림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가타부타 말없이 창 한 자루를 건네받았다.

“…….”

창대를 쥐자 그리운 기억이 그림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수없이 연습한 끝에 겨우 익힌 감각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창술에 관한 기억과 감각을 서서히 끌어내고 있을 때.

백유진은 여전히 미덥지 않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대체 뭐 하자는 건지…….”

백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림자는 허공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휘익-!

일순간 창끝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나아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착시를 일으키며 허공을 단숨에 세 번이나 꿰뚫었다.

다름 아닌 분광십삼뢰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그림자는 창을 거둬들이며 다음 초식으로 넘어가는 대신, 백유진을 바라봤다.

마땅찮던 그의 표정은 어느새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 대체 그건.”

물론 완벽하다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흠잡을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고작 2시간만에 이뤄낼 수 있는 수준은 더더욱 아니었다.

때문에 백유진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면 그림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증명됐겠지.”

“……!”

백유진은 다만 두 눈을 부릅뜰 뿐, 아무런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림자는 이를 긍정으로 받아들이고는 본격적으로 분광십삼뢰를 펼치기 시작했다.

비교적 난이도가 평이한 초반부를 넘어, 충분히 할 만한 중반부 7초식까진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침내 후반부, 8초식에 이르렀을 때.

“잘 봐둬라.”

그림자는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진 다음.

타닷-

한발짝 크게 내디디며 후반부 초식을 전개했다.

그 속에는 몇 시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분광십삼뢰의 진정한 묘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창끝이 어지럽게 흔들리며 불규칙적인 궤적을 그렸고, 일격이 허공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가운데.

백유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게 분광십삼뢰.”

완전히 몰입한 상태에서 홀린 듯 지켜보기를 수십 초.

백유진은 허공을 뒤덮고 있던 창영(槍影)이 씻은 듯 자취를 감추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그 속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여 있었다.

그림자는 여운에 잠겨있는 백유진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가르칠 자격을 묻는 말이었다.

이에 백유진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조화를 부린 거지?! 어떻게 2시간 만에, 아니 그보다 분광십삼뢰라는 무공은 대체…….”

질문을 쏟아내는 가운데.

그림자는 침착하게 그의 말을 자르며 단언했다.

“출처는 비밀이다. 그게 첫 번째 조건이다.”

“비밀이라고……? 아니, 그보다 조건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백유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반면 그림자는 안일한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재차 말을 이어 갔다.

“알려 주는 대가다. 두 번째 조건은 네가 훗날 무엇이 됐든, 내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는 거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바로 안일한이 기억해 달라고 강조한 내용이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대가 없이 베푸는 건 의심을 불러일으킬 거야.

적어도 소원까지 언급하면 출처에 관한 부분은 묻어갈 수 있겠지.

출처를 비롯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정확히는 의문 대신 소원에 이목이 쏠리게끔 하기 위한 연막에 가까웠다.

그 덕분일까.

“……소원이라니.”

백유진은 분광십삼뢰의 출처나 그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소원을 입에 담았다.

계획대로 잘 풀렸다. 그런 생각과 함께 그림자는 천천히 대답했다.

“말 그대로다. 단 네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로 요청할 것을 약속하지.”

“그런 거라면……, 알겠어.”

백유진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분명한 소원에 대한 두려움보단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분광십삼뢰의 위력에 끌리는 모양이었다.

‘이걸로 무공 전수 문제는 거의 해결했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믿고 맡긴 보람이 있었다.

그런 감상과 함께 그림자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 가르쳐 주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해도 좋다.”

그렇게 분광십삼뢰 전수가 시작됐다.

백유진의 이해도를 점검하고, 상대적으로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후반부 초식은 세세하게 전수해 줬다.

그런 과정을 대략 세 번 정도 반복했을 때.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 같아.”

백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성취를 밝혔다.

그게 단순히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림자는 곧장 알아차렸다.

‘……말로 전해들었던 것 이상으로 천재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한편, 새삼스럽게 소름이 끼쳤다.

‘이만한 천재가 타락했으니, 피해가 컸던 것도 당연한 건가.’

과거 백유진이 일으킨 피해는 심인욱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그 일이 저절로 납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번에는 그런 피해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마치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찾은 양, 창술에 몰두하는 백유진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림자는 백유진의 수련을 지켜보는 한편,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환영 마법의 대책도 거의 끝나가고, 동기화율 40%도 머지않았다.’

슬슬 다음 단계, 김한석과의 전면전을 준비할 때였다.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그림자는 필요한 것들을 헤아렸다.

그 사이.

“……허억, 허억. 이 정도면 후반부 초식도 어느 정도 몸에 익은 것 같아.”

백유진은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또 다시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했다.

벌써 모든 초식의 형을 체득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대련을 통해 다듬으며 응용까지 완전히 체화하는 것뿐이었다.

‘안일한의 단련까지 함께 진행하면 되겠군.’

거기까지 생각한 그림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결은 지금 알려 주지. 단, 대련은 내일부터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진행하는 거로.”

* * *

다음 날, 점심.

“미안, 일이 좀 있어서. 먼저 먹어.”

나는 식사를 위해 다가온 임강철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는 A반을 벗어나 복도에서 백유진을 기다렸다.

그와의 대련에 앞서 교관님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는 그림자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유진은 초식의 형(形)까지는 확실히 익혔다.

이제 남은 건 실전을 통한 체화뿐이다.

네게도 도움이 될 테니, 그 부분은 맡기겠다.

백유진이 스킬을 체득하는 데 있어 실전 경험만이 남은 가운데, 이를 내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내가 고태식 교관에게 받았던 교습을 생각해 보니 금방 납득이 됐다.

‘물론 교관님처럼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림자 녀석의 말마따나 순수하게 대련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꽤나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녀석의 제안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오래지 않아 백유진이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하게 목례로 인사를 나눈 다음.

“그럼 갈까.”

“어.”

백유진과 함께 곧바로 교무실을 향해 갔다.

“대련 허가는 담임 교관님께 받으면 되는 거지?”

“어. 진태진 교관님께 받으면 될 거야.”

백유진이 B반인 만큼 김한석에게도 허가를 받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진태진 교관에게 받고자 했다.

아무래도 그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대화 자체가 꺼림칙한 탓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노크와 함께 교무실에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적었다.

그래서일까.

‘……안 계시네.’

진태진 교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려는 찰나.

“음? 일한 생도, 유진 생도. 교무실에 볼일이라도 있나요?”

마주치기 싫은 상대, 김한석과 대면했다.

하필이면 김한석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는 나와는 달리 백유진은 평소처럼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교관님께 용무가 있어서요.”

“오호, 용무라니. 무슨 일이죠?”

“대련 허가를 받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일한 생도와의 대련인가요?”

“네.”

백유진의 대답에 김한석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이채가 서린 묘한 눈빛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침착하자, 별일 없을 테니까.’

속으로 되뇌며 평정을 가장했다.

다행히 김한석은 오래지 않아 나한테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원하는 대답을 들려줬다.

“좋아요. 둘 다 우수하니, 규칙은 알고 있을 테고. 모쪼록 다치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허가를 내려준 것이다.

나는 백유진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어서 김한석에게 시간과 장소를 밝히고 나서야 대화가 마무리됐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재차 고개를 숙이며 돌아서려는 찰나.

어깨너머로 김한석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두 분은 언제 친해졌어요? 보통 둘 다 다른 생도들과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생도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교관이라면 으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한 사람이 정체를 숨긴 환영술사, 김한석이라 그런지 꺼림칙하게 다가왔다.

때문에 나는 백유진이 대답하기 전에 서둘러 얼버무렸다.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생각보다 잘 맞아서요.”

“……그렇군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드세요, 교관님.”

“일한 생도도 맛있게 먹어요.”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백유진은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를 곁눈질했지만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가자.”

“……그래.”

교무실을 벗어날 때까지도 등 뒤에서 김한석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교무실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대로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백유진이 나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백유진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러고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대련 장소와 시간은 기억하고 있지?”

“방과 후 무기 훈련실?”

“어. 저녁 먹고 만나는 거로 하자.”

“알겠어.”

다시금 약속을 정리할 무렵,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임강철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응. 나도 인욱이랑 윤서가 기다린다고 했거든.”

그렇게, 각자 친구들이 모인 자리로 향하는 가운데.

나는 마지막으로 백유진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백유진과의 대련이라.’

백유진은 그림자 녀석이 인정한 괴물이자, 명실상부한 천재였다.

그런 천재와의 맞대결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나는 기대와 함께 방과 후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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