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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95화 (95/218)

95화 그거라면 전혀 문제없어

10분 후.

“그럼 이따 저녁 10시, 무기 훈련실에서 보는 거로.”

안일한은 약속 시간과 장소를 남기고 돌아섰다.

반면 백유진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안일한과의 대화는 충격적이었다.

-내 능력은 조금 특별하거든.

안일한은 자신의 특성이 강화형, 마력형이 아닌 이능형이란 사실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백유진, 그 자신의 사정을 꿰뚫어 봤음을 시인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웠으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최근에 창술을 얻게 됐거든.

-내가 보기에는 너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 관심 있어?

단도직입적으로 창술을 언급하며 전수해 주겠다는 제안을 건네온 것이다.

이를 듣는 순간, 백유진은 뒤늦게 깨달았다.

‘……독심술, 속내를 읽혀서 평정을 잃고 말았어.’

스스로 판단력이 흐려졌음을, 그로 인해 안일한에게 계속 휘둘리고 있었음을 말이다.

인식한 즉시 백유진은 생각했다.

‘우연히 창술을 얻었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내게 어울리는 창술이라고……?’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있을 리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백유진은 날카롭게 추궁했다.

하지만.

-신창백가의 가전무공, 창룡격의 특징은 중(重), 너의 성향인 쾌(快)와 거리가 멀지.

-그래서 가전무공을 익히기를 거부한 거 아닌가?

안일한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백유진의 성향과 가전무공을 거부하는 이유를 언급함으로써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안일한에겐 여전히 의문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또한 그가 모든 물음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은 것도 아니었다.

이 점을 들어 캐묻기 전에.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창술은 쾌(快)의 특징을 가지고 있거든.

안일한은 사전에 차단하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신의 성향과 일치하는 창술.

그 말에 백유진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가문에서 최후통첩을 통보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때문에 안일한의 제안에 의혹이 깊어지는 것과 동시에 가슴 속에선 조바심이 차올랐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일주일도 안 남았어.’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안일한의 제안이 진정 기회인지,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인지.

이를 제대로 가늠해 볼 여유조차 없는 상태였다.

생각지도 못한 안일한의 제안에 머릿속이 계속 헝클어지는 가운데.

안일한은 나직하게 또 다른 제안을 건넸다.

-정 못 믿겠으면 직접 보고 결정해도 좋아.

이어서 그는 약속 장소와 시간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떠나갔다.

그게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안일한.”

백유진은 멍하니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꽉 쥔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밤 10시라고 했지.’

백유진은 안일한과의 약속을 속으로 곱씹으며 생각했다.

녀석은 직접 보고 결정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진심인지, 아니면 허언인지. 기꺼이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만일 허언이라면…….’

자신을 우롱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다.

백유진은 그렇게 다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시간이 흘러 저녁 9시 50분.

‘슬슬 가 볼까.’

이제 곧 백유진과 약속한 시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무공을 언급하고, 제안하는 것까진 성공적이야.’

미리 생각해둔 말과 ‘독심술’이라는 변수, 거기에 임기응변이 더해진 결과였다.

이제 남은 건 백유진에게 분광십삼뢰를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이 과정 또한 단순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분광십삼뢰의 가치를 알아봐야 할 텐데.’

백유진에게 분광십삼뢰의 가치를 어필하는 과정이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관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내가 그림자 녀석에게 배운 초식을 온전히 전개하는 것.

두 번째는 백유진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분광십삼뢰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첫 번째.’

최대한 온전하게 무공을 선보이는 것뿐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림자 녀석이 보여 준 초식들을 떠올리며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으며 걷는 사이, 무기 훈련실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역시 백유진은 나보다 한발 앞서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일찍 왔네.”

먼저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자 백유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뭐,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까.’

최악의 경우 백유진과의 대립까지 고려했던 만큼, 심기가 불편한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백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 한번 보여 봐.”

여전히 날 선 말투와 함께.

휘익-

백유진은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내 쪽으로 던졌다.

순간 움찔했으나, 감정을 실어서 던지진 않은 듯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창을 받아낼 수 있었다.

나는 투박하게 생긴 창을 바라보며 가볍게 흔들어 봤다.

‘이게 창인가.’

무게감이 낯설었다.

생각해 보니 창은 1학기 때 무기 선택 시간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었다.

나는 가급적 만전을 기하기 위해 백유진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 오랜만에 써 봐서.”

그러고는 대략 1분간 창을 휘둘렀다.

완전히 적응하기까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낯설다는 감각을 어느 정도 희석시킬 수는 있었다.

그제야 분광십삼뢰를 선보일 준비를 끝마쳤다.

나는 본격적으로 무공을 펼치기에 앞서 백유진에게 미리 명칭을 공개했다.

“분광십삼뢰라는 창술이야.”

“……분광십삼뢰.”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백유진.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난 다음.

“흐읍!”

곧바로 발을 내디디며 첫 번째 초식을 전개했다.

무공을 펼치는 순간 온몸이 절로 긴장됐다.

‘최대한 실수하지 말자.’

그런 일념으로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휘익-!

불과 세 번째 초식이었지만 벌써부터 숨이 차올랐다.

분광십삼뢰(紛光十三雷).

명칭에 걸맞게 창끝은 어지럽게, 속도는 섬전과 같음을 지향하는 무공이었다.

더하여.

‘분명 그림자 녀석은 첫 번째 초식부터 마지막 초식까지 면면부절 이어서 펼쳤지.’

분광십삼뢰는 각 초식을 끊임없이, 물 흐르듯 전개해야 하는 무공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발휘되는 묘리까지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완전히 몰입한 까닭일까.

시간의 흐름은 물론, 백유진의 시선까지도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정신이 돌아온 건.

츠즛-

마지막으로 창을 곧게 내지르며 전신의 움직임이 정지됐을 때였다.

“……허억, 허억.”

가장 먼저 호흡이 거칠게 터져 나오는 가운데.

온몸이 뻐근했다.

아무래도 평소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서 그런 듯했다.

가볍게 어깨나 목을 풀어주는 한편, 뒤늦게 백유진의 반응을 살폈다.

“……너, 대체.”

백유진이 충격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론 반응을 완전히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뭔가를 알아본 것 같긴 한데.’

과연 그게 긍정적인 쪽일지, 아니면 부정적인 쪽일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을 때, 백유진이 재차 입을 열었다.

“대체 그 형편없는 움직임은 뭐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름 아닌 힐난이었다.

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감정과는 별개로 빠르게 머리를 굴려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생각해라, 방법을 생각…….’

필사적으로 고민하는 가운데.

백유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만한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고작 그런 움직임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여전히 힐난하는 어조였으나 내용이 묘했다.

‘그만한 수준의 무공? 그렇다는 건…….’

그는 분광십삼뢰의 가치를 꿰뚫어 본 걸까?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떠올리는 사이, 백유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기다리자.

“이리 줘 봐!”

백유진이 신경질적으로 창을 빼앗아갔다.

그대로 나와 간격을 벌리더니, 익숙한 자세를 취했다.

“첫 번째 초식이야, 잘 봐둬.”

백유진은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창을 내질렀다.

스슷-!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창끝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이어서 창끝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세 번 찌르는 것.

이는 다름 아닌 분광십삼뢰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깨달은 순간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이런 미친.’

단 한 번, 그것도 부족한 수준으로 선보인 초식을 백유진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츠즛-!

“이게 두 번째 초식이고!”

스스슥-!

“이게 세 번째!”

첫 번째 초식을 넘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초식에 이르기까지.

전반부 3초식을 완벽한 수준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는 내게 분광십삼뢰를 가르쳐 준 그림자 녀석의 시범을 월등히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괴물 같은 녀석…….’

백유진의 천재성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한편, 뒤늦게 내가 원하던 반응이 나왔음을 깨달았다.

때문에 나는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백유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주무기는 건틀렛이야. 창술은 익숙지 않으니 감안해서 봐.”

나는 최대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말을 이어 갔다.

“그것보다 어때. 너라면 틀림없이 분광십삼뢰의 가치를 파악했을 거라 보는데.”

“……으윽.”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백유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의 한 박자 늦은 반응을 보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백유진이 분광십삼뢰의 가치를 꿰뚫어 봤을 뿐 아니라 아예 무공에 매료되었음을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숨에 재현하며 내게 역정을 내진 않았을 테니까.’

괴물 같은 천재성에 잠시 당황했지만, 내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쪽이 아니었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분광십삼뢰를 재현한 것.

그게 핵심이며, 이는 곧 백유진이 내 제안에 미친 듯이 끌리고 있음을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아. 인정하기 싫지만 네 말이 맞아.”

백유진은 한숨과 함께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이번 일의 끝이 보이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네게서 분광십삼뢰를 배울 순 없어.”

백유진으로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나는 곧바로 되물었다.

“……배울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정확히는 불가능해.”

“그러니까 알기 쉽게 설명해 줘.”

“네가 알려 주는 거로는 후반부와 무공 전체를 관통하는 묘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백유진의 한숨 뒤섞인 설명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의 말뜻은 다름이 아니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서 내게는 배울 수 없다는 건가……?’

이해한 내용을 그대로 입에 담아 백유진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을 전수해 주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정확해.”

이어서 백유진은 자신의 역량으로 재현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 중반부 8초식까지라 덧붙였다.

나직하게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처음과 달리 경계심보단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조금 달랐다.

‘단지 전수해 주는 사람이 문제라면…….’

가르치는 사람을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자신감 있게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전혀 문제없어.”

“미안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네 실력으로는…….”

“나한테 방법이 있어, 2시간 뒤에 다시 이곳으로 와.”

백유진의 말을 자르며 다시금 제안했다.

2시간 뒤. 그때쯤이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바통 터치다.’

누군가에게 전하듯, 속으로 되뇌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추가로 창을 한 자루 더 준비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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