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내 능력은 조금 특별하거든
“다음 생도. 이쪽으로……, 음?”
내 차례가 되자 신창백가의 대표로 참여한 중년 남성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내게 물었다.
“내가 알기로 생도는 시험에서 건틀렛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 맞나요?”
중년 남성은 온화한 인상 만큼이나 정중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미리 구상해 둔 내용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문에 면담을 신청했네요. 우리가 창을 주력으로 삼는 걸 모르는 것 같진 않은데.”
“네, 사실 신창백가에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나는 대답과 함께 입구 쪽을 곁눈질했다.
그러자 백유진의 형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이윽고 그는 내 시선의 끝에 위치한 백유진의 모습을 확인했는지.
“……쯧.”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수준으로 혀를 짧게 찼다.
반응은 단지 그뿐으로, 백유진의 형은 다시금 얼음장같이 차가운 태도를 고수했다.
표정 변화도 찰나에 불과할뿐더러, 기본적으로 무표정한 까닭에 감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다만.
‘왠지 경멸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마저도 확실치 않은 탓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때마침 신창백가의 대표인 중년 남성이 재차 내게 말을 건넸다.
“어쨌든 잘 왔어요. 나는 백천기라고 해요. 보아하니 유진이와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맞나요?”
“아, 네.”
“내가 그 아이의 숙부예요. 옆에 있는 이 아이는 백유성이라고, 유진이의 둘째 형이죠. 짧은 시간이겠지만 잘 부탁할게요.”
“네, 저는 안일한입니다.”
스스로 백유진의 숙부라 밝힌 백천기는 정중한 어조로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예의를 갖춰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이어서 백유진의 형, 백유성과도 간단하게 목례를 나누며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면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래요, 일한 군은 우리 가문에 궁금한 점이 있다고 했죠?”
“네.”
“편하게 물어봐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대답해 줄게요.”
“감사합니다. 사실 신창백가의 무공이 궁금해서요.”
“무공이라…….”
내 물음에 백천기는 흥미롭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일한 군도 알겠지만 우리 가문은 창술이 유명해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이를테면 권법이나 각법 같은 무공도 가지고 있죠.”
광룡권, 비영신각 등.
백천기는 구체적으로 무공의 명칭을 나열했다.
또한 그는 신창백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공격대의 구성원들은 창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를 활용한다고 덧붙였다.
“일한 군이 우리 가문의 후원을 원한다면, 실제로 공격대에서 주력으로 활용되는 무공을 전수해 줄 수 있어요. 등급은 대략 B급에서 B+급 정도가 될 거고요.”
백천기는 후원에 관련된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그의 설명으로부터 신창백가에 대한 자부심이 진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런 감상과는 별개로, 후원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대단하네요. 그럼 혹시 신창백가의 가전무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까요?”
“가전무공이라……. 질문하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백천기는 변함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가전무공을 탐하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무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하, 일한 군은 생각보다 날카롭네요.”
“그런가요?”
“네. 하지만 가문 소속으로 커다란 공을 세우면 우리도 나름의 심사를 봅니다. 단지 엄격하게 관리할 뿐, 외인과 혈족을 심하게 차별하는 편은 아니에요.”
오해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양, 백천기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마저 진행했다.
“더욱이 전 건틀렛이 마음에 들거든요.”
“그런 것 같아요. 아주 뛰어나던데요?”
“감사합니다.”
“그럼 어째서 궁금한지 알 수 있을까요?”
단순히 얼버무리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백천기는 끈질기게 이유를 물어왔다.
하지만.
“유진이에게선 못 본 것 같아서요. 그래서 어떤 무공일까 싶었거든요.”
나는 과감하게 백유진을 언급했다.
애초에 추궁하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을 했고, 그에 따른 대답도 미리 생각해 둔 덕분이었다.
망설임 없는 내 대답에 백천기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반면 백유성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
여태 무관심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역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백유진을 데리고 함께 나갔던 날.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그 애는 의외로 고집이 세거든요.”
백천기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으로.
“그런 거라면 느낌이나 강점, 특징 정도는 알려 줄 수 있겠네요.”
백천기는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아무래도 그는 더 이상 백유진에 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게 살짝 아쉬웠으나, 금방 떨쳐냈다.
‘애초에 이번 면담의 목적은 백유진에게 존재감을 부각하는 거니까.’
생각을 정리할 무렵. 백천기는 천천히 가전무공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가문에는 여러 무공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명한 무공은 창룡격이에요. 묵직하고, 위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죠.”
그의 설명을 머릿속에 갈무리하는 한편.
나는 그림자 녀석이 제공해 준 분광십삼뢰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두 무공의 특징을 한번 비교해 봤다.
‘창룡격의 특징은 한마디로 중(重), 반면 분광십삼뢰는 쾌(快)에 가까웠지.’
이어서 알고 있는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조합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백유진이 가진 성향이 중(重)보단 쾌(快)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거부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완강하게 거부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새삼스럽게 이해가 잘 안 됐지만, 굳이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 이상은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까닭이었다.
때문에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무렵, 개인 면담으로 주어진 시간이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슬슬 마무리해야겠네요. 어떻게, 궁금증은 전부 해결됐나요?”
백천기는 대화를 마무리할 겸, 마지막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입을 열었다.
“덕분에 의문이 해소됐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일한 군은 우리 가문의 후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네요.”
“네 아직은 고민 중입니다.”
“그럼 나중에라도 생각 있으면 연락 줘요.”
백천기는 내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공손하게 받아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돌아서려는 찰나.
“만나서 반가웠어요. 앞으로도 유진이와 잘 지내 주길 바라요.”
인자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마주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남은 건…….’
생각을 정리하며 가상 전투실을 빠져 나가는 순간.
때마침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이와 대면했다.
“안일한, 숙부님과 면담은 잘 했어?”
다름 아닌 백유진이었다.
그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용건을 꺼내 들었다.
“방과 후에 시간 좀 내줘. 물어볼 게 있으니까.”
백유진은 평소처럼 웃는 낯으로 내게 요청해 왔다.
반면 표정과는 달리 그의 말투는 어딘가 강압적인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반응하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짓는 한편,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이거야말로 내가 원하는 흐름인 까닭이었다.
내 승낙에 백유진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남기고는 곧장 돌아섰다.
그대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약속 장소를 속으로 곱씹었다.
‘방과 후 용맹관 뒤뜰이라고 했지.’
그때가 곧 승부처라고 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서 분광십삼뢰를 밝히고, 바로 무공을 전수하는 과정으로 넘어가자.’
백유진의 의문이 무엇이 됐든, 나는 그에게 분광십삼뢰를 밝힐 생각이었다.
그리고 종내엔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방과 후를 기다렸다.
* * *
9교시, 각 길드의 설명회가 전부 끝났을 때.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기숙사 뒤뜰을 향했다.
바로 이동했음에도 백유진은 나보다 한발 앞서 약속 장소에 와 있었다.
“왔어?”
백유진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웃는 낯으로 나를 맞이해 줬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빠르게 용건을 꺼내 들었다.
“인욱이한테 듣기로는 네가 창술에 관심이 생겨서 신창백가에 면담을 신청한 거라던데, 맞아?”
“어.”
“희한하네. 뭐, 그건 제쳐두고.”
백유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 다음이 본론이었는지.
“면담 때 혹시 내 이야기했어? 중간에 내 쪽을 힐끔 바라봤던 것 같은데.”
살짝 굳은 낯빛으로 질문했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살짝 뜸을 들였다.
그 사이 속으로 백유진의 반응을 갈무리했다.
‘역시 신경을 쓰고 있구나.’
계획대로의 반응이었다.
이를 확인한 즉시 나는 생각해 둔 말을 입에 담았다.
“지난번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뭘?”
“네게 궁금한 부분이 있다고 했었잖아.“
“……!”
백유진은 내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써.
“……설마 너, 내가 창술을 익히지 않은 이유를 물어본 거야?”
그는 조금 전보다 빠른 어조로 내게 물어왔다.
뿐만 아니라 이는 처음 질문했을 때와 달리, 거의 추궁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이 또한 원하는 반응에 가까웠다.
때문에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글쎄, 어떠려나.”
명확한 대답 대신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 상태로 말없이 백유진을 바라봤다.
특유의 웃는 낯은 어디 가고, 그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심기가 불편함을 증명하듯.
“……내가 분명 개인 사정이라고 네게 말해 줬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날이 서 있었다.
말투부터 태도까지.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갭이 상당한 까닭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안 돼.’
나는 빠르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승부처는 여기서부터였다.
다시 한번 이 사실을 상기하며 나는 생각한 바를 그대로 내질렀다.
“전에 네가 물어봤지? 심인욱과 오윤서가 나와 엮이고 나서 뭔가 달라졌다고.”
“……그건 내 질문의 대답이 아닌데?”
딴소리하지 말고, 질문에 답해라.
그런 뉘앙스였음에도 나는 개의치 않고 내 할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두 사람의 문제를 전부 해결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분명 내가 뭔가를 했다는 것도 사실이야.”
여전히 백유진의 입장에선 딴소리였다.
하지만 흘려듣기에는 솔깃한 이야기였는지, 그는 곧장 반응했다.
“……뭐?”
“내 능력은 조금 특별하거든. 그런 부분을 들여다보는 데 특화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설마 이능형 특성, 독심술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야?”
백유진의 대답에 순간 당황할 뻔했다.
하지만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본 결과.
‘……이건 써먹을 만할지도.’
충분히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부정하지 않는다면 백유진은 내가 그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본다고 여길 것이다.
그럼 대화가 한결 수월해질 터였다.
‘무공의 출처 문제는 조금 더 나중에 해결하면 되니까.’
우선 다음 화제까지 부드럽게 넘어가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즉시 나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한 채로 말을 이어 갔다.
“뭐, 비슷하려나. 네 문제를 알게 된 것도 있고, 게다가 공교롭게도 최근에 창술을 얻게 됐거든.”
“……창술을 얻게 됐다고?”
백유진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되물었다.
그를 향해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너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 관심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