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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93화 (93/218)

93화 안일한, 할 말이 있다

코볼트 워리어와의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었다.

마치 유린하듯, 시종일관 녀석들을 몰아붙인 것이다.

이는 내가 녀석들의 공격 패턴과 행동반경, 그리고 약점까지 모든 걸 꿰뚫어 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단순히 녀석들을 때려잡는 대신.

‘여기서 조금 더 실력을 어필할 수 있게끔 하려면…….’

내 실력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을 만한 전투 방식을 궁리했다.

그렇게 내놓은 결론은 다름 아닌 ‘정교함’이었다.

단순히 무공의 위력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완벽한 회피와 적재적소의 공세, 그리고 유효타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안일한, 만점이다.”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만점을 받아 냈다.

감독을 맡은 진태진 교관이 내게 격려의 말을 건네는 가운데.

‘어디 보자.’

나는 참관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저 생도는 압도적이군.”

“이름이, 안일한이라…….”

내 점수를 보며 탄성을 흘리거나.

아니면.

‘……대지의 혼 길드하고 웅심 쪽은 대놓고 눈을 마주치네.’

건틀렛을 주력으로 하는 두 길드는 아예 내 쪽에 시선을 고정시킨 상태였다.

슬슬 부담스러운 까닭에 내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 사이, 나는 곁눈질로 한 곳의 반응을 살폈다.

다름 아닌 신창백가였다.

일행의 대표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부터, 수행원, 마지막으로 백유진의 형까지.

힐끔힐끔 바라보던 중.

‘지켜보고 있구나……, 응?’

문득 백유진의 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 우연찮게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초.

상대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의아했지만 일단 나도 시선을 거둬들였다.

이윽고 나는 제자리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까진 확실히 성공했으니까.’

다음은 개인 면담이었다.

신창백가의 인원들과 대면했을 때, 어떤 말을 꺼낼지.

어떤 식으로 대화를 끌고 나갈지.

차분하게 고민하며 수행평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8교시.

C반의 마지막 인원까지 수행평가를 끝마쳤을 때.

“지금 호명하는 생도들은 이쪽으로 집합하도록.”

시험을 감독하던 교관이 인원들을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관의 호출에 걸음을 옮기며 나처럼 호명받은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제야 교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위 10%를 분류하고 있는 거구나.’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윤설하와 차은월, 그리고 기억 속에 있는 몇몇 상위권 생도들도 호명됐다.

그렇게 A반을 시작으로 B반의 백유진, C반의 심인욱과 오윤서 등.

전체 석차의 최상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불려 나왔다.

거의 마지막쯤에 이르러.

“A반의 임강철 생도, 이쪽으로!”

임강철도 호명됐다.

“일한이! 내가 해냈다!”

“그래, 고생했네.”

나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달려오는 임강철을 적당히 맞이해 줬다.

그사이에 호명이 끝났는지, 교관은 인원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은 대략 50명 조금 안 되는 숫자였다.

교관은 파악을 끝내고 나서야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생도들은 이번 수행평가에서 상위 10%의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거다.”

새삼스러운 발표를 시작으로, 교관은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생도들에겐 오늘 이 자리에 걸음해 준 길드 및 단체와 개인 면담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거다.”

다름 아닌 개인 면담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를 시작으로 교관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단, 면담을 원치 않는 사람은 추후 진행될 설명회만 참석하면 된다. 질문 있나?”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나서야 개인 면담 시간을 알려 줬다.

8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부터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그때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할 시간을 주겠다며 곧바로 자리를 비켜 줬다.

교관을 시작으로 개인 면담의 기회를 얻지 못한 나머지 생도들까지 전부 가상 전투실을 빠져나갔다.

상위 10%의 생도들만 남게 되자 자연스럽게 친분에 따라 모여들기 시작했다.

“윤설하, 차은월! 이쪽이다!”

나 또한 임강철을 비롯한 내 친구들과 함께 모였다.

“임강철, 결국 잘 봤잖아!”

“다행히 제일 자신 있는 홉 고블린이 나왔으니까!”

“어쨌든 다들 다행이야!”

윤설하부터 임강철, 그리고 차은월까지.

저마다 한마디씩 건네며 서로를 격려하는 가운데, 나는 주위를 살폈다.

‘어디, 백유진의 위치는……, 저쪽이구나.’

다름 아닌 백유진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오늘 계획은 단순히 수행평가에서 고득점을 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곧 있을 신창백가와의 면담은 물론, 그걸 바탕으로 백유진의 이목을 끄는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사전에 백유진의 이목을 끌어 둘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말이라도 걸어볼까?’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

“……어?”

문득 백유진과 함께 있던 오윤서와 심인욱,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둘 중 오윤서는 황급하게 고개를 돌린 반면, 심인욱은 계속해서 나를 주시했다.

이윽고.

저벅저벅-

별안간 심인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은 명백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내 친구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심인욱을 향했다.

무려 넷이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안일한, 할 말이 있다.”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내게 말을 걸었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잠깐 다녀올게.”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심인욱을 따라갔다.

이윽고 심인욱은 서로의 일행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진지한 어조로 내게 예상치 못한 제안을 건네왔다.

“안일한,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겠나?”

내게 대지의 혼 길드에 들어오기를 권유한 것이다.

순간 당황한 나머지, 나는 다소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딜 들어오라고?”

심인욱은 내 목소리에 신경 쓰는 대신, 변함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대지의 혼 길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너와 나처럼 건틀렛을 택한 초인들이…….”

“아니 아니, 대지의 혼 길드는 알고 있어.”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심인욱은 설명할 수고를 덜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나는 이마를 짚었다.

‘……설마 이런 권유를 할 줄이야.’

확실히 아카데미 졸업 후를 생각하면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인욱의 뉘앙스는 졸업 후는 물론, 당장 몇 분 후에 있을 면담에서 의지를 보여 달라는 느낌이었다.

그 부분만큼은 백유진의 문제에 관한 계획 때문에라도 거절해야 했다.

뜻밖의 상황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가운데.

심인욱은 이를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웅심 쪽을 생각하고 있었나.”

느닷없이 웅심(雄心) 길드를 입에 담았다.

게다가 이젠 진지함을 넘어서 심각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물론 웅심도 훌륭한 길드로 알고 있다. 역사도 대지의 혼 길드보다 길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나를 설득하려는 양 대지의 혼 길드의 이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태도부터 표정까지, 심인욱은 100% 진심인 듯했다.

때문에 나는 더 늦기 전에 오해를 풀고자 입을 열었다.

“아니, 웅심 쪽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야.”

“그렇다면 다행이군. 내 권유에 응해 주겠다는 건가?”

“나중이라면 모를까, 이번 면담에선 힘들 것 같아.”

조심스럽게 본심을 밝히자 심인욱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는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기울이며 내게 물었다.

“어째서지?”

“이번 면담에서 꼭 알아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물어봐도 되나?”

“신창백가.”

“신창……, 뭐?”

“신창백가.”

“…….”

“창술에 살짝 관심이 생겨서. 무기를 바꾸는 건 아닌데 그냥 조그마한 의문 정도려나.”

심인욱은 두 눈이 또다시 동그랗게 커졌다.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내 대답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모양이었다.

그대로 심인욱이 침묵에 잠겨 있을 때.

‘대충 친구들에게 둘러댔던 것처럼 하면 되겠지?’

나는 속으로 변명거리를 궁리했다.

이윽고 심인욱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알겠다.”

추궁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심인욱은 그대로 돌아섰다.

다만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의 일행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본의 아니게 두통을 안겨준 것 같아 괜히 신경 쓰였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바로 그 덕분이었다.

심인욱이 백유진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이다.

‘……앞뒤 맥락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인식한 순간,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신창백가와 개인 면담을 하기 전에 어떤 식으로 백유진의 이목을 끌지 고민하던 차였다.

‘만일 심인욱에게 건넨 말이 그대로 백유진에게 전달됐다면…….’

구태여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이미 어느 정도 이목이 쏠릴 것이다.

즉, 백유진에게 어느 정도 밑밥을 깔아 둔 셈이라 봐도 무방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

한창 심인욱과 대화를 나누던 백유진이 문득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와 시선을 교환하는 한편, 속으로 예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이걸로 백유진의 이목 끌기도 클리어네.’

의도는 아니었으나, 본의 아니게 한 건 해결했다.

이제 남은 건 신창백가와의 개인 면담뿐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제자리로 돌아가자 친구들이 나를 맞이했다.

“심인욱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어?”

“왠지 심각한 표정인 것 같던데?!”

윤설하와 임강철이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내는 가운데.

딩동댕동-

8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맞춰 교관을 비롯하여 열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가상 전투실에 들어섰다.

면면을 확인해 보니, 참관 시험에 참여한 길드 및 단체의 대표들이었다.

신창백가의 경우, 대표와 더불어 백유진의 형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인원이 전부 들어왔을 때, 교관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다들 주목해라. 지금부터 개인 면담을 실시한다. 조금 전에 설명했듯, 희망하는 인원들은 해당 길드 쪽에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면담을 받으면 된다.”

교관은 재차 질서를 강조하는 정도로 설명을 마쳤다.

그 사이 각 길드의 대표들은 제자리를 찾아 착석을 끝마친 상태였다.

이에 생도들은 하나둘씩 원하는 길드 쪽으로 움직였다.

“얘들아, 그럼 이따 보자!”

“응, 설명회 시작하기 전에 다시 모이자.”

나도 친구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계획했던 대로 신창백가 쪽으로 가서 적당히 뒤쪽에 줄을 섰다.

그러고는 차례를 기다릴 겸, 주위를 살폈다.

다름 아닌 백유진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보아하니 그는 신창백가 쪽에 줄을 서진 않은 모양이었다.

‘개인 면담을 아예 안 하려는 건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며 입구 쪽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백유진은 오윤서와 함께 가상 전투실의 입구에 서 있었다.

내가 그를 찾았듯, 백유진도 나를 주시하고 있었는지 또다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

“…….”

감정을 알 수 없는 눈빛.

나는 백유진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디 잘 보고, 원하는 반응을 보여 줘라.’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상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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