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딱 일주일 주겠다
휘익-!
백유성의 주먹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아무런 전조조차 없는 일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터억!
백유진은 순식간에 반응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비트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백유성의 주먹을 막아 낸 것이다.
불의의 습격에 백유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카데미 내에서 교관님의 허가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지?”
백유진은 표정을 가다듬으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백유성은 천천히 주먹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형으로서 어리석은 동생에게 훈계를 내렸을 뿐이다.”
“……훈계?”
“시답잖은 고집은 그만 부리라는 충고다.”
“시답잖다니. 말이 심하네.”
백유진은 평소와 비슷한 말투로 응수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백유성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대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반면 백유성은 별다른 대꾸 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백유진을 노려봤다.
“…….”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속, 두 사람은 말없이 수십 초간 시선을 교환했다.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백유성이었다.
“네가 집안을 망신시키는 꼴을 더는 두고 보지 않을 거다.”
위협적으로 흘러나오는 어조.
이를 듣는 순간 백유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백유성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너의 치기 어린 행동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여기까지란 뜻이다.”
“……그래서?”
“딱 일주일 주겠다.”
“일주일? 그게 무슨 소리야.”
“얌전히 가전무공을 배울지, 아니면 모든 걸 잃고 기회를 박탈당할지. 선택은 네 몫이다.”
백유성의 경고는 최후통첩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권유를 빙자한 일방적인 협박에 백유진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듯, 백유진은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며 씹어뱉듯 말했다.
“……형이 뭔데.”
“뭐?”
“형이 뭔데 그딴 말을 하냐고.”
살기가 넘실거리는 말투로 쏘아붙이는 백유진.
그럼에도 백유성은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이 답했다.
“애초에 이런 결정을 내가 했을 거라 생각하나?”
백유성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온 탓일까.
백유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런 그를 백유성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변함없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나 또한 일개 생도에 불과하다. 단지 형으로서 못난 동생을 관리하라는 명을 받았을 뿐이지.”
“그 말은…….”
백유진은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신창백가의 가주, 아버지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백유진은 어떠한 항변도 할 수 없었다.
가문의 일원이라면 그게 누구든, 가주인 아버지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까닭이었다.
백유진은 고개를 떨군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서일까.
“…….”
그는 말없이 바라보는 백유성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백유성의 눈빛 속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나 백유성은 속내를 드러내는 대신.
“일주일이다.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할 거다.”
재차 통첩을 날리며 돌아섰다.
이후 백유성은 뒤도 안 돌아보고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
백유진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사이.
꿈틀-
그의 체내 깊은 곳에 자리한 불온한 기운이 은밀하게 꿈틀거렸다.
* * *
수행평가 연습과 개인 단련에 몰두하는 사이, 주말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월요일, 수행평가를 치르는 날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길드 및 거대 단체의 참관하에 시험이 진행돼서 그런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이는 점심 식사를 위해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번 실습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좀 떨리네. 은월아, 넌 어때?”
“으음, 난 그럭저럭이려나? 오히려 설하, 네가 떨린다는 게 조금 의외인 것 같아.”
윤설하와 차은월의 대화를 시작으로 자연스레 수행평가에 관한 화제가 흘러나왔다.
윤설하는 의외로 긴장하고 있는 반면, 차은월은 의외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성격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일한이! 너라면 분명 고득점이겠지?”
임강철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는 텐션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생각해 둔 길드나 단체가 있나?!”
그의 질문에 나는 순간 고개를 기울였다.
“생각해 둔 곳이라니?”
내 물음에 임강철 대신 윤설하가 대답했다.
“안일한, 너 못 들었어?”
“못 듣다니, 뭘?”
“수행평가에서 상위 10%의 성적을 내는 생도는 원하는 곳에 개인 면담 요청이 가능하다는 거 말이야.”
“설명회가 아니라?”
“그건 성적과 관계없이 모든 생도들이 참가할 수 있는 거고. 혹시 설명 때 딴생각이라도 한 거야?”
윤설하의 핀잔에 나는 머쓱한 감정이 들었다.
‘확실히 요 며칠간은 계속 백유진의 문제만 머릿속에 가득했으니까.’
그녀의 말마따나 다른 부분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귀중한 정보를 놓친 모양이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윤설하가 알려 준 정보를 머릿속으로 곱씹어봤다.
‘그럼 개인 면담의 기회를 신창백가에 사용한다면…….’
백유진에게 조금 더 존재감을 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는 내게 있어 나쁠 것 하나 없는 이야기였다.
그 정도로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설하야, 넌 생각해 둔 곳 있어?”
차은월이 두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에 윤설하는 고민하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으음, 난 아무래도 수호자 길드나 환영검가이려나?”
4대 길드 중 하나인 수호자 길드는 둔기와 더불어 검으로도 유명했다.
환영검가 또한 3대 가문의 일환이자,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 검을 주력으로 삼는 가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차은월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기야, 설하는 검을 사용하니까 두 곳이 가장 적합하겠구나.”
“응. 경우에 따라선 후원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뭐, 사실 그 전에 성적을 내는 게 먼저겠지만.”
윤설하는 객쩍은 듯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후원이라. 꽤나 본격적이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후원’이란 장학금 이외에 무공이나 보법과 같은 스킬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길드나 거대 단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아카데미 졸업 후, 인재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기야, 윤설하는 배경이 없으니까 솔깃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네.’
두 사람의 대화로부터 정보를 갈무리하는 가운데.
차은월 또한 미소로 화답하며 입을 열었다.
“에이, 설하 너는 여태까지 전교 5등 밑으로 내려가 본 적 없잖아.”
“운이 좋았던 거지. 그나저나 은월이, 넌?”
“으응?”
“생각해 둔 길드 있어? 황혼의 마탑이라든가.”
황혼의 마탑.
이는 다섯 번째 진리 마탑과 더불어 국내에 단 두 개뿐인 마탑 중 한 곳이었다.
마법 계열로 진로를 택한 이들 중 뛰어난 성적을 가진 생도는 대개 두 마탑 중 한 곳을 지망했다.
“나는 성적에 자신이 없어서 생각도 안 해 봤어.”
“무슨 소리야! 너도 실습 때 여유롭게 참가했을 정도로 성적 잘 나왔잖아?”
“그래도……, 아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이내 윤설하는 임강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임강철, 너는 생각해 둔 곳 있어?”
“물론이다! 성적만 된다면 말이지!”
“……정론이긴 하네. 그래서?”
“웅심 길드를 생각 중이다! 대지의 혼을 가게 된다면 심인욱의 아래로 들어가야 할 테니!”
웅심(雄心) 길드.
대지의 혼과 마찬가지로 4대 길드의 한 축이자, 건틀렛을 주력으로 하는 길드였다.
다만 역사는 웅심 길드 쪽이 좀 더 길었다.
“왠지 너답네.”
윤설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뿐만 아니라 임강철과 차은월의 시선도 어느샌가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들 의사를 밝혔고, 이제 남은 건 나뿐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한이, 이제 남은 건 너뿐이다!”
임강철이 쾌활하게 물어왔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신창백가.”
“그래, 역시 웅심……, 뭐라고?!”
내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임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황급히 나를 쳐다봤다.
윤설하와 차은월 또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좀 생뚱맞게 들렸으려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재차 말을 이어 갔다.
“기회가 된다면 신창백가 쪽 사람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눠 보고 싶어서.”
“왜지?!”
“으음, 최근에 백유진에게 관심이 생겼으니까?”
나는 대충 둘러댈 생각으로 백유진을 입에 담았다.
그럼에도 윤설하와 차은월은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신창백가라니, 의외네.”
“저번 실습 때도 그랬지만, 일한이는 뭔가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아.”
두 사람은 여전히 의문스럽게 여기는 듯했으나, 구태여 캐묻거나 하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렇군!”
별안간 임강철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어째선지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젠 전교 1등을 노리는 건가……!”
“……응?”
“네가 백유진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라면 그것뿐이잖나! 일한이, 역시 넌 대단하다!”
임강철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경쟁자인 백유진을 알아보기 위함이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차피 설명하기도 마땅치 않으니까.’
다행히 수행평가에 관한 화제는 그쯤에서 정리가 됐다.
나는 식사를 마저 들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 대략 3시간 남은 건가.’
수행평가는 7교시, 실습 시간에 시작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백유진의 문제에 뛰어드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점검하는 한편, 새삼스레 각오를 다졌다.
* * *
시간이 흘러 7교시.
“지금부터 수행평가를 시작하겠다. 순서는 A반부터 C반 순으로 진행할 거다. 인원이 많으니 담당 교관들의 지시를 잘 따라 주길 바란다.”
드디어 수행평가가 시작됐다.
길드가 참관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만큼 세 개의 반이 한꺼번에 시험을 진행했다.
가상 전투실의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는 이번 참관 시험에 참여하는 길드의 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팻말을 통해 누가 어느 소속인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차례를 기다리는 한편, 참가한 인원들의 면면과 팻말을 쭉 살폈다.
그 결과.
‘……저쪽이 신창백가인가.’
어렵지 않게 목표했던 신창백가를 찾을 수 있었다.
신창백가의 인원은 총 7명이었다.
일행의 대표로 보이는 중년 남성 한 명과 수행원 다섯 명, 그리고 일전에 봤던 청년으로 이뤄져 있었다.
‘백유진의 형제까지 참석했을 줄이야. 그나저나 3학년이었나?’
2학년이라면 지금쯤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테니 참석은 무리였다.
반면 3학년부터는 아카데미 차원의 교육 대신 길드나 단체의 인턴 활동이 주가 됐다.
즉, 수업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정보를 머릿속에 갈무리하고 있는 사이.
“다음, 시뮬레이션 룸으로 입장하도록.”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점심시간에 윤설하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개인 면담 신청은 8교시부터라고 했었지?’
세 개의 반이 한꺼번에 수행평가를 치르는 만큼, 시험은 8교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둔 채 시뮬레이션 룸으로 들어갔다.
연습 때와는 다르게 몬스터의 등급과 개체가 무작위로 정해졌다.
그 결과, 내 상대는 코볼트 워리어로 정해졌다.
‘코볼트 워리어라.’
상대가 확정됐음에도 내 마음은 평온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오래지 않아 코볼트 워리어 다섯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나는 경험 계승을 발휘했다.
머리에, 온몸에 필요한 감각들이 새겨지는 가운데.
타닷-!
지면을 박차고, 녀석들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