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이상한 걸 묻는구나, 애송이
고태식 교관에게 건넨 질문은 다름이 아니었다.
“교관님, 혹시 초식을 지켜보는 거로 무공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초식만으로 무공의 하자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지.
이는 백유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였다.
‘백유진에게 분광십삼뢰의 출처를 설명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출처가 그림자 녀석인 이상, 백유진에게 설명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은 분광십삼뢰의 초식을 직접 보여 주는 것뿐이었다.
그걸로 출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일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기다리자 고태식 교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상한 걸 묻는구나, 애송이.”
그의 반응에 순간 뜨끔했다.
이유를 묻는다면 대답할 길이 마땅치 않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흐음. 하자라면 심마(心魔)를 일으키는 부류의 무공을 의미하는 거냐?”
다행히 고태식 교관은 내게 이유를 추궁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량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지.”
“역량에 따라 다르다는 말씀은……?”
“나 정도 되면 손을 한번 섞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
순간적으로 김이 팍 샜다.
고태식 교관은 A급 초인이다.
즉, 어중간한 사람에겐 불가능한 기예(技藝)인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백유진에게도 불가능하겠네.’
제아무리 백유진이 날고 기어 봤자 아카데미의 생도 수준에 불과하다.
고태식 교관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비록 답변은 들었으나, 기대와는 다른 내용에 어깨가 축 처졌다.
‘……일단 그 부분부터 풀어야겠네.’
단념하고 슬슬 대화를 끝내려는 순간.
“하자를 구분해 낸다는 건 보통 경험, 연륜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하지만 무공의 가치를 통찰하는 일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군.”
고태식 교관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를 듣는 순간 단숨에 흥미가 동했다.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쉽게 예를 들자면 그거다. 네 녀석이 무공을 가져와서 내게 보였을 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지?”
“예상되는 무공의 등급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충 그런 거다.”
“아……!”
그의 설명에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
‘하자가 없다는 점을 어필할 게 아니라, 백유진을 혹하게끔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요컨대 눈썰미라는 거다.”
고태식 교관이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눈썰미…….”
“물론 무공의 가치를 통찰하는 것도 경험이나 연륜을 바탕으로 나오는 거지만, 눈썰미나 감을 타고난 애송이들은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를 내기도 한다.”
“……그렇군요.”
“뭐, 네 녀석은 그런 부류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고태식 교관은 피식 웃으며 말을 맺었다.
‘그런 부류라…….’
정확한 설명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천재.
감이나 눈썰미 같은 역량은 보통 재능의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었다.
이는 곧 무공의 ‘하자’보단 ‘가치’를 어필하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내게 청신호로 작용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정보를 갈무리하는 한편, 고태식 교관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됐다. 질문은 그걸로 끝이냐?”
“네,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 저녁 맛있게 먹어라.”
그 말을 끝으로 고태식 교관은 소훈련실을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무렵 나 또한 슬슬 걸음을 옮겼다.
‘우선 방향성은 정했다. 이제 다음은…….’
* * *
그날 저녁.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자 임강철이 나를 맞이해 줬다.
“일한이, 오늘 저녁에는 뭘 할 거지?!”
“가상 전투 훈련?”
“오호, 다음 주에 있을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건가?!”
“어. 너는?”
“난 스텟 단련이다!”
“그래, 힘내라.”
나는 임강철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다음, 곧바로 가상 전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임강철에게 말한 대로 수행평가를 대비해 가상 전투를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적당히 잘 보는 거로는 부족하니까.’
이번에는 단순히 성적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었다.
고득점을 넘어 압도적인 활약.
시험을 참관하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활약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단순히 건틀렛으로 이름 높은 길드뿐만이 아니라 신창백가의 사람들에게도 눈에 띌 수 있도록.’
4대 길드 및 거대 단체의 참관하에 치르는 수행평가에서 활약하여 신창백가의 눈에 드는 것.
이 또한 내가 구상해 둔 백유진의 문제 해결의 일환이었다.
정확히는 백유진이 나를 의식하게끔, 나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신창백가의 눈에 띄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백유진에게 무공을 건네주는 것도 일단 내가 뭐라도 됐을 때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이는 백유진에게 무공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까다로운 문제였다.
제아무리 분광십삼뢰가 뛰어나다 한들.
백유진이 무공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다 한들.
정작 무공을 제공하는 내가 별 볼 일 없으면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역정이나 내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만일 내가 수행평가를 바탕으로 존재감을 키운다면?
그 대상이 현재 백유진이 갈등을 빚는 신창백가, 혹은 그의 형제가 된다면?
틀림없이 내 말에 무게감이 실릴 것이다.
‘물론 추후 상황을 봐서 백유진이 나를 의식하게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겠지만.’
계획대로 풀린다면 백유진에게 무공을 제공하는 상황도 어렵지 않게 연출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런 식의 접근 방식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존재했다.
‘……분위기가 좋을 거란 장담은 못 하겠네.’
그가 갈등을 빚는 대상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하는 것.
이를 바탕으로 백유진에게 접근한다면, 빈말로도 좋은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내가 백유진과의 대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즉, 백유진이 아닌 신창백가나 그의 형제 쪽으로 먼저 접근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이번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설정한 방향성이었다.
‘어쨌든 백유진과 붙어서 지지 말라고 그림자 녀석에게 S급, B+급 스킬까지 받았으니.’
그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걷는 사이, 어느새 가상 전투실에 도착했다.
나는 가장 먼저 시뮬레이션 룸을 살폈다.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는 게,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기다릴 필요도 없겠다, 나는 곧바로 입구 근처의 비어있는 시뮬레이션 룸으로 들어갔다.
가상 전투를 벌일 몬스터의 등급은 E급이 아닌, E+급으로 조정했다.
이유는 당연히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홉 고블린, 놀 헌터, 코볼트 워리어. 이 정도인가?’
예상보다 E+급에 해당하는 몬스터가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별 고민 없이 홉 고블린을 선택했다.
녀석을 시작으로 한 놈씩 상대해 볼 셈이었다.
‘수행평가에서 어떤 몬스터와 상대하게 될지 아직 모르니까. 게다가 시간도 여유 있고.’
그렇게 몬스터 선택을 끝내고, 개체 수 설정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도 역시 망설임 없이 다섯 마리로 조절했다.
다음 주에 있을 수행평가의 방식과 동일한 조건으로 연습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설정을 마치고 난 다음, 나는 장비를 착용했다.
그대로 가상 전투를 개시한 순간.
크륵-!
다섯 마리의 홉 고블린이 눈앞에 나타났다.
붉은 피부색부터, 일반적인 고블린의 2배는 되어 보이는 체격, 거기에 손에 들린 박도(朴刀)까지.
수업 시간에 상대하던 E급 몬스터와는 존재감부터가 달랐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입김을 뿜어대는 녀석들을 앞에 두고 나는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동시에.
‘분명 그게 도움이 될 거라 말했지?’
이전에 그림자 녀석이 조언해 준 내용을 떠올리며 ‘경험 계승’을 발휘했다.
그 순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 전신에 스며들었다.
몇 번이나 겪었음에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기묘한 감각 속에 남은 시간을 헤아렸다.
‘앞으로 10분.’
그 안에 그림자 녀석의 경험,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수행평가에서 써먹는 것.
그게 녀석의 조언이었다.
이를 되새기며 나는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로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전투 준비를 갖췄을 때.
키에에엑!
때마침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일반적인 고블린들과 체격부터가 다른 까닭에 위압감이 상당했다.
하지만.
타닷-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지면을 박찼다.
녀석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드는 가운데, 신기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이를 인식한 순간.
“……!”
홉 고블린의 급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녀석들의 행동 패턴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이게 경험 계승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만 효과는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마나의 출력 조절에 무공의 활용 타이밍까지, 머릿속에 세세하게 그려진다.’
덕분에 나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녀석들과 격돌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었다.
불규칙적으로 녀석들의 박도가 쏟아져 내렸으나.
카가강-!
벽뢰수의 현란한 궤적에 녀석들의 참격은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나아가 고태식 교관에겐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유효타가 곧바로 터져 나왔다.
케헥-!
벽뢰수를 바탕으로 한 반격에 선두에 있던 홉 고블린이 나자빠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탈혼지부터 복마구권, 무영귀살각까지.
물 흐르듯 유려한 연계 속에 남은 네 마리의 홉 고블린들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까닭인지, 내 동작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스러운 감정까지 들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녀석들의 패턴을 꿰뚫고, 거의 요리하다시피 상대하는 건 기본에 불과했다.
어느 정도의 마나를 투자해야 숨통을 끊을 수 있는지.
언제 호신을 발휘해서 막아야 하고, 언제 몸으로 받아 내고 반격을 가해야 할지.
강약 조절이나 타이밍에 따른 행동 강령까지, 온갖 노하우가 내 몸을 바탕으로 구현됐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녀석,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숫제 괴물 같이 느껴졌다.
이는 사람을 상대로 펼치는 실전 대련 때 이상의 효과였다.
그야말로 전투의 스페셜리스트와 같은 활약.
덕분에 가상 전투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끝났다.
결과는 당연히 S랭크, 만점이라 이르기에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일단 이 정도면 신창백가의 눈에 띄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네.’
이쯤 되면 수행평가를 참관하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걸 넘어 강탈하는 수준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수십 초간 결과를 바라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제 고작 홉 고블린들을 상대했을 뿐이다.
아직 놀 헌터와 코볼트 워리어가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경험 계승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전부 처리할 생각으로 행동을 서둘렀다.
그 결과.
‘……이 정도면 수행평가는 걱정할 필요 없는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겠어.’
경험 계승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E+급 몬스터를 전부 상대할 수 있었다.
장비를 벗고 시뮬레이션 룸에서 벗어났을 때, 은은한 두통이 밀려들었다.
“끄응.”
나는 잠깐 벽에 기대어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
동시에 결과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 수행평가니까, 이번 주말 동안 경험을 복기하면서 숙달할 때까지 연습하면 되겠지.’
그 정도면 수행평가 대비는 충분할 것이다.
게다가 경험 계승은 하루에 한 번씩은 사용할 수 있으니, 잊어버릴 염려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책이다. 그런 감상을 떠올릴 때쯤 두통이 잦아들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한 번씩만 더 해 볼까?’
잘 풀리니 의욕이 샘솟았다.
그대로 다시 시뮬레이션 룸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안일한?”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