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89화 (89/218)

89화 분광십삼뢰(紛光十三雷)

다음 날, 오전 수업.

나는 평소처럼 상태창을 점검하는 대신, 미리 챙겨 둔 공책부터 펼쳤다.

이유는 다름 아닌 어젯밤 꿈속에서 그림자 녀석에게 전해 들은 백유진의 문제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복잡해.’

백유진의 문제는 오윤서의 사정과는 또 다른 형태였다.

그 탓에 접근 방식도 달리해야 할 듯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여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문제부터 정리해 보자.’

나는 차분하게 정리할 겸, 펜을 들어 생각해 둔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백유진의 문제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백유진이 제 가문의 가전무공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그로 인해 가문, 정확히는 백유진이 제 형제와 대립한다는 것이었다.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이중 두 번째 문제로 인해 백유진의 마음에 틈새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이는 곧.

‘백유진이 형제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는 건데.’

궁극적으로 백유진의 마음의 틈을 메우려면 두 번째, 형제와의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쉽게 말해 그가 제 가문과 형제에게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고, 인정받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정리해 놓은 것만 봐도 복잡하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러고는 그림자 녀석이 백유진의 문제 해결의 첫 시작으로 지목한 부분을 떠올렸다.

‘백유진이 가전무공을 거부한다는 것.’

그로 인해 백유진은 가전무공을 익힌 제 형제를 넘어설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괄시를 당하는 듯했다.

그러니 백유진의 문제 해결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가진 바 역량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녀석답게, 그림자는 무려 이 부분에 관한 대책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바로 녀석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전해 준 수단.

신창백가의 가전무공을 대체할 창술(槍術)이었다.

‘분명 무공의 명칭이 분광십삼뢰였나.’

분광십삼뢰(紛光十三雷).

명칭부터 범상치 않은 무공이었다.

즉 그림자 녀석은 백유진의 성향에 맞는 무공, 창술까지 준비한 것이다.

녀석은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이는 나를 향해 분광십삼뢰의 초식과 구결을 전해 주며 덧붙였다.

-이거라면 백유진은 충분히 제 가문과 형제한테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지,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지.

자연스레 온갖 의문이 샘솟았지만 구태여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이제 와서 일일이 따지기엔 이미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 되어 버린 까닭이었다.

때문에 나는 시시콜콜한 의문 대신, 녀석이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을 떠올렸다.

-관건은 ‘어떻게 백유진에게 분광십삼뢰를 전달할지’가 될 거라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도 네게 디테일한 부분을 채워 주는 역할을 맡긴 셈이군. 잘 부탁한다.

백유진에게 무공을 전달하는 것.

이게 바로 이번 문제에 있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백유진과는 그저 안면이 있는 수준의 사이인데, 무공을 전달하라니.’

딱 봐도 쉽지 않아 보였다.

스킬의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백유진이 분광십삼뢰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혹은 무공을 전해 주겠다는 행동이 백유진에겐 간섭으로 다가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백유진과의 대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변수까지 고려해서 지지 말라고 혼원현천신공과 벽뢰수를 전수해 줬다는 점도 참.’

그게 바로 그림자 녀석이 내게 두 가지 스킬을 전해 준 이유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는 한편, 여태 공책에 적어 둔 변수들을 다시금 살폈다.

‘복잡하긴 하지만,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진 않은데.’

그림자 녀석 또한 그렇게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주먹구구식이었던 오윤서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은 녀석이 설명한 계획에 알맞게 살을 붙이는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우선순위를 정하는 거겠지?’

복잡한 문제는 모름지기 차분하게, 차근차근 접근해야 하는 법이었다.

때문에 나는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녀석이 설명한 계획과 필요한 일들의 순서를 정리했다.

‘우선 백유진과의 대립은 기정사실이라 생각하고, 그럼 준비해야 될 부분이…….’

* * *

방과 후.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어김없이 2층 소훈련실을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할 무렵, 고태식 교관도 거의 비슷한 시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준비는 됐나, 애송이?”

어두가 생략된 물음이었음에도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개인 교습이 끝났을 때, 고태식 교관이 미리 내게 언질을 준 까닭이었다.

‘벽뢰수 습득, 그리고 응용 단계까지 봐주신다고 말씀하셨지.’

벽뢰수의 각 초식과 기본적인 묘리는 요 며칠간 수련을 통해 이미 숙달했다.

무공의 구결 또한 오전 교양 수업 시간을 통해 외워 둔 상태였다.

때문에 나는 지체없이 기수식을 취했다.

스윽-

그러고는 스텝을 밟으며 벽뢰수를 전개했다.

낙뢰를 쪼개듯, 빠르고 강맹하게.

방어와 반격 타이밍에 맞춰 강약 조절에 집중하며 손을 뻗었다.

휘익-!

동시에 속으로 벽뢰수의 구결을 되뇌었다.

4개의 초식을 전부 펼치고 자세를 거둬들이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벽뢰수의 체득이 끝났음을 말이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스킬을 살폈다.

-벽뢰수(B+)

예상대로 스킬창에는 ‘벽뢰수(B+)’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B+급이라……. 탈혼지와 동급인가.’

가장 최근에 얻은 혼원현천신공이 S급 스킬이라 그런지 감흥은 덜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B+급 무공 정도면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스킬에 해당됐다.

그러니 나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납득하고 있을 때.

“그래, 애송이. 네 녀석이 가진 수공의 이름은 뭐지?”

고태식 교관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스킬창을 끄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벽뢰수라고 합니다.”

“벽뢰수라. 등급은?”

“B+급입니다.”

“어째 네 녀석은 하나같이 귀한 무공들만 얻는구나.”

고태식 교관은 혀를 짧게 차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벽뢰수의 습득이 끝났으니, 무공의 활용과 응용을 점검하려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럼 한번 펼쳐 보거라. 뇌영신수부터 갈 거다.”

고태식 교관은 자세를 취하며 지시를 내렸다.

그는 같은 수공인 뇌영신수를 시작으로, 다른 무공에 대처하는 법까지 봐주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뇌영신수라면 백유진의 창술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백유진의 전투 스타일의 핵심은 ‘속도’에 있는 모양이었다.

이미 나는 백유진의 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그와의 대립을 기정사실로 여긴 상태였다.

즉, 속도전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마침 고태식 교관의 뇌영신수는 눈으로 좇기 힘든 수준의 속도를 자랑하니, 상당히 도움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무렵.

“정신 단단히 붙들어 매라!”

고태식 교관이 짓쳐들었다.

무지막지한 기세와는 달리 그의 양손에는 마나가 서려 있지 않았다.

즉, 워밍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며 자세를 취했다.

‘벽뢰수는 후발제인의 묘리가 핵심이라 하셨지.’

고태식 교관의 충고를 되새기며,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쿠구구궁-!

선명한 백은의 마나가 양손을 휘감는 순간, 나는 곧장 벽뢰수를 전개했다.

츠즛-

초식에 따라 뻗은 오른손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벽뢰수라는 명칭 그대로 흡사 벼락을 쪼개듯, 고태식 교관의 손날을 단숨에 걷어냈다.

기세를 몰아 자연스럽게 반격까지 이어 갔으나.

“어림없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유효타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 상태로 두세 번의 합을 교환했을 때.

“자, 이번에는 마나까지 활용할 테니 막아 보거라!”

고태식 교관이 본격적으로 마나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진한 황금빛 마나를 머금은 채 쇄도하는 그의 수공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맨손으로 대련에 임하는 고태식 교관과는 다르게 나는 건틀렛을 착용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양손에 저릿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 탓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흐읍!”

쉴 새 없이 퍼부어지는 그의 공세에 나는 자연히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츠즈즛-!

어떻게든 벽뢰수로 대처하며 유효타만큼은 피해냈다.

그 상태로 고태식 교관과 수십여 합을 나눴다.

슬슬 힘에 부친다고 느낄 무렵.

타닷-

별안간 고태식 교관이 간격을 벌렸다.

이를 인식한 순간.

화아앗-!

고태식 교관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

무의식적으로 흠칫하며 반응하고 있을 때.

고태식 교관은 입가를 비틀며 내게 말했다.

“큰 놈으로 한 방 갈 테니, 잘 막아 보거라!”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그의 전신에 황금빛 아우라가 짙게 서렸다.

이윽고 황금빛 마나가 하나의 형상을 이뤘을 때가 되서야 나는 그의 의도를 헤아릴 수 있었다.

‘……저건 예전에 봤던 권법인 것 같은데.’

뇌기를 두른 호랑이를 품은 일권.

파멸적인 위력을 지닌 일격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꽈릉-!

우레를 연상케 하는 굉음과 함께 황금빛 호랑이 형상이 나를 향해 질주했다.

다만 기억 속의 일격에 비하면 확실히 규모가 작았다.

과격하긴 해도 결국 이 또한 수련의 일환인 것이다.

나는 각오를 다지며 코어의 마나를 가일층 끌어올렸다.

쿠구구궁-!

그 상태로 스텝을 밟으며 벽뢰수의 마지막 초식을 전개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백은색의 마나를 두른 채로 고태식 교관의 일격을 받아 냈다.

쐐애애액-!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다섯 걸음 정도 밀려났지만.

“……이익!”

최대한 초식 전개에 정신을 집중하며 양팔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

그 결과, 간신히 고태식 교관의 일격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콰광-!

뇌기를 두른 호랑이는 훈련실의 벽면에 충돌해 그대로 소멸해 갔다.

그제야 나는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저릿한 양팔을 바라보고 있자, 고태식 교관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간신히 고개를 드는 나를 향해 그는 입가를 한껏 비틀며 입을 열었다.

“제법 쓸 만해졌구나, 애송이.”

변함없이 투박한 말투였으나, 그 속에 담긴 뜻은 칭찬에 가까웠다.

동시에 그의 평가는 개인 교습의 끝을 의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나는 호흡을 적당히 고르자마자 고태식 교관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좀 더 갈고 닦으면 실전에서도 충분히 쓸 만할 거다.”

“정진하겠습니다.”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자 고태식 교관은 손을 대충 휘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대로 소훈련실을 벗어나려는 찰나.

“교관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질문으로 고태식 교관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벽뢰수의 지도는 끝났지만, 나는 아직 고태식 교관에게 용건이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뭐? 질문?”

“네.”

다름 아닌 한 가지 질문이었다.

‘이 부분은 본격적으로 백유진의 문제 해결에 나서기 전에 미리 파악해 놔야 하니까.’

오전 교양 과목 시간에 정한 우선순위.

그 첫 번째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질문할 내용을 머릿속으로 가다듬고 있을 때.

“수공에 관한 거냐?”

고태식 교관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물어왔다.

나는 한차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수공은 아닙니다.”

“그럼 뭐지? 어디 한번 말해 봐라.”

“무공에 관한 부분입니다. 혹시…….”

나는 생각해 둔 바를 그대로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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