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벽뢰수, 그게 수공의 명칭이다
고태식 교관이 손을 뻗는 순간.
파직-!
마치 유성의 꼬리처럼 허공에 황금빛 잔상이 남아 기묘한 궤적을 그렸다.
정신을 차릴 무렵에는 잔상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뒤늦게 반응하여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고태식 교관은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지금과 같이 수공을 제대로 활용하면 참격은 물론, 마법에도 대응할 수 있지.”
참격과 마법에 대응할 수 있다.
이 사실은 방금 그가 선보인 시범 이상으로 큰 충격을 줬다.
그래서일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대단하네요.”
“물론 사용하기 나름이겠지만, 활용에 관해선 네 녀석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언하는 고태식 교관의 말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그런 나를 향해 그는 특유의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 갔다.
“공격이 됐든, 방어가 됐든. 언제나처럼 잊지 못하게끔 몸에 때려 박으면 그만이니까!”
고태식 교관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슬슬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온몸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역시 이런 흐름인가.’
고태식 교관의 방식은 2학기에도 변함없는 모양이었다.
새삼스럽게 한숨을 내쉬는 한편, 각오를 다졌다.
고통스럽겠지만 효과는 확실할 터였다.
그런 일념으로 자세를 갖출 무렵.
“우선 네 녀석이 가지고 있는 수공의 동작을 보여 봐라. 실전 대련은 그다음이다.”
생각과는 달리 그는 곧바로 지도에 들어가는 대신, 몇 마디를 덧붙였다.
본격적인 지도에 앞서 내가 가진 수공의 초식부터 파악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기수식이…….’
그러고는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4개의 초식을 천천히 풀어냈다.
고태식 교관은 재현이 끝날 무렵이 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송이, 어째 네 녀석이 가져오는 무공은 하나같이 공격적이구나.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소 B급일 거다. 아니, 그 이상일 확률이 높겠지.”
“……!”
“게다가 네 녀석의 수공은 상대의 공세를 무력화시키기보단 반격에 특화되어 있다. 후발제인의 묘리를 염두에 두면 수련하는 데 한결 수월할 거다.”
후발제인(後發制人).
묘리를 속으로 되뇌며 머릿속에 새겨 두는 가운데.
고태식 교관은 설명을 마저 이어 갔다.
“정확한 효능은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초식의 구성으로 봤을 때, 아마 네 녀석이 가진 수공은 빠르고 거친 공격에 맞서는 데 효과적일 거다.”
“빠르고 거친 공격…….”
고태식 교관의 평가를 듣는 순간, 불현듯 그림자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이번 무공은 백유진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거라 말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백유진의 전투 방식이 빠르고 강맹함에 방점을 두고 있는 건지.
어떤 식으로 그와 맞붙게 될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그러니까 수련도 거기에 맞춰 진행한다.”
고태식 교관이 구체적인 지도 방식에 관해 운을 뗐다.
동시에 바로 자세를 갖추는 모습을 보아 설명 이후에 곧바로 지도에 들어가려는 듯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마지막까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간단하다. 나는 공격하고, 네 녀석은 수공으로 받아치면 된다.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별안간 허공을 향해 손을 쭉 뻗는 것이다.
어쩐지 익숙한 궤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역시 눈썰미는 나쁘지 않구나. 그래, 내가 아까 보여 준 수공이다. 뇌영신수라는 명칭의 무공이지.”
고태식 교관은 설명과 더불어 뇌영신수(雷影神手)라고 밝힌 수공을 허공에 전개했다.
그는 조금 전과는 달리 마나를 활용하지 않았다.
단순히 초식만을 전개하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기세는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서 그는 추가적으로 뇌영신수의 특징을 늘어놨다.
“공교롭게도 내 수공은 반격이나 무력화가 아니라 선수필승, 제압과 절단, 관통에 특화되어 있다.”
제압, 절단, 그리고 관통.
어째 특징들이 하나같이 살벌하고, 파괴적이었다.
‘……대체 누가 공격적이라는 건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고태식 교관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 뇌영신수를 상대하며 네 녀석이 가진 무공의 특징에 익숙해져라.”
“네.”
“최종적으로는 수공을 넘어 온갖 무공을 상대하는 법까지 익혀야 하겠지만, 그건 네 녀석의 몫으로 남겨 두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그럼 어디 한번 막아 보거라!”
고태식 교관이 입가를 비틀며 달려들었다.
* * *
수공의 지도를 받게 된 지 3일째 되는 날.
어느 정도 수공에 익숙해졌다 싶을 무렵, 때마침 꿈을 꿨다.
다름 아닌 그림자 녀석이 호출이었다.
‘이번에도 무너진 옥상인가?’
세기말에 가까운 풍경을 무심하게 둘러보고 있자, 오래지 않아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변함없이 짙은 음영에 휩싸인 듯한 모습이었다.
표정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녀석은 이질적인 목소리로 첫마디를 내뱉었다.
“단련이 순조로운 모양이군.”
“수공 말하는 거지?”
내 대꾸에 녀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본론을 꺼내들었다.
“슬슬 무공의 명칭과 구결을 알려 주마. 그게 첫 번째 용건이다.”
수공의 명칭과 구결.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교관님도 슬슬 체득할 때라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래서인지, 수공보단 녀석이 언급한 ‘첫 번째 용건’이란 부분에 신경이 쏠렸다.
뉘앙스로 봤을 때 용건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는 의미로 다가온 까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머지 용건은 백유진에 관한 거다. 전부 설명할 테니, 우선 수공부터 끝내도록 하지.”
두 번째 용건, ‘백유진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수행평가구나.’
이전에 녀석이 혼원현천신공과 더불어 처음으로 수공을 알려 줬을 당시.
흘러가는 말로 백유진의 문제와 함께 수행평가를 언급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수행평가가 떠올랐다.
‘전부 다 설명해 주려는 것 같으니까.’
우선 수공에 집중하자.
그리 마음을 먹었을 때 녀석이 입을 열었다.
“벽뢰수, 그게 수공의 명칭이다.”
“벽뢰수…….”
벽뢰수(劈雷手).
여태 수공을 수련하며 느낀 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그대로 기억 속 수련을 더듬으며 명칭을 음미하고 있을 때, 녀석이 말을 이었다.
“다음은 구결이다.”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났다.
녀석에게서 선문답과도 같은 구결을 듣는 한편.
짧지 않은 내용에 무의식적으로 의문을 떠올렸다.
‘지금 이 상태에서도 체득이 가능하려나?’
만일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스킬을 배울 수 있을 터였다.
동작은 이미 3일간의 지옥 수련을 통해 숙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선 체득이 불가능할 거다. 공책에 적어 둘 테니, 그 점은 걱정 마라.”
녀석은 마치 내 속내를 읽은 것처럼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여태 생각해 둔 바를 입에 담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백유진의 문제인가?”
“그래. 녀석의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하도록 하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백유진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백유진의 문제는 그가 가진 천재성에서 기인한다.”
“……천재성?”
“그래.”
천재성. 잘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고개를 기울인 채로 바라보자 녀석은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신창백가에는 가전무공으로 전해지는 창술이 있다.”
“그야 뭐, 일가(一家)를 이뤘을 정도니 당연하겠지.”
이른바 비전이나 절기로 취급받는 무공은 그 자체로 힘이자 권력이었다.
때문에 가전무공의 형태로 일가친척이나 단체의 핵심 인물에게 한정적으로 전해지는 편이었다.
이는 비단 신창백가뿐만 아니라 4대 길드나 마탑에도 적용되는 방식이라 알려져 있었다.
“그걸 백유진은 거부하고 있다.”
“……왜?”
“신창백가의 창술이 스스로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녀석은 담담한 어조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재성이 문제라면서. 보통 천재는 무공을 가리지 않고 내재된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그런 부류들 아니야?”
“그 부분도 천재성의 일환이라 볼 수 있겠군.”
“그런데 왜?”
“천재성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설명할 순 없지만, 백유진의 경우에는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게 원인이라고 알고 있다.”
“가전무공이 눈에 차질 않는다니…….”
녀석의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신창백가의 가전무공이 정확히 무엇인지, 등급이 어찌 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A급은 될 터였다.
‘심인욱이 대지의 혼 길드장인 아버지께 배웠다는 패왕진군보도 A급이었으니까.’
그만한 스킬, 어쩌면 그 이상의 무공을 단순히 ‘눈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다니.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 속내를 헤아렸는지, 그림자 녀석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눈높이, 안목. 이런 요소도 천재성의 일환이지.”
“그거야 뭐.”
“그걸 바탕으로 백유진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스타일의 무공까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오히려 가문의 무공이 그가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도 말이지.”
“……그게 가능한 거야?”
“그렇다더군. 놀랍게도.”
녀석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입이 쩍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유진은 단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형태의 괴물이나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그런 괴물과 맞붙어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새 나오는 한편, 가슴 속에 모종의 감정이 꿈틀거렸다.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린 순간 무의식적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호승심이라니, 나도 참.’
강해지는 일에 미쳐 있구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스스로 증명하기 전까진 허울 좋은 이야기일 뿐이다.”
느닷없이 그림자 녀석으로부터 가차없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사족을 덧붙였다.
“그게 바로 백유진을 향한 신창백가의 평가이자, 백유진이 직접적인 마찰을 빚고 있는 형제의 평가다.”
“형제와의 마찰이라.”
그제야 녀석의 설명.
백유진의 사정이 문제가 된 원인이 천재성에서 기인한다는 이야기가 전부 이해됐다.
물론 이해와는 별개로 완벽하게 공감이 되진 않았다.
‘가전무공을 거부하면서까지 가문과 대립의 날을 세우는 부분도 그렇고, 그걸로 핍박하는 부분도 그렇고.’
분명 아집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백유진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게 마음의 틈새라 이를 정도의 문제가 됐다는 부분이 특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림자 녀석은 내 속내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의 시선에선 그리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보통 가문이나 거대 단체는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가?”
“게다가 거기까지 파고들 필요는 없다. 그 부분은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신경 써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겠지.”
그림자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한 다음, 녀석을 향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백유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우선 네가 구상해 둔 계획부터 들려줘.”
“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한 수단은 총 세 가지다. 그중 두 가지는 이미 네가 가지고 있다.”
“혼원현천신공, 그리고 벽뢰수인가. 그럼 나머지 하나는 뭐지?”
내 물음에 녀석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가 원하는 걸 제공하고, 그걸 바탕으로 신창백가에 스스로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게끔 조력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