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다음 날 7교시, 마력 수업.
수업 시작과 동시에 C반은 평소처럼 대련을 진행했고, 담당 교관인 김한석은 이를 지켜봤다.
그의 시선은 특히 두 사람의 대련에 집중되어 있었다.
‘오윤서, 그리고 심인욱.’
반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두 사람.
그렇기에 김한석은 오래전부터 이 둘을 먹잇감으로 점찍어 뒀다.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면담을 통해 파고들 틈을 끈질기게 찾아냈다.
그 결과, 최근에 오윤서에게 씨앗을 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씨앗의 세가 약해졌다.’
오늘 확인해 본 결과, 오윤서에게 심어 둔 환영 마법의 기운이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다.
이는 대련에 임하는 모습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일단 움직임부터가 지난주와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
‘마음속의 미혹이 걷혔어. 설마 걷어냈다는 건가?’
분명 저번 주만 해도, 그녀의 동작에는 망설임이 짙게 묻어났다.
그로 인해 대련의 결과도 매번 심인욱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으나, 오늘은 달랐다.
팽팽하게 접전을 이뤘으며, 그녀의 표정 또한 열의로 가득해 보였다.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예상치 못한 변화에 김한석은 속내를 숨긴 채 오윤서를 호출했다.
여태 대련과 면담을 병행해서 수업을 진행한 만큼 그녀는 별다른 의문 없이 호출에 응했다.
“부르셨나요, 교관님.”
“네, 윤서 생도 이쪽에 앉아 봐요.”
오윤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녀를 향해 김한석은 평소처럼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실 윤서 생도에겐 정말 놀랐어요.”
“네?”
“지난주에 비해 너무 좋아져서요. 대련에 임하는 자세부터, 판단력, 집중력까지 전부요.”
“아, 감사합니다!”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오윤서.
김한석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접촉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히 기운은 약해졌다.’
더불어 원인까지도 예상이 갔다.
모종의 계기로 인해 그녀의 마음속에 벌어져 있던 틈새가 메워졌다.
덕분에 정신의 자정 작용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가 심어 둔 기운이 약해진 것이다.
외부에서의 개입 흔적은 전무한 거로 보아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계기인데.’
그녀가 가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된 거라면, 더는 손쓸 도리가 없었다.
이를 파악하고자 김한석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 주에는 생각이 많아 보였던 것 같은데. 문제는 해결됐나요?”
“네? 아, 그런 부분까지 알고 계셨군요.”
오윤서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이내 그녀는 머뭇머뭇 말을 이어 갔다.
“아직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한 친구 덕분에 좀 나아졌어요.”
“……호오, 그건 잘된 일이네요.”
김한석은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한편,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설마 교우 관계로 해결될 줄이야.’
그는 먹잇감으로 점찍어 둔 이들에게 환영 마법을 시전하기에 앞서 대상을 다방면으로 살폈다.
거기에는 단순히 수업 시간에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생활기록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토대로 가정사나 개인사처럼 뿌리가 깊은 문제들.
즉,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생도들을 우선적으로 노렸다.
그렇게 선별한 이들이 총 4명이었다.
‘안일한, 윤설하, 오윤서, 그리고 백유진.’
그중 안일한은 어째선지 통하지 않았고, 윤설하는 생기부의 내용과는 달리 틈새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나머지 두 사람에겐 씨앗을 심는 데 성공했지만, 오윤서에겐 벌써 실패의 조짐이 보였다.
앞서 실패한 두 사람의 원인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오윤서가 추가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김한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그는 불현듯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 누군가가 환영 마법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이내 김한석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떠올린 가설이 성립하려면 여러 전제가 수반되어야 했다.
환영 마법의 존재를 알고, 생도 개개인의 문제를 알고, 나아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지나친 비약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
“저, 교관님?”
오윤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걸었다.
그제야 김한석은 상념에서 깨어나 표정을 가다듬었다.
“아, 미안해요. 윤서 생도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좋을지 잠깐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앗, 감사합니다!”
“그럼 마저 이야기해 보도록 할까요?”
김한석은 오윤서에게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
* * *
한 시간 후, 8교시.
무기술 심화 수업인 만큼 본래라면 2층 소훈련실에서 진행됐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번 주부터 새로운 수업이 시작되는 까닭이었다.
“일한이, 3층 맞나?”
“어. 가상 전투실로 가야 할 걸.”
사전에 공지를 받은 대로 나는 임강철과 함께 3층, 가상 전투실로 향해 갔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덕분에 입실하자마자 수업이 시작됐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부터 ‘몬스터 전투’에 관한 수업을 진행할 거다.”
고태식 교관은 설명과 함께 가상 전투실 내부에 마련된 시뮬레이션 룸을 가리켰다.
자연스럽게 나를 포함한 생도들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 끝을 향했다.
‘외견은 가상 대련실과 비슷하네.’
겉으로 보기에는 1층 무기 훈련실에 마련된 가상 대련실과 흡사했다.
다만 규모가 달랐다.
오로지 가상 전투만을 위해 마련된 건지, 시뮬레이션 룸의 개수만 10개나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시뮬레이션 룸의 크기도 가상 대련실보다 훨씬 컸다.
“몬스터의 종류나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차이점을 제외하면 사용법 자체는 가상 대련과 동일하다.”
고태식 교관은 설명과 함께 우측 끝에 위치한 시뮬레이션 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첫날이니 E급 몬스터와의 전투로 수업을 진행한다. 참고로 수행평가와 2학기 중간고사는 E+급 몬스터와의 전투로 진행될 테니 기억해 두도록.”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첫 번째 시뮬레이션 룸의 설비를 조작했다.
그러고는 생도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정확히 한 사람을 콕 짚었다.
“심인욱, 나와 봐라.”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태식 교관 쪽으로 다가갔다.
“애송이, 가상 전투를 치러 본 경험은 있나?”
“아카데미 입학 전에 몇 차례 경험해 봤습니다.”
“좋아. 그럼 네가 직접 애송이들에게 시범을 보여라.”
심인욱은 대답과 함께 그대로 첫 번째 시뮬레이션 룸으로 들어갔다.
고태식 교관은 그를 들여보내고 나서 다시금 설비를 조작했다.
그러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장 먼저 고블린이다. 녀석은 E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이며, E급 게이트에 주로 출몰해서 그렇게 분류된 거다. 같은 이유로 놀과 코볼트도 E급이다.”
몬스터의 등급을 분류하는 것부터.
“수업은 일대일 전투부터 일 대 다수와의 전투까지. 최대한 다양한 상황으로 이뤄질 거다. 그 밖에 몬스터의 특징이나 공략법 같은 건 직접 몸으로 익히도록.”
수업 방식에 이르기까지.
설명을 끝마친 고태식 교관은 곧바로 심인욱에게 가상 전투를 지시했다.
이윽고 시뮬레이션 룸 옆에 마련된 홀로그램 화면 속에 한 마리의 고블린이 나타났다.
“그럼 시작해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인욱과 고블린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시시할 정도로 빠르게 나왔다.
심인욱이 녀석의 공격을 한 차례 회피한 이후, 몰아치듯 공세를 퍼부어 때려눕힌 것이다.
몇몇 생도가 탄성을 흘리는 가운데, 고태식 교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한 마리쯤은 별거 아니다. 더욱이 실전에선 보스 몬스터가 아니고서야 일대일 상황 같은 건 흔치 않다. 그러니 될 수 있으면 다수를 상대하는 쪽으로 진행하도록.”
고태식 교관은 말을 마치며 단숨에 고블린의 개체수를 5마리까지 늘렸다.
그러자 조금 전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고블린들이 엉성하게나마 호흡을 맞춰 공세를 펼치는 까닭에 마냥 압도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단지 찍어 누르지 못했을 뿐.
쩌-엉!
심인욱은 심인욱이었다.
그는 패왕진군보를 바탕으로 틈을 만들어 낸 다음, 한 마리씩 차근차근 제거해 나갔다.
그 결과, 심인욱은 B+랭크로 시뮬레이션을 끝마쳤다.
그가 시뮬레이션 룸을 빠져나오는 가운데.
고태식 교관은 나머지 생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수업은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그의 지시에 하나둘씩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 또한 임강철과 함께 적당한 곳에 줄을 섰다.
머릿속으로 심인욱의 시범을 되새겨 보는 한편, 나보다 앞서 가상 전투를 치른 이들을 살펴봤다.
‘전투하고 나오면 교관님이 피드백을 해 주는 식으로 진행되는구나.’
그런 세부적인 정보들을 갈무리하는 사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일대일 전투, 그리고 다수와의 전투를 한 번씩 해서 총 2회 치르는 거였지.’
기억을 더듬으며 설비를 조작하고 난 다음, 시뮬레이션 룸으로 들어갔다.
장비를 착용하자 색다른 감각이 펼쳐졌다.
오감이 한층 선명해졌으며, 주위 환경까지 변한 까닭에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피가 서서히 끓어올랐다.
나는 세차게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봐야 아직 가상일 뿐이야.’
감정에 몸을 맡겨선 안 된다.
훗날 맞이하게 될 실전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연습에 집중해야 했다.
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 상태로 나는 이번 수업에서 실험해 봐야 할 요소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렸다.
‘혼원현천신공의 위력, 그리고 새로운 무공 연습 정도려나.’
저번 주에 그림자에게 구결을 전달받아 체득을 끝낸 ‘혼원현천신공’의 위력.
그리고 백유진의 문제 해결에 필요할 거라며 가르쳐 준 새로운 무공까지 해서 총 두 가지였다.
두 가지 스킬을 떠올리니, 이번에는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먼저 혼원현천신공부터.’
이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혼원공과 현천강기가 합쳐져 탄생한 마나 심법이었다.
때문에 스킬창에는 두 심법 대신.
-혼원현천신공(S)
무려 S급 스킬이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S급 심법일 줄이야. 게다가 혼원공과 현천강기가 본래 하나였을 줄은.’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두 개의 마나 심법은 본래 하나였다.
다만 일정 수준의 능력이 갖춰지지 않는 한 감당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게 바로 녀석이 두 가지 심법을 따로 전수해 준 이유였다.
‘과연 서로 다른 계열의 두 심법이 합쳐졌을 때는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기대감과 함께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혼원과 현천의 기운이 뒤섞인 마나가 흘러나오는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익숙한 두 기운이 합쳐져 새로운 감각을 자아냈다.
더욱이 체내를 내달리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현천강기보다 맹렬하고, 혼원공보다 장대한 흐름.
출력부터 마나 소모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마나를 순환한 것만으로도 차이점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이거라면…….’
무공의 위력부터, 전투 지속 능력까지.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마나의 유형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지이잉-!
투명한 백은(白銀)의 마나가 맹렬한 기세로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