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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82화 (82/218)

82화 안일한, 너는 생각보다 사람이 좋군

“준비됐나?”

“언제든지.”

대련에 앞서 심인욱과 짤막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때.

내 쪽으로 고태식 교관이 다가왔다.

“두 놈 다 날뛸 생각으로 가득해 보이는구먼.”

그는 나를 한 번, 심인욱을 한 번 바라보고는 그대로 말을 이어 갔다.

“그래, 옆에서 지켜봐 줄 테니 어디 한번 마음껏 날뛰어 봐라.”

고태식 교관은 말을 마치며 입가를 살짝 비틀었다.

뉘앙스로 보아 아무래도 이번 대련의 심판을 봐주려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마나의 유형화까지 활용하면 상당히 요란할 테니까.’

현재 건틀렛 수업에 참여한 이들 중 나와 심인욱, 우리 둘의 대련이 가장 위험할 터였다.

이유는 물론 심인욱이 이곳에 있는 생도들 중에서 제일 강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봐도 내 무공의 위력은 상당히 강력한 편이었다.

즉, 고태식 교관은 만일을 대비하여 나와 심인욱 쪽을 집중적으로 마크하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대련의 결판은 전적으로 내 주관으로 결정 짓겠다. 딱 내가 제지하기 전까지만 마음껏 날뛰어라. 알겠냐?”

고태식 교관은 다시 한번 대련의 룰을 강조했다.

이에 나와 심인욱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즉시 고태식 교관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걸음 물러섰다.

이를 신호 삼아 나는 자세를 갖췄다.

기수식을 취한 채 말없이 심인욱과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초.

나는 그의 눈빛을 통해 의도를 헤아렸다.

‘내가 도전자인 입장이니 선공을 양보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선공을 양보하는 쪽이 보다 유리할 거라 여기는 건지.

정확히 구분은 안 됐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지.’

나는 기꺼이 받아 주기로 했다.

결정을 내린 즉시 그를 향해 쏘아져 갔다.

타닷-

나는 그의 간격에 들어서자마자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내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현천강기였다.

심인욱과의 대련은 대개 단기 결전의 형태로 이뤄지는 까닭이었다.

쏴아아-!

맹렬하게 체내를 내달리는 현천의 흐름.

자유자재로 순환하게끔 내버려 둔 채 흑영보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 표홀하게 다가서는 것과 동시에 양손에 은회색의 마나를 둘렀다.

그 상태에서 복마구권을 펼치는 순간.

“……!”

고양감이 끓어올랐다. 나아가 투기가 마치 아우라처럼 두 주먹에 휘감겼다.

내게서 뿜어지는 범상치 않은 기세에 심인욱의 동공이 일순 커졌다.

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일권을 내질렀다.

그 순간, 심인욱은 서둘러 발을 굴렀다.

쿠-웅!

걸음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패왕의 기세.

패왕진군보였다.

이전보다 한층 강렬해진 존재감을 마주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심인욱, 그 또한 무공의 진가를 발휘했음을 말이다.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유형화된 두 기운이 격돌했다.

쩌-엉!

단 한 걸음.

패왕의 걸음에 따른 여파로 인해 내 일격은 허공에서 저지당했다.

그럼에도 나는 슬며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막혔을 뿐, 밀리지 않았어.’

심인욱의 절기라 할 수 있는 패왕진군보는 복마구권을 막아 내는 데 그쳤다.

A급 무공에 맞서 B급 스킬로 백중지세를 이룬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 확신했다.

‘마력은 내가 우위다.’

심인욱의 전력은 언제까지나 나보다 윗줄에 있을 거라 여겨 왔으나, 그게 아니었다.

다른 스텟이나 경험의 폭, 무공의 숙련도 등.

여전히 차이는 존재할지언정 마력 스텟만큼은 내가 앞서는 것이다.

깨달은 즉시 나는 현천강기의 이치를 바탕으로 출력을 가일층 끌어올렸다.

“……!”

심상치 않은 기세를 눈치챘는지, 심인욱은 빠르게 마나의 유형화를 이뤄냈다.

이윽고 묵룡의 형상이 그의 양손을 휘감았다.

그사이 나는 반걸음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기수식을 취했다.

무영귀살각.

소리도 형태도 없는 동작을 보는 순간, 심인욱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여태까지 보여 준 적 없는 무공이다.’

미지의 무공.

과연 심인욱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가 내놓은 대답은 역으로 공세를 펼치는 것이었다.

쿠웅-!

심인욱은 패왕진군보를 바탕으로 묵룡을 휘감은 일권을 내질렀다.

나는 잰걸음으로 살짝 물러나며 허공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현천강기의 최대 출력을 바탕으로 무영(無影)의 참격이 쏘아져 나갔다.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운이 맞닿은 순간.

서-걱!

심인욱이 양손에 두르고 있던 묵룡의 형상이 세로로 쪼개졌다.

“……!”

그는 부릅뜬 눈으로 다가오는 참격을 노려봤다.

동시에 그의 손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유형화를 이룬 마나를 호신으로 전환하는 것과 동시에 한차례 발을 굴러 위압감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쩌-엉!

심인욱은 두 걸음 정도 밀려난 채로 무영귀살각을 아슬아슬하게 막아 냈다.

급격하게 마나를 끌어다 쓴 탓인지, 그의 안색은 파리했다.

하나 그의 눈빛에는 기이한 열기가 서려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투쟁심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제법이군. 깜짝 놀랄 정도야.”

심인욱은 살벌한 미소와 함께 방금 일격의 위력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자세를 취하더니, 곧장 바닥을 박차고 나를 향해 짓쳐들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받아치는 대신, 한층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려는 것이다.

그의 질주에 맞서 나는 자세를 가다듬는 한편.

‘지금이 타이밍이다.’

비장의 무기, ‘경험 계승’을 떠올렸다.

스킬을 발휘하듯 속으로 떠올리는 순간.

두근-

일순간 심장의 고동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머리에, 온몸에 기묘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감각의 정체를 깨달을 무렵.

타닷-

심인욱이 어느새 지척까지 이르렀다.

지근거리의 전투. 그게 바로 심인욱이 원하는 바였다.

“흐읍!”

빠른 호흡으로 초근접전을 펼치려는 심인욱.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무영귀살각처럼 동작이 큰 무공은 다소간의 제약이 따른다.

반면 기교와 노련함의 위력은 배가될 것이다.

즉, 심인욱은 위력 싸움에서 밀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한편.

스스로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확실히 경험이나 지근거리 공방은 수준 차이가 꽤나 심했으니까.’

여태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휘익-!

묵룡을 품은 심인욱의 일권이 날아들었다.

나는 부릅뜬 눈으로 그의 모든 동작을 주시했다.

그러자.

‘보인다……!’

궤적부터 상체의 무게 중심, 발을 딛는 위치까지.

모든 정보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자연히 그의 일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건 물론.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도 물 흐르듯 받아칠 수 있었다.

심인욱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노련한 대처. 바탕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게 2단계 경험 계승인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정확히는 그림자 녀석의 경험이 온전히 스며들었다.

더욱이 이전과는 달리 특정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길 수 있다.’

자연스럽게 승리에 대한 확신이 섰다.

그 순간부터 내 공세는 서서히 날카로워졌고, 그만큼 심인욱의 손발은 바빠졌다.

명백히 내 쪽이 우위를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승부를 결정 지을 정도의 격차는 아니었다.

‘역시 기교만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무리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한창 밀어붙이는 가운데.

지끈-

별안간 지끈거리는 두통이 일었다.

거기서 직감했다.

슬슬 정신력의 한계가 왔으며, 이번 설욕전의 결착을 지어야 할 때가 왔음을.

인식하기가 무섭게 바닥을 박찼다.

타닷-

순간적으로 심인욱과의 간격을 벌린 것이다.

“……!”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었는지, 심인욱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이내 그는 내 의도를 눈치챈 듯, 부리나케 회색의 마나를 일으켰다.

하지만.

‘늦었어.’

나는 이미 기수식을 취한 상태였다.

그대로 심인욱을 향해 무영귀살각의 마지막 초식이자 절초를 흩뿌렸다.

서-걱!

소리조차 없이 쇄도해 가는 참격.

이에 맞서 심인욱은 한발 늦게 발을 굴렀다.

하나 그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 또한 이미 늦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겼……!’

승리의 희열이 가슴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순간.

타닷-!

나와 심인욱 사이로 불쑥 한 인영이 뛰어들었다.

다름 아닌 고태식 교관이었다.

그는 손짓 한 번으로 내 참격과 심인욱의 스킬을 일거에 소멸시켜 버렸다.

그러고는 우리 둘을 향해 입가를 비틀었다.

“거기까지. 제법 봐줄 만했다, 애송이들.”

평소와 다름없는 거친 말투.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칭찬에 가까웠다.

이를 증명하듯.

“현시점에서 딱히 해 줄 말은 없다. 구태여 한 가지를 꼽자면 심인욱, 너는 마력 단련을. 그리고 안일한 너는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스텟을 집중적으로 단련하도록. 이상이다.”

피드백 또한 1학기 때와는 달리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그 말을 끝으로 고태식 교관은 몸을 돌렸다.

‘기본 스텟이라.’

타당한 조언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 문득 심인욱이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졌다. 인정하지.”

깔끔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심인욱.

그의 안색은 창백했으나, 왠지 모르게 개운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뻣뻣하던 과거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

덕분에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그와 대련을 복기할 수 있었다.

적당히 이야기를 끝마쳤을 무렵.

“심인욱,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나는 그에게 속으로 염두에 둔 질문을 꺼내 들었다.

“뭐지?”

“오윤서에 관한 이야기인데.”

“오윤서?”

심인욱은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가 궁금하지?”

“요새 상태가 어떤지 해서.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병실에 있을 때…….”

“그땐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군. 내가 대신 사과하지. 미안하다.”

“아니 뭐, 괜찮은데. 일단 방과 후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대련 직후의 짬을 활용해 대화를 하고 있다지만 지금은 엄연히 수업 시간이었다.

심인욱은 이해했는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과 후, 이곳에서 보도록 하지.”

“고마워.”

“하지만 내가 아는 정보도 한계가 있다는 건 알아둬라. 오윤서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니까.”

심인욱의 염려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인지, 내가 알고 싶은 부분은 딱 그 정도였다.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 * *

방과 후.

약속대로 심인욱과 만나 간단하게 대화를 나눴다.

현재 그녀의 상태는 어떤지.

혹시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지 등.

애초에 알고자 했던 정보가 기본적인 수준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반면 심인욱은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그 정도면 충분한가?”

오히려 내게 되묻기까지 했다.

나는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이 이상은 직접 대화를 나눠 보면 되니까.”

“그나저나 오윤서라니. 언제부터 알고 지냈지?”

“아직 대화도 제대로 나눈 적 없는데. 병실에서 만났을 때가 처음이야.”

“……뭐?”

심인욱은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건가?”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오윤서의 문제와 연관이 생겼으니까.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재앙의 마녀, 오윤진을 말하는 거로군.”

“어.”

망설임 없이 답하자 심인욱은 어째선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내 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니. 안일한, 너는 생각보다 사람이 좋군.”

의미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기울이자 심인욱은 진지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성격은 그다지 맞지 않지만, 오윤서는 내 친구이기도 하다. 그러니 모쪼록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심인욱은 그대로 돌아섰다.

‘왠지 좋게 봐준 것 같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애초에 그에겐 내 의도를 설명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으니 말이다.

뻘쭘한 감정을 뒤로한 채, 그에게 얻은 정보를 속으로 갈무리했다.

‘일단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상태라 이거지.’

병실에 입원해 있을 당시.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오윤서는 명백히 대화할 상태가 아니었다.

아직도 그런 상태라면 어떤 계획을 세운다 한들, 의미가 없을 터였다.

그런 만큼 일단 첫 시작은 나쁘지 않은 셈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기숙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에 들어선 즉시, 침대에 걸터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불렀나.

그림자 녀석이 응답했다.

녀석이 꿈에서 말했듯 실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속으로 갈무리하는 한편.

녀석을 향해 생각해 둔 바를 떠올렸다.

‘네가 맡아 줘야 할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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