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기억해 두도록, 혼원현천신공이다
눈을 뜬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확히는.
‘계승인가?’
그림자 녀석의 경험을 계승하는 순간이란 걸 자각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광경을 보게 될지. 무엇을 계승하게 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눈앞의 풍경이 서서히 변해 갔다.
이윽고 펼쳐진 광경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큼지막한 균열이 일어난 도로.
그리고.
화륵-!
곳곳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화마까지.
파괴된 시가지의 풍경이었다.
인식한 순간,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자각했다.
‘……건물 옥상?’
절반 정도가 무너져내린 탓에 위태롭기 짝이 없는 건물의 옥상이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져내릴 듯, 너덜너덜한 펜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끼이이익-
문득 등 뒤쪽에서부터 녹슨 경첩 소리가 들렸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소리.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옥상에 들어서는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쯤 되어 보이는 체격의 남성이었다.
다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얼굴은 어렴풋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의문과 함께 가만히 바라보자,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또다시 두 눈을 부릅떴다.
“안일한.”
갈라지고 메마른 듯한 목소리.
그보다는 내용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설마 이거, 나를 부른 건가? 그게 아니면 혹시 그림자 녀석의 정체가…….’
생각을 채 이어 나가기도 전에 눈앞의 남성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게 말하는 거다.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터.”
한번 입을 열어 봐라.
맥락을 짐작할 수 없는 요구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설마 나한테?’
그런 의문이 절로 들 정도로 상대의 말은 내게 뚜렷하게 느껴졌다.
분명 여태까지의 계승 현상에서 나는 철저히 방관자에 불과했다.
내가 답하지 않아도 느닷없이 나타난 상대가 무언가를 말하거나, 답하는 등.
마치 한편의 영상물을 보는 것처럼 상황이 흘러갔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감각이 다른 것 같은데.’
물론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아.”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음성. 내 목소리였다.
방관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되네.”
그 순간.
“동기화율이 올랐으니까.”
상대가 대답했다.
그것도 나와 그림자 녀석이 아니고서야 결코 알 수 없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렇다면 눈앞의 상대는…….
“그림자?”
“특성의 명칭에서 따온 건가. 나쁘진 않군.”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존재, 그림자였다.
대답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로 보아 틀림없었다.
‘실제로, 아니 꿈에서라도 이렇게 대면하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어안이 벙벙했다.
때문에 한동안 말없이 녀석을 응시하던 중, 문득 녀석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동기화율이 올랐다? 그렇다는 건…….’
떠오른 즉시 생각을 입에 담았다.
“동기화율이 올라서 새롭게 나타난 작용이 지금 상황이라는 건가?”
“바로 그렇다. 계승의 단계가 한 단계 올라간 셈이지.”
“……!”
그제야 현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향해 녀석은 자진해서 ‘계승의 단계 상승’에 관한 부연설명을 들려줬다.
“나는 지금과 같은 상태로 너와 대화할 수 있다. 형태는 다르겠지만, 너 또한 가능할 거다.”
“내가 깨어 있을 때 너와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
“그래. 단, 네 정신력을 고려하면 하루 30분. 무리하면 1시간 조금 안 되는 수준이겠군.”
의미를 깨달은 순간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녀석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날이 찾아올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럼 더 이상 필담 같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겠군.’
필요할 때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언뜻 생각해 봐도 이는 굉장한 이점으로 작용할 터였다.
무엇보다 김한석이 마수를 드러내는 현시점에선 더더욱 그랬다.
‘가만, 그렇게 되면 이전처럼 계승을 통해 녀석의 경험을 얻을 순 없게 되는 건가?’
머릿속으로 일장일단을 가늠하고 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녀석은 내 의문에 관한 대답을 입에 담았다.
“한 가지 더. 경험 계승은 여전히 가능하다. 단 이것도 현재 정신력 수준을 고려하면 하루에 한 번, 대략 10분 정도겠지.”
“하루에 10분씩이라.”
“단, 여태까지와는 다른 형태일 거다.”
“다른 형태? 어떤 식으로 작용하지?”
“그건 설명하는 것보다 적당한 시기에 직접 체험하는 편이 빠를 터.”
녀석의 대답에 때마침 적당한 시점이 떠올랐다.
‘이제 곧 다시 무기술 심화 수업도 진행되니까.’
그때 활용해 보면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무렵, 문득 녀석에게 남겨 둔 질문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구태여 기다릴 필요도 없겠다, 직접 들을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몇 가지 말해 줄 것들이 있어. 듣고 싶은 내용도 있고. 괜찮겠지?”
“그럴 것 같아서 호출한 거다. 들어 보도록 하지.”
“그래. 그럼 먼저…….”
나는 그대로 김한석이 내게 마수를 뻗쳤다는 점부터, 윤설하, 차은월에겐 그렇지 않았다는 점.
나아가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
이를테면 아직도 나와 접점이 없는 백유진, 오윤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필담으로 남겼던 질문들을 전부 물었다.
다행히 녀석은 차근차근 답변하기 시작했다.
“윤설하와 차은월, 둘에겐 환영 마법을 시전하지 않은 것 같다. 맞나?”
“추측이지만.”
“정황상 그게 맞는 것 같군. 무엇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했을 테니까.”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면, 트라우마?”
“정확히는 마음의 틈새라고 봐야겠지. 트라우마는 어디까지나 틈새의 한 종류니까.”
마음의 틈새.
녀석의 대답에 나는 세 사람. 윤설하와 차은월, 그리고 심인욱의 문제를 떠올렸다.
‘하기야, 차은월의 경우 트라우마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됐다.
이내 녀석은 추가로 설명을 부연했다.
“환영 마법은 교묘하게 작용하는 특성상, 색출하거나 제거하기 까다롭다. 그 대신 기본적으로 마법 자체의 위력은 약하다고 할 수 있지.”
“위력이 약하다? 자세히 말해 줘.”
“일정 수준의 정신력으로도 막을 수 있다. 달리 말해 대상의 마음의 틈새가 벌어져 있지 않다면 통용되지 않는다.”
“틈새를 메운 대상도 포함되는 건가?”
“바로 그렇다.”
녀석의 설명에 문득 김한석이 환영 마법을 시전했을 때가 떠올랐다.
삿된 기운을 인식하기가 무섭게 혼원공이 반응했다.
나아가 혼원의 마나는 환영 마법을 단숨에 집어삼키기까지 했다.
그 과정을 상기하니 환영 마법의 위력이 약하다는 뜻이 곧바로 이해가 됐다.
“그럼 이미 문제를 해결한 세 사람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야?”
“만일 장기간 노출되면 모를까, 그 전에 녀석은 이빨을 드러낼 거다. 그때 처리하면 장기간 노출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겠지.”
“이빨을 드러낸다니. 정확히 언제?”
“변수가 많은 만큼 정확한 일자를 특정하는 건 힘들다. 대략 2학기 기말고사 시기쯤이라 알아둬라.”
2학기 기말고사. 속으로 되뇌며 생각했다.
‘그럼 아직 시간 여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두 명.
백유진과 오윤서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를 확인할 겸 녀석을 향해 물었다.
“2학기 기말고사라. 그 전까지 남은 두 명, 백유진과 오윤서의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건가?”
“바로 그렇다. 그 부분에 관해서 의견을 묻고 싶군.”
“의견이라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를 향해 녀석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순서는 오윤서가 먼저, 백유진은 마지막이다. 더불어 그들의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만큼 나름의 계획까지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걸 여태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 부분은…….”
녀석은 가볍게 나를 향해 손짓했다.
“아무래도 네 쪽이 더 나은 것 같으니까.”
“……!”
“그러니 일단 설명하지. 여유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녀석은 즉시 오윤서에 관한 정보를 풀어냈다.
그녀의 문제와 오윤진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본래 계획했던 해결책까지.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적당히 진행 상황 정도만 공유해 주면 된다.”
“전적으로 내게 맡기는 건가?”
“그래. 그 편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테니까.”
“……그나저나 상당히 주먹구구식이네.”
그런 감상이 절로 나올 만큼 녀석이 설명해 준 계획은 부실하게 느껴졌다.
내 반응에 녀석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제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본인의 문제에는 머리가 굳기 마련이니까. 네가 이해해라.”
녀석은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며 답하며 황폐한 시가지를 응시하는 것이다.
여전히 이목구비가 흐릿한 까닭에 녀석의 표정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다만 왠지 아련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일 뿐, 녀석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슬슬 시간이다.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 오늘은 이쯤하지.”
“그런가.”
“그래.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네게 줄 선물이 있다.”
“선물?”
“정확히는 아직 완성되진 않았다. 머지않았지. 그러니 명칭 정도는 알려 주마.”
녀석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 순간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녀석이 말한 것처럼 아무래도 슬슬 시간이 다 된 모양이었다.
‘결국 명칭은 듣지 못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귓가에 녀석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기억해 두도록, 혼원현천신공이다.
익숙한 울림이다.
감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시야가 암전했다.
…
…
…
삐이이이-!
요란한 알람 소리와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속으로 되뇌었다.
‘……혼원현천신공.’
명칭만 따지면 혼원공과 현천강기를 합친 느낌이었다.
다만 마지막에 붙은 ‘신공(神功)’이란 단어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현천강기가 B급, 그리고 혼원공이 B+급이다.’
그렇다면 두 심법이 더해졌을 때 나오는 스킬의 등급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상태창을 띄워 특성 쪽의 변화를 확인했다.
[특성]
-????의 그림자
동기화율 35%
계승 2단계 –일시적인 링크-
예상대로 동기화율이 35%를 달성한 건 물론.
계승 또한 2단계로 상승해 있었다.
‘새로운 심법, 그리고 계승 2단계.’
새로운 수확을 머릿속으로 갈무리하는 가운데.
문득 녀석이 말한 2단계 계승의 작용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경험 계승은 직접 시험해 보는 편이 나을 거라 그랬지.’
때마침 적당한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오늘부터 다시금 무기술 심화 수업이 시작되는 까닭이었다.
‘심인욱, 오늘은 붙어 볼 수 있으려나.’
그와의 대련이라면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물론.
‘경험 계승’의 효과에 관해 유의미한 데이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림자 녀석에게 들은 오윤서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심인욱과는 한번 대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슬슬 준비해야지.’
그렇게 나는 등교할 준비에 임했다.
* * *
시간이 흘러 7교시.
“방학 동안 잘 지냈나, 애송이들!”
고태식 교관 특유의 거친 목소리와 함께 무기술 심화 수업이 시작됐다.
그는 2학기의 첫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설명 없이 대련을 진행했다.
“다들 마나의 유형화는 배웠겠지? 그걸 활용해서 지금부터 대련해라. 설명은 그다음이다!”
지시를 들은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준비됐나?”
“어. 기다렸으니까.”
“우연이군. 나도 마찬가지다.”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그와 마주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