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두 번째 단추가 채워졌다
싱글거리는 눈웃음이나 옅은 미소 등.
김한석의 표정 자체는 평소에 보이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풍기는 기색이 달랐다.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분위기. 단지 그뿐이라면 그저 꺼림칙하다는 감상으로 넘어갔을 터였다.
그게 불가능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환영 마법, 벌써부터 마수를 드러내려는 건가.’
나는 그의 정체를, 속셈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어뜨렸다.
그 와중에 빨리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입술이 잘게 떨렸다.
‘여기서 더 지체했다간 괜히 의심을 살지도 몰라.’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이미 환영 마법의 대책은 갖춰진 상태였다.
그때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고 여겨왔건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생각 이상으로 동요가 일었다.
불안감을 최대한 억누른 채 필사적으로 대답을 골랐다.
무어라 답하기 위해 겨우 입을 열려는 찰나.
“이해해요.”
나보다 한발 앞서 김한석이 말했다.
느닷없는 멘트에 순간 고민했으나, 이내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라고 여기니까 그런 건가?’
일종의 배려인 듯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최대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스윽-
별안간 김한석이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그의 손길이 어깨에 닿았다.
이 또한 배려의 일환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한시름 놓으려는 찰나.
‘……!’
김한석의 손길이 닿은 어깻죽지 쪽에서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는 기운이 스며드는 듯한 느낌.
처음 겪는 현상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환영 마법……!’
사고가 정답을 도출해낸 순간.
쿠구구궁-!
별안간 코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장대하면서도 도도한 흐름. 혼원공이었다.
인식한 순간 불현듯 그림자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환영 마법의 대책으로 전수해 준 게 혼원공이었지.’
기억을 더듬는 사이에도 혼원의 마나는 거침없이 체내를 질주했다.
그렇게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어깻죽지.
김한석의 손길이 닿은 쪽이었다.
그대로 어깨 쪽에 도달한 순간.
‘……!’
소름 끼치는 기운이 한층 선명하게 느껴졌다.
뚜렷한 감각, 하지만 이는 찰나에 불과했다.
혼원의 마나가 그대로 김한석이 심어 둔 기운을 집어삼킨 까닭이었다.
인식한 순간,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환영 마법은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혼원공이 있는 한 더는 환영 마법을, 김한석의 술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어서 떠오른 생각에 나는 잽싸게 입을 여는 한편.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습니다.”
동시에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김한석의 손길이 내게서 멀어져 갔다.
‘혹시 모르니까.’
현재 김한석의 환영 마법은 내가 가진 혼원공으로 인해 소멸되는 중이었다.
계속해서 접촉하고 있다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들킬 우려가 있었다.
이 사실을 그가 알게 되면 곤란했다.
‘지금도 수업 시간에 대놓고 수작을 부릴 정도인데.’
만일 그가 내게 환영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수틀려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가늠조차 안 됐다.
그러니 당분간은 최대한 현 상태로, 탐스러운 먹잇감인 채로 남아야 했다.
‘적어도 그림자 녀석이 후속 조치로 뭔가를 알려 주기 전까지는 말이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시에는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 사실 실감은 잘 안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흐음.”
김한석은 대답과 함께 묘한 기색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는 잠깐을 그렇게 바라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사실 일한 생도의 대련에서 어딘가 조급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세에 무게추가 쏠린 것 같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하겠네요.”
“……저는 지금 조급한 건가요?”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고, 거기서 무력감을 느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테니까요.”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름 아닌 대련에 관한 피드백이었다.
다시금 이야기의 궤도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문득 소름이 끼쳤다.
‘사전에 빠져나갈 구멍까지 마련해 뒀다는 건가?’
참으로 주도면밀하다.
실금조차 가지 않은 그의 가면을 보니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감상을 뒤로한 채, 나는 일단은 그의 말에 맞춰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환영 마법의 대책도 갖췄겠다, 당장은 큰 문제 없겠지.’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덕분에 표정을 수월하게 가다듬으며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
…
…
잠시 후.
“조언 감사합니다.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안일한.
그를 향해 김한석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해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안일한은 대답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김한석은 그의 뒷모습을 이채가 서린 눈빛으로 유심히 바라봤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의 면담을, 특히 안일한의 눈빛을 떠올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을 줄이야.’
총기 어린 눈빛.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안일한의 눈빛은 변함없이 반짝거렸다.
그 너머에 칠흑같이 어두운 트라우마를 품고 있음에도 그랬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환영 마법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심어 놓은 씨앗으로부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제아무리 환영 마법이 초기 단계에 세가 약하다 한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통용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정신력이 강하거나, 그게 아니면…….’
정신을 보호하는 성질을 띤 마나를 갖췄다거나. 둘 중 하나였다.
김한석은 후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정신 보호 계열의 마나 심법은 거대 길드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 특수한 스킬을 일개 생도가 익혔다? 지나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였다.
‘그만큼 정신력이 강하다는 건가. 재밌네.’
김한석은 입맛을 다시며 슬슬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안일한을 비롯하여 몇몇 실력이 두드러지는 생도들이 눈에 띄었다.
그는 묘한 눈길로 뛰어난 생도들을 한차례 훑으며 생각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가 마력 수업을 전담하는 한 기회는 언제든 열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최소 한 달. 그 정도면 다른 뛰어난 생도들은 물론.
예상 외로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안일한에게도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 한들, 성인도 아니고 일개 생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파고들 수 있으리라.
그렇게 김한석은 만족스럽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생도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업을 재개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면담은…….”
* * *
방과 후.
나는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함께 식당을 향해 갔다.
변함없이 높은 퀄리티의 식사를 즐기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2학기의 첫 실기 수업, 김한석의 마력 수업에 관한 화제가 흘러나왔다.
정확히는.
“새삼 느낀 건데, 은월이 넌 정말 천재인 것 같아.”
“내, 내가? 말도 안 돼!”
“아니, 확실히 느꼈어. 마법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냥 마나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정말이지…….”
“그래 봤자 설하, 네겐 한 번도 맞추지 못했는걸?”
“은월아, 애초에 그런 걸 한 번이라도 맞았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
“그렇다고 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천재적인 게 아닐까……?”
“그건 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수업 시간에 치렀던 대련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태 생도 간의 대련은 겪어 봤어도, 이처럼 친구들끼리 붙어 본 건 처음인 까닭이었다.
“어쩜 이렇게 괴물들만 모였는지. 점점 버거워지는 기분이야.”
윤설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슬슬 대화의 매듭이 지어진 것 같을 무렵.
‘한번 물어보자.’
나는 여태 생각하고 있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은월, 윤설하. 너희 둘에게 물어볼 게 있어.”
“응? 뭔데?”
“얘기해.”
두 사람의 대답에 나는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김한석 교관님과 오늘 면담했잖아. 무슨 내용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
김한석과의 면담.
그가 무엇을 물어봤으며, 그와의 면담에서 어떤 점을 느꼈는지.
질문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김한석이 노리는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니까.’
눈앞의 두 사람을 포함, 심인욱, 오윤서, 그리고 백유진까지.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김한석은 이 다섯 천재들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혼원공이 있으니 괜찮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내 두 눈으로 직접 김한석이 마수를 뻗는 모습을 목격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물론 그림자 녀석이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겠지만.’
녀석에게 대책을 물어보기에 앞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알아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내게 있었던 일을 포함하여, 그녀들의 상황까지 공유할 수 있다면.
녀석 또한 상황을 판단하는 데 한결 수월할 터였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으음, 난 일단 움직임에 관한 부분이려나?”
차은월이 먼저 경험담을 풀어냈다.
마나 운용에 관해 칭찬을 들었던 점. 반면 움직임에 관한 부분에선 지적을 받았다는 점 등.
대체로 건설적인 대화가 이뤄진 모양이었다.
이는 윤설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질문의 방향을 살짝 바꿔 봤다.
“감상은?”
“음, 진태진 교관님과는 조금 다르지만 확실히 잘 가르쳐주신다?”
“나도 설하랑 비슷한 것 같아!”
웃는 낯으로 대답하는 두 사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일단 나 이외에는 별다른 수작을 부리지 않은 건가?’
김한석의 환영 마법은 나조차도 단숨에 느꼈다.
그만큼 소름 끼치는 감각을 나보다 뛰어난 두 사람이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 둘은 천재니까.’
실제로 차은월은 마나의 운용부터 감각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윤설하도 비슷한 이치였다.
이전에 심인욱과의 대련을 도와줄 당시.
그녀는 나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마나의 미묘한 차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런 두 사람이 느끼지 못한 거라면 차라리 김한석이 아직 마수를 뻗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나머지 세 명의 이야기는 당장 알아낼 방도가 없으니, 일단 여기까지인가.’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넌 어땠는데? 네가 첫 번째로 면담했잖아.”
윤설하가 내게 되물었다.
“나는 음…….”
그녀에게 적당히 대답해 주는 한편.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명확한 대답을 들어야겠어.’
그림자 녀석에게 남길 메모를 속으로 헤아렸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35%]
-[????의 그림자]가 정상적인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
…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메시지 세례가 시야를 뒤덮는 가운데.
-동기화율이 일정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기본적인 단계의 [계승]이 이뤄졌습니다!
-의식의 일정 부분이 연결됩니다!
연결, 그 두 번째 단추가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