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이야기해 봐요. 편하게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오전의 교양 수업과 5, 6교시의 초인 이론 수업을 거친 끝에 7교시, 2학기의 첫 실기 수업 시간이 찾아왔다.
수업은 앞서 진태진 교관이 예고했듯.
“다들 방학은 잘 보내셨나요?”
김한석의 마력 수업으로 시작됐다.
그는 생도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다음, 본격적인 수업 과제.
‘마나의 유형화’의 이론 강의로 넘어갔다.
“마나의 유형화란 마나를 유형화하여 무기로 활용하는 부분까지를 의미합니다. 대개 마나 활용의 최종적인 형태로 취급하죠.”
특유의 서글서글한 김한석의 목소리에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나는 사감을 잠시 치워 두기로 마음먹었다.
‘위험한 정체와는 별개로 강의는 잘하니까.’
그렇게 납득하며 귀를 기울이는 사이.
김한석의 이론 강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나 활용의 최종 형태이긴 하나, 방법 자체는 간단해요. 감각을 체득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더 이상 깊이 파고들 필요 없다는 듯, 곧바로 활용에 관한 내용으로 넘어간 까닭이었다.
김한석은 시범이라도 보일 생각인지 가볍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강의를 이어 나갔다.
“마나의 체외 사출 단계까지는 호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렵진 않을 겁니다. 제가 시범을 보여 줄 테니, 한번 따라 해 보세요.”
그의 지시에 생도들은 하나둘씩 손을 내밀었다.
이내 대부분 호신을 발휘했을 무렵 설명이 이어졌다.
“그 상태에서 마나를 나선의 형태로, 소용돌이치는 듯한 이미지로 한번 운용해 보세요. 그럼 이렇게…….”
김한석이 말끝을 흐리는 순간.
우우웅-!
그의 손바닥 위에 검보랏빛 마나가 선명한 구체를 이뤘다.
변함없이 불길한 색채다. 나는 그런 감상을 떠올리며 마나의 유형화를 시도했다.
잠시 후.
“감각이 뛰어난 생도가 몇몇 눈에 띄네요.”
김한석은 싱긋 웃으며 마나를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강의를 이어 나갔다.
“이렇듯 마나의 유형화를 이루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활용은 별개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활용.
그는 이어서 이유를 설명했다.
“핵심은 실전이에요. 실전에서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시험 방식으로 대련을 채택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지극히 정론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김한석은 앞으로의 수업 방식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따라서 이번 주는 마나의 유형화의 실습을 진행하고, 그 이후의 수업은 전부 대련, 그리고 개인 피드백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대련과 피드백.
무기술 수업을 연상케 하는 커리큘럼이었다.
그런 감상과는 별개로 충분히 납득이 갔다.
‘실전이 오히려 취향이기도 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김한석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지금부터 마나의 유형화 실습을 진행하되, 이미 성공한 생도들은 잠깐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경지에 도달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따로 분류한 것이다.
하나둘씩 움직이는 가운데, 나 또한 슬슬 움직였다.
그런 나를 향해 함께 있던 두 사람. 임강철과 윤설하가 한마디씩 건네왔다.
“일한이, 벌써 해낸 건가?! 역시!”
“……변함없이 빠르네. 먼저 가 있어.”
보아하니 임강철은 아직 마나를 나선의 형태로 이끄는 감각이 낯선 모양이었다.
반면 윤설하는 유형화까진 이뤘지만 아직 형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했다.
때문에 우리 일행에서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나와 차은월, 두 사람뿐이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이려나.’
실제로 마나의 유형화를 성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중 임강철처럼 감을 못 잡은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불안정하게나마 유형화를 이룬 윤설하의 성취가 빠른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나의 경우, 탁월한 감각이라기보단 치트에 가까웠으니 논외였다.
그리고 차은월은.
“사실 마법 계열 지망생들은 1학기 기말에 미리 배우거든. 마법도 일종의 유형화를 이룬 마나니까.”
무기에 따른 특성, 그리고 그녀가 가진 재능이 더해진 결과인 듯했다.
그 정도로 납득하고 있을 때.
“일한아, 그럼 갈까?”
차은월이 내게 권해 왔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한석이 가리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분류가 끝나고 나서야 설명을 이어 갔다.
“지금 모인 생도들은 바로 대련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단, 아직 활용이 미숙할 테니 초식 교환의 형태로 진행하겠습니다.”
간단히 방식을 설명하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원하는 사람끼리 짝을 지어 바로 시작하세요.”
그의 지시에 나는 자연스럽게 차은월을 바라봤다.
내 시선에 그녀는 일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괜찮겠어?”
친구 사이라는 점.
그리고 마법 계열과 근접 계열 간의 대결이라는 점 등.
차은월의 눈빛을 보아하니 여러 의미가 담긴 물음인 듯했다.
이를 듣는 순간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차은월과 대련하는 건 처음이네. 임강철, 윤설하와는 대련을 해 봤는데.’
임강철은 같은 건틀렛 사용자로서 무기술 수업에서.
윤설하는 심인욱과의 대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번 붙어봤다.
반면 차은월, 그녀는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계열의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달리 같이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
그리고 생각보다 유익할 것 같다는 점 때문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차은월이 가진 재능과 실력은 진짜였으니까.
‘대련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마법사와의 대련 경험은 틀림없이 내게 도움이 될 터였다.
문득 김한석의 존재가 뇌리를 스쳐 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될 거야. 서로.”
“으응, 잘 부탁해.”
그렇게 합의를 본 다음, 나는 차은월과 마주 섰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는 그녀의 모습에 자세를 갖췄다.
동시에 그녀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먼저 갈게.”
“응!”
대답을 듣자마자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이어서 익숙한 감각에 따라 마나의 유형화를 이뤄냈다.
영롱한 색채의 마나가 건틀렛을 완전히 뒤덮은 순간.
타닷-
반투명한 역장을 전개하는 차은월을 향해 쇄도해 갔다.
* * *
실기 수업 첫 주는 첫날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마나의 유형화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은 실습을.
유형화를 이룬 생도는 초식 교환의 형태로 대련을 진행한 것이다.
첫날과 둘째 날은 차은월과 대련했다.
그녀와의 대련은 생각 이상으로 도움이 됐다.
“일한아 먼저 갈게!”
“어.”
그녀가 가진 마력 역장의 특징은 ‘증폭’.
이를 바탕으로 펼치는 마법의 위력은 굉장했다.
때문에 단순한 호신으로는 완전히 막아 낼 수 없었다.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내가 택한 수단은 다름 아닌 현천강기의 반발력이었다.
쌔애애액-!
어지간한 수준의 마나는 아예 갈아 버리는 위력을 자랑하는 현천강기.
특유의 출력을 바탕으로 방어가 아닌, 마주 공격하는 형태로 대응하자 활로가 열렸다.
그녀의 마법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식의 방어법을 터득한 것이다.
‘마나 소모도 적고, 바로 반격하기에도 용이하고.’
거기다 공격 또한 이런저런 시도 끝에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다.
비결은 다름 아닌 현천강기와 혼원공을 혼합하여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잘 어우러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지만.’
덕분에 마나 소모를 최소화하는 한편, 지속력을 크게 상승시킬 수 있었다.
위력은 덤이었다.
쩌적-!
기본적인 공격만으로 차은월이 전개한 역장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복마구권이나 무영귀살각의 진가를 발휘하지 않은 채로 내보인 결과라 더더욱 의미가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초식 교환 수준이니까.’
그렇게 차은월과 단둘이서 대련하는 사이.
“기다렸지?”
셋째 날부터 윤설하가 합류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마지막이군! 잘 부탁한다!”
임강철까지 합류해 넷이서 번갈아 가며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이후 적당히 2학기의 첫 번째 주말을 보내고 둘째 주가 찾아왔을 때.
“다들 조형까지 익숙해진 모양이니 다음 단계, 대련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본격적인 대련이 시작됐다.
이미 첫날에 방식을 설명한 만큼 김한석은 별말 없이 수업을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모인 가운데, 대련 상대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 속에서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누가 좋을까. 이번에는 윤설하가 나으려나.’
차은월과의 대련은 마법사의 전투 방식 및 대처법을 익히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앞으로의 커리큘럼을 미뤄 봤을 때 마법 계열보단 근접 계열과의 대련이 보다 도움이 될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윤설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그 직전에.
“지난주에 설명했던 대로 대련을 진행하는 동안 개인 피드백도 함께 진행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안일한 생도? 이쪽으로 오세요.”
별안간 김한석이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적으로 흠칫했으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친구들에게 짤막하게 한마디를 남겼다.
“다녀올게.”
“응, 우리 먼저 하고 있을게.”
천천히 걸음을 옮겨 김한석 앞에 마주 섰다.
그는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일한 생도는 역시 빠르네요. 감각이 탁월해요. 가지고 있는 마나 심법도 범상치 않은 것 같고요.”
느닷없는 칭찬 세례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호명했어요. 마나의 유형화를 빠르게 익히기도 했고, 조금만 다듬으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
그제야 납득이 됐다.
아무래도 피드백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이 성취 속도인 모양이었다.
김한석은 그렇게 이유를 설명하고는, 무기 훈련실 한쪽 구석에 위치한 무기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장소를 옮기도록 하죠. 이쪽으로.”
그를 따라 향한 무기고 앞쪽에는 의자 두 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김한석은 자리를 권하며 의자에 앉았다.
조심스럽게 마주 앉자 그가 말문을 열었다.
“피드백은 대련 내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라 외적인 요소까지 함께 다룰 겁니다.”
“외적인 요소라는 말씀은…….”
내 물음에 김한석은 싱글거리며 답했다.
“이를테면 태도죠.”
“태도라면, 대련에 임하는 태도 말씀인가요?”
“그렇죠. 일한 생도의 경우, 전체적으로 훌륭해요. 오히려 기교나 마나 활용 같은 내적인 요소보다 태도와 같은 외적인 측면이 말이죠.”
막힘없는 김한석의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일대일 개인 면담이라 뭔가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제대로 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때문에 마음속 경계심이 차츰 누그러지는 가운데.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그것도 생각보다 큰 문제 같네요.”
별안간 그의 어조에 묘한 기색이 서렸다.
단순히 단점을 지적하는가 싶은 순간.
“혹시 저번 게이트 침식 사태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죠?”
그의 입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물음이 흘러나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질문을 바꿔 볼까요? 일한 생도는 분명 힘든 경험을 겪었죠. 하마터면 목숨을 잃었을 수 있을 정도로 큰일이었잖아요.”
“네.”
“거기서 무엇을 느꼈나요? 보통 그런 끔찍한 경험은 트라우마를 남기기 마련이거든요.”
“……!”
트라우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단어였다.
만일 방금 질문이 진태진 교관에게서 나온 거라면 별다른 의심 없이 상담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하는 대상이 김한석이라면.
환영 마법의 소유자라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그 순간 불현듯 그림자 녀석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트라우마를 비롯한 마음의 틈은 환영 마법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녀석의 경고를 되새기며 김한석의 의도를 헤아렸다.
이내 어렵지 않게 모종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쩌면 내게 환영 마법을 시전하려는 걸지도.’
인식한 순간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동시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진짜로 내게 환영 마법을 시전하려는 건지.
만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찰나간 머릿속이 복잡할 정도로 고민하고 있을 때.
“이야기해 봐요. 편하게.”
김한석이 요사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