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그럼 머지않아 붙을 수 있겠네
그림자 녀석이 안겨 준 선물.
그 위력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곧장 무기 훈련실로 향했다.
‘사람을 상대로 펼쳐 보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만.’
생도 간의 사적인 대련은 교칙 위반이었다.
그러니 차선으로 가상 대련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가상 대련인 만큼 큰 도움은 안 될 터였다.
하지만 적어도 D+급 수준에 도달한 마력 스텟의 활용과 위력 정도는 확인이 가능하리라.
‘2학기 중간고사의 마력 시험은 대련 형태로 진행되는 것 같으니까.’
앞으로 기회는 많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무기 훈련실에 다다랐다.
첫날이라 그런지 훈련실 내부는 한산했다.
덕분에 지체없이 가상 대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상 대련용 장비를 착용하고, 마지막으로 차은월한테 선물 받은 칠흑빛 건틀렛을 착용했다.
착용감에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진짜 장난 아니네, 이거.’
외견부터 착용감,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차은월이 선물해 준 건틀렛은 모든 면에서 비범한 수준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만한 퀄리티라면 가격도 상당하리라.
내 형편으론 접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그나저나 이걸 써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실습 당시 오윤진과 동행하며 전투를 치렀다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그때 써 봤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기대감이 한층 부풀어 올랐다.
그 상태로 나는 빠르게 가상 대련을 시작했다.
이내 눈앞에 익숙한 형태의 더미 데이터가 나타났다.
삐그덕-
더미 데이터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목각 인형.
나는 코어를 활성화시키고 혼원의 마나를 끌어냈다.
쿠구구궁-!
도도한 혼원의 흐름이 사지백해로 뻗어 나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일일이 제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가운데.
벌써 마력 스텟의 성장 효과가 체감됐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부담이 덜한 느낌인데.’
물론 단정을 짓기에는 아직 이른 상태였다.
자연스러운 코어 활성은 어디까지나 무공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한 바탕일 뿐.
본격적으로 무공의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 마나 소모량은 배가 될 터였다.
그걸 감당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림자 녀석의 설명이 증명되는 것이었다.
‘일단 주력 스킬들을 전부 제대로 써 보는 거로.’
그 일환으로 나는 곧장 흑영보를 발휘했다.
온몸이 그림자에 휩싸이는 감각 속에서 초식을 하나씩 전개했다.
스르륵-
허공을 유영하는 듯한 움직임.
더미 데이터는 그야말로 내 털끝 하나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그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녀석을 마음껏 유린한 다음 코어의 마나량을 점검했다.
‘충분히 여유롭다.’
첫 번째 초식부터 네 번째 초식, 그리고 전 초식을 관통하는 걸음걸이까지.
전부 활용해 봤음에도 마나량은 차고 넘쳤다.
때문에 나는 자신 있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스읍…….”
익숙한 동작으로 취하는 기수식, 복마구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혼원공 대신 현천강기를 활용해 볼 생각이었다.
생각을 떠올린 즉시 코어로부터 현천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쏴아아-!
마치 격류처럼 격렬하게 전신을 누비는 현천의 흐름.
과연 강 계열의 마나 심법이라 그런지 소모량은 혼원공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럼에도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판단 즉시 본격적으로 복마구권의 후반 3초를 연거푸 전개했다.
내지르는 일권에 멸마의 기운이 서렸다.
동시에 현천강기가 반응하더니 새로운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전신에 스며들어 삿된 기운에 대항할 힘을 선사하는 데서 나아가 외부로 흘러나왔다.
“……!”
그러자 적개심을 마주했을 때 이상 가는 고양감이 끓어올랐다.
동시에 흘러나온 기운은 현천강기를 상징하는 은회색의 색채를 띠었다.
그 상태로 후반 1초식을 전개하자.
쩌-엉!
막대한 기파와 함께 더미 데이터가 날아가 버렸다.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방금 일격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이게 바로 진정한 복마구권의 위력인가.’
더미 데이터가 단 한 방에 쓰러진 만큼 정확한 위력은 파악이 어려웠다.
그 대신 마나의 소모 값이나 복마구권의 새로운 효용을 알게 됐다.
지금 상태에서 몇 차례 더 시험해 보면 전투 지속 시간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탈혼지하고 무영귀살각 정도인가? 아, 그리고 혼의 각성도 있긴 한데.’
혼의 각성의 경우에는 앞선 무공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무공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법, 단련 방법까지 판이한 것이다.
지난번 녀석과의 문답을 통해 단련법 정도는 숙지해 둔 상태였다.
‘혼을 인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모양인데. 혼이라니, 말이 쉽지…….’
영혼은 현시대에도 여전히 불가해한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당연히 이는 내게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때문에 ‘혼의 각성’의 단련 및 활용은 잠정적으로 미뤄 두기로 했다.
그러고는 다음 단계로 신경을 돌렸다.
‘이제 그럼 탈혼지하고, 무영귀살각.’
이미 더미 데이터가 쓰러진 만큼 다시 나가서 재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약간 번거롭다는 생각과 함께 가상 대련실을 벗어나는 순간.
“어?”
익숙한 얼굴과 대면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변함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꽤나 강해졌군.”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칭찬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여태까지 지켜본 건가?’
뉘앙스로 봤을 땐 그랬다.
언제부터 봤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얼떨떨한 감정으로 대답했다.
“그런가?”
“물론이다. 당장이라도 겨뤄보고 싶을 정도다.”
상당히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심인욱.
본래 제 할 말은 가감없이 하는 스타일인 만큼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대신 조금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이 녀석과 한번 붙어보는 게 가장 확실한데.’
내 무공의 위력을 파악하는 것부터 실전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될지에 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더미 데이터와의 수십 번 대련보다 심인욱과의 제대로 된 한판 승부가 훨씬 도움 될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가 없이 사적인 대련을 벌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심인욱이 재차 입을 열었다.
“들어서 알겠지만 2학기 마력 수업은 대부분 대련으로 진행된다더군.”
“그래 봤자 반이 다르잖아.”
“내가 듣기론 마력 수업에 무기술 심화 수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1학기 때처럼 이동 수업으로 진행되는 거야?”
“그렇지.”
솔깃한 이야기였다.
심인욱의 말대로라면, 머지않아 그와 제대로 한판 붙을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최초의 대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
설욕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머지않아 붙을 수 있겠네.”
“기대하며 기다리지.”
대답을 끝으로 심인욱은 몸을 돌렸다.
그 또한 부족하게나마 가상 대련을 통해 몸을 풀고자 하는 듯했다.
잠깐 바라보다가 나도 발걸음을 돌려 가상 대련실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곧장 나머지 무공의 위력을 시험했다.
탈혼지의 경우.
스윽-!
단 일격으로 목각 인형을 행동불능에 빠뜨렸다.
이는 이전처럼 일시적인 효과가 아니었다.
구명절초답게 말 그대로 일격에 절명시킨 것이다.
‘이것도 실전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 같고.’
결과를 머릿속에 갈무리하는 한편.
이어서 무영귀살각을 전개했다.
서-걱!
내가 가진 최강의 무기인 만큼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다만 앞선 무공들과 마찬가지로 일격에 더미 데이터를 쓰러뜨린 터라 위력보단 마나 소모량에 주목했다.
‘이 정도면…….’
대략 5분의 제한 시간을 가진 대련에서라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신감이 붙었다.
당장 내일부터 있을 마력 수업과 머지않은 심인욱과의 대련, 두 가지 모두 말이다.
미소와 함께 다시금 가상 대련을 세팅하며 마지막으로 실험해 볼 무기를 떠올렸다.
‘마나의 유형화.’
2학기 마력 수업 때부터 본격적으로 진도가 나갈 예정인 마나의 유형화.
아직 수업은 듣지 않았지만, 그림자 녀석 덕분에 이미 노하우는 숙지해 둔 상태였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는데.’
1학기 수업 당시에는 빠르게 익혔을지언정, 수업 진도를 앞서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명백하게 추월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격세감이 느끼며 마나의 유형화의 노하우를 떠올렸다.
그대로 현천강기를 운용하여 마나를 끌어 올렸다.
쏴아아-!
호신을 펼칠 때와 마찬가지로 체외를 향해 순환 범위를 확장시켰다.
이윽고 양손에 현천강기 특유의 은회색 마나가 서렸을 때.
‘여기서는 나선의 형태로.’
머릿속으로 소용돌이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마나를 이끌었다.
분명 첫 시도였음에도 왠지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림자 녀석 덕분이겠지.’
입원해 있을 때부터 줄곧 연마했으니, 낯설게 느껴지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저 과실을 수확하는 기분으로 마나를 운용하자 이내 손바닥 위에 영롱한 구체가 형성됐다.
‘……이게 바로 마나의 유형화인가.’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신기한 감정이 드는 한편.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마나를 적합한 형태로 조형했다.
그러자 선명한 은회색의 마나가 건틀렛을 뒤덮었다.
‘일단 가볍게 무공 없이 해 볼까.’
마음을 먹은 즉시 더미 데이터를 향해 일권을 날렸다.
그리고.
쩌-엉!
놀라운 위력에 두 눈을 부릅떴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34%]
-[????의 그림자]가 일정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
…
…
그림자는 깨어나는 것과 동시에 한눈에 알아차렸다.
‘드디어 아카데미로 돌아왔군.’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눈을 떴음을 말이다.
그림자는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동기화율을 확인했다.
34%. 앞으로 1%만 더 오르면 35%를 달성할 터였다.
‘그 능력이라면 전력에 상당한 보탬이 되겠지.’
그림자는 추후 얻을 능력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다.
그런 감상과 함께 기숙사를 벗어났다.
익숙한 걸음으로 도달한 곳은 마력 단련실이었다.
그는 텅 빈 단련실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으며 머릿속을 더듬었다.
‘마나의 유형화는 건네줬으니까. 이제 남은 건…….’
마력에 관련된 안배도 슬슬 끝이 다가왔다.
앞으로 한두 걸음만 더 내디디면 어디 가서 절대 꿀리지 않는 수준의 마력을 갖출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김한석의 환영 마법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지겠지.’
만족스럽게 생각을 갈무리하며 두 눈을 감았다.
이어서 그는 코어를 일깨우고, 혼원공을 운용했다.
쿠구구궁-
그림자는 전신을 순환하는 장대한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끼며 속으로 되뇌었다.
‘혼원이라는 광활한 천지 속에서.’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 이번에는 코어에서부터 현천의 마나를 끌어냈다.
혼원과 현천, 두 종류의 마나가 체내를 어지러이 순환하기 시작했다.
분명 서로 다른 계열의 마나 심법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끊임없이 속으로 묘리를 되뇌었다.
‘현천의 깊고 무한한 이치를 더한다.’
때론 장대하게, 때론 격렬하게 체내를 누비는 가운데.
고오오오-
아주 조금씩.
혼원의 마나에 현천의 색채가 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