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앞으로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일주일이란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퇴원 절차를 밟은 후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사이에 2학기, 등교하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역시 나를 아카데미까지 데려다주셨다.
아무래도 얼마 전까지 입원해 있던 상태라 그런지.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아버지는 연신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셨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는 까닭에 나는 그때마다 일일이 대답했다.
“그럴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내 속마음은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내 머릿속은 다소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빠르게 강해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세상의 종말…….’
꿈에서 본 참혹한 광경.
세상의 종말이 실존하는 위험이자, 이미 예정되어 있는 미래라는 점.
그걸 나와 그림자, 단둘이서 맞서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둘이서만 맞서게 되진 않겠지만.’
녀석의 말에 따르면, 종말에 맞서기 위한 안배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중에는 단순히 내 역량의 증가뿐만 아니라 오윤진 같은 조력자들도 여럿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일개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종말에 맞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현시점에서 유이하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와 그림자.
둘이서 해야 할 일은 종말에 무모하게 맞서는 게 아닌, 종말의 예방에 가까웠다.
그게 가능한 이유로 그림자는 훗날 벌어질 종말이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점을 덧붙였다.
‘인위적으로 그만한 참사를 일으킬 수 있을 줄이야.’
믿기 힘든,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 게이트 침식 사태 같은 큰 사건을 겪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빠르게 납득이 됐다.
더하여 나 혼자만이 아닌, 적극적으로 조력을 약속하는 그림자의 존재도 마음을 다잡는 데 한몫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강해지는 건 나 또한 바라마지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어렸을 적 악몽과도 같았던 참사.
그런 상황을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 결과로써 나는 오늘을, 2학기가 시작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집에선 아무리 그림자 녀석이 엄청난 능력을 전해 줘도 제대로 된 단련이 불가능한 까닭이었다.
‘보아하니 입원해 있는 사이 뭔가 새로운 능력을 계발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녀석은 미래에 관한 진실을 알려 주는 것과 동시에 새삼스럽게 한 가지를 약속했다.
다름 아닌 ‘상식을 뛰어넘는 성장 속도’를 제공하는 것.
그게 과연 어떤 형태로 내게 주어질지, 기대가 됐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다 왔구나.”
어느새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짐을 챙기며 내리자 아버지께서도 차에서 내렸다.
아무래도 기숙사까지 짐을 들어주시려는 모양이었다.
“괜찮은데.”
“학기 중에는 보기 힘들 거 아니냐.”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심하게 툭 던지듯 말하는 아버지.
하지만 그 속에는 걱정과 더불어 애정이 묻어났다.
‘하기야 그림자 녀석의 말대로라면 2학기는 꽤나 정신없이 흘러갈 테니.’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아버지께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가자.”
“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상당히 오랜만에 기숙사를 향해 갔다.
익숙한 걸음으로 내 방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오, 일한이! 몸은 괜찮나?!”
다름 아닌 임강철이었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아 어젯밤 미리 와서 짐 정리까지 마친 듯했다.
이어서 그는 내 뒤에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곧장 90도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버님, 안녕하심까-!”
“그래. 잘 지냈니?”
“물론이죠!”
임강철은 쾌활하게 대답하며 제 가슴을 탕탕 쳤다.
정말이지 그다운 리액션에 새삼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체감됐다.
감상에 젖은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래, 일한이를 잘 부탁한다.”
“넵! 맡겨만 주십쇼!”
그렇게 임강철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아버지는 몸을 돌렸다.
“잘 지내고, 연락하거라.”
“네, 아버지.”
내 대답에 아버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대로 돌아선 채 기숙사를 벗어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임강철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한이, 슬슬 갈 시간이다!”
“그러네. 갈까?”
“가자!”
나는 임강철과 함께 교실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 * *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왔어?”
“일한아, 오랜만이야!”
윤설하와 차은월이 나와 임강철을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다들 자리에 앉도록.”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사람이 교실에 들어섰다.
다름 아닌 A반 담임, 진태진 교관이었다.
곧바로 교단 위를 향하는 모습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첫날이라 교양 수업은 없는 건가?’
잠깐 의문을 떠올렸으나.
“오늘 수업은 2학기 커리큘럼에 관한 설명으로 대체하겠다.”
진태진 교관의 빠른 진행 덕분에 금방 해소됐다.
‘2학기 커리큘럼이라.’
그림자 녀석으로 인해 머릿속이 온통 김한석과 격변에 매몰된 까닭인지.
정작 2학기 때 어떤 식으로 수업이 진행될지, 무엇을 배우고 시험 과목은 어떻게 될지 등.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진태진 교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가장 먼저 2학기 중간고사의 시험 범위다. 커리큘럼이라 봐도 되겠지.”
그는 말을 맺으며 교단의 벽쪽에 위치한 홀로그램 화면을 조작했다.
그러자 수업 커리큘럼에 관한 내용이 화면에 나타났다.
“수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마력 수업이다. 진도는 마나의 유형화까지며, 수행평가와 중간고사 모두 대련 형식으로 시험을 치르게 될 거다.”
마나의 유형화, 그리고 대련으로 시험을 치른다는 부분까지.
하나씩 머릿속에 담아 두는 가운데.
“그리고 마력 수업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김한석 교관이 전담하게 될 거다. 참고하도록.”
김한석의 이름 석 자가 언급됐다.
거기에 반응해 마른침이 절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김한석을 어떻게 상대할지, 녀석은 전부 계획이 있다고는 말했지만.’
그림자는 김한석을 상대할 계획은 물론.
그 절차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식으로 움직여 일을 벌일지는 아직 답하지 않은 상태였다.
‘2학기에도 유심히 지켜봐야겠군.’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다짐하는 사이, 진태진 교관이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는 전투다. 구태여 대련과 구분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2학기부터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 즉 사냥이 되기 때문이다.”
몬스터 사냥.
듣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진태진 교관의 설명에 맥이 풀렸다.
“물론 2학기 중간고사 범위에 실전 전투는 포함되지 않는다. 방식은 가상 전투이며, 아카데미에 마련된 시뮬레이션 시설에서 진행될 거다.”
실전이 아닌 가상.
즉 몬스터 사냥 훈련에 가까운 탓이었다.
‘하기야,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몬스터한테 맞서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일 테니까.’
사감을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되는 커리큘럼이었다.
진태진 교관은 시험 방식까지 설명한 다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중간고사 성적에 포함되는 수행평가는 아카데미와 제휴를 맺은 길드 및 단체가 시험을 참관하는 식으로 진행될 테니, 참고하도록.”
길드 참관.
이를 듣는 순간 문득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에 들었던 교관의 설명이 뇌리를 스쳤다.
‘길드의 인사들과 접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말이 참관 시험을 의미했던 건가?’
길드에 관해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몇몇 초인들이 떠올랐다.
병실에서 정신을 차렸을 당시 면담을 목적으로 찾아온 수호자 길드의 김재학이라든가.
비록 빌런이지만, 차후 내게 큰 힘이 될 거라고 그림자가 언급했던 달그림자 길드의 오윤진이라든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나와는 달리 주변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그만큼 생도들에게 내로라하는 단체와 접할 기회라는 점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지, 진태진 교관은 한참 후에나 입을 열었다.
“다들 조용. 설명은 이쯤으로 마치겠다. 오늘 수업은 전부 자습으로 진행되고 본격적인 수업은 내일부터 진행될 거다. 이상이다.”
그 정도로 설명을 마무리 지은 진태진 교관은 교단에서 내려왔다.
아무래도 2학기의 첫날인 만큼 오늘은 이걸로 수업이 끝난 모양이었다.
하나둘씩 소란과 함께 몸을 일으키는 가운데.
“일한이, 오늘은 뭐 할 거지?!”
임강철이 잽싸게 말을 걸어왔다.
뿐만 아니라 윤설하와 차은월도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다 같이 모여서 각자 자습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의논하는 가운데.
“일한아, 너는?”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이미 생각해 둔 바를 그대로 입에 담았다.
“스텟 단련실.”
입원하여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확인하고 싶었던 문제가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 * *
잠시 후.
“그럼 점심시간에 봐!”
“그래.”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한 나는 곧장 스텟 단련실을 향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나 수정이라고 했나?’
지난번 실습을 통해 획득한 전리품.
마나 수정 섭취에 따른 마력 스텟 상승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겸사겸사 나머지 스텟들도 갱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곧장 근력 스텟부터 차례대로 스텟을 갱신한 결과.
-근력 스텟 28
-민첩 스텟 29
-체력 스텟 31
-마력 스텟 54
무려 총합 142스텟을 찍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독보적인 마력 스텟의 수치였다.
‘54스텟이라니. 분명 실습 전에는 아슬아슬하게 40스텟에 못 미쳤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의 성장이었다.
이로써 제대로 된 D급을 달성한 건 물론.
잘하면 중간고사를 치르기도 전에 총합 150스텟을 넘겨 D+급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나 수정이라. 과연 비싼 값을 하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한편, 새삼스럽게 그림자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당분간 마력 스텟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현천강기의 출력을 온전히 활용하는 것부터 현천강기의 이치를 끌어내는 것 또한 한결 여유로워지겠지.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마력 스텟이 받쳐 준다는 건 네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효용을 발휘할 테니.
기대해도 좋다. 앞으로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입원해 있을 당시.
녀석이 재앙에 관한 진실과 함께 적극적인 조력을 약속하며 남긴 전언이었다.
그때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마력 스텟을 확인하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제대로 체감해 봐야겠지.’
그림자 녀석은 차원이 다를 거라 말했다.
그 일환으로 녀석은 내게 한 가지 선물을 안겨줬다.
마나 수정의 효과를 확인했으니, 이제는 몸으로 직접 파악할 차례였다.
‘어디 한번 보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