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미안하지만 괴물이 되어줬으면 해
휘익-!
오윤진은 계획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속박 마법을 조절했다.
그림자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사지(死地)로 몸을 내던지며 그녀와 얽힌 과거를 회상했다.
-미안하지만 네가 괴물이 되어줬으면 해.
오윤진은 그림자에게 ‘규격을 벗어난 힘’을 안겨 주며 그렇게 말했다.
죄책감이 묻어나는 말투. 바라보는 눈빛 또한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반면 그림자는 언제나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괴물이 되어라.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제는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기억이었다.
이를 떠올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화아아앗-!
시야를 뒤덮는 순백색의 섬광.
저 일격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실제로 괴물이 되어야 했으니까.
‘……지금!’
그림자는 지체없이 새로 얻은 스킬, ‘혼의 각성’을 발휘했다.
그 순간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동시에 불가해한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혼이 느껴졌다.
그렇게 영혼이 존재감을 빠르게 키워 가는 가운데.
“크, 흡!”
코어의 마나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어마어마한 탈력감과 전에 없던 고통이 체내에서 마구잡이로 휘몰아쳤다.
그림자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은 채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앞에 현시점에선 불가능할 터인 이적이 잇달아 일어났다.
-혼의 각성으로 인해 동기화율이 강제로 상승합니다!
-현재 동기화율…… [62%]
-의식에 각인된 [스킬]의 효율이 일시적으로 재조정됩니다!
-스킬 [초성장(B)]이 [급속 진화(S)]로 변경됩니다!
-신체 및 마나 코어의 성장 효율이 4배 상승합니다!
-신체 및 마나 코어의 수준이 평상시의 4배로 유지됩니다!
-스킬 [초회복(B)]이 [급속 재생(S)]으로 변경됩니다!
-모든 종류의 휴식 효과가 32배 상승합니다!
-신체의 치명적인 데미지를 빠르게 회복하며 절단 및 파손된 신체 부위를 빠르게 수복합니다!
…
…
…
동기화율을 강제로 상승시키는 것.
정확히는 특성의 효과를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이 바로 ‘혼의 각성’ 스킬이 가진 효과였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 효율의 재조절이 완료됐습니다!
‘급속 진화(S)’와 ‘급속 재생(S)’.
이번에 믿을 건 급속 재생 쪽이었다.
조절이 완료된 순간.
콰-직!
김재학의 워 해머가 그림자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살갗이 순백색 마나에 순식간에 갈려 나간다.
이어서 갈비뼈까지 산산이 조각나는 가운데, 어째선지 일격의 위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격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우득우득-!
알 수 없는 반탄력에 맞서 집요하게 진군하는 워 해머.
갈비뼈째로 바스러졌으나 급속 재생의 힘으로 순식간에 신체가 수복되어갔다.
“커, 헉!”
핏물이 울컥울컥 차오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마어마한 격통 속에서도 그림자는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고 늘어졌다.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의식의 주도권이 도로 안일한에게 넘어간다.
그럼 급속 재생의 효과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버텨야 했다.
마치 괴물처럼, 죽여도 죽지 않는 몸을 유지해야 했다.
그 상태로 그림자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양팔을 악착같이 들어 올렸다.
김재학의 어깻죽지를 붙잡은 것이다.
그러자.
“……!”
김재학의 두 눈이 일순 커졌다.
그가 반응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순간적으로 불타올랐다.
화륵-!
불시에 벌어진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재학은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워 해머를 뒤로 물렸다.
그제야 그림자는 조금 전 워 해머를 밀어낸 반탄력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윤진.’
그녀가 속박 마법을 조절했을 당시, 추가적으로 방어 마법을 심어 둔 듯했다.
김재학의 일격이 고작 뼈를 박살 내는 수준에서 그쳤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변함없이 세심하네.’
그녀는 방어 마법에서 그치지 않고 발화 마법까지 심어 뒀다.
이는 그림자가 그녀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게끔 하려는 연막인 듯했다.
실제로 김재학은 몸을 내던진 그림자 대신.
“……칫!”
날카로운 시선으로 워프를 아낌없이 발휘하며 도주하는 오윤진을 쫓았다.
점점 더 정신은 아득해져 갔지만, 그림자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텼다.
후들거리는 두 손으로 김재학의 어깨를 붙잡은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오윤진이 무사히 도주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이를 위한 연기이자, 이 또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녀야말로 이번에 얻은 ‘혼의 각성’과 더불어 안일한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안배’였으니까.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고 있을 무렵.
화아아아……
어느새 시야를 어지럽히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더하여 주변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재학 초인님!”
“생도의 상태는?!”
처음 접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뉘앙스만으로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젠 김재학도 섣불리 못 움직이겠지.’
보는 눈이 생겨 버린 이상, 김재학도 더는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일개 생도에게 ‘급속 재생’ 같은 규격 외 스킬이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할 터였다.
‘그러니 차후 오윤진과의 관계에 대해서 추궁당할 일도 없겠지.’
여기에는 그녀가 발휘한 발화 마법 같은 연막도 한몫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정도로 시간을 벌었다면 같은 A급이자 마법사인 그녀를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할 터.
‘이로써 계획은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림자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와이셔츠와 벌겋게 짓이겨 진물이 흐르는 가슴팍이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처참하기 짝이 없는 외견과는 달리 장기는 무사하며 갈비뼈도 온전한 상태로 돌아왔다.
‘고통스럽겠지만…….’
어쨌든 몸은 무사하다.
약속대로 온전히 몸을 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 떠올린 순간, 의식이 툭 하고 끊어졌다.
* * *
“숨은 붙어 있습니다! 게다가 의외로 치명적인 데미지는 없는 모양이네요!”
허정민은 순식간에 다가와 생도의 상태를 살폈다.
이내 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존경의 기색을 띤 눈빛으로 김재학을 바라봤다.
“마지막에 힘을 조절하셨군요. 역시 강철의 기사, 김재학 초인님다운 능력입니다.”
“인질을 방패막이 삼아 도주할 줄은. 생도가 무사해서 천만다행입니다. 이게 다 김재학 초인님 덕분입니다!”
허정민은 물론, 뒤이어 달려온 신수연까지.
두 사람은 감격스러운 낯빛으로 연신 김재학의 능력을 추앙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재학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힘을 조절했다?’
그렇지 않았다.
죽일 기세로 일격을 가했을뿐더러, 마녀가 반격해 올 것에 대비하여 나름의 준비도 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마녀는 반격이 아닌 도주를 택했다.
이는 곧 처음부터 그녀의 의도가 도주에 있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정황상 그게 맞는 해석이었으나,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미소한 범위로 펼친 방어 마법으로 내 일격을 막아 냈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그가 마녀의 전력을 오판한 셈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조차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김재학은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빠득-
김재학은 무의식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내 표정을 가다듬으며 그를 바라보는 두 초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녀를 놓쳤습니다. 면목없습니다.”
그의 진정한 신분까지 성큼 다가온 마녀는 놓쳐 버렸고, 유물은 탈취당했다.
이미 손해가 막심한 상황이다.
여기서 십여 년 넘게 지켜온 가면까지 흔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힘을 조절했다고는 하나, 생도에게 위해를 가한 점은 저와 수호자 길드 차원에서 책임지겠습니다.”
굳은 낯빛으로 단호하게 선언하는 김재학.
그의 태도에 허정민과 신수연은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그럴 수가! 침식 현상은 재해일 뿐입니다. 마녀는 그보다 더한 재앙이었고요!”
“맞습니다! 더군다나 김재학 초인님이 선뜻 나서 주시지 않았다면 다른 생도들까지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진심 어린 말투로 위로하는 두 사람.
둘의 반응을 통해 확신했다.
여태까지 그랬듯, 가면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김재학은 둘의 반응을 속으로 갈무리하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생도가 회복될 때까지 전적으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김재학 초인님…….”
“일단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도록 하죠.”
김재학의 침착한 태도에 신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게이트가 붕괴되는 광경은 생도들에겐 꽤나 충격일 겁니다. 게다가 외부에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니 함께 있는 편이 좋겠네요.”
그녀의 의견에 나머지 두 사람은 동의를 표했다.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며 두 사람, 허정민과 신수연이 이동 준비를 하는 가운데.
“…….”
김재학은 말없이 안일한을 내려다봤다.
이내 천천히 생도를 들쳐업었다.
그제야 그는 두 사람을 따라 걸음을 서둘렀다.
* * *
‘실습용 게이트 침식 사태’는 초인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빌런계를 향한 경각심이 한층 커지는 한편, ‘재앙의 마녀’ 오윤진의 역량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더하여 길드를 비롯한 거대 세력들은 단체로 몸살을 앓았다.
주최 측으로 참가한 길드와 가문 차원에서 이번 사태에 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는 한편.
참가한 생도들에게 트라우마 관리를 비롯한 보상책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다섯 번째 진리 마탑이 홍역을 제대로 치뤘다.
재앙의 마녀가 다섯 번째 진리 마탑 소속 초인으로 가장했다는 점.
그리고 마녀가 마탑주와 혈연관계라는 점 등. 책임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사태 발생 후 일주일 만에 눈을 뜨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낯선 병실에서 눈을 뜨자마자 이번 사태의 핵심 관계자로서 하루 꼬박 증언에 매달렸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어째선지 꺼림칙한 인물.
“후배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 건가?”
“……네.”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줄곧 잠들어 있었다?”
“맞습니다.”
“그렇군. 연락처를 남겨 둘 테니 몸이 안 좋다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도록.”
“감사합니다.”
수호자 길드의 간부인 김재학과의 면담까지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증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증언이 끝났을 뿐으로.
“안일한 생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게 무엇보다 다행이다. 오윤진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애송이. 힘든 경험이었겠지만 이겨내라. 넌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진태진 교관부터 고태식 교관의 병문안부터.
“일한이! 몸 상태는 어떤가! 괜찮은가?!”
“제발 조용히 해! 환자잖아!”
“……일한아, 정말 괜찮은 거지?”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임강철, 윤설하, 그리고 차은월.
거기에.
“너, 그 여자와 함께 움직였지?! 대체 무슨 일…….”
“오윤서, 때와 장소를 가려라! 미안하다, 안일한. 폐를 끼쳤군. 2학기 때 보자.”
오윤서와 심인욱.
마지막으로.
“……무사했으면 됐다.”
으스러질 정도로 포옹해 주는 아버지까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렇게 한바탕 몰아치고 나서야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다름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3자가 아니라 본인에게 직접 들어야겠어.’
그림자 녀석에게 사건의 경위와 전말을 묻는 것.
그게 가장 급선무였다.
때문에 나는 질문을 한가득 적어 놓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이 광경은 대체.’
꿈을 꿨다.
아니, 꿈을 통해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