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었다
재앙의 마녀 오윤진.
그녀가 가진 이명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그녀가 가진 미구현 특성, ‘재앙 예보’였다.
그녀는 아카데미 시절에 처음 특성이 구현됐을 당시.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훗날 발생할 재앙을 미리 방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개 생도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래서일까.
-또 오윤진이야?
-쟤 진짜 이상하지 않아?! 마가 낀 것처럼 사건사고를 몰고 오잖아!
-미구현 특성이라더니, 재앙을 몰고 오는 능력을 가진 거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그녀가 재앙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인식됐다.
즉, 재앙의 마녀란 그녀의 능력이 와전된 끝에 붙여진 멸칭에 가까웠다.
물론 이는 그녀가 아카데미를 탈주하기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 같은 유래를 아는 사람은 그녀의 생도 시절을 기억하는 몇몇 교관이나, 소수 측근에 불과했다.
반면 두 번째 유래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오윤진이 본격적으로 뒷세계, 빌런계에서 두각을 드러냈을 때부터 알려진 것이었다.
더하여 이는 첫 번째 유래와는 다르게 심플했다.
-대체 저만한 마법사가 왜 빌런으로 타락한 거지?!
-B급 초인 5명을 한꺼번에 죽였다던데?
-맙소사, 재앙이 따로 없군!
순수하게 무력으로, 말 그대로 재앙과도 같은 마법사로서의 역량에서 비롯됐다.
즉, 그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한 위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바로 지금, 눈앞에서 피어나는 지옥의 겁화는 이 사실을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그녀를 지켜보던 그림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화륵-!
손짓만으로 리치의 마법을 흩어 버린 건 물론.
거기서 비롯된 마나의 입자만으로 마법을 구현했다.
그것도 A급 이상 가는 마법을 말이다.
심지어 마법을 제어하는 능력 또한 일품이었다.
그어어어억-!
대기째 불살라 버리는 위력의 겁화를 오롯이 리치에게만 집중시켰다.
덕분에 그녀 자신은 물론, 곁에 서 있는 그림자에게는 어떠한 피해도 없었다.
열기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마법의 위력부터 제어까지, 그림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괴물 같은 여자군.’
오윤진은 나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리치를 요리했다.
지옥의 겁화로 녀석의 운신을 제한하고, 또 다른 마법을 발휘해 녀석의 마법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다중 마법을 구사하면서 동시에 그림자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여유까지 선보였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요란하지 않니?”
오윤진의 질문은 의사를 묻는다기보단 과시하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심지어 그녀는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게, 천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림자는 그런 그녀의 여유로운 모습이 퍽 낯설었다.
그의 기억 속 오윤진의 눈빛에는 여유는커녕, 언제나 회의와 피폐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를 테니.’
그림자는 상념을 털어 내며 입을 열었다.
“충분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려줬음에도 오윤진은 어째선지 불만스럽게 혀를 짧게 찼다.
그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여기서 더 나아가면 마탑의 방어 체계에 영향을 끼칠 텐데.”
그녀의 물음에 담긴 의미는 다름이 아니었다.
단순히 요란하게 날뛰는 걸 바라는지, 아니면 모종의 속셈이 있는 건지.
둘 중 어느 쪽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림자는 속내를 밝히는 대신 요구사항을 말했다.
“상관없다. 되도록 마탑의 방어 체계를 무너뜨려 줬으면 좋겠군.”
“그래?”
“다 끝나면 유물과 전리품을 수거하고, 그때 가서 리치의 숨통을 끊는 거로 하지.”
침식이 발생한 게이트에서 외부의 개입 없이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
녀석을 처리한 순간부터 침식된 게이트는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숨통을 끊기 전에 전리품부터 수거하고자 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알겠어. 그럼…….”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오윤진은 손짓으로 마법의 규모를 조절했다.
최소한의 불길로 리치를 가두고, 나머지는 전부 내부의 벽면을 향해 움직였다.
화르륵-!
오윤진이 마탑의 방어 체계를 파괴할 때 그림자는 걸음을 옮겨 내부를 살폈다.
이곳에 있을 전리품을 탐색하려는 것이다.
‘유물은 리치 녀석이 품고 있다고 했던가.’
그림자는 기억을 더듬으며 유물을 제외한 나머지부터 먼저 찾아 나섰다.
이윽고 한쪽 구석에서 낡아빠진 보물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푸르스름하게 반짝이는 수정들이 담겨 있었다.
정체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나 수정, 들었던 대로다.’
마나 수정.
순수한 마나의 결정이자, 입수 및 제작 방법이 까다로워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마나 수정은 보통 소수의 고위급 초인들이 다뤘다. 비상시 마나 회복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낮은 등급의 초인이 사용할 땐 마나 회복 이외에 또 다른 효과가 있었다.
그게 바로 그림자가 전리품의 5 대 5로 분배하길 요구한 이유였다.
‘이걸로 당분간 마력 스텟 걱정은 없겠군.’
마력 스텟의 상승.
이를테면 일종의 영약(靈藥)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정확히 8개가 들어 있으니, 적어도 4개는 그림자의 몫이었다.
이를 모두 섭취했을 때 과연 마력 스텟은 어느 정도로 성장할지, 머릿속으로 가늠하고 있을 무렵.
“작업 끝났어. 전리품은?”
등 뒤에서부터 오윤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벌써 일을 끝마친 모양이었다.
‘이제 남은 건…….’
그림자는 다음 단계를 속으로 헤아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내 수거해 둔 마나 수정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전리품은 마나 수정이 전부다.”
“유물은 그럼 리치가 품고 있다?”
“아마도.”
“알겠어.”
오윤진은 대답과 동시에 고개를 홱 하니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지옥의 겁화에 몸부림치는 리치에게 가닿았다.
이내 무표정으로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화마가 순식간에 리치를 뒤엎었다.
그어어어억-!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불타오르는 리치.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한 줌의 재로 화했다.
이내 녀석이 소멸한 자리에서부터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림자는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저게 바로 이번 침식 현상이 가져다준 유물이란 사실을 말이다.
이는 오윤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겨 떨리는 손으로 유물을 주워들었다.
그건 영롱한 보석이 달린 펜던트였다.
오윤진은 유물에 접촉함으로써 뭔가 알게 됐는지, 홀린 듯 중얼거렸다.
“달빛의 혼 목걸이? 게다가 이 스킬은…….”
자연스럽게 유물의 명칭은 물론, 그 속에 담긴 스킬까지 깨달은 것이다.
잠깐 멍하니 목걸이를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넌 이 목걸이에 담긴 스킬의 효과를 알고 있지?”
“물론이다.”
“그래서 스킬을 배우게 해 달라는 거였나.”
가만히 중얼거리는 오윤진.
그녀를 향해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착용 효과는 나보단 네게 도움이 될 테니까.”
“……부정은 못 하겠네.”
오윤진은 대답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그림자에게 다가가 목걸이를 건넸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고맙다.”
건네받은 순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그림자의 전신에 스며들었다.
동시에 그는 방금 막 스킬을 습득했음을 깨달았다.
-혼의 각성(A)
간단하게 스킬을 확인한 다음, 다시 목걸이를 오윤진에게 돌려줬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걸로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었다.’
이젠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이번 일의 마무리를 지을 차례였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에 앞서 마나 수정의 섭취를 시도했다. 아니, 시도하려는 찰나.
“저기 너. 달그림자에 들어올 생각 없니?”
오윤진이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왔다.
뜻밖의 제안에 그림자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반응에 뭔가를 느꼈는지, 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일개 생도에게 이런 제안을 건네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너는 예외야. 특별하니까.”
“…….”
“빌런 집단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면……, 그 부분은 변명하지 않을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오윤진.
확실히 제안은 예상 밖이었으나 그녀의 성향, 그리고 목적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 말은 관심 정도는 있다는 뜻?”
“목적이 일치하니까.”
“……거기까지 알고 있었니?”
오윤진은 기가 찬다는 듯 헛숨을 터뜨렸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기야, 나조차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김재학의 정체까지 알고 있는 모양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까.”
오윤진은 처연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림자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미래를 알고, 예정된 재앙에 맞서야 한다는 압박감, 고독함.
그래서일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과 눈앞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
그런 속내를 알 턱이 없는 오윤진은 분위기를 환기하듯 화제를 돌렸다.
“이제 계약은 이걸로 끝인데. 어떻게 할래?”
애초에 약속은 유물 획득까지 김재학의 추적을 받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림자는 충실하게 이행했고, 그녀는 유물에 담긴 스킬을 습득하게 해 줌으로써 약속을 지켰다.
그러니 이제 둘 사이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다른 초인들이 올 때까지 잠들어 있을래? 아니면…….”
그녀는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는 도중.
“……!”
별안간 두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가 마탑에 침입했음을 감지한 까닭이었다.
조금 전 방어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마탑 전체에 퍼뜨려둔 마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는지 그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누군가 들어왔어. 설마 김재학?”
“그렇겠지.”
“……잠깐만, 너.”
무덤덤하게 답하자 오윤진은 홱 하니 고개를 돌렸다.
장난스러웠던 조금 전과는 달리 그녀의 눈빛에는 한기가 흐르고 있었다.
“약속이 유물을 얻을 때까지니까, 그 이후는 상관없다 이거니?”
그녀의 물음에는 배신감, 실망감 따위의 감정이 짙게 묻어났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절반은 맞다.”
“……말장난하지 마!”
오윤진은 날카롭게 소리쳤다.
동시에 그녀 주위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기세만으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과연 A급이었다. 그림자는 그녀의 손짓 한번으로 리치와 같은 꼴이 되는 걸 면치 못할 터였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예상대로 김재학이 맞을 거다. 그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애초에 그림자는 김재학의 추적을 예상했다.
단지 불타는 숲에서 흔적을 지운 건 조금이라도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였다.
그가 처음 조건을 제시할 당시, ‘유물을 습득할 때까지’라는 전제를 달았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반면 이 사실을 모르는 오윤진은 분노를 억누른 채로 말을 이어 갔다.
“……본론만. 인내심이 슬슬 바닥날 것 같으니까.”
“게이트가 완전히 붕괴되고 빠져나갈 수 있을 때까지 협력하지. 단, 조건이 하나 있다.”
“말해.”
“추후 한 가지,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것. 그게 전부다.”
오윤진은 조금은 기세를 누그러뜨린 채 되물었다.
“……뭐야, 그 영문 모를 조건은.”
“선택은 네 몫이다.”
“일단 조건은 받아들일게. 그래서, 어떤 식으로 협력할 건데?”
이에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만큼 그림자가 제시한 방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래서, 김재학과 맞붙을 자신은?”
“……시간을 버는 정도라면 충분히.”
“그걸로 됐다. 그 전에 먼저.”
“먼저?”
그림자는 대답 대신 제 몫으로 챙겨 둔 마나 수정 4개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하나씩 입안에 털어 넣었다.
청량한 감각과 함께 코어가 요동쳤다.
그 즉시 그림자는 정순한 마나에 현천과 혼원의 색채를 덧입혔다.
온전하게 제 것으로 흡수했을 때.
‘이걸로 패는 전부 갖춰졌다.’
비로소 이번 일을 마무리 지을 준비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