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요란하게, 맞지?
비슷한 시각.
“김재학 초인님, 이쪽입니다!”
어둑한 숲속에서부터 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재학은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그는 위치를 가늠하듯 잠깐 숲 지대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배들은 내 뒤에 붙어서 따라오도록.”
그의 지시에 곳곳에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십여 명의 생도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김재학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걷기를 수 분. 김재학 일행은 다른 인솔자 일행과 조우할 수 있었다.
“허정민 초인님. 무탈하니 다행입니다.”
그가 속한 수호자 길드와 마찬가지로 4대 길드 소속인 대지의 혼 길드에서 파견 나온 초인.
허정민과 그가 인솔하는 생도들이었다.
각자 인솔하던 생도들끼리 알은체를 하며 어느 정도 긴장을 풀고 있는 가운데.
허정민은 조용히 김재학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몇십 분 전 근처에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이유진 초인님 쪽에 무슨 일이 생긴 듯싶습니다.”
허정민의 설명을 듣는 순간.
“……!”
김재학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내 그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허정민에게 되물었다.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못 찾으신 건지…….”
“부끄럽지만 추적에는 젬병이라. 부디 김재학 초인님께서 나서 주시지요.”
정중하게 대신 추적해 주기를 요청하는 허정민.
그의 말마따나 김재학은 A급 다운 무력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사람 혹은 마나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초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김재학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후미를 맡아 주십시오. 후배들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건 제게 맡겨 주시길.”
빠르게 합의한 다음, 두 사람은 생도들을 이끌었다.
그렇게 이유진의 마법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추적하기를 수 분.
김재학은 이유진 초인 대신, 예상치 못한 이들을 발견했다.
“……허정민 초인님, 이곳에 생도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생도들이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다가가 생도들의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별다른 상흔도 보이질 않고요.”
“마법 방벽도 그렇고, 마법이 구현된 흔적이 남아 있는 듯싶습니다.”
“마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허정민은 말끝을 흐렸다.
김재학의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생도들을 인위적으로 잠재운 거나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다만 문제는 마법을 시전한 대상이 누구냐였다.
그런 물음을 담은 눈빛에 김재학은 천천히 운을 뗐다.
“아마 이유진 초인. 아니, 이유진을 가장한 외부 인물의 소행일 겁니다.”
“……그 말씀은!”
“사실 실습을 위해 파견 나오기 전, 저희 수호자 길드는 빌런 집단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들려주시겠습니까?”
“달그림자 길드입니다.”
“그렇다면, 재앙의 마녀겠군요.”
허정민이 심각한 낯빛으로 묻자 김재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어째서 생도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지만, 틀림없을 겁니다.”
“사전에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이번 게이트를 노리고 있다는 첩보는 있었지만, 설마 다섯 번째 진리 마탑의 일원으로 가장했을 줄은 저조차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허정민은 침음을 삼키면서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4대 길드인 수호자 길드라도 비슷한 세력인 마탑을 심증만으로 추궁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납득과는 별개로 표정을 굳히고 있을 때, 김재학이 화제를 돌렸다.
“일단 깨우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죠.”
그 즉시 두 사람은 생도들을 향해 다가갔다.
마법의 여파로 수면 상태에 놓인 만큼, 마나를 활용해서 조심스럽게 한 명씩 깨웠다.
머지않아 총 6명의 생도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서서히 눈을 떴다.
그들의 깨어나자 여태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생도들 중 몇 명이 빠르게 다가갔다.
“윤서야, 괜찮아?”
“오윤서 정신이 좀 드나?”
다름 아닌 백유진과 심인욱이었다.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던 오윤서는 별안간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어깨를 잘게 떨며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여자는?!”
그녀의 행동에 백유진은 진정하라는 듯,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여자라니, 윤서야 일단 진정하고…….”
“오윤진 어딨냐고-!”
“……오윤진?”
이해할 수 없는 오윤서의 행동에 백유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양,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난 김재학이다. 오윤진을 봤나?”
어느새 다가온 김재학이 굳은 낯빛으로 물었다.
하지만 오윤서는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라 그녀에게서 원하는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저, 저기! 제 친구가 없어졌어요!”
뒤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기에 반응하여 김재학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이름은?”
“차은월입니다……! 김재학 선배님, 제 친구 일한이가 없어졌어요!”
그녀의 애타는 하소연에 김재학의 동공이 일순 커졌다.
동시에 불현듯, 그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마침 잘됐군.’
김재학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그는 웃음기를 지운 표정으로 차은월을 다독거려 줬다.
“차은월 후배, 네 친구는 내가 반드시 찾아 주겠다. 그러니 우선 진정해라.”
그러고는 곧장 허정민을 향해 말했다.
“허정민 초인님. 아무래도 재앙의 마녀가 생도 한 명을 납치한 것 같습니다.”
“그럴 수가……!”
“본래라면 제가 인솔을 맡은 생도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마땅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저 혼자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생도들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괜찮겠습니까? 재앙의 마녀는 A급 마법사인데. 차라리 다른 인솔자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움직이는 편이…….”
허정민의 제안에 김재학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선 늦는다. 그사이에 저주받은 마녀는 유물을 취하고 도주할 터였다.
이런 속내를 감춘 채 김재학은 차분하게 근거를 댔다.
“생도의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 대신 마녀와 대면하게 됐을 때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까지 허정민 초인님은 다른 분들과 합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허정민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즉시 김재학은 걸음을 서둘렀다.
마나까지 활용해 가며 어두컴컴한 숲속을 벗어나, 이질적인 어둠이 내려앉은 초원을 가로질렀다.
마침내 그의 눈앞에 불타는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륵-
김재학은 화마로 넘실거리는 숲의 광경을 마주한 채 잠시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의 감각은 이곳이 바로 마녀의 목적지라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쉬이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여기서 흔적이 끊겼다.’
몬스터의 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곧 마녀가 전투를 벌이며 숲속을 가로질렀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정작 발자국과 같은 사람의 흔적이 전무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흔적을 지웠나. 머리를 썼군.’
아무래도 추적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추적하는 대상이 김재학, 그 자신이라는 점까진 특정하지 못한 듯했다.
근거는 다름이 아니었다.
‘시간이 살짝 더 걸리겠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
김재학은 불타는 숲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그가 가진 특성이자, 탁월한 추적술의 원동력이 되는 ‘초감각’을 발휘했다.
그 순간 전신의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냄새가 나는군.’
불그스름한 마나의 흐름이 보이고, 강렬한 마나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는 틀림없이 마녀의 그것이리라.
확인한 즉시 김재학은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유물을 얻을 기회를 제공한 건 고맙지만. 오늘로 마지막이다.’
그는 수호자 길드의 간부라는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지난날을 회고했다.
지닌바 특수한 능력을 바탕으로 대업을 이루는 데 사사건건 훼방을 놓은 것부터.
그가 가진 진정한 신분을 집요하게 들쑤시고, 파고들었던 점까지.
그야말로 질긴 악연이었으나,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제거한다.’
김재학은 다짐과 함께 감각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 * *
같은 시각.
“그러니까, 아무런 배경도 없다?”
“어.”
“근데 A급 무공은 가지고 있고.”
“어.”
“……지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오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쪽이다. 이 너머에 몬스터는 몇 마리나 되지?”
안일한은 길 안내와 전투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는 그녀를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었으나, 그렇다고 항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체 미래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보길래 이런 복잡한 길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거지?’
맨 처음 약속했던 최단 루트의 제공.
이를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착실하게 이행하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서두르는 이유 또한 성실하기 그지없었다.
유물을 찾을 때까지 김재학과 마주치지 않게 하겠다는 조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그러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지언정 따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일까.
쩌-엉!
화풀이라도 하듯 언데드의 핵을 산산조각냈다.
물론 감정과는 별개로 A급 마법사답게 그녀의 마법은 신속하고, 정확하며, 무음에 가까웠다.
덕분에 대화는 잘 안 풀렸으나, 마탑 공략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 증거로.
“지하 4층으로 내려가면 유물이 있다.”
최종 목표인 유물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그만큼 빠르게 돌파했을 뿐 아니라 안일한의 역할 분담 덕분에 그녀의 컨디션은 최상에 가까웠다.
때문에 오윤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차라리 빨리 끝내고 갈라지는 게 속이 편할지도.’
캐묻는 걸 포기한 것이다.
이내 오윤진은 진지한 낯빛으로 물었다.
“그럼 아래에 보스 몬스터가 있는 거니?”
“어.”
“설마 그것도 네가 나서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이다. 보스 몬스터는 부탁하지.”
안일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칼같이 구분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윤진은 애써 신경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밖에 주의할 점은?”
“최대한 빠르게.”
“그럼 다소 요란할 텐데?”
“이젠 상관없다. 오히려 요란한 편이 낫겠군.”
예상외로 시원시원한 그의 대답에 오윤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유물을 찾고서 바로 태세를 전환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태세 전환이란 말도 웃기려나.”
눈앞의 청년은 아카데미의 생도, 양지의 사람인 반면 그녀는 음지의 사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가 변절하지 않는 한 적대적인 관계에 가까우리라.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그럴 리가. 내 생사여탈권은 네가 쥐고 있다. 그 점은 잊지 않았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실제로 맞는 말이었다.
제아무리 B급 마나 심법에 A급 무공을 갖췄다 한들 정작 사용자는 D급, 생도에 불과했으니까.
의도치 않게 속내를 터놓고 나니 오윤진은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일까, 의욕적으로 계단을 내려가 마침내 보스 몬스터를 마주했다.
그어어어……
변함없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뿜어내는 언데드.
다만 보스 몬스터답게, 여타 언데드들과는 풍기는 기세부터가 달랐다.
오윤진은 한눈에 녀석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리치네.”
다름 아닌 불사의 존재로 알려진 리치였다.
하지만 눈앞의 녀석은 불사라 이르기엔 손색이 있을 정도로 저급한 수준이었다.
이지를 상실했다는 점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고작 C급 수준이라는 점까지.
결정적으로 불사의 원동력인 라이프 베슬을 체외가 아닌, 체내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하기야, 이번 게이트는 E급이었으니까.”
납득하는 한편, 오브를 꺼내 들었다.
곁눈질로 안일한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순간.
그어어어……!
리치가 노호성을 터뜨리며 칠흑 같은 마나를 뿜어냈다.
순식간에 십여 개의 구체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오윤진 또한 작심하고 코어를 활성화시키며 마나를 끌어냈다.
그러자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색채의 붉은빛 마나가 불길처럼 일었다.
이내 가볍게 한 번, 손을 휘젓는 순간.
화륵-!
순식간에 리치가 발현한 마법을 휘감았다.
그대로 스며들더니 별안간 암흑 구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 상태로 오윤진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딱-
가볍기 그지없는 행동.
하지만 거기서 비롯된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화아아앗……
리치의 마법은 눈 깜빡할 사이에 소멸했다.
마나가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불꽃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오윤진은 다시금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동시에 나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요란하게, 맞지?”
안일한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럼 보여 줄게. 요란한 거.”
눈앞에서 지옥의 겁화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