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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71화 (71/218)

71화 ……어이가 없네, 진짜로

침식 현상.

이는 게이트가 타 차원의 특정 장소에 침식되는 현상을 의미했다.

침식은 게이트 내부의 환경은 물론, 마나의 구조까지 변질되게 만들었고, 이는 몬스터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몬스터를 폭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실습 목적으로 게이트를 찾은 생도들에겐 가히 재앙과도 같겠지만.

“……상당히 거슬리네.”

A급 초인인 오윤진에겐 조금도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키룩-!

케루욱!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침을 질질 흘리며 눈알을 희번덕거리는 고블린들.

오윤진은 녀석들을 내려다보며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이내 오브를 바탕으로 대단위 공격 마법, ‘화염의 돌개바람’을 구현했다.

화르륵-!

그렇지 않아도 후덥지근하던 대기가 한층 후끈 달아올랐다.

오윤진이 가볍게 손짓하는 순간.

키에에에엑-!

넘실거리는 화염을 두른 돌개바람이 고블린 무리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침식의 영향으로 폭주한 개체들을 말 그대로 한꺼번에 불사른 것이다.

그야말로 A급 초인다운 압도적인 위력의 마법이었다.

“쯧. 더럽게.”

매캐한 악취와 함께 한 줌의 재로 화한 몬스터의 사체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오윤진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변함없이 무표정한 안일한이 서있었다.

무덤덤하게 그지없는 반응.

그녀의 표정은 사체들의 썩은 내를 맡을 때보다 한층 더 구겨졌다.

‘……무슨 놈의 생도가 저래?’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오윤진은 도무지 안일한이란 청년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폭주한 고블린 무리와 조우했을 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 자신의 등 뒤에 숨는 대처.

나아가 뻔뻔하게 전투를 요구하고,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줬을 때까지.

자칭 생도라는 저 녀석은 표정 한 점 변하지 않았다.

‘평범한 생도라면 분명 이런 상황을 겪어 봤을리가 없을 텐데.’

처음 마주하는 상황 속에서도 저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연구 대상이었다.

때문에 계속해서 정체에 관한 의문이 들었다.

‘혹시 생도를 가장한……. 아니,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약해.’

그녀는 처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에 이미 파악을 끝냈다.

안일한이 수면 마법의 대처로써 어떤 마나 심법을 운용했고, 그 위력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이다.

A급 경지에 오른 안목으로 통찰한 만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이었다.

‘만에 하나 허튼짓을 한다면…….’

그때는 기만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리라.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다.”

그녀의 속내를 알 턱이 없는 안일한이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가 입에 담은 내용에 오윤진은 기가 찬다는 듯, 헛숨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저기, 최단 경로를 알고 있다고 너무 기고만장…….”

“흔적을 제거할 수 있나?”

“너 말이야, 아까부터 계속 사람 말을 끊는데, 그러다 죽는 수가……. 잠깐, 뭐라고?”

“발자국. 지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아.”

오윤진은 그가 말을 끊었다는 사실에 분노할 틈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탄식을 흘렸다.

물음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까닭이었다.

맹점을 찔렸다는 생각과 함께 침음을 흘렸다.

‘김재학과 마주치지 않게 해 주겠다더니.’

아무래도 빈말은 아닌 듯했다.

흔적이 남는다면 김재학은 틀림없이 흔적을 바탕으로 추적해 올 것이다.

그럼 최단 경로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는 의미가 퇴색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지금 안일한의 지적은 상당히 예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흔적을 지우는 것조차 내가 해야 한다는 게 참.’

아니꼽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때문에 오윤진은 한차례 혀를 짧게 차며 그녀 자신과 안일한을 대상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마지막으로 불타는 숲의 초입에 남아 있는 발자국과 몬스터의 사체까지 제거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이걸로 됐지?”

“훌륭하다. 이쪽으로.”

“……진짜 이상한 놈이네.”

아무리 봐도 17살이라기엔 믿기 어려운 심계였다.

겉으로 보기엔 그녀의 동생, 오윤서와 동갑이자 평범한 생도에 불과한 까닭에 더더욱 그랬다.

‘계속 지켜봐야겠어.’

오윤진은 새삼스럽게 다짐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이번 침식 현상으로 이어진 곳은 다름 아닌 마도 차원이었다.

보편적으로 마도 차원에서 발견되는 지역은 총 두 가지 유형이 존재했다.

멸망한 왕국의 터, 그리고 버려진 마탑.

침식으로 나타난 지형이 전자, 멸망한 왕국 일대라면 손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멸망한 만큼 별다른 마법적 조치가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이었다.

다만 해당 차원의 도굴꾼에게 털린 건지, 대개 왕국의 터에서는 쓸 만한 유물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반면 마탑은 정반대였다.

여태 기록에 따르면 열에 아홉은 값진 유물이 발견되어 세간에 큰 소란을 일으켰다.

그 대신.

‘썩어도 마탑은 마탑이라는 거지.’

버려졌어도 마탑은 마탑이었다.

고차원의 마법적 조치가 남아 있는 까닭에 탐색 자체가 난해했다.

삽십여 분이 흐른 지금까지도 불타는 숲속을 배회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탓탓탓-

전투와 전투 흔적을 지우는 건 그녀가 도맡았고, 안일한은 착실히 길 안내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속도는 확실히 빨랐으나 원하는 목적지, 마탑은 쉬이 눈에 띄지 않았다.

참다못한 오윤진은 질문을 던졌다.

“일단 물어나 보자. 여기, 마도 차원이 맞는 거지?”

“어.”

“이어진 장소는 멸망한 왕국의 터가 아니라 마탑인 것도 확실하고?”

“틀림없다.”

“끄응.”

예상과 동일한 답변에 오윤진은 침음을 흘렸다.

동시에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 녀석이 없었으면 탐색 단계부터 심력 소모가 엄청났을지도.’

현재 마음이 급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언제 김재학을 비롯한 초인들이 그녀를 추격할지 모른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길 안내를 받지 않고 일일이 마나를 소모해 가며 탐색한다?

시간은 시간대로 소요되고, 마나 소모 또한 극심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안일한을 향한 아니꼬운 감정은 줄어드는 반면, 의구심이 갈수록 커져 갔다.

‘……보다 온전한 미래를 본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원하는 특정 시점의 미래를 관측하고 있는 건지.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건지 등.

점점 의문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생각만이 깊어져 갔다.

‘물론 결과가 나올 때까진 방심해선 안 되겠지만. 만일 능력이 진짜라면…….’

포섭도 고려해 봐야 한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문득 안일한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왜.”

“이곳이다.”

“……!”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갔다.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시야를 꽉 채우는 화마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 너머에 있다는 거지?”

“투명화, 그리고 몇몇 방어 마법이 걸려 있다. 눈앞의 화마는 방어 체계의 일환이지.”

안일한의 무덤덤한 설명에 그녀는 낯빛을 굳혔다.

이내 오윤진은 잠깐 생각한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파괴하는 건 안 되겠지?”

“추격자들을 끌어모으고 싶다면 상관없다.”

“……칫. 알겠어 잠깐 대기해.”

오윤진은 혀를 짧게 차며 오브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마법을 구현하는 대신, 순수한 마나를 사출했다.

스스스-

그녀가 가진 연공법 특유의 붉은 마나가 얇고 넓게 퍼져 나갔다.

그대로 화마에 스며들어 함께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수 분.

오윤진은 눈앞의 복합적인 마법적 조치의 구조를 전부 해석해 냈다.

실로 압도적인 속도였으나, 그녀는 스스로의 활약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거리는 얼마나 돼?”

“전속력으로 10초. 넉넉히 30초면 충분하다.”

“그럼 잠시 걷어 낼 테니 바로 달려.”

눈앞의 마법을 파괴할 순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마법의 구조를 파훼하여 잠깐의 틈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었다.

안일한은 이런 의미를 담은 지시를 바로 알아들었는지.

“준비됐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체할 이유도 없겠다, 오윤진은 그 즉시 마법을 파훼했다.

그러자 불길이 걷히고 길이 만들어졌다.

“지금!”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나갔다.

그 결과.

화륵-!

그들이 가로지른 길은 다시금 화마에 뒤덮였다.

그제야 오윤진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이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곳이…….”

“거울의 마탑이다. 유물은 지하에 있다.”

거울의 마탑, 그녀는 가만히 안일한이 알려 준 명칭을 되뇌었다.

이름에 걸맞게 마탑의 외견은 전부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들어가지.”

“안쪽의 지리도 알고 있는 거야?”

“대충은.”

“……하.”

헛숨을 터뜨리는 한편, 오윤진은 안일한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거울의 마탑 내부에 들어섰을 때.

그어어억……

소름 끼치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소리만으로 그녀는 내부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언데드라면 상성은 나쁘지 않겠네. 다만 내부의 방어 마법을 고려하면 내 마법은 너무 요란하려나.’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변수를 고려하고 있을 때.

철컥-

문득 옆쪽에서 금속 물질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안일한이 있는 쪽이었다.

여태 뒤꽁무니에 숨어 있던 것과 달리 정면으로 나서며 건틀렛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명백한 의도가 엿보이는 그의 행동에 오윤진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너 싸울 셈이야?”

“내부에도 방어 마법이 걸려 있다.”

“알아. 번거롭겠지만 마탄이면 충분해.”

“하지만 마나와 심력이 소모되겠지. 만일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전력을 보존했으면 좋겠군.”

“그렇다는 건…….”

“길은 내가 뚫는다. 네겐 언데드의 핵을 부수는 정도의 뒤처리를 부탁하지.”

안일한의 제안은 충분히 일리 있었다.

다만 문제는 오윤진이 그의 역량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점이었다.

“……생도라면서. 컨셉은 이제 집어치우는 거야?”

“컨셉이 아니라 사실이다.”

“어쨌든, 대체 무슨 자신감이니?”

“보면 알 거다.”

대답과 동시에 안일한이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부터 다시금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다섯 마리인가.’

그녀가 기척을 감지한 것과 동시에 생각했다.

어디, 실력이나 한번 보자고.

떠올린 순간.

타닷-

안일한이 지면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다.

사람인가 싶을 만큼 무덤덤하던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저돌적인 태도였다.

어이가 없는 한편, 만일에 대비해 언제든 보조를 할 수 있게끔 준비했다.

그 순간.

쌔애애액-!

안일한의 양손에 은회색의 마나가 휘감겼다.

심상치 않은 출력에 오윤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소 B급? 우리 윤서가 가지고 있을 법한 스킬까지 가지고 있다니.’

과연, 영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아닌 듯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언데드, 새하얀 백골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마나 심법이 좋아도 마나의 유형화도 이루지 못한 수준이면.’

최소 D급은 넘는 언데드를 처리하기엔 뒷심이 부족할 터였다.

하는 수 없이 나서려는 찰나.

타닷-

때마침 안일한이 도움닫기와 함께 낮게 도약했다.

이어서 호신을 휘감은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쩌-엉!

범상치 않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위력 또한 예사롭지 않은 까닭에 오윤진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무공도 최소 B급이라고?’

초식에서 현기가 묻어났다.

뿐만 아니라 추측했던 등급보다 실제로 발휘되는 위력은 한층 더 강력한 듯했다.

‘대체 무슨 놈의 생도가 저만한 스킬을…….’

여태 끈질기게 따라붙은 의문을 다시금 떠올리는 찰나.

휘익-

안일한의 동작이 급변했다.

주먹을 거둬들이는 것과 동시에 마나를 회수, 그대로 하체에 호신을 두르는 것이다.

마나 운용의 노련함. 아니, 그보다는 전투 방식 자체가 노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 상태로 언데드 네 구를 박살 내는 까닭에 슬슬 어이가 없을 무렵.

쌔액-!

안일한은 마지막 녀석을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양단할 기세로 순식간에 내리꽂히는 일격.

이를 보는 순간 오윤진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제아무리 그녀가 마법사라지만, A급 초인쯤 되는 만큼 모를 수가 없었다.

“……!”

방금 안일한이 선보인 발차기.

소리도, 형태도 쫓기 힘든 일격은 틀림없이 A급 무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오윤진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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