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진짜 웃기는 놈이네?
나는 지금 의식을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32%]
-[????의 그림자]가 일정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눈앞에 잇달아 떠오르는 메시지 세례.
그곳에는 내가 무의식 상태라는 사실부터, ‘그림자’ 녀석이 깨어났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덕분에 나는 엉겁결에 미구현 특성, ‘????의 그림자’의 작동 원리를 알게 됐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동기화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스킬 [초진화(SS)]가 [초성장(B)]으로 변경됩니다!
-모든 종류의 단련 효과가 8배 상승합니다!
-스킬 [초재생(SS)]이 [초회복(B)]으로 변경됩니다!
-모든 종류의 휴식 효과가 8배 상승합니다!
‘……SS급 스킬이라니.’
막연하게 녀석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던 성장과 휴식 관련 스킬이 실존함을 확인한 건 물론.
SS급이라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스킬 등급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지금 같은 상황에 입을 벌리고 감탄하는 것부터 조금 이상하지만.’
그렇게 나는 메시지에 관한 감상을 마치고 나서야 현재 내 몸 상태를 살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시스템 메시지는 인식할 수 있는 반면, 시야는 어두컴컴했다.
뿐만 아니라 생각을 떠올리거나, 감정은 느낄 수 있었으나 감각은 희미했다.
때문에 현 상황이 단순히 의식을 잃은 까닭인지, 아니면 마법의 여파인지 구분이 안 됐다.
‘……어쨌든 그림자 녀석이 깨어났다고 하니.’
녀석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으려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혼원공이다.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불완전하게나마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더불어 목소리의 대상까지도 금방 알아차렸다.
‘나, 아니 그림자 녀석이겠군.’
깨닫는 순간 시야가 흐릿하게나마 회복되어 갔다.
마치 이전에 꿈을 통해 그림자 녀석의 경험을 계승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 채 의식이 부유하고 있는 느낌 속에 녀석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이제 곧 효과가 다할 거다.
-아직 진정한 혼원의 이치에 닿지 못한 데다가, 동기화율 또한 부족하니.
녀석의 말은 머지않아 내가 의식을 잃을 거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녀석답지 않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안심해라. 불완전하게나마 공유할 날도 머지않았으니까.
-이번 안배를 취함으로써 그리될 거다. 그러니 믿고 맡겨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점이 서서히 올라갔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녀석이 몸을 일으키는 듯싶었다.
이에 나는 대꾸도 불가능하겠다, 속으로 대답했다.
‘그래, 어디 그 안배라는 거. 구경이나 해 보자.’
그 순간.
-고맙다.
녀석의 대답과 동시에 의식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
…
…
같은 시각.
“…….”
이유진, 아니 오윤진은 한 사람을 내려다봤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몇 년 만에 보는 가족이자, 하나뿐인 여동생 오윤서였다.
동생을 바라보는 오윤진의 눈빛에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조심스럽게 오윤서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나머지 6명의 생도가 쓰러져있는 곳에 살포시 눕혔다.
‘잠깐 자고 있으렴.’
오윤진은 품속의 오브를 꺼내 들었다.
그대로 마나를 불어넣으려는 찰나.
스윽-
별안간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윤진은 순식간에 반응했다.
타닷-
한 발짝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코어를 활성화한 것이다.
그녀는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갖춘 채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확인했다.
이윽고 정체를 파악한 순간.
“……호오.”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쓰러져 있던 청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청년이 그녀의 수면 마법을 뚫어냈다는 뜻과 다름 아니었다.
그것도 A급 초인이자 마법사인 오윤진이 작심하고 발휘한 수면 마법을 말이다.
‘……한낱 아카데미의 생도 따위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닐 텐데.’
그녀의 여동생이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잠들어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때문에 오윤진은 묘한 기분 속에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재밌는 친구였구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올 무렵.
청년, 안일한은 완전히 몸을 일으킨 채 무심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다만 그뿐으로, 별다른 대답이 없자 오윤진은 한차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친구, 굳이 어려운 길을 고르겠다면 말리진 않을게. 다만 각오는 해야 할 거야.”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은 직후, 그녀는 곧장 공격 마법을 전개했다.
‘수면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힘으로 굴복시키면 될 뿐이었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공격 마법을 퍼부으려는 찰나.
“달그림자 길드의 길드장, 재앙의 마녀 오윤진.”
안일한으로부터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마법을 구현하던 오윤진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녀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찰나 다시 한번 안일한이 말했다.
“특성은 미구현 특성으로 재앙 관측, 미래 예지 계열이지만…….”
“그만.”
오윤진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그녀는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수십 개의 마탄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수십 발의 마탄으로 안일한을 완전히 포위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 정체가 뭐야.”
“너와 다르지 않다.”
대답이 흘러나온 순간.
콰앙-!
마탄 한 발이 안일한의 목덜미를 간발의 차로 스치며 지면에 작렬했다.
목덜미 쪽 살갗이 벗겨져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음에도 그는 표정 한 점 변하지 않았다.
도무지 사람 같지 않은 반응에 오윤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번 더 그따위로 대답하면 다음엔 미간이야.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정체는?”
“아카데미 생도이자, 너와 같은 미구현 특성 소유자.”
“……뭐? 미구현 특성?”
“참고로 나는 온전한 미래를 본다. 너와는 다르게.”
“……!”
당돌하기까지 한 대답에 오윤진은 흠칫했다.
그녀가 무어라 물어보려는 찰나 다시금 안일한이 선수를 쳤다.
“따라서 네가 무엇을 노리고 이 상황에 뛰어들었는지도 알고 있지.”
“……그래서 건틀렛의 길을 걷는 주제에 내 쪽을 택한 거야? 마법을 견식하겠다는 되도 않는 이유를 대면서까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자 안일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무미건조한 반응에 오윤진은 한참을 노려보다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짓에 그를 포위하고 있던 수십 발의 마탄이 한꺼번에 뒤로 물러났다.
“설명해 봐. 내가 노리고 있는 게 뭐지?”
“유물.”
“어디 있는지 실토해.”
“조건이 있다.”
“……조건?”
오윤진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손짓했다.
이에 잠깐 동안 멀어졌던 마탄이 다시 안일한의 코앞까지 닥쳐왔다.
“살려는 줄게. 그거면 됐지?”
오윤진은 살벌한 기세를 쏟아내며 말꼬리를 올렸다.
무려 A급 초인이 뿜어내는 위압감 앞에서도 안일한은 눈 하나 깜빡 않고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수호자 길드의 김재학은 반드시 유물을 노릴 거다.”
“……뭐라고?”
“애초에 김재학은 양지에서는 물론, 음지에서조차 너를 추적하고 있었으니까.”
“…….”
정의를 표방하는 수호자 길드 소속 초인이 빌런 집단을 추적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하물며 음지에서 상당히 유명한 달그림자 길드의 주인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거기까진 자연스러웠다.
다만 음지에서부터 추적하고 있었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김재학의 정체까지 알고 있다는 거야……?’
예상을 철저히 뛰어넘는 이야기 흐름에 오윤진은 낯빛을 굳혔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말했지. 나는 온전한 미래를 본다고.”
모호한 대답이었으나 적어도 오윤진에겐 말 속에 담긴 의미가 확실하게 전해졌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혀를 짧게 차며 마탄을 뒤쪽으로 물렸다.
이내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입을 열었다.
“……조건이 뭐지?”
협박 대신 동등한 입장을 상대하듯,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 기다렸다는 양 안일한은 곧바로 생각해 둔 조건을 읊었다.
“나와 동행할 것. 전투가 발생할 시, 나를 지킬 것.”
“……어이가 없네. 침식이 발생했다고 해 봐야 고작 E급 게이트에서 벌어진 건데, 몸을 지켜 달라고?”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오윤진은 눈을 흘겼다.
그녀의 반응에도 안일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말했잖나. 나는 아카데미 생도다.”
“……일개 생도가 내 정체를 알고, 김재학의 정체까지 알고 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두 번째는 유물의 소유권이다. 네가 갖되, 내게도 그 유물에 내재된 스킬을 습득할 기회를 줄 것.”
“저기, 내 물음의 대답을 아직 못 들은 것 같은데.”
“세 번째, 그 외 전리품은 5:5로 나누는 거로 하지.”
“……하.”
당돌함을 넘어 뻔뻔하기까지 한 요구.
오윤진은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눈을 부라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안일한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대신 최소한 유물이 있는 장소에 이를 때까지 김재학과 마주치지 않게 해 주지.”
“그러니까, 최단 루트를 제공하겠다?”
그녀의 물음에 안일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구사항부터 제공하겠다는 대가에 이르기까지.
터무니없다고 느껴지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합리적이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로 김재학이 유물을 노린다면.’
그로 인해 그와 직접적으로 맞붙게 된다면 그녀의 입장에선 커다란 낭패였다.
김재학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A급 초인인 만큼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건 물론.
본래 목적, 유물의 획득까지 불투명해지는 까닭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눈앞의 건방진 청년이 제시한 최단 루트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교묘하게 밸런스를 이루고 있어. 마치 내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오윤진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속내를 읽은 적은 많지만, 이처럼 낱낱이 읽힌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만큼은 사사로운 감정을 제쳐 두기로 했다.
“좋아. 그 대신 유물 추적 중간에 김재학에게 따라잡힌다면…….”
“얼마든지 나를 인질로 삼아도 좋다.”
“진짜 웃기는 놈이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느낌이었다.
오윤진은 표정을 구기면서도 곧장 마법을 거둬들였다.
이내 동생을 포함, 쓰러져 있는 생도들을 대상으로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스스스-
돔 형태의 마나 방벽이 생도들을 감쌌다.
이거라면 만에 하나 폭주한 몬스터들이 이곳에 접근했다 한들, 어떠한 상해도 끼칠 수 없으리라.
그제야 몸을 돌렸다.
“안내해.”
“이쪽으로.”
그렇게 두 사람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됐다.
그중 길잡이 역을 맡은 안일한은 거침없이 초원 지대를 가로질렀다.
이윽고 침식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필드, ‘불타는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불길을 피해 진입하는 순간.
케륵!
키르륵-!
전신이 시커멓게 물든 고블린 수십 마리가 불길 속에서 튀어나왔다.
희번덕거리는 눈알, 입가에 질질 흘리는 침에 거칠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까지.
도저히 평범한 고블린이라곤 할 수 없는 몬스터의 등장에 두 사람은 멈춰 섰다.
그중 오윤진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반면 나머지 한 명, 안일한의 행동은 조금 달랐다.
샤샤샥-
신속하게 뒷걸음질 치며 오윤진의 등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덧붙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전투를 피할 수 없을 테니 당분간 부탁하지.”
고저 없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윤진의 이마에 힘줄이 불끈 돋아났다.
“……진짜 웃기는 놈이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