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69화 (69/218)

69화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슷한 시각, 게이트 외곽.

“잠깐만, 게이트 상태가 이상한 것 같은데?”

“다들 잠깐 모여 주십시오!”

각 길드에서 파견 나온 초인들은 곧바로 게이트 내부의 이변을 알아차렸다.

그만큼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게이트,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침식 현상입니다!”

“타 차원과 무작위로 이어지는 그것 말씀이십니까?!”

“아예 간섭조차 불가능한 거로 보아 틀림없습니다!”

간섭 불가, 즉 출입이 아예 봉쇄된 것이다.

이는 ‘침식 현상’이 동반하는 여파들 중 하나였다.

물론 해결책은 존재하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마탑에서는 파견 나온 분은 이유진 초인뿐이죠?”

“네. 그쪽은 항상 인력이 부족하니…….”

“이를 어쩌죠? A급 초인 아니면 최소 B급에 해당하는 마법사분이 계셔야 할 텐데.”

침식 현상을 외부에서 해결하는 데는 총 두 가지 방법이 존재했다.

가장 먼저 A급 초인이 지닌바 무력으로 게이트 자체를 붕괴시켜 길을 뚫는 것이었다.

거의 우격다짐에 가까운 방식이지만 빠르고 확실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파견 나온 초인들은 모두 C급인 까닭에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반면 두 번째는 조금 달랐다.

“김한석 교관님, 잠시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침식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B급 이상의 마법으로 뒤틀린 마나를 해석하고, 다시금 길을 잇는 것.

즉, B급 마법사인 김한석이 나선다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길드원들은 곧장 김한석을 호출했고, 그는 평소와는 달리 굳은 낯빛으로 다가왔다.

“게이트 내부에 이변이 일어났나요?”

그의 물음에 길드원들은 빠르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교관님께서 손을 써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저희는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길드원들은 실습의 총책임자인 김한석에게 보고와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수행했다.

모두들 다급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침식 현상이라…….”

김한석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게이트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심연처럼 끝없이 수렴해가는 소용돌이를 주시했다.

잠깐을 지켜보던 그는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마나가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마나 부족 문제를 언급하는 김한석.

이를 알고 있었는지, 길드원들은 지체없이 나섰다.

“마나 흡수 마법 가능하시죠? 저희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김한석 교관님께 마나를 지원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선 끝에 총 6명의 길드원들이 김한석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만큼 미래의 동량이 될 아카데미 생도들을 지키는 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사명감, 바로 그 때문이었다.

김한석에게 거리낌 없이 배후를 내준 것은 말이다.

고오오-

그의 오브에서 특유의 검보랏빛 마나가 일었다.

동시에 마력형 특성, 환영(幻影)의 거울을 발동시켰다.

그대로 마나에 스며들어 환영 마법이 완성된 순간.

“……!”

마나를 내어주고자 기꺼이 무방비 상태를 자처한 6명에게 스며들었다.

그렇게 검보랏빛 마나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을 때.

“……아무 이상 없으니 저희는 입구 쪽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교관님.”

“고생하십시오, 김한석 교관님.”

하나같이 몽롱한 표정으로 게이트로부터 등을 돌렸다.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양 제자리로 돌아갔다.

김한석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 공교롭네. 침식 현상이 일어날 줄이야.’

침식 현상은 말 그대로 이변이었다.

김한석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가 아는 한, 인위적으로 침식을 발생시키는 연구는 아직 미완성이었으니까.

다만 파견 나온 초인들을 현혹시킨 건 어디까지나 임기응변이자, 그의 선택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꺼번에 두려움을 안겨 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침식이란 게이트 내부가 특정 차원에 침식되는 현상을 의미했다.

내부 환경이 변하는 만큼 마나의 구조나 성질까지 뒤바뀌고, 이는 몬스터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즉 몬스터들이 본래 등급보다 흉포해진다는 뜻이었다.

이는 기껏해야 D급에 불과한 생도들에겐 크나큰 공포로 다가갈 것이다.

‘물론 부상은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나오지 않겠지.’

그만큼 현재 게이트 내부에 들어간 인솔자들의 무력은 강대했다.

다만 그들이 몬스터를 처리할 순 있을지언정, 거기서 비롯된 트라우마는 어찌할 수 없을 터.

그것이 바로 김한석이 원하는 바였다.

‘게다가 지금 이 안에 있는 생도들은 전부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이니까.’

공교롭게도 전부 그의 먹잇감이라 할 수 있는 우수한 생도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탐스럽게 여기는 녀석들 또한 눈앞의 불안정한 게이트 너머에서 헤매고 있을 터였다.

‘차은월, 윤설하, 심인욱, 백유진, 오윤서, 그리고…….’

가장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녀석, 안일한까지.

김한석은 이름을 하나씩 속으로 곱씹으며 생각했다.

‘이참에 녀석의 마음도 한층 문드러졌으면 좋으련만.’

동시에 김한석은 바랐다.

안일한, 녀석이 더는 경계하지 못할 정도로 병들기를.

그로 말미암아 씨앗을 심어 훗날 대업을 위한 동량으로 만들 수 있기를.

김한석은 더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게이트를 계속해서 지켜봤다.

* * *

같은 시각, 초원 필드.

“치, 침식 현상?!”

앞쪽에서부터 새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소리를 내지른 이는 다름 아닌 오윤서였다.

모두가 동요하는 가운데.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곧바로 혼원공을 발휘했다.

쏴아아-

혼원의 마나가 체내를 순환함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제야 주위를 살필 여유가 생겼다.

“이, 일한아 이건 대체……!”

“일단 침착하자.”

“아, 알겠어!”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는 차은월을 안심시키는 찰나.

“유진 언니, 저는 뭘 하면 되죠?!”

앞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번에도 역시 오윤서였다.

그녀는 가장 먼저 침식 현상을 알아차린 만큼, 나 이상으로 침착하게 행동했다.

인솔자이자 보호자인 이유진 초인에게 곧바로 대책을 묻는 것이다.

‘역시 서로 아는 사이였나.’

같은 마탑 소속일 터인 오윤서는 어째선지 여태 이유진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태세를 전환한 듯싶었다.

감상을 떠올리는 한편,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녀석이 말한 두 번째, 침식 현상까지는 발생했다. 이제 남은 건…….’

이전에 그림자 녀석이 내게 전해준 세 가지 행동 강령.

그중 인솔자로 이유진을 택하는 것과 침식 현상에 맞춰 혼원공을 일으키는 것까진 충실하게 이행했다.

남은 건 마지막 강령, ‘의식을 잃었을 때 당황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말이 쉽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애써 침착함을 가장했다.

이어서 나는 인솔자, 이유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과연 대책은 무엇일지, 또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대로 그녀를 바라본 순간.

오싹-

등골에 오한이 일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눈빛이 바뀌었다.’

이유진은 처음부터 어딘가 엉성하고, 뒤따르는 생도들 이상으로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그녀는 달랐다.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있는 건 물론, 특유의 분위기마저 바뀌었다.

변화를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유진 언니?”

오윤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잠깐 자고 있으렴.”

이유진으로부터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기마저 느껴지는 싸늘한 음색, 그런 감상을 떠올리는 찰나.

화아앗-!

이유진에게서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마치 해일처럼 삽시간에 일행 전체를 뒤덮는 가운데.

“……으읏!”

가장 가까이 있던 오윤서는 혼비백산한 채 마나 방벽을 구현해냈다.

그녀가 마법을 발휘한 것과 거의 동시에 내 근처에서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한아!”

다름 아닌 차은월이었다.

그녀의 외침과 함께 오윤서 이상 가는 규모의 방벽이 내 앞에 전개됐다.

바로 그녀가 가진 특성, 마력 역장이었다.

이전에 비해 한층 선명해진 역장이 구현되기가 무섭게 이유진의 해일과도 같은 마법이 덮쳐 왔다.

마법이 닿는 순간.

쩌적-!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역장의 겉면이 거미줄 같은 실금으로 뒤덮였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대체 저 사람의 정체가 뭐길래.’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털썩-

오윤서와 차은월, 그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생도가 동시다발적으로 허물어졌다.

“……!”

이를 보는 순간, 불현듯 그림자 녀석의 전언이 뇌리를 스쳐 갔다.

-혹여 의식을 잃는 경우가 발생해도 당황하지 말고 남은 일은 내게 맡길 것.

의식을 잃는 경우란 바로 현 상황을 뜻하는 것이었다.

깨닫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차은월 덕분에 정신을 잃는 걸 모면하긴 했는데. 그럼 이젠 어떻게 되는 거지……?’

점점 의구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너, 너는!”

또다시 오윤서로부터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경악에 찬 눈빛으로 누군가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대상을 확인한 순간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곳에는 이유진 대신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는 까닭이었다.

‘……변장? 그런 마법도 있는 건가?’

의문과 함께 오윤서와 이유진이었던 여자를 살폈다.

이내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기시감이 들었다.

그만큼 둘은 닮아 있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오윤서가 재차 외쳤다.

“오윤진!”

둘이 성씨가 같다.

거기다 오윤서는 그녀를 아는 눈치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은 순간, 하나의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다.

‘……자매?’

온갖 의문으로 인해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유진, 아니 오윤진이라 불린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이나 깨어 있다니. 귀찮은걸.”

나른한 목소리. 하지만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만큼 남다른 기세가 느껴졌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움츠러든 나와 차은월과는 달리 오윤서는 분기탱천한 채로 외쳤다.

“대체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유진 언니는 어떻게 했고?!”

“내 동생, 말 버르장머리는 여전하네.”

“이익, 닥쳐!”

외침과 함께 오윤서가 품속의 오브를 꺼내 들었다.

이내 그녀의 오브로부터 시퍼런 마나가 맹렬하게 몸집을 부풀렸다.

하나의 커다란 구체를 이루는 가운데, 이어서 엄청난 속도로 증식하기 시작했다.

살벌한 기세로 공격 마법을 전개하는 광경에도 오윤진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나아가 그녀는 한줄기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우리 윤서, 맥없는 마법은 여전하구나.”

“닥쳐! 이번에야말로 죽여 버리겠어-!”

오윤서는 실성한 듯 소리치며 그대로 마탄을 폭우처럼 퍼부었다.

콰광-!

일대를 초토화시킬 기세로 쏟아내며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모조리 때려 붓고 나서야 오윤서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허억, 허억!”

모든 마나를 끌어쓴 것처럼 헐떡이며 겨우 고개를 드는 순간.

“……아아.”

오윤서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 갔다.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구름을 한 손으로 흩어 버린 채 유유히 걸어 나오는 오윤진의 모습 때문이었다.

“변함없이 약하구나, 우리 윤서는.”

“다, 닥쳐…….”

간신히 대답하는 찰나, 오윤서의 머리 위로 불그스름한 마나가 쏟아져 내렸다.

그대로 스며드는 것과 동시에 오윤서의 두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으윽.”

결국 그녀는 다른 생도들과 마찬가지로 신음을 흘리며 허물어졌다.

그렇게 오윤진은 잠시 동안 미묘한 눈빛으로 오윤서를 바라봤다.

그다음에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차은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넌 우리 윤서보다 재능있구나?”

“……!”

느닷없는 칭찬에 차은월이 반응하는 순간.

“잠깐 자고 있으렴.”

순식간에 다가와 손짓만으로 역장을 허물어 버렸다.

다음은 오윤서와 마찬가지였다.

차은월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잠재워 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나 한 사람뿐이었다.

“재밌는 친구, 너 하나 남았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가 맹렬한 속도로 돌아갔다.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의식을 잃어도 별 탈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정확한 목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얌전히 당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빠르게 판단하고는 곧바로 혼원공을 바탕으로 호신을 펼쳤다.

내 반응에 오윤진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와 함께 손짓했다.

“제법 훌륭하지만, 그거론 택도 없어.”

그러니까.

“잠시 자고 있으렴.”

그녀의 불그스름한 마나가 덮쳐 왔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며 눈앞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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