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신세계가 펼쳐졌다
“일한이, 오랜만이다!”
“어.”
3주 만에 만나는 임강철과 재회의 인사를 나눈 다음 곧장 집합 장소인 대강당을 향해 갔다.
그러자 간만에 반가운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일한, 이쪽이야!”
“일한아!”
다름 아닌 윤설하와 차은월, 두 사람이었다.
둘 다 임강철과 마찬가지로 방학 내내 본가에서 지내다 어젯밤에 아카데미로 돌아온 듯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반갑게 회포를 풀고, 심인욱과도 대충 목례 정도로 인사를 나눴을 무렵.
“다들 방학은 잘 보내셨나요?”
이번 게이트 현장 실습의 관리, 감독을 맡은 김한석이 대강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평소와 비슷한 표정으로 생도들을 쭉 살피며 인원 점검에 들어갔다.
“43명, 전원 모였군요.”
그렇게 인원 점검을 끝마쳤을 무렵, 대강당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들어섰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김한석은 때마침 잘됐다는 듯, 단상으로 오르며 그들을 이끌었다.
“이분들이 바로 여러분의 인솔을 맡아 주실 초인분들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쏟아지는 박수 속에 총 다섯 명의 초인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김한석은 그들을 한 명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다들 아시겠지만 이분은 대한민국 4대 길드 중 하나인 수호자 길드 소속 간부인 김재학 초인입니다.”
국내 4대 길드의 일축, ‘수호자 길드’의 김재학.
그를 시작으로.
“마찬가지로 4대 길드 중 한 곳이죠. 대지의 혼 길드 소속의 허정민 초인.”
4대 길드 중 한 곳이자, 심인욱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대지의 혼 길드.
“이분 또한 4대 길드인 스페셜리스트…….”
4대 길드 중 한 곳이자, 과거 진태진 교관이 몸담았던 길드라는 스페셜리스트 길드.
“이번에는 3대 가문이죠, 환영검가에서…….”
신창백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문인 환영검가.
이어서 마지막으로.
“마지막은 국내 단 두 곳뿐인 마탑 중 한 곳, 다섯 번째 진리 마탑의 이유진 초인입니다!”
오윤서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마탑이자, 그림자 녀석이 언급한 ‘이유진 초인’이 속한 다섯 번째 진리 마탑까지.
총 다섯 명의 소개를 끝마치고 나서야 김한석은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 지금부터 생도들은 이동하세요. 동행을 원하는 초인 앞에 한 줄로 정렬하면 됩니다.”
인솔자를 선택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도는 자신이 선택한 무기와 관련된 길드나 가문을 선택했다.
이는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설하야, 넌 어디로 갈 거야?”
“나는 검이니까 아무래도 환영검가가 났겠지? 은월이, 너는 마탑?”
“으응, 좀 껄끄럽긴 하지만…….”
“난 대지의 혼 길드다! 심인욱과 동행하겠군!”
내 친구들이 그렇듯, 검을 택한 이들은 환영검가를.
건틀렛을 택한 이들은 대지의 혼 길드를.
그밖에도 둔기를 다루는 이들은 수호자 길드의 김재학 초인을 따랐다.
마지막으로 비주류 무기를 택한 이들이 스페셜리스트 길드에 몰리는 가운데.
“일한아 너도 대지의 혼 길드 쪽으로 갈 거야?”
“같이 다니진 못하겠네.”
윤설하와 차은월은 당연히 내가 임강철처럼 대지의 혼 길드를 택할 거라 생각했는지, 입맛을 다셨다.
그들을 향해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마탑 쪽으로 가려고.”
내 선택이 완전히 예상 밖이었는지.
“진짜?! 왜?”
“일한아 정말이야?!”
두 사람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의 반응에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냥 제대로 된 마법을 견식해 보고 싶어서. 그보다,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그제야 윤설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나중에 보자.”
그러고는 차은월과 함께 다섯 번째 진리 마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나와 차은월을 포함, 총 7명의 생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만히 뒤쪽에 줄을 서자.
찌릿-
맨 앞에 줄을 서 있는 오윤서가 내 쪽을 째려봤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차은월 쪽이었다.
이에 질세라 차은월 또한 오윤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는 가운데.
나는 고개를 들어 단상 쪽을 살폈다.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동그란 안경을 쓴 20대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유진 초인. 일단 들어 본 적 없는 사람 같은데.’
둥근 안경부터 수수한 외모까지.
국내 단 두 군데 존재하는 마탑에 소속된 초인인 만큼 제 스스로 능력을 증명한 사람일 터였다.
하나 적어도 외견으로 봤을 때는 파견 나온 다섯 명 중 가장 평범해 보였다.
‘대체 상황이 어떤 식으로 돌아갈지.’
그간 의문이 생기는 족족 그림자 녀석에게 틈틈이 질문을 남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이전에 전달받은 세 줄짜리 메모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명확한 답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 설명하기 힘들어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더 캐묻진 않았다.
‘어차피 이제 곧 알게 될 테니까.’
그저 무슨 일이 닥치든, 대처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그럼 슬슬 출발하겠습니다. 다들 차량에 탑승해 주세요.”
김한석이 이동을 지시했다.
…
…
…
몇 시간 후.
파주시에 진입하고 대략 1시간 정도 더 이동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차하고 나서도 김한석의 인솔에 따라 약 10여 분을 걸었다.
그제야 게이트가 위치한 일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고오오-
아스라이 들리는 소리는 물론, 피부에 와닿는 공기마저 낯설었다.
이질적인 감각으로 인해 몸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이윽고 일련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셨군요, 김한석 교관님.”
다름 아닌 게이트를 관리하는 길드 관계자들이었다.
아무래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인솔자 이외의 인원을 파견한 듯싶었다.
‘그럼 외부에서 김한석이 술수를 부릴 확률은 줄어드는 건가?’
그렇다면 대체 어떤 식으로 사건이 벌어질지.
점점 생각이 깊어지는 가운데.
“그럼 지금부터 게이트 입장을 시작할게요. 이쪽으로 정렬하세요.”
관계자들과 대화를 마쳤는지, 김한석이 생도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동시에 인솔을 맡은 초인들도 본격적으로 나서서 생도들을 이끌었다.
시작은 수호자 길드의 간부인 김재학이었다.
“주의사항은 다들 들었겠지. 그럼 후배들은 내 뒤를 따르도록.”
그렇게 하나둘씩 게이트 내부로 진입하는 가운데.
“저, 저희도 들어가죠.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여러분. 아시겠죠?”
내가 택한 다섯 번째 진리 마탑 소속 초인, 이유진도 머뭇머뭇 걸음을 옮겼다.
표정이 살짝 굳어 있는 게,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녀를 필두로 하나둘씩 게이트에 들어섰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
별안간 게이트 입구 좌측에 서 있던 김한석과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내 쪽을 바라보는 김한석.
그의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나 또한 게이트 내부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화아앗-!
처음 겪는 이질적인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현상 속에 표류하기를 수 초.
이윽고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이게 바로 게이트.”
눈앞에는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 * *
게이트가 생성된 일대는 인적이 드문, 산속 깊은 곳이었다.
그런 외부의 풍경과는 또 다른 숲 지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뤄져 있구나.’
천장처럼 드리운 나무와 그 너머의 하늘, 그리고 딛고 선 대지의 색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기존 상식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결정적으로 온몸을 감싸는 이질적인 감각,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전신을 옥죄었다.
‘이 감각은 대체…….’
조금씩 숨이 차오르는 가운데. 앞쪽에서 이유진 초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지금부터 마나를 순환시키세요. 그럼 압박감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그녀의 말마따나 곧바로 혼원공을 발휘했다.
놀랍게도 전신을 옥죄던 압력이 차츰차츰 사라져 갔다.
그 사이 이유진은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게이트 내부의 마나는 아카데미에 마련된 시설 속의 마나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 거예요.”
나는 속으로 그녀의 설명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아카데미 시설 속 마나라.’
현 상황과 기억 속의 감각을 비교해 보니, 두 상황의 차이점을 알 것도 같았다.
아카데미에 마련된 마력 단련실의 마나는 어딘가 정제되고 정순한 느낌이었다.
반면 지금 느껴지는 게이트 내부의 마나는 거칠고, 불안정한 느낌을 줬다.
‘그래서 체력 단련 때 마나 저항력을 길렀던 건가?’
새삼스럽게 의미를 깨닫고 있는 사이, 이유진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간략하게 실습 과정을 설명해 드릴게요!”
이내 실습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게이트에 관련된 이론 강의부터,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사체에서 마석을 갈무리하는 것.
나아가 부산물을 채집하는 것까지. 모두 그녀가 시범을 보이는 형태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아, 참고로 게이트 내부의 보스 몬스터 레이드는 이번 실습에선 제외할 예정이니 이 점 양해해 주세요.”
레이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보스 몬스터 사냥은 제외할 거라 덧붙였다.
이유인즉슨,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면 게이트가 소멸되기 때문이었다.
설명이 끝날 무렵, 수풀이 우거진 필드를 벗어나 새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넓은 초원으로 이루어진 필드. 그 속에 뭔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초원을 배회하는 몬스터, 다름 아닌 고블린이었다.
몬스터의 무리들을 보는 순간,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가슴 속에 강렬한 감정이 치솟는 까닭에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침착하자. 지금은 이런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니까.’
속으로 평정심을 가다듬고 있을 때, 이유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E급 게이트에선 보통 고블린이나 놀, 코볼트와 같은 몬스터들이 나타나요. 녀석들을 사냥하면 E급 마석을 얻을 수 있죠.”
설명과 함께 이유진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고블린 두 마리를 향해 다가갔다.
아무래도 사냥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려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품속에서 오브를 꺼내 들었다.
“사냥 실습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다들 일단 오브를 꺼내세요. 이런 것도 훈련되어 있어야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거든요.”
그녀의 지시에 하나둘씩 오브를 꺼내 드는 가운데.
처억-
나만이 혼자 건틀렛을 꺼내 착용했다.
그래서일까 차은월을 제외한 나머지 5명 생도의 시선이 한꺼번에 내게로 쏠렸다.
그들의 반응에 선두에 서 있던 이유진까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내게 물었다.
“……생도는 혹시 마법 계열이 아닌가요?”
“네.”
“어……, 보통 실습 땐 자신이 택한 무기의 길을 걷는 초인의 인솔을 받고자 하는 거로 아는데.”
당황한 듯 에둘러 말했으나 의미 자체는 간단했다.
넌 뭐냐. 뭔데 여기에 붙었냐.
곧바로 알아들었으나 곧이곧대로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나는 친구들에게 했던 대답을 그대로 반복했다.
“제대로 된 마법을 견식하고 싶어서요.”
“그,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생도는 이름이 어떻게 되죠?”
“안일한입니다.”
“……그럼 안일한 생도는 잠깐 물러나 계세요.”
이유진은 내게 지시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다른 생도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마나 방벽은 전개할 줄 알죠? 혹시 모르니…….”
본격적인 사냥 시범을 위해 자세를 갖추는 순간.
쿠구구궁-
머리 위, 그러니까 하늘에서부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하늘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광경.
하늘이 산산조각나며 어지러이 흩어져 내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아연실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치, 침식 현상?!”
영문을 알 수 없는 단어였으나, 들은 순간 직감했다.
현 상황이야말로 그림자 녀석이 예고했던 사건의 전조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