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시야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참격이 그대로 고태식 교관을 향해 짓쳐들었다.
슈와악-!
규모부터 출력까지, 예사롭지 않은 일격이었다.
가라앉은 눈빛으로 참격을 주시하던 고태식 교관은 별안간 오른손을 쭉 뻗었다.
그 과정에서 황금빛 마나가 일어 그의 손아귀를 두텁게 휘감았다.
마침내 온전히 형상을 이뤄낸 순간.
쩌-엉!
은회색 참격이 손아귀에 두른 황금빛 마나와 격돌했다.
그 상태로 고태식 교관은 힘있게 오른팔을 걷어냈다.
화아아앗-
그의 손짓에 참격은 은회색 마나의 파편이 되어 흩어져 버렸다.
거기까지 확인한 순간.
“허, 억!”
일순 전신에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거기에 항거할 틈도 없이 나는 그대로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치 다 타 버리고 재만 남은 것처럼 온몸에 힘이 전무했으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그만큼 무공을 제대로 활용했을 때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게 첫 번째 초식이었으니까.’
여태 경험에 비춰 봤을 때, 무공은 주로 후반부 초식에 이를수록 절기에 가까웠다.
이는 곧 방금 일격보다 더 위력적인 기술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그게 내 가슴을 세차게 뛰게 했다.
‘게다가 흑영보부터 복마구권, 탈혼지도 있으니까.’
몸의 기력을 회복하는 한편, 머릿속으로 즐거운 상상을 마음껏 펼치고 있을 때.
저벅저벅-
고태식 교관이 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그는 내게 말을 건네왔다.
“이번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구먼.”
특유의 거친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고태식 교관의 표정이 두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의 사납게 비틀린 입가가 눈에 띄었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감각이라 해야 할까? 확실히 네 녀석은 습득력 하나만큼은 탁월하다.”
고태식 교관이 내 성취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하고 있음을 말이다.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그는 툭 던지듯, 내게 조언해 줬다.
“방금 일격이 네 녀석의 고점이라 생각해라.”
“고점 말씀이십니까?”
“그래. 실전에서 사용할 때 그 점을 염두에 두면 출력 조절이 용이할 테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인사에 고태식 교관은 시니컬하게 대충 손을 두어 번 휘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소훈련실을 벗어나기 전.
“가급적이면 쓸 일이 없길 바란다.”
별안간 진지한 어투로 내게 말을 건네왔다.
의미심장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가만히 바라보자 고태식 교관은 말을 이어 갔다.
“마나 없이 활용하는 거라면 모를까. 네 녀석의 무영귀살각을 제대로 쓰면 네 녀석 또래는 어지간해선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A급 무공의 비범한 위력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의미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네 녀석이 생각이 없는 놈도 아니고, 무턱대고 생도를 상대로 쓰진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사용처는 뻔하지.”
무공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게 아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자체를 염려하는 것이다.
게다가 뉘앙스로 봤을 때, 여전히 내가 본 미래에 관해 신경을 쓰는 듯한 기색이었다.
‘……나름대로 신경 써 주시는 건가.’
구태여 캐묻지 않는다는 점이 그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래. 방학 잘 보내고 2학기 때 보자, 애송이.”
그 말을 끝으로 고태식 교관은 소훈련실을 벗어났다.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어느새 탈력감은 많이 옅어진 상태였다.
‘이것도 급속 회복의 효과겠지?’
새삼스럽게 스킬의 효능을 체감하는 한편, 방금 고태식 교관이 말한 내용을 속으로 곱씹어 봤다.
‘사용할만한 일이라.’
여태 그림자 녀석이 내게 뭔가를 제공했을 땐 대부분 목적이 있었다.
게다가 시기는 다를지언정 대개 활용할 순간 또한 같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이번 일이 가장 심각할지도.’
적어도 녀석의 메모에서 풍기는 뉘앙스를 보면 그랬다.
그러니 이제 와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다소 부적합해 보였다.
대신 나는 생각을 달리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철저히 준비하리라.
여태 그랬듯 말이다.
‘우선 내일 게이트 현장 실습 합격자 발표가 날 테니까. 그것부터 확인한 다음.’
실습에 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겠다.
다짐과 함께 서둘러 소훈련실을 벗어났다.
* * *
다음 날.
오늘은 방학식이 있는 날인 만큼 오전 수업이 없었다.
덕분에 한결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했다.
‘일단 점검부터 하는 게 낫겠지.’
판단 즉시 행동에 옮겼다.
상태창을 비롯하여 그림자 녀석의 동향까지 살피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였다.
확인한 순간 내용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합격자 발표려나.’
아니나 다를까, 합격 통보와 함께 실습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파주 쪽 게이트에 날짜는 대략 3주 뒤인가.’
실습 장소와 일자 등. 필요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새겨 두며 차분하게 읽어 내리고 있을 때.
“……!”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두 눈을 부릅떴다.
실습의 인솔자로 선정된 교관이 다름 아닌 김한석이었기 때문이다.
침음을 흘리며 그의 이름 석 자를 곱씹고 있을 때.
‘설마 게이트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김한석과 관련이 있는 건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의문을 떠올리는 한편, 일단 나머지 내용을 확인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솔자로 선정된 교관은 단지 게이트가 위치한 지역까지만 함께할 뿐.
내부의 인솔은 각 길드에서 파견 나온 초인들이 담당하는 모양이었다.
‘게이트 내부로 함께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생각과 함께 시선을 내리자 협력 길드의 명단과 파견 나올 초인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국내에서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4대 길드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건 물론.
그중에는 그림자 녀석이 언급한 ‘다섯 번째 진리 마탑’의 이유진 초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솔 초인을 택하는 건 당일에 진행하는 것 같고.’
그렇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갈무리하고 있을 때.
“일한이, 좋은 아침이다.”
문득 등 뒤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임강철이었다.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이내 내 손목의 스마트 워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발표날이었나?”
그제야 잠에서 깬 듯, 눈가를 비비며 제 손목에 감긴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이내 기분 좋은 소식을 발견했는지 그의 두 눈이 일순 커졌다.
“일한이, 합격이다!”
“잘됐네.”
“너는?!”
“나도 합격.”
“크, 좋군! 어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볼까.”
신이 난 듯 합격 통지문을 쭉 살피는 임강철.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긴장감도 서서히 옅어져 갔다.
‘일단 녀석은 별말 없었고, 게이트 안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괜찮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보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는 찰나.
“일한이, 여기 대지의 혼 길드도 포함되어 있는데?”
임강철이 들뜬 기색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 봤어.”
“그럼 우린 이쪽 길드에서 파견 나온 초인을 선택하면 되는 건가?! 그렇게 되면 심인욱도 함께 움직이겠군!”
“난 다른 분을 선택할 것 같은데.”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일한이!”
임강철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었다.
곧바로 이유를 묻는 그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띵동-!
기숙사의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임강철의 관심이 나에게서 현관문 쪽으로 옮겨갔다.
“뭐지?”
임강철은 단숨에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그대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두 손 가득 뭔가를 들고서 나를 돌아봤다.
“일한이, 택배왔다!”
뭔가는 다름 아닌 택배였다.
이에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너한테?”
“우리 둘한테다!”
“우리 둘? 왜?”
“글쎄, 확인해 보면 알겠지!”
호쾌한 대답과 함께 임강철이 택배를 들고 내쪽으로 다가왔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받아든 순간, 자연스럽게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상자만큼은 제법 고급스러워 보였다.
의문이 가중되는 가운데.
“일한이, 건틀렛이다!”
임강철이 별안간 소리를 내질렀다.
“건틀렛이 들어 있다고?”
“그래! 그것도 상당히 고가인 것 같은데?!”
임강철의 대답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손에 들린 은색 건틀렛을 보는 순간 곧바로 납득이 갔다.
그만큼 아카데미에서 기본 제공되는 건틀렛과는 외견부터가 달랐다.
‘확실히 비싸 보이는데.’
대체 누가, 왜 갑자기 무기를 줬을까?
그런 의문과 함께 나도 택배를 개봉했다.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반사적으로 입이 쩍 벌어졌다.
‘……임강철이 받은 거랑 다른데?’
내 상자에도 무기, 건틀렛이 들어있었다.
다만 임강철의 건틀렛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존재했다.
가장 먼저 색채, 내 건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이었다.
거기다 묘하게 임강철의 은색 건틀렛보다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외견도 조금 다른 가운데, 손등에 새겨져 있는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
‘그레이 스틸? 회사 이름인가?’
의문과 함께 착용하는 순간,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 정도로 착용감이 어마어마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아예 착용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가벼운데?’
본래 아카데미에서 받은 건틀렛은 무게가 상당한 데다가 처음 써보는 거라 이질감이 들었다.
반면 ‘그레이 스틸’이란 로고가 박힌 칠흑빛 건틀렛은 무게도 가볍고 이질감은 아예 전무하디시피 했다.
‘이 정도면 그냥 무기가 아니라 아티팩트 수준이 아닐까……?’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아티팩트가 절로 떠오를 만큼 신세계였다.
때문에 손가락을 까딱거리거나, 주먹을 쥐어 보는 등.
새 무기를 체험하기에 여념이 없을 때.
띠링-
스마트 워치로부터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 결과, 문자였다. 다만 발신인은 예상치 못한 존재였다.
‘차은월?’
다름 아닌 차은월,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곧바로 내용을 확인해 봤다.
-직접 말하는 건 좀 그래서 문자로 대신할게!
사실 방학 때 우리 모두 처음으로 게이트에 들어가게 되잖아?
아무래도 새로운 무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우리 부모님이 무기 제작 관련 회사를 운영하시거든!
여태 다른 친구들도 그렇지만 일한이, 네가 많이 도와줘서 꼭 보답하고 싶어서 부탁드렸어!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부디 잘 써주길 바라!
‘차은월이 택배를 보낸 거구나. 그나저나 부모님께서 무기를 제작하는 회사를 운영하신다니.’
문득 뇌리에 참관 수업 때가 생각났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노신사와 여성, 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가용까지.
새삼스럽게 그녀의 정체에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방학식 때 가서 감사 인사를 전하면 되겠지.’
생각과 함께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저런 일들에 관심을 쏟고 있는 사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방학식의 시작까지 대략 30분 정도 남은 것이다.
“일한이, 슬슬 준비하자!”
“그래.”
그렇게 나는 임강철과 함께 서둘러 준비하고,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 * *
방학식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여름 방학이 시작된 가운데.
첫 일주일은 본가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고는 단련을 위해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와 기숙사 생활을 이어 갔다.
그 결과.
-근력 스텟 25
-민첩 스텟 25
-체력 스텟 27
-마력 스텟 38
무려 스텟 총합 115를 달성했다.
D급까지 불과 6스텟을 남겨둔 상황.
스텟을 비롯하여 무공의 제대로 된 활용까지 어느 정도 몸에 익을 무렵.
마침내 게이트 현장 실습의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