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내가 가진 최강의 한 수가 되겠지
‘B급 스킬보다 윗줄이라니.’
B급 무공, 복마구권보다 윗줄이다.
고태식 교관은 무영귀살각(無影鬼殺脚)을 두고 그렇게 평가했다.
이는 복마구권과 비슷한 수준일 거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평가대로라면 최소 B+급일 터였다.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편.
‘……그나저나 뭐라 답해야 하지?’
무영귀살각의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내게 건넨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가 뒤늦게 걱정됐다.
감이 잡히질 않아 그저 눈치를 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하여간 네 녀석은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단 말이지.”
별안간 고태식 교관이 구시렁거렸다.
“복마구권도 그렇고 수행평가 때 꺼내든 지법도 그렇고. 그거 이름이 뭐라고?”
“탈혼지입니다.”
“그래, 탈혼지. 정말이지 연구 대상이라니까.”
고태식 교관은 혀를 내둘렀다.
그런 반응과는 달리 눈빛에는 이채로 가득했다.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까다로운 문제는 넘어간 것 같고.’
이제 남은 건 각법, 무영귀살각을 배우는 것뿐이었다.
걱정거리가 사라지자 빈자리에 기대감이 들어찼다.
그런 나를 향해 고태식 교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공을 가장 빠르게 익히는 방법이라든지, C급 이상 무공의 특징이라든지. 이젠 다 알지?”
“네.”
“그럼 모처럼 재밌는 무공을 가져온 김에 새로운 공부를 알려 주도록 할까.”
고태식 교관은 입가를 씰룩이며 걸음을 옮겼다.
이전처럼 당장이라도 달려들 줄 알고 살짝 긴장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소훈련실의 중앙 부근으로 걸어나갔다.
그대로 멈춰 선 다음, 나를 향해 고개만 돌린 채 말을 이어 갔다.
“고차원의 무공, 본 적 있나?”
“네, 심인욱 생도의 패왕진군보를 겪어 봤습니다.”
“으음, 그 애송이한테서 겪은 거라면 절반 정도겠군.”
“절반이라는 말씀은…….”
반사적으로 되물어 보면서도 의아했다.
그만큼 심인욱의 패왕진군보는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고작 한 걸음으로 상대를 위축시키니까.’
마치 패왕의 기세로 짓누르듯, 대련 시작부터 상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물론 혼원공을 익힌 이후로는 버틸 만했다.
그럼에도 내가 겪은 패왕진군보의 위력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
이런 내 생각을 읽은 건지, 고태식 교관은 추가로 설명을 이어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인욱, 그 애송이는 패왕진군보의 전력을 발휘하지 않은 거다.”
“……그런 겁니까?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뻔하지. 제대로 활용했을 때의 마나 소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나 소모를 감당할 수 없다.
달리 말해 그만큼 마나 소모가 극심하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고태식 교관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래서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고 한 거구나.’
납득하는 한편, 호기심이 부풀었다.
그렇다면 과연 고차원의 무공을 제대로 활용했을 때 어떤 위력이 나올지.
기대감이 차오르는 가운데, 다행히 고태식 교관은 지체 없이 해답을 들려줬다.
아니, 정확히는 직접 보여 주려 했다.
“고차원의 무공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과 그 위력을 지금부터 보여 주마.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라.”
그 말을 끝으로 고태식 교관은 곧장 자세를 취했다.
기수식부터 예사롭지 않아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두 눈 부릅뜬 채 지켜보는 가운데.
고오오-
별안간 그의 전신으로부터 황금빛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보는 순간 불현듯 뇌리에 하나의 장면이 스쳤다.
‘심인욱의 묵룡칠권.’
그가 선보인 묵룡을 휘감은 일권.
하지만 고태식 교관의 기운은 심인욱의 그것보다 훨씬 더 색채가 선명했다.
이윽고 황금빛 기운은 하나의 뚜렷한 형상을 이루어 갔다.
머지않아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호랑이.’
산군(山君)의 형상을 전신에 두른 고태식 교관의 모습은 ‘맹호’라는 이명을 실감케 했다.
탄성과 함께 감상을 떠올리는 찰나.
“흐읍!”
고태식 교관이 짧은 기합성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꽈릉-!!!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뇌전을 두른 호랑이 한 마리가 소훈련실을 파괴적인 기세로 질주했다.
그대로 벽면에 충돌하기 직전에 고태식 교관은 오른손을 휘저어 마나를 흩어 버렸다.
그제야 황금빛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었다.
“…….”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위력.
방금 일격으로 인해 그을린 흔적이 남은 바닥을 보자 온몸에 전율이 내달렸다.
‘……이게 진정한 무공.’
생전 처음 접하는 경지에 경외감이 들었다.
동시에 가슴 속에서부터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가운데 고태식 교관이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무공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이자, 진정한 위력이다.”
“그 말씀은…….”
조심스럽게 되묻자 원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방법을 가르쳐 주지.”
“경청하겠습니다.”
“방금 내가 무공을 발휘한 방법은 네 녀석이 여태 스킬로써 무공을 사용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게 뭔지 알겠냐?”
“마나, 아닙니까?”
“영 감각이 없진 않구나.”
고태식 교관은 입가를 비틀며 말을 이어 갔다.
“핵심은 간단하다. 코어의 마나를 활성화시킨 다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
“활성화와 유지, 그게 전부입니까?”
의아함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게, 신체 강화나 호신을 위해서라도 마나는 항상 사용해 왔다.
즉, 무공을 펼칠 때면 코어는 항상 활성화 상태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의문을 눈치챘는지, 고태식 교관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역시 모르는군. 뭐, 당연한가. 미리 말해 두자면, 신체 강화나 호신을 위한 마나 운용과는 다르다.”
“다르다는 말씀은.”
“내가 말한 코어의 활성화란 별다른 의지를 부여하지 않은 채로, 즉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나가 순환하는 상태를 뜻하는 거다.”
“……알아서 마나가 순환하는 상태.”
그제야 납득이 갔다.
확실히 방금 고태식 교관이 언급한 식으로 마나를 활용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동했다.
“한번 해 봐도 되겠습니까?”
“할 수 있다면.”
허가가 떨어진 즉시 나는 곧장 코어를, 정확히는 혼원의 마나를 일깨웠다.
그러자 혼원공 특유의 장대한 흐름이 체내를 순환하는 게 느껴졌다.
‘아직까진 별로 어려운 것 같진 않은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때마침 고태식 교관이 말했다.
“그 상태로 무공을 발휘해 봐라. 우선은 복마구권보단 보법, 이름이 뭐라고?”
“흑영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그의 지시에 나는 곧장 흑영보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스르륵-
칠흑같이 검은 기운이 전신을 뒤덮었다.
마치 그림자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에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움직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걸음 내딛자 마치 흐르듯 몸이 이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한 기분은 잠시에 불과했다.
‘……이거 마나 소모가 생각보다 장난 아니네.’
강 계열의 현천강기가 아닌 유 계열의 마나 심법.
유지력에 이점이 있는 혼원의 마나를 활용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느꼈나 보군.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고태식 교관의 목소리에 나는 일단 마나를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정중하게 되물어봤다.
“여기서 뭔가 더 필요한 게 있는 겁니까?”
“그래. 방금 건 어디까지나 기초에 불과하니까.”
“그 말씀은.”
“그 상태에서 신체 강화가 됐든, 호신이 됐든, 마나의 유형화가 됐든. 추가적인 마나 운용이 가능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활용에 닿을 수 있지.”
“……!”
“게다가 네 녀석이 가진 보법은 C급이었지?”
“네.”
“그보다 높은 등급의 무공은 지금 수준의 배 이상으로 마나를 잡아먹을 거다.”
그제야 난이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당장 마나 소모량도 감당할 수 없는 건 물론.
실전에서 활용하려면 지금보다 한층 세밀하게 마나를 운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림자 녀석 덕분에 마력 스텟은 제법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턱없이 부족할 줄이야.
입맛을 다시자 별안간 고태식 교관이 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그는 말했다.
“대충 난이도는 깨달은 모양이고. 여기서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방법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답과 함께.
우드득-
고태식 교관은 손가락을 꺾었다.
거기서 비롯된 뼛소리를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그가 언급한 ‘방법’을 알 것도 같았다.
‘……역시 결국은 이런 흐름인가.’
체념과 함께 긴장감으로 슬슬 전신에 힘이 들어갈 무렵 그가 덧붙였다.
“단시간 안에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도 안 한다. 위력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물론 그렇다고 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우드득-!
“실전이 됐든, 대련이 됐든, 단 한 번. 적어도 한 번만이라도 네놈이 가져온 그 무공의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 것 같냐?”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내가 가진 최강의 한 수가 되겠지.’
조금 전 고태식 교관이 보여준 일격.
뇌기를 두른 호랑이의 질주를 떠올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내 모습에 고태식 교관은 입가를 비틀었다.
“네놈이 해야 할 건 간단하다. 이전에 복마구권을 배울 때처럼 맞으면서 각 초식의 활용법을 익힌다. 단, 코어는 계속 활성화된 상태여야 한다. 알아들었지?”
“네.”
“좋아.”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 재주껏 익혀 봐라!”
광소를 터뜨리며 나를 향해 짓쳐들었다.
…
…
…
그로부터 3일 뒤, 목요일 저녁.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제 슬슬 체득해 봐라.”
고태식 교관의 지시에 나는 정중히 답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무영귀살각의 구결을 떠올렸다.
그대로 무아지경 속에서 발을 휘둘러 찼다.
쐐애액-!
초식을 거듭해 나갈수록 발차기에 따른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궤적조차 옅어져갔다.
소리도, 형태도 없이 짓쳐 드는 치명적인 일격.
마침내 최후의 초식에 귀살의 기운이 서렸을 때.
번쩍-
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일순 귀화가 눈앞에 일렁인 듯한 느낌 속에 깨달았다.
무영귀살각을 체득했음을 말이다.
나는 지체 없이 확인에 들어갔다.
스킬창에는.
-무영귀살각(A)
내게 있어 최초이자 최강의 무공임을 증명하는 등급.
A급 스킬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동시에 무공에 담긴 묘리를 자연스럽게 깨우쳤다.
‘귀(鬼)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존재를 대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 있는 건가.’
다만 무영귀살각의 묘리가 발휘하는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체감이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온몸에 고양감이 차오르는 가운데.
“무공의 명칭이 뭐지?”
고태식 교관이 말을 걸어왔다.
“무영귀살각입니다.”
“거참, 어째 네 녀석이 가진 무공들은 하나같이 살벌하기 짝이 없구먼.”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고태식 교관.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뭐, 좋아. 마지막 대련이다. 뒷감당은 걱정하지 말고 한번 네 녀석의 전력을 쏟아 봐라.”
그는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자세를 취했다.
나는 속으로 한 차례 지시를 곱씹었다.
‘전력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 활성화시켜야 할 마나는 혼원의 마나가 아니었다.
무공의 파괴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강 계열의 마나, 현천강기를 발휘할 때였다.
판단과 동시에 코어를 활성화한 순간.
쏴아아-!
현천의 마나가 체내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아무런 제약도 가하지 않은 만큼 현천의 이치에 따라 출력이 갈수록 증폭되어 갔다.
마침내 고점에 이르렀을 때.
‘……지금!’
무영귀살각을 발휘했다.
이에 현천의 마나가 하나의 형상을 이뤄 갔다.
그 모습이 꼭 마지막 숨을 앗아가는 사신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대로 발을 휘두르는 순간, 마치 사신이 낫을 사선으로 베어 가르듯.
서-걱!
눈앞의 세계가 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