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어디 한번 보여 봐라
1학기 기말고사는 교관 대련을 마지막으로 오전 중에 모두 끝이 났다.
그간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모처럼의 휴식을 즐긴 다음 저녁 무렵이 돼서야 친구들과 모여앉았다.
이젠 정례 행사처럼 굳어진 우리들 나름의 소소한 뒤풀이를 위해서였다.
“이번 시험도 다들 고생 많았다!”
마치 건배사처럼 음료수를 들어 올리는 임강철.
그의 외침에 윤설하와 차은월은 옅은 미소와 함께 음료를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나까지 캔을 들어 가볍게 부딪히고 나서야.
“먹자!”
임강철은 공격적으로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거의 반년 가까이 지켜봐 왔던 까닭에 이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을 보였다.
그렇게 과자를 집어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가운데.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번 시험의 성적으로 이어졌다.
“안일한, 너 실기 시험 평균이 몇이랬지?”
“대략 98점?”
“……역시, 실기 점수는 비슷하네.”
윤설하는 진지한 낯빛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녀의 성적을 알게 되니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동점이라, 역시 윤설하는 윤설하네.’
단 한 번만 스쳐도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고태식 교관의 시험 방식부터.
흑영보를 시작으로 벌써 일곱 가지에 이르는 스킬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면에서 내가 윤설하보다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동수를 이뤘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
“은월아 너는?”
윤설하는 차은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전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으응, 94점 정도려나……?”
“오! 대련도 잘 했나 보네?!”
“응,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마치 제 일처럼 기뻐하며 미소 짓는 윤설하.
그녀는 마지막으로.
“임강철, 너는?”
양 뺨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과자를 먹고 있는 임강철을 향해 물었다.
그는 육성 대신 손가락으로 ‘84점’이라 답했다.
이쯤 되니 윤설하가 질문하는 의도가 단순히 성적 확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흐응, 다들 그래도 지원 자격은 여유롭게 충족하는 것 같네.”
그녀로부터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무어라 물어보려는 찰나.
저벅저벅-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까닭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익숙한 인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안일한.”
친구들에겐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평소처럼 무뚝뚝한 말투로 나를 부르는 심인욱.
무덤덤하게 바라보자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름이 아니었다.
“게이트 현장 실습, 신청할 거냐?”
게이트 현장 실습.
느닷없이 튀어나온 화제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그러다 문득 윤설하 또한 나를, 정확히는 내 대답을 주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왜지?’
의도를 알 수 없는 까닭에 의아했지만, 일단 대답을 위해 입을 열었다.
“어.”
“알겠다. 그때 가서 보지.”
“……?”
심인욱은 영문 모를 대답을 끝으로 돌아섰다.
뉘앙스로 봤을 때, 그 또한 게이트 현장 실습에 참여하려는 모양이었다.
다만 의문은 참가 여부를 구태여 내게 묻는 이유였다.
때문에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자, 익숙한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백유진과 오윤서였다.
‘그러고 보니 둘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여태 기말고사를 준비하랴, 김한석을 경계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까닭에 잠시 잊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2학기 때까지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저 두 녀석부터 김한석까지. 어찌 됐든 양쪽 일 모두 방학 이후가 되겠지.’
결국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 건 앞서 여러 차례 언급된 게이트 현장 실습이었다.
적당히 생각을 정리할 무렵 심인욱을 위시한 세 사람은 그대로 매점을 벗어났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윤설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왔다.
“……언제 친해졌어?”
“친해지다니.”
“심인욱!”
“……어, 2주 전?”
이게 친한 건가. 그런 의문을 떠올리면서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 대답에 윤설하는 한동안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녀는 한숨과 함께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이어 갔다.
“내가 하려던 말이 그거였어. 심인욱이 가로챘지만.”
“아, 게이트 현장 실습. 거기에 조건도 있는 거였어?”
“응.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래. 아마도 다음 주 수업 시간에 교관님이 설명해 주실 것 같은데?”
“다음 주 수업 시간이라.”
“어쨌든, 너도 신청하는 거지?”
“아마도.”
짤막한 대답에 윤설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다른 친구들에게도 의사를 묻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윤설하도 참여할 의향이 있는 모양이었다.
친구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막상 게이트 현장 실습에 관한 정보가 없네.’
정확히 실습이 언제,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거기서 무엇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등.
아는 바가 전무했다.
그저 내가 아는 거라곤 그곳에서 차후 김한석에게 대적하기 위한 힘을 얻을 거라는 사실뿐이었다.
‘일단 실습의 방식부터 파악하고 난 다음 그림자 녀석에게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보면 되겠지.’
그 정도로 가닥을 잡을 무렵.
“그럼 다 같이 가면 되겠다!”
윤설하 쪽도 어느새 대화가 끝난 듯싶었다.
나 또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한 만큼 동조하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임강철까지 호응하고 차은월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 그녀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게이트 현장 실습이면 실제로 몬스터와 전투 같은 걸 하게 되려나……?”
“아마 대형 길드가 주관하는 만큼 거의 없을 것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하는 윤설하.
그녀의 대답에 차은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필요할 수도 있으니, 마침 잘됐다. 집사 할아버지한테 미리 연락을 넣으면.”
“응?”
“아, 아니야!”
차은월은 손사래를 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반응에 살짝 의아했으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다시금 잡담으로 돌아가 시험 기간의 스트레스를 푸는 가운데.
‘다음 주 월요일, 그때 되면 알 수 있겠지.’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생각을 곱씹었다.
…
…
…
잠시 후.
뒤풀이를 마치고 각자 기숙사로 돌아가는 가운데.
차은월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지금쯤이면 설하는 벌써 기숙사로 들어갔겠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별안간 스마트 워치를 조작하여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발신음 끝에 이윽고 그녀의 귓가로 노신사를 연상케 하는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가씨.
“할아버지, 몇 가지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요? 별일이네요. 그렇게 거절하시더니.
노신사의 반응에 차은월은 수줍은 듯 말을 이어 갔다.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서, 보답하고 싶거든요.”
-오, 친구분들이라. 혹시 그때 말씀하신 분들인가요?
“맞아요. 그래서 말인데, 검 한 자루하고 건틀렛 두 개, 그리고 오브를 하나만 구해 주세요.”
-등급은 어느 정도로 해 드릴까요?
“으음.”
차은월은 잠깐 말을 멈춘 채 고민했다.
이내 한 사람을 떠올렸는지, 그녀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났다.
“일단 전부 상등품으로 하고, 그중에서 건틀렛 하나는 시그니처 모델로 부탁드릴게요!”
* * *
주말이 쏜살같이 흘러 월요일이 찾아왔다.
오전의 교양 수업과 오후 이론 수업 모두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조용, 오늘 수업은 성적 발표와 몇 가지 전달 사항에 관한 설명으로 대체하겠다.”
7교시부터 시작되는 실기 수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성적부터 발표되는 가운데,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내 등수 때문이었다.
‘반에서 9등, 전교에서도 32등이라.’
중간고사 때 상위 15%를 찍었던 데서 나아가 이번에는 상위 5%를 찍은 것이다.
단순히 목표를 크게 잡고자 상위 5%, 1%를 다짐했던 걸 이렇게 이루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다만 이젠 더 이상 성적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들뜬 감정은 의외로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고, 그보다는 역시 김한석이나 게이트 현장 실습 쪽이…….’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이어서 강제 전출 대상자 명단을 발표하겠다. 면담 대상은 총 19명이며, 호명하는 이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강제 전출에 관한 면담이 시작됐다.
그렇게 8교시까지 전출 대상자와의 면담을 진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주 금요일부터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이번 주 수업은 대부분 자습의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며…….”
다름 아닌 여름 방학.
주의사항과 1달 반이라는 기간, 거기에 초인 아카데미 생도로서의 마음가짐 등.
원론적인 설명을 끝마친 다음에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게이트 현장 실습으로 넘어갔다.
“앞서 설명했듯, 2학기부터는 몬스터 전투 및 레이드에 관한 수업이 이뤄질 거다.”
몬스터와의 전투, 그리고 레이드까지.
본격적으로 전투 계열 초인으로서 거듭나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이번 여름 방학에 진행하는 게이트 현장 실습은 이를 위한 사전 체험이라고 보면 된다. 1학년 한정으로 여름 방학 때 진행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진태진 교관은 단상 위의 홀로그램 화면을 조작하며 설명을 이어 갔다.
“신청 조건은 다음과 같다. 기말고사 성적이 최소 상위 20% 안에 들 것.”
그의 입에서 자격 요건이 흘러나오자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진태진 교관은 이유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 유수의 길드들과 협력하에 이뤄지는 만큼 실력 있는 초인들이 파견되어 관리 감독을 맡을 테니 위험성은 낮다. 하지만.”
진태진 교관이 말을 이어 갔다.
“온갖 변수로 가득한 게이트에 진입하는 만큼 예상치 못한 위험 요소와 직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상위 20%로 제한하는 건 최악의 상황 속,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 유무를 가늠하는 거다.”
그제야 대부분 납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여전히 아쉬운 기색은 남아 있었다.
그런 생도들을 향해 진태진 교관이 입을 열었다.
“단언하지, 이번 실습이 2학기 성적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 거다.”
다만 길드 인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순 있다는 점.
하지만 향후 실습 이외에도 길드 인사들과 접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점 등.
부차적인 설명을 합리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그다음에야 구체적인 사항을 밝혔다.
“신청 기간은 이번 주 목요일까지다. 합격 여부와 실습 기간, 장소 등. 구체적인 정보는 금요일에 각자 스마트 워치로 전달될 테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그렇게 설명을 끝마쳤을 무렵.
딩동댕동-
때마침 8교시 수업이 끝났다.
“이상으로 8교시는 마치겠다. 9교시는 자습으로 진행될 테니, 각자 쉬는 시간을 갖고…….”
진태진 교관이 특유의 엄격한 목소리로 9교시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나는 속으로 게이트 현장 실습에 관한 정보와 더불어 그림자 녀석을 떠올렸다.
‘이제 남은 건 녀석에게 물어보는 건가? 대략적인 내용 정도는 생각해 둬야지.’
필담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녀석과 관련된 다른 부분에도 신경이 가닿았다.
다름 아닌 동기화율이었다.
[특성]
-????의 그림자
동기화율 29%
계승 1단계 –미약한 링크-
‘기말고사 바로 전날에 29%를 달성했으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근시일 내로 30%를 달성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과연 이번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차올랐다.
‘어디 한번 보여 봐라.’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30%]
-[????의 그림자]가 일정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동기화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 효율의 재조정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