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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63화 (63/218)

63화 안일한, 이번에도 만점이다

1학기 기말고사의 실기 시험.

생도 대련의 첫 번째 상대는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그와 마주 선 순간,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참 공교롭네.”

심인욱은 무기술 심화 수업에서 같은 코스를 수학하는 데다가 방과 후 추가 지도까지 함께 받는 사이였다.

그렇게 몇 주간 함께한 만큼 그의 역량은 물론, 주력으로 사용하는 무공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피차일반이다.”

상대방, 심인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순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자세를 갖췄다.

신중한 태도, 그것만 봐도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첫 대련부터 쉽지 않겠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자세를 갖췄다.

심인욱은 흑영보부터 복마구권, 심지어 탈혼지에 이르기까지.

내가 가진 스킬들을 전부 꿰고 있었다.

따라서 어중간한 편법은 먹히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해 보자.’

전의를 불태웠다.

대부분의 조건이 동일한 가운데.

이번에야말로 내 실력을 제대로 측정할 기회나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그림자 녀석이 제공한 유 계열의 마나 심법.’

[혼원공(B+)]

B+급 스킬이자, 강 계열의 현천강기와는 달리 유 계열에 해당하는 마나 심법, 혼원공.

삼재기공을 대체, 아니 아득히 상회하는 혼원공의 효과를 실전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럼 심인욱, 안일한. 대련을 시작해라.”

때마침 시험 감독을 맡은 교관이 대련을 개시했다.

시작과 동시에 심인욱은 그가 가진 절초를 펼쳤다.

쿵-!

다름 아닌 패왕진군보.

A급 스킬이자, 특유의 존재감을 바탕으로 적에게 위압을 가하는 보법.

여태 지켜본 바로는 속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코 빠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쿠웅-!

심인욱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간격이 좁혀질 때마다 위축되어 몸이 굳었다.

즉, 그는 보법만으로 시작부터 우위를 점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그와 상대할 때면 대부분 선수를 빼앗겼다.

더불어 위축된 만큼 신체 강화로 메워야 하는 까닭에 불필요한 마나 소모도 컸다.

‘삼재기공으론 감당이 안 되고, 현천강기를 써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를 직접 증명하여 위압감을 씻어내기 위해 나는 곧장 코어를 일깨웠다.

삼재기공의 마나를 바탕으로 혼원의 이치를 품고 새롭게 태어난 마나.

다름 아닌 혼원의 마나였다.

우우웅-!

웅혼한 기세로 체내를 순환하기 시작하는 혼원의 마나.

그 흐름은 마치 대해와도 같아 고요하지만, 확실하게 체내 곳곳에 흘러들었다.

순환이 이어질수록 패왕의 기세에서 비롯된 위압감은 씻은 듯 사라져 갔다.

이를 알 턱이 없는 심인욱은.

“선취점은 가져가지!”

어느새 목전까지 다가와 묵룡을 두른 일권을 날려왔다.

바로 그 타이밍에 나는 양손을 각기 다른 목적으로 뻗었다.

왼 주먹에는 혼원공을 바탕으로 일으킨 호신을.

오른 주먹은 현천강기의 반발력을 휘감은 복마구권의 일권이었다.

‘마나의 유형화는 아직 무리니까.’

실험 결과, 현천강기의 반발력은 공격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유의미한 위력을 발휘했다.

더욱이 이번 대련에서의 마나 활용은 호신까지만 허용되는 만큼 꽤 유효한 타격이 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너!”

생각 이상으로 기민하게 대처하는 내 모습에 심인욱의 동공이 순식간에 커졌다.

하지만 반격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때문에 심인욱은 황급히 마나를 끌어올려 전신에 호신을 일으켰다.

그 순간.

쩌-엉!

묵룡의 일권이 내 왼 주먹과 충돌했다.

반면 반발력을 품은 내 일권은 그대로 심인욱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카가가강-!

톱날이 갈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마나의 파편이 사정없이 튀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현상은 현천강기의 위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심인욱이 가진 마나 심법 또한 비범한 스킬인 만큼 완벽하게 파훼하진 못했다.

물론.

‘그럴 줄 알았지.’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스윽-

오른손을 살짝 뒤로 물린 채, 곧바로 탈혼지를 발휘한 것은 말이다.

하지만.

“……어딜!”

심인욱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 간격을 벌렸다.

패왕진군보와는 또 다른 보법인 듯했다.

한층 신중해진 기색으로 주시하는 심인욱의 모습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젠 진짜 정공법밖엔 답이 없겠네.’

가장 최근에 그림자 녀석에게서 받은 심법.

혼원공은 기본적으로 삿된 기운, 불온한 효과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본래 녀석이 환영 마법에 대비하여 제공한 스킬이었으나, 이런 효과를 알게 된 이후 일부러 아껴 뒀다.

덕분에 방금 교환에선 분명히 이득을 봤으나, 더 이상은 무리인 듯했다.

‘구체적인 정보까진 모르겠지만.’

심인욱의 반응을 봤을 때, 패왕진군보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깨달은 눈치였다.

그 점이 살짝 아쉬웠으나, 금세 털어 버렸다.

아직 대련이 끝나지 않았음은 물론.

‘패왕진군보를 봉쇄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A급 스킬을 사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수확은 충분한 까닭이었다.

덕분에 심인욱과의 대련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난타전이 벌어진 것이다.

콰앙! 쾅-!

더 이상 고고한 척, 상대를 내려다보는 심인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간 고태식 교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서 그런 건지.

“제법이지만, 아직 멀었어!”

그의 전투 스타일은 상당히 호전적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서로를 두들긴 끝에.

“그만! 점수를 집계할 때까지 둘 다 대기하도록.”

어느새 대련의 제한 시간이 끝났다.

체력은 물론, 현천강기부터 혼원공까지 모두 끌어다 써서 그런지 진이 빠졌다.

반면 심인욱은 호흡이 거칠지언정 자세를 흐트러뜨리거나 하진 않았다.

‘……역시 아직은 부족한가.’

승부의 우열이 분명하게 갈리진 않았으나, 지닌바 역량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시험 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인욱 97점, 안일한 88점이다!”

88점.

90점을 넘기지 못한 건 아쉬웠으나, 상대가 심인욱이었음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게다가 배운 점도 많았고.’

나름 만족스러운 대련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남은 시험, 잘 쳐라.”

심인욱이 무뚝뚝하게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예전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많이 익숙해졌다.

때문에 나도 그를 향해 짤막하게 대꾸해 줬다.

“어, 너도.”

그렇게 심인욱과의 대련을 시작으로, 두 차례의 대련을 거듭했다.

다행히 두 번째, 세 번째 상대는 중위권에서 중하위권 성적의 생도로 매칭된 덕분에 그리 빡세진 않았다.

그 결과.

‘평균 93점. 이 정도면 충분하다.’

넷째 날 시험도 만족스러운 성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 * *

다음 날.

1학기 기말고사의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날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시험 과목은 다름이 아니었다.

“애송이들, 잘 들어라! 기준은 수행평가 때와 동일하다! 나를 한 번이라도 스치면 만점이며, 그 외에는 철저히 내 주관으로 평가할 거다.”

바로 교관 대련.

내 경우, 건틀렛 심화 수업을 담당하는 고태식 교관과의 실전 대련이었다.

시험 방식이며, 기준까지. 대부분 수행평가 때와 동일한 가운데 딱 한 가지가 달랐다.

“참고로 이번 시험에서 내가 발휘할 힘은 정확히 D급 수준이다. 참고하도록!”

대련에 임하여 고태식 교관이 발휘하는 무력.

지난번 E+급에서 한 단계 상승한 D급이었다.

현재 나는 스텟부터, 가진바 역량까지. 전부 D급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림자 녀석 덕분에 마력 스텟 만큼은 그나마 D급 수준이지만.’

더욱이 이전과는 달리 허를 찌를 만한 무기도 없었다.

그간 수업과 개인 교습 시간에 탈혼지를 포함하여 밑천을 탈탈 털렸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희망은 혼원공 정도려나.’

혼원공은 단순히 삿된 기운의 천적과도 같은 효과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효과일 뿐.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추후 혼원의 이치에 다다랐을 때 새로운 효과가 발현된다는 모양이었다.

다만 현재 나는 아직 이치에 닿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혼원공을 희망적인 요소로 꼽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유 계열 마나 심법의 특징이 내구성과 지속력, 그리고 견고함이니까.’

즉, 혼원공의 방어력을 바탕으로 한층 공세적인 전투가 가능했다.

심인욱과의 대련에서 난타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혼원공 덕분이었다.

그 정도로 전략을 세운 채 차례를 기다렸다.

수행평가 때보다 매서운 기세로 생도들을 하나둘씩 박살 내는 가운데.

“안일한, 후딱 튀어나와라!”

내 차례가 다가왔다.

특유의 거친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천천히 다가가 마주 서는 순간, 고태식 교관이 입가를 비틀며 소리쳤다.

“와라!”

노호성과도 같은 외침에 나는 곧장 흑영보를 펼쳤다.

이내 고태식 교관의 발치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본래라면 그곳을 밟는 것만으로 사각(死角)을 점할 수 있을 테지만.

“어림없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고태식 교관이었다.

반응 속도는 D급 수준이었으나, 발을 딛고 선 위치가 참으로 교묘했다.

내 움직임에 맞춰 언제든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 확인한 순간, 나는 곧바로 판단을 달리했다.

‘사각을 점하는 건 포기한다. 그 대신…….’

정면으로 승부한다.

결정한 즉시 탈혼지와 복마구권을 동시에 발휘했다.

그 전에 먼저 고태식 교관의 큼지막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후욱-!

묵직한 일권.

위력도 위력이거니와, 초근접전에서 펼치는 기교 또한 상대가 안 됐다.

어설픈 반격 시도는 되레 치명적으로 돌아올 터.

바로 그 때문이었다.

고오오-!

신속하게 혼원공의 마나를 이끌어낸 것은 말이다.

때마침 상반신을 호신으로 뒤덮은 순간.

터-엉!

고태식 교관의 일격이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타격이 확실히 약하다.’

그러니 충분히 할 수 있다.

치솟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복마구권의 후반 3초식을 연거푸 펼쳤다.

콰앙-! 쾅!

소리는 물론,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까지.

제법 기세가 실린 강맹한 공세였으나.

“좋구나!”

오히려 고태식 교관의 눈빛은 흉흉하게 빛났다.

그는 호신조차 발휘하지 않은 채, 그것도 맨주먹으로 내 공세를 받아 냈다.

투로를 사전에 차단하는 식으로 막아 내는 탓에 별다른 피해조차 없어 보였다.

더욱이 내 공격과 공격 사이의 텀을 100% 활용하여 반격을 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점점 내 몸에 데미지가 쌓여 가는 가운데.

‘……그렇다면.’

나는 템포를 끌어올렸다.

혼원공을 유지한 채로 양 주먹에 현천강기의 반발력을 두른 것이다.

거기에 현천강기의 이치까지 담아냈다.

그러자.

쐐애애액-!

은회색의 마나가 양 주먹에서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거의 건틀렛의 절반을 뒤덮을 정도의 규모로 말이다.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고태식 교관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동시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궤적 자체를 틀어 버리기 위해 그의 양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완전히 비틀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덕분에 내 혼신의 힘을 담은 일격은.

콰앙-!

그대로 고태식 교관의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됐다.’

짜릿한 손맛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가운데, 고개를 슬쩍 들었다.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고태식 교관이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우뚝 서 있었다.

거기서 그는 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안일한, 이번에도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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