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한 차원 더 높이 도약하는 것
시범용 대련에 뜬금없이 강진솔이 자원한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강진솔, 저놈이 나왔으니까 김한석 문제는 잠시 미뤄 두기로 하고.’
우선 눈앞에 집중하기로 했다.
동시에 한 가지, 실험할 만한 것을 떠올렸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휘익-!
모종의 속셈을 가지고 선공을 펼치는 강진솔.
그의 일격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이다.
호신의 마나를 덧씌운 왼손의 건틀렛으로 막아 낸 순간.
카강-!
생각 이상의 충격이 전해졌다.
‘……이게 유형화된 마나의 위력.’
머릿속에 새겨두는 사이, 강진솔의 검이 교묘한 궤적을 그렸다.
두 번째 일격, 이거야말로 그의 진정한 노림수임을 곧바로 깨달았다.
하나 개의치 않았다.
나 또한 노림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떠올린 즉시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 순간 강진솔의 전신 곳곳에 불그스름한 반점이 드러났다.
다름 아닌 탈혼지였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과연 구명절초이자 상대를 행동불능에 빠뜨리는 탈혼지의 효과가 호신을 뚫을 수 있는지.
그런 생각으로 녀석의 팔뚝에 나타난 반점을 신속하게 꿰뚫었다.
하지만 상황은 다소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츠즛-!
곧장 반응하고 호신으로 막아낼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듯, 강진솔은 그대로 꿰뚫려 행동불능에 빠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그의 동공이 사정없이 떨렸다.
기대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왼 주먹을 날렸다.
콰직-!
살벌한 소리와 함께 내 건틀렛이 강진솔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타격이 제대로 들어간 까닭인지.
“커, 헉!”
강진솔은 새우처럼 구부러지며 헛숨을 터뜨렸다.
그렇게 수 초간 비틀거리고 나서야 그는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이내 그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네, 네 녀석 방금 그 사술은 도대체 뭐야!”
B+급 무공인 탈혼지를 두고 사술이라니.
저렴하기 짝이 없는 표현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는 구태여 이를 설명하는 대신 짤막하게 대꾸했다.
“사술은 아니야, 사술은.”
“그럼 뭔데!?”
“대답해 줄 의무는 없는 거로 아는데. 직접 알아내 보던가.”
“이익……!”
분통을 터뜨리며 간격을 벌리는 강진솔.
그는 복부를 움켜쥔 채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추측건대 아직 탈혼지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 대신 내게 뭔가가 있다는 것 정도는 느꼈는지, 신중한 기색으로 호신을 발휘했다.
그것도 부분 활용이 아닌 전신으로 말이다.
‘저러면 확실히 탈혼지가 먹힐지는 미지수지만.’
반대로 마나 소모는 늘어날 터.
그 증거로 녀석의 검을 휘감던 유형화된 마나의 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이건 이거대로 할 만하겠는데.’
그런 생각과 함께 이번에는 내가 먼저 박차고 나갔다.
흑영보의 묘리에 몸을 맡긴 채,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이 자식이……!”
강진솔은 검 손잡이를 바투 잡은 채 그대로 올려벴다.
이를 향해 왼손을 펼치며 호신을 발휘했다.
쌔애애액-!
내 손아귀에서 강렬하게 소용돌이치는 은회색의 마나.
또다시 격돌한 순간, 깨달았다.
카가가가각-!
이전에 비해 충격량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음을 말이다.
마나의 파편이 요란하게 튀는 가운데, 한 치의 양보조차 없는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확실히 이만한 수준은 반발력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대련을 통해 얻은 정보를 착실하게 갈무리하는 한편.
나는 비어 있는 오른손을 복마구권의 묘리에 따라 쭉 뻗었다.
녀석의 가슴팍을 강타하려는 찰나, 검지를 들어 탈혼지로 전환했다.
그대로 마나로 이루어진 막을 두드린 순간.
쩌적-
녀석의 호신에 미세한 실금이 갔다.
다만.
“지법이었군, 이런 야비한 자식!”
행동불능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호신의 마나를 뚫으려면 적어도 마나의 유형화 경지에는 올라야 하는 모양이네.’
값진 데이터를 머릿속으로 갈무리하는 한편, 미련없이 간격을 벌렸다.
이로써 내 공격 기회는 모두 끝난 까닭이었다.
반면 강진솔에겐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지만.
“죽어!”
앞서 유효타를 제대로 허용해 버린 탓인지, 분기탱천한 채로 달려들었다.
난폭하고 살벌한 기세였으나 그만큼 단조로웠다.
때문에 나는 양손의 건틀렛 전체를 뒤덮는 수준으로 호신을 발휘한 채 양팔을 교차하여 들어 올렸다.
콰앙-!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온 반면, 제대로 방어를 한 덕분에 피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강진솔은 곧장 다음 일격을 위해 검을 거둬들였다.
그 순간.
“그만, 대련은 이걸로 종료할게요.”
김한석으로부터 중지 신호가 떨어졌다.
변함없이 서글서글한 목소리였으나, 그 속에는 단호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때문에 강진솔은.
“……크흑!”
분통함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김한석은 그렇게 뜻밖의 단호함으로 강진솔을 단념시킨 다음,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한 생도, 잘 봤어요. 실험적이면서도 노련한 전투 스타일이라니. 정말이지 놀랍네요.”
“……감사합니다.”
핵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언급하며 칭찬하는 김한석.
그저 평범한 교관이었다면 별문제 없었겠지만, 그는 달랐다.
환영 마법의 사용자이자, 차후 격변의 시발점이 되는 위험한 존재.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지켜볼게요. 어디까지 올라갈지.”
김한석이 몸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에 소름이 쫙 끼친 것은 말이다.
더불어 내용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그의 목표이자 흥미를 보이는 대상이 내 재능 넘치는 친구들, 차은월이나 윤설하가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이 아닌.
‘……나를 주시하고 있어.’
내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말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둘씩 짝을 이뤄 실습을 진행할게요. 원하는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진행하는 김한석.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녀석이 김한석의 표적이 될거라 언급한 인원은 총 5명이었다.
하나같이 재능이 범상치 않은 이들로, 그 속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나 지금 김한석의 관심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물론 차은월, 윤설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 내가 주시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나는 결심했다.
‘이건 그림자 녀석과 의논해 봐야겠어.’
정말 김한석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편이 좋을지.
오늘 밤 필담을 통해 녀석과 의논해 보기로 말이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26%]
-[????의 그림자]가 일정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의 절반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
…
…
그림자는 일어나기가 무섭게 책상을 향했다.
녀석이 상황을 공유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나서부턴 메모를 먼저 확인하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녀석은 메모를 남겨 뒀다.
내용을 전부 확인한 그림자는 굳은 낯빛으로 침음을 흘렸다.
“……흐음.”
김한석이 자기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녀석의 메모에는 판단의 근거가 나열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납득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때문에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대책을 세워 놓은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활약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테니까.’
계획과 안배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바탕으로 최선과 최악, 두 가지 경우를 대비하여 짜인 것이다.
다양한 변수를 헤아렸으나, 그 속에 안일한의 활약에 관한 비중은 적었다.
그만큼 어느 누구도, 심지어 그림자 그 자신도 기대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
예상치 못한 상황이 안일한의 활약으로 인해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나쁘지 않다.’
상황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관점에 따라선 기존에 상정했던 최선의 상황보다 좋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단, 현 상황을 이점으로써 활용하려면 마땅한 조치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안배의 절차를 조금 조절할 필요가 있겠어.’
그에게 안배된 힘을 미리 당겨서 제공한다든지.
떠올린 즉시 그림자는 스텟을, 그중에서도 마력 스텟을 살폈다.
-마력 스텟 30
30스텟.
사실 이만한 스텟이면 마나 활용, 즉 신체 강화나 호신의 활용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여기서 조금 더 무리한다면 마지막 단계인 마나의 유형화까지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역량의 레벨을 올리는 데 불과하다.’
그래 봐야 단지 강해질 뿐이었다.
김한석의, 환영 마법의 마수로부터 자신을 보신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필요한 건 단계적인 성장이 아니다.
역량의 증진에서 나아가 한 차원 더 높이 도약하는 것이었다.
고민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사이, 어느새 마력 단련실에 도착했다.
텅 빈 공간의 정중앙에 홀로 자리를 잡은 채로 다시금 생각을 이어 갔다.
‘본래라면 둘이 하나가 되어야만 진정한 이치에 가닿을 수 있겠지만.’
둘이서 하나로 합쳐졌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묘리를 펼칠 수 있을 터.
하지만 개별적으로 활용해도 당장의 목적을 달성하기엔 충분했다.
이를 되새기며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되면 온전히 한 차원을 도약하는 건 아닐지도.’
반 차원 정도가 적당하리라.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고는 코어를 일깨웠다.
그의 의지에 두 종류의 마나가 반응했다.
그중에서도 여태 은은하게 토대로써 지탱해 준 삼재기공의 마나를 이끌어냈다.
스스스-
유려하게 흐르는 마나.
느릿하지만 견고하고 안정적이다.
그 속에 그림자는 끊임없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삼재기공의 마나 속에 서서히 하나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삿된 기운이 감히 침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끔.
정순하고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운이 아주 느린 속도로 스며들었다.
다름 아닌 혼원(混元)의 기운이었다.
* * *
그림자의 새로운 선물을 연마하고, 김한석의 꾸준하고도 다양한 방식의 관심을 헤쳐나가는 사이.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흘러 1학기 기말고사 시기가 찾아왔다.
중간고사 때와 마찬가지로 신경 써야 할 문제가 많았기에 다소 걱정했으나.
‘이론 시험 평균 88점. 이 정도면 충분히 선방했다.’
이번에도 역시 윤설하와 차은월.
두 사람에게 족집게 강의를 받은 덕분에 무사히 이론 시험을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셋째 날부터 실기 시험이 시작됐다.
첫 시작은 마나 활용, 신체 강화의 활용 역량을 평가하는 스텟 서킷 트레이닝이었다.
결과는.
“안일한 생도, 전 코스 만점으로 총 점수 100점이다.”
100점, 만점을 받았다.
그림자 녀석의 새벽 단련에 더하여 나 또한 마력과 대련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결과였다.
거기다 녀석이 제공한 새로운 마나 심법의 덕도 톡톡히 봤다.
기세를 몰아 마나 활용의 두 번째 과목, ‘호신 유지’ 테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전신에 호신을 유지하는 건 완벽하지만 부분적인 활용이 살짝 아쉽네요. 그래도 훌륭합니다. 역시 일한 생도라고 할까요? 총점 92점입니다.”
92점. 호신의 부분 활용에서 감점을 받았음에도 90점을 넘겼다.
그리고 다음, 넷째 날부터는 생도 간의 실전 대련 과목이 시작됐다.
피격 횟수를 측정하는 장비를 착용한 채 1학년 전체 인원 중 무작위로 선정한 3명과 대련을 펼치는 것.
그게 바로 생도 대련의 시험 방식이었다.
대련 상대가 무작위로 정해지는 까닭일까.
“……참 공교롭네.”
나는 첫 번째 대련부터 참으로 공교로운 상대와 대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