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김한석의 물음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만큼 그의 꿍꿍이속은 알기 어려웠다.
‘……대체 무슨 의도지?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이 사람을 의식하고 있는 건가?’
그림자 녀석의 이야기에 따르면 김한석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시기는 2학기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시점에선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을 터였다.
이런 식으로 애써 생각을 정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김한석의 조언.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그 내용이 계속해서 맴도는 까닭이었다.
때문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겠습니다.”
“좋아요. 한번 봐줄 테니, 바로 시도해 보세요.”
“네.”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최대한 압축한다는 느낌으로.’
최종적으로 반점에 가까울 정도로 미소한 범위로 마나를 순환시키는 것.
이를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오른손에 현천의 마나를 이끌었다.
손바닥만 한 범위로 순환하던 마나는 금세 반응했다.
그 상태로 조금씩, 압축시키듯 범위를 좁혀 나갔다.
쏴아아-!
그야말로 거칠기 짝이 없는 기세로 회전하는 마나.
범위가 줄어들수록 출력이 맹렬하게 증폭되는 한편.
마나 소모량 또한 빠르게 줄어들었다.
동시에 손바닥을 감싸는 은회색의 마나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쌔애애액-!
마치 톱날이 미친 듯이 회전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색채가 한층 선명해졌다.
나아가 은회색 마나는 중앙의 한 점을 기준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마나의 출력은 물론, 마나 소모량까지.
조금 전에 발휘한 호신의 부분 활용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믿기 힘든 결과물에 어안이 벙벙한 한편, 자연스럽게 위력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과연 반발력의 제대로 된 위력은 어느 정도일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자, 그럼 시험해 봐야겠죠?”
정면에서 김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에 반응하기도 전에 별안간 시야가 검보랏빛으로 뒤덮였다.
“……!”
반 박자 늦게 반응하여 두 눈을 부릅뜨는 찰나.
슈와악-!
주먹만 한 크기의 구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사고가 따라갈 틈조차 없이 벌어진 일에 나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쭉 뻗었다.
그대로 안면을 강타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오른손으로 막아 냈다.
그렇게 충돌한 순간.
파아앗-!
그대로 검보랏빛 구체가 갈려 나갔다.
마치 톱날처럼 김한석의 마법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 것이다.
황당함이나 분노 이전에 경악스러운 감정부터 밀려들었다.
‘……이게 바로 반발력.’
물론 방금 김한석이 시전한 마법은 결코 전력은 아닐 터였다.
이는 당장 며칠 전에 봤던 차은월이 발휘한 무지막지한 규모의 마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개 생도가 그러할진대, 교관인 김한석이 그보다 떨어질 일은 없는 까닭이었다.
다만 놀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단지 연상하는 방식이나 마나의 순환 경로만을 바꿨을 뿐인데…….’
이만한 변화가 있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더불어 이 점을 정확히 짚어 조언해 준 김한석의 통찰력 또한 소름이 끼쳤다.
때문에 그저 입을 쩍 벌린 채 속으로 되뇌고 있을 때.
“역시 일한 생도는 굉장한 심법을 가지고 있네요.”
김한석이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게다가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감각도 상당히 뛰어나고요. 아주 흥미로워요.”
내가 가진 현천강기에 대한 평가에 이어 감각, 습득력을 칭찬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의 본심이 후자에 치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저 눈빛이 위험하단 말이지.’
김한석의 속내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눈빛.
그의 눈동자가 위험한 느낌으로 반짝이는 까닭이었다.
최대한 속내를 들키지 않게끔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을 때.
“일한 생도라면 머지않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럼 정진하길 바라요.”
싱긋, 미소와 함께 김한석은 몸을 돌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윤설하나 차은월에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그대로 멀어져갔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기를 수 초.
일단 호신 쪽으로 신경을 돌렸다.
그렇게 얼마간 김한석의 조언대로 호신의 부분 활용에 집중했다.
그 사이 김한석이 연습을 위해 제공한 시간이 끝났다.
‘드디어 실전 대련에서 활용해 보는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김한석이 생도 전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대련을 통한 호신의 실전 활용 수업으로 넘어갈게요.”
본격적으로 실습 과정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다들 무기술 심화 수업을 거쳤으니 초식 교환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범을 보여 줄게요. 지원자는, 음.”
김한석은 잠시 말을 멈춘 채 고민하는 기색으로 두리번거렸다.
생도들을 한차례 쭉 훑는 가운데, 그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춰 섰다.
눈길이 가닿은 곳을 알아챈 순간 내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똑바로 주시하는 까닭이었다.
단순히 시선을 교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김한석은 싱글거리는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일한 생도, 나와 주시겠어요?”
* * *
트라우마, 열등감, 공포, 분노 등.
마음의 균열은 대개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발생한 틈새는 환영 마법의 전제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맥락으로 봤을 때, 안일한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제 나이 또래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균열을 품고 있을 줄은.’
그의 생활기록부를 통해 알게 됐다.
그가 어렸을 적 겪었던 천재지변과 그로 인해 비롯된 상처, 그리고 지금의 활화산 같은 감정을 말이다.
게다가 지켜본 결과, 동료 교관들의 평가만큼 안일한에겐 특별한 면이 있었다.
탁월한 자질을 가졌으나 마음의 균열이 일어난 생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때문에 간단할 줄 알았다. 마음먹고 파고들면 언제든 씨앗을 심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변함없이 표정을 읽기가 쉽지 않은 친구야.’
마음속 틈새는 큼직한 반면, 파고들 틈은 포착해 내는 게 쉽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호명했을 때 그가 보인 반응만 봐도 그랬다.
“……!”
느닷없는 호명에 안일한의 동공이 일순 커지며 이채가 서렸다.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며 눈빛에 서린 색채 또한 천천히 무색으로 변모해갔다.
즉, 감정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아니, 만일 있다고 한들 겉으로는 조금도 드러내질 않았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균열을 품고 있는 생도들은 대개 고독하다.
따라서 속내를 파고드는 일도 쉬웠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은 순간, 김한석은 자연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뭐 좋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방금 호명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보다 정확한 재능, 자질을 파악하려는 이유 절반.
파고들 만한 구석을 알아보려는 목적이 나머지 절반이었다.
생각을 정리할 무렵, 안일한이 다가왔다.
그를 한 번 확인한 다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일한 생도의 상대는 음, 누가 좋을까요.”
넌지시 운을 뗀 순간,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교관님, 제가 하겠습니다.”
김한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원한 생도 쪽으로 흘러갔다.
그는 가장 먼저 생도의 눈빛을, 그 속에 담긴 감정을 살폈다.
‘……적개심? 나쁘지 않네.’
어째선지 자원한 생도의 눈동자에는 안일한을 향한 적의로 가득했다.
마치 벼르고 있었던 것처럼 가감 없이 제 감정을 드러내는 생도.
김한석은 그를 향해 차분하게 물었다.
“생도의 이름은 어떻게 되죠?”
“강진솔입니다.”
“좋아요, 진솔 생도. 이쪽으로 나와 보세요.”
강진솔의 접근을 확인하는 한편.
고개를 돌려 안일한의 모습을 살폈다.
과연, 둘 사이에 모종의 사정이 있는지 안일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상대와 대련하는 것보단 볼 만할 터였다.
때마침 잘됐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두 생도가 일정한 간격을 둔 채 서로를 마주 봤다.
안일한은 그저 무덤덤하게 쳐다보는 반면, 강진솔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를 살피던 김한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룰은 간단해요. 각자 세 번의 공격 기회를 갖고 대련에 임하면 됩니다. 교환이지만, 공격이나 방어는 재량껏 하되, 방어 시 호신을 활용하면 됩니다.”
설명과 함께 김한석은 한 발짝 물러났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호신의 실전 활용 및 유지를 위한 대련임을 명심하세요. 다만 실기 시험의 대비를 겸하는 만큼 실전처럼 임하길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세요.”
설명을 끝마친 순간.
스릉-
강진솔은 경쾌하게 검을 뽑아 들었고, 안일한은 두 주먹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서로 자세를 갖추며 준비를 끝마친 순간.
“흐읍!”
강진솔이 기합을 터뜨렸다.
동시에 그의 두 손으로부터 불투명한 마나가 일었다.
그대로 칼날을 뒤덮는 마나에 김한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나의 유형화. 상당히 빠르네요.”
출력이 불안정하고, 마나의 조절이 미흡할지언정 저건 분명 3단계 마나 활용.
마나의 유형화였다.
그의 감상에 강진솔은 시선을 안일한에게 고정한 채로 곧장 되물었다.
“안 되는 겁니까?”
이에 김한석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관없습니다.”
과연 자신보다 높은 성취를 갖춘 상대를 어떻게 상대할지, 호기심이 동한 까닭이었다.
그런 김한석의 기대에 부응하듯, 안일한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강진솔을 향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의 느닷없는 미소에 강진솔의 얼굴이 순식간이 시뻘게졌다.
결국 못 참겠는지.
“끝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
강진솔은 노호성과 함께 먼저 달려들었다.
경쾌한 발놀림, 보아하니 그는 제대로 된 보법도 갖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내리치는 일검 또한 그가 무공을 익히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역량이었다.
과연 안일한은 어떻게 대처할지.
호기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스윽-
별안간 안일한이 왼손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일어난 은회색의 마나가 그의 건틀렛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썩 훌륭한 마나 심법이긴 해도 유형화를 이룬 마나와 맞닥뜨린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충격량이 클 것이다.
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강진솔은 첫 일격으로 단조로운 초식을 택한 듯했다.
반면 안일한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쌔애애액-!
그저 가르쳐 준 호신의 부분 활용을 발휘한 채 왼 주먹을 쭉 뻗었다.
그대로 격돌한 순간.
카가가가강-!
마치 톱날이 갈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과 주먹이 일순간 허공에서 정지했다.
조금 전, 마나의 구체를 갈아 버렸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강진솔은 이때다 싶었는지.
“하아압!”
예상대로 마나를 한층 불어넣은 채, 검로를 순식간에 뒤틀었다.
그의 검이 교묘한 궤적을 그리며 순식간에 건틀렛을 타고 하단을 향했다.
카가가각-!
목표는 안일한의 허벅지였다.
이대로 가면 조금 전의 교환 때보다 더 큰 충격이 가해질 터였다.
‘……겨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좀 실망인데.’
입맛을 다시며 안일한을 지켜보는 찰나.
“……!”
김한석은 목격했다.
순간적으로 안일한의 눈동자에 불그스름한 이채가 서리는 광경을 말이다.
강진솔은 미처 보지 못했는지 입꼬리가 귀에 걸리듯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끝이다-!”
마침내 허벅지를 양단할 기세로 내리치는 순간.
스윽-!
거뭇한 일섬이 강진솔의 오른쪽 팔뚝을 스쳤다.
동시에 그의 칼날이 허벅지의 바로 위에서 멈춰 섰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강진솔은 사고가 따라가질 못했는지 두 눈을 부릅떴다.
반면 안일한은 모든 게 계산대로라는 듯.
휘익-!
무표정하게 오른쪽 주먹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