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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57화 (57/218)

57화 남은 건 당신의 몫이야

‘……이건 설마 계승 현상?’

느닷없이 시작된 계승 현상의 전조.

이에 나는 입을 쩍 벌렸다.

그런 내 모습에 차은월은 한층 걱정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꿈속에 나온 여성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재차 들려왔다.

“괘, 괜찮은 거야?”

-반발력. 현천강기를 바탕으로 발휘한 호신은 반발력을 띠게 될 거야.

두 목소리가 동시에 귓가에 흘러들었다.

그것도 두 가지 음색이 완전히 겹친 채로 말이다.

‘……그럴 리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은월은 나와 같은 17살인 반면, 꿈속의 여성은 외견부터 음색까지 완숙한 성인이었으니 말이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은 순간, 불현듯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만약에 차은월이 지금보다 나이가 들어 목소리에 앳된 기색이 사라진다면…….’

꿈속의 여성 같은 느낌으로 변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신할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눈앞의 차은월은.

“식은땀까지 흘리는데, 정말 괜찮은 거야……?”

목소리도 작고, 말투도 전반적으로 상냥한 느낌이다.

반면 꿈속의 여성은.

-……착각하지 마. 반발력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효과일 뿐이니까. 핵심은 호신이라는 점을 명심해.

말투부터 날이 서 있을뿐더러 똑 부러진 인상이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일단 의문은 잠시 미뤄 두자.’

그러고는 눈앞의 상황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차은월뿐 아니라 윤설하, 임강철까지.

모두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까닭이었다.

때문에 나는 친구들이 김한석 교관을 호출하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몸이 안 좋으면 참지 말고 말해 줘.”

“어, 고마워.”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차은월은 살짝 떨어졌다.

여전히 그녀의 눈빛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남아있었으나, 일단 나는 신경을 돌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먼저 감각이야. 강 계열의 마나 심법은 마나의 흐름이 거칠기 때문에 유 계열과는 조금 달라.

꿈의 뒷이야기.

호신에 관한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까닭이었다.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김한석 교관의 강의 내용도 함께 떠올렸다.

그사이에도 강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나의 흐름을 최대한 체내의 가장자리로 순환시키는 감각이야.

-계속해서 밀어내고, 확장시키는 느낌, 전신이 마나로 이루어진 얇은 막으로 뒤덮일 때까지.

-부분적으로 활용하거나, 반탄력을 띠게 만드는 방법은……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설명.

이는 김한석 교관의 강의보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환청처럼 들려서 그런 건가?’

절로 흘러나오는 탄성과 함께 의문을 떠올리는 사이.

-이 정도면 됐지? 남은 건 당신의 몫이야.

강의가 끝을 맺었다.

동시에 온몸에 기묘한 감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낯설지만 반가운 현상, 이는 다름 아닌 경험의 계승이었다.

누군가의 역량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감각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호신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현천강기를 바탕으로 호신을 펼치는 방법을 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의의 마지막쯤에 언급된 두 가지 응용.

호신의 부분적인 활용과 반탄력을 띠게 만드는 마나의 순환 방식까지.

전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보자, 한번.’

그 즉시 나는 몸속에 각인된 감각에 따라 현천강기를 발휘했다.

쿠구구궁-!

코어에서부터 현천의 마나가 노도와도 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해를 연상케 하는 도도한 흐름.

격류의 방향을 최대한 체내의 가장자리로 향하게끔 의지를 담아냈다.

출력과 더불어 순환의 범위가 빠른 속도로 확장됐다.

그 결과.

우우웅-

마침내 마나의 체외 사출이 이뤄졌다.

은회색, 선명한 마나가 얇은 막처럼 전신을 은은하게 뒤덮은 것이다.

‘……이게 바로 현천강기.’

현천의 마나를 실물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감상과 함께 마나 소모량, 순환 경로 등을 되새기고 있을 때.

“일한이, 설마 호신을 펼친 건가!?”

바로 옆에서 임강철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어.”

“버, 벌써 깨달은 건가?! 역시 나의 호적수……!”

충격을 받은 듯, 일순 말까지 더듬었다.

반응을 보이는 건 비단 임강철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이젠 놀랍지도 않네.”

윤설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내 옅은 미소와 함께 축하의 말을 건네왔다.

마지막으로 차은월은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일한이는 대단하구나.”

몽롱한 표정으로 감탄을 하는 한편.

그녀의 눈빛에는 왠지 기대감과 비슷한 감정이 서려있었다.

나는 적당히 대꾸해 준 다음, 곧바로 나머지 활용으로 넘어갔다.

아니, 넘어가려는 순간.

“호오, 벌써 호신을 이뤘네요?”

별안간 뒤쪽에서 서글서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체는 다름 아닌 김한석 교관이었다.

대꾸를 위해 고개를 돌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오싹-

왠지 모를 오한이 들었다.

그만큼 김한석 교관의 눈빛은 어딘가 묘한 기색이었다.

때문에 순간 말문이 막혀있을 때.

“안일한, 일한 생도 맞죠?”

김한석 교관이 싱글거리며 말을 건넸다.

그제야 나는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태진 교관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주 출중한 생도라고.”

“아, 감사합니다.”

“지금 보니 어째서 태진 교관님께 총애를 받는지, 그 이유를 알겠네요.”

웃는 낯으로 칭찬을 늘어놓는 김한석 교관.

조금 전의 섬뜩한 감각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다소 찝찝한 기분이 들었으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 대답을 이어 갔다.

그렇게 한두 마디 정도를 주고받았을 때.

“몸으로 체감했겠지만, 호신은 마나 소모가 제법 큰 편이에요.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하기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테니, 계속 정진하길 바랄게요.”

격려와 함께 김한석 교관은 살짝 물러났다.

끝으로 그는 윤설하와 차은월에게 한 번씩 시선을 주고 나서야 다른 생도들 쪽으로 이동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는데, 왜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부터 왠지 꺼림칙한 감각까지.

석연치 않은 느낌 속에 나는 애써 신경을 돌렸다.

‘일단 호신의 나머지 활용부터 해 보자.’

그렇게 나는 곧장 호신의 응용 연습에 들어갔다.

* * *

방과 후.

“그럼 우린 먼저 간다?”

“이따 보자고, 일한이!”

두 사람, 윤설하와 임강철의 인사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 저녁 맛있게 먹어.”

그러고는 남아 있는 차은월과 함께 마력 단련실을 벗어났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자의는 아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그림자 녀석의 요청대로 차은월의 문제점.

그녀의 특성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장소는 무기 훈련실이면 적당하겠지.’

해결책을 고스란히 전해 준 다음, 가상 대련으로 실험해 보면 될 듯싶었다.

그만큼 그림자 녀석이 알려 준 해결책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단순했다.

다만 그 방법이 그녀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지에 대해선 확신이 서질 않았다.

‘특성 발현의 원리까진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

특성 발현에 요구되는 마나 소모량부터, 마나의 순환 경로 등.

미구현 특성인 나로서는 특성 발현의 전반적인 사항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만일 차은월이 세세하게 질문하면 과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그런 고민을 떠올리는 가운데, 어느새 무기 훈련실에 도착했다.

“저, 일한아.”

여태 말없이 쭈뼛쭈뼛 내 뒤를 따라오던 차은월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어젯밤에 말했던 내 특성의 효과 말인데…….”

머뭇머뭇 본론을 꺼내 드는 차은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한번 그림자 녀석의 메모를 상기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설명할 방법을 고민한 다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미구현 특성이잖아?”

“응.”

“그래서 특성은 잘 모르지만. 나름 가능성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봤어. 혹시나 안 풀려도…….”

내 선택은 다름 아닌 밑밥을 까는 것이었다.

여태 그림자 녀석이 허언을 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무지한 분야이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자, 중요한 존재라는 녀석의 평가 이전에 그녀는 내 친구였다.

때문에 만일을 대비하여 늘어놓은 말에 차은월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결국 나를 도와주려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그 마음만으로도 기뻐.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아줬으면 해.”

거듭 괜찮다며 싱긋 웃어 주는 것이다.

그 모습에 결심이 섰다.

“마력 역장에는 고유 효과가 여럿 있잖아?”

“응,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그래서 말인데…….”

귀를 쫑긋 세운 채 경청하는 차은월.

내 설명에 그녀는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해결책이 단순한 만큼, 근거 또한 특별할 것 없는 탓에 이야기는 금방 끝났다.

그렇게 설명을 마무리 지을 무렵.

“……그렇구나. 과연, 충분히 일리 있는 말 같아.”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예전에도 분명 본 적 있는 광경 같은데.’

아직은 서로가 어색했던 시절.

마나 호흡법을 가르쳐 줄 때 봤던 반응과 비슷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딜레이가 생긴 거였나? 어쩐지, 영 어색하고 안 맞는 옷을 입는 느낌이었지.”

“그럼 동시에 펼치는 게 맞으려나? 그렇게 되면 마나 소모량이…….”

“전투에 활용한다고 했을 때 역장의 규모나 위치 선정도 신경을 써야겠지? 그 부분을 조절하려면…….”

별안간 차은월은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무서울 정도로 골몰했다.

그녀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한 한편, 속으로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진 않은데.’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차은월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어찌나 깊이 몰두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화들짝 놀란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어, 어? 내 정신 좀 봐, 미안.”

“아니야. 그보다, 어떤 것 같아?”

“……응, 될 것 같아. 저기, 일한아. 네가 알려준 내용 바로 시험해 봐도 될까?”

의욕적으로 나서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 즉시 차은월은 가상 대련실로 들어갔다.

세팅과 함께 대련이 시작된 순간.

콰앙-!

그림자 녀석이 제시한 해결책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한 건 물론.

터무니없는 위력을 두 눈으로 목도했다.

그저 입을 쩍 벌리며 지켜보고 있는 사이, 그녀는 순식간에 가상 대련을 끝마쳤다.

그대로 대련실을 빠져나오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일한아, 나 해냈어! 전부 네 덕분이야!”

감격에 겨운 표정.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활짝 피어 있었다.

얼떨떨한 감정을 뒤로한 채 일단 축하를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물론 아직 완성형은 아닌 것 같은데, 힌트를 찾아낸 것 같아!”

그녀가 앞서 수줍은 듯 말했다.

‘……이만한 위력인데 완성형이 아니라고?’

대체 완숙의 경지에 이르면 어떤 위력이 나올지.

그런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때, 문득 그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할 것 같아.”

“해 볼 만하다니, 뭐가?”

나의 물음에 그녀는 투지로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설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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