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당신이 가진 현천강기는 조금 달라
“후우.”
차은월은 심호흡과 함께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부분은 그녀가 가진 문제점이었다.
전투 센스의 부재.
그 원인은 해결책과 맥이 닿아 있었다.
‘특성과 마법 발현 사이의 딜레이를 없애거나, 아니면 내가 가진 마력 역장의 비밀을 밝혀내거나.’
그중에서 차은월은 첫 번째 원인.
특성과 마법 발현 사이의 딜레이에 주목했다.
두 번째인 마력 역장의 비밀은 완전히 오리무중인 까닭이었다.
속으로 결정을 내린 즉시 그녀는 마나 연공법으로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우우웅-
동시에 특성, ‘마력의 역장’을 발휘했다.
코어의 마나가 순식간에 줄어드는 감각과 함께.
화아앗-!
눈앞에 반투명한 장막이 펼쳐졌다.
마나의 흐름이 완전히 특성 발현을 위해 맞춰진 상황.
그 상태에서 차은월은 순간적으로 마나를 거둬들였다.
스스스-
서서히 옅어지는 마력 역장.
그녀는 거기에 맞춰 공격 마법 발현을 위해 마나를 순환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또 실패했어.’
특성을 구현하기 위한 마나의 흐름과 공격 마법을 전개하기 위한 흐름은 상이했다.
그래서인지, 알맞게 변환하는 과정에서 딜레이가 발생했다.
‘관성 때문인가? 대체 뭐가 문제지……?’
사실 지금처럼 연습할 때나, 여유가 있는 가상 대련에선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분초를 다투는 실전 대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불필요한 시간 소요는 수행평가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에 차은월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휘저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시 한번…….’
그렇게 마음을 다잡을 무렵.
저벅저벅-
문득 마력 단련실의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 누구지?’
자연스럽게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어? 일한아.”
차은월은 곧장 알은체를 하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접근에 안일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
별다른 말없이 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물끄러미 차은월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 그녀는 멋쩍은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사실 연습할 게 있어서. 그러고 보니 일한이 너도 밤 늦게까지 단련한다고 했었나?”
차은월은 되물어 보면서도 속으로 아차 싶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 어쩌지?’
연습하는 이유부터, 수행평가의 점수까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속상한 이야기였다.
때문에 대답하면서도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아 살짝 주저했건만, 안일한은 딱히 캐묻지 않았다.
그 대신.
끄덕-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어서 그런 걸까?
오히려 차은월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사실 수행평가를 망쳤거든. 괜히 신경 쓰일까 봐 말은 안 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서.”
그녀가 자연스럽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 것은.
“혹시 내 특성 알고 있어?”
“……어.”
“하긴, 전에 설하한테 도움받을 때 너도 왔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그때 봤구나.”
끄덕-
어찌 보면 치부나 마찬가지인 이야기였으나, 안일한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거리낌 없이 고민을 전부 털어놨다.
그 일환으로.
“보다시피 내 특성, 이렇게 전개하면…….”
차은월은 직접 특성까지 보여 줬다.
그녀의 눈앞에 생성된 반투명한 장막.
물끄러미 바라보는 안일한을 향해 설명을 덧붙였다.
“이 상태에선 마법을 쓸 수 없잖아?”
그녀의 말대로 장막을 세워 둔 채 마법을 썼다간 역장에 가로막힐 게 뻔했다.
오히려 폭발의 여파로 인해 그녀 자신이 피해를 받게 될 터였다.
본래라면 그렇겠지만…….
안일한이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 차은월은 마력 역장을 거둬들였다.
“이렇게 특성을 활용하고 나면 바로 움직이거나, 공격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돼서…….”
그래서 져 버렸다.
차은월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내 애써 표정을 밝게 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노력하면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고 김한석 교관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녀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마력 역장의 고유 효과, 그걸 알고 싶은 건가.”
여태 침묵하던 안일한이 입을 열었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는지, 차은월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안일한은 말을 이어 갔다.
“내일 방과 후까지 알아보지.”
“바, 방과 후? 알아본다니……?”
“도움이 될 거다. 분명.”
그 말을 끝으로 안일한은 미련없이 돌아섰다.
그대로 마력 단련실을 빠져나갈 때까지 차은월은 말문이 막힌 채로 지켜봤다.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의문이 들었다.
“……사람마다 역장의 효과가 제각각 다르다는 걸 내가 말했었나?”
고개를 기울이는 차은월.
이내 그녀는 안일한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내일 방과 후…….’
* * *
-……마나 운용을 가르쳐 달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
거기서 나는 또다시 꿈을 꾸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보단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장소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허름한 건물의 내부였으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달랐다.
‘성인 여성인가? 그런데 잘 안 보이네…….’
아담한 키와 가녀린 체구.
거기에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은 긴 머리칼까지.
전체적인 외견은 눈에 확 들어왔으나 유독 이목구비만은 흐릿하니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의아함을 떠올리는 가운데, 재차 목소리가 들려왔다.
-……님도 계시고, 당신을 내세운 그 여자도 있는데. 왜 하필 나한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일부 노이즈가 껴 있었다.
다만 그보다는 다른 부분이 신경이 쓰였다.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다름 아닌 성인 여성의 목소리.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나 참 익숙하다니. 내 기억도 아니고, 그림자 녀석의 기억일 텐데.’
모순된 감상을 떠올리는 사이.
-내가 마나에 관해선 전문가니까? 당신,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아. 이걸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기가 차다는 듯 여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어 갔다.
-뭐, 좋아. 그래서?
-그 여자한테 받은 게 있을 거 아니야. 분명 마나 심법일 테고, 그럼 계열은?
-현재 성취는? 마나 운용 말이야.
그렇게 그녀는 세세한 부분까지 물어보더니, 알아들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 강화라. 그럼 호신(護身)부터 시작하면 되겠네.
-전혀 어렵지 않아. 뭐? 그건 내가 특별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부정하긴 어렵지만. 그보다, 당신이 먼저 찾아온 거잖아. 그 정도는 감수해.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와 함께 그녀가 다가왔다.
현실이었다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여러번 설명해 줄 여유는 없어. 그러니 잘 들어.
그녀의 설명이 시작됐다.
마나 운용의 두 번째 단계, 호신.
아직 배우지 못한 부분인 만큼 흥미가 강하게 동했다.
하지만.
-호신은 마나를 체외로 사출하는 첫 단계야. 보통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순간에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
…
…
한 시간 후, 오전 수업.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끊기다니.’
한창 교양 수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나는 오늘 꿨던 꿈의 내용을 되새겼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의 여성, 그리고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호신 강의.
하필 강의 도중에 깨어났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으나, 이젠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언젠간 알게 될 테니까.’
저번에도 꿈은 도중에 끝났으나, 느닷없이 현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형태로 이어졌다.
동시에 감각의 계승이 일어났으니, 이번에도 비슷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한 채 점검으로 넘어갔다.
‘오늘은 웬일로 메모까지 남겨 둔 것 같은데.’
때문에 기대심과 함께 곧장 메모부터 확인했다.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차은월의 특성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란다.
이 또한 소임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부탁이기도 하다.
…
…
…
느닷없이 차은월의 이름이 언급된 건 물론.
그녀가 가진 문제점, 마력 역장의 특성에 관한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메모는 앞선 심인욱 때와 비교해 뉘앙스부터 달랐다.
‘그땐 살벌하기 그지없었는데.’
이번 메모에선 정성, 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의아한 감정을 뒤로한 채 일단 쭉 훑어 내렸다.
그렇게 마지막 메모에 시선이 가닿았을 때.
“……!”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은 다름이 아니었다.
-차은월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경우에 따라선 미래에 관한 지식을 밝혀도 상관없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네 재량에 맡기겠다.
다가올 격변의 대비를 위해서라도 그녀의 조력은 필수적이다.
부디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미래에 관한 지식을 밝혀도 상관없다니.’
차은월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듯한 내용은 물론, 미래 예지 능력을 밝혀도 된다는 내용까지.
엄밀히 말해서 비밀은 이미 진태진 교관이나 고태식 교관에게 밝힌 바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직접 장려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일단 영상도 확인해 보자.’
영상 점검으로 넘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차은월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와 특성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느닷없이 그림자가 마력 역장을 언급했다.
‘마력 역장의 고유 효과?’
의문을 떠올릴 틈도 없이 그림자 녀석은 차은월과 약속까지 잡았다.
오늘 방과 후, 이를 속으로 곱씹으며 생각했다.
‘9교시가 마력 수업이니 만나는 건 문제없겠지만.’
생각이 깊어지는 가운데, 나는 다시 한번 그림자 녀석의 메모를 확인했다.
그중에서 차은월의 문제점, 특성의 고유 효과의 해결책을 되짚어 봤다.
‘핵심은 상당히 단순한데. 맹점이라서 그런가?’
그만큼 그림자 녀석이 제시한 해결책은 단순했다.
결국 여러 의문들을 제쳐두고 생각해 보면, 이번 소임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해결이 어렵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확인해야 할 건 크게 두 가지다.’
가장 먼저 꿈에서 언급된 호신.
과연 그에 관한 계승 현상이 일어날 것인지.
이는 9교시 수업 시간이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때마침 오늘부터 김한석 교관님 지도하에 마력 심화 과정이 진행될 테니까.’
마력 심화 과정.
이는 곧 마나 활용의 두 번째 단계인 호신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그때 가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두 번째는.
‘방과 후 차은월과의 약속.’
시간 순서로 봤을 때 호신이 먼저였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다가올 9교시를 기다렸다.
* * *
시간이 흘러 9교시, 마력 수업.
수업은 진태진 교관이 아닌, 김한석 교관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A반 생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김한석이고, 마법과 마력 심화 수업을 담당하고 있어요. 잘 부탁해요.”
싱글거리는 표정과 서글서글한 말투까지.
여태 겪어 본 딱딱하고 엄한 교관들과는 달리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래서일까, 생도들은 박수와 함께 그를 맞이해 줬다.
“오늘은 앞으로의 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바로 본 수업, 마나 활용의 두 번째 단계인 호신의 이론과 원리 강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김한석 교관은 곧바로 향후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귀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신경이 온통 잠시 후에 진행될 수업, 호신의 이론 및 원리 강의에 쏠려 있는 까닭이었다.
‘과연 계승 현상이 일어날지.’
기대감을 떠올릴 무렵.
“일정에 관한 설명은 이쯤으로 넘어가고, 바로 강의로 넘어가겠습니다. 호신이란 말 그대로 마나를 통해 신체를 보호하는 활용을 의미합니다.”
본격적인 이론 강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일종의 마나 갑옷이라 보면 될 거예요. 체외로 마나를 사출하는 감각은…….”
호신의 이론을 넘어, 구체적인 활용법에 관한 강의가 흘러나올 때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분명 이전에는…….’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그럼 실습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혼자 해도 좋고, 친구들과 짝을 지어 연습해도 상관없습니다. 질문이 있는 생도는 언제든지 손을 들어주세요. 그럼 시작합시다!”
실습이 시작되고, 자연스럽게 내 곁으로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친구들의 접근에 알은체를 할 틈도 없이 고민에 잠겨 있을 때.
“……저기, 일한아?”
문득 차은월이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걱정 어린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길이 어깨를 스치는 순간.
-호신은 보통 방어적인 용도로 활용하지만 당신이 가진 현천강기는 조금 달라.
알 수 없는 기시감과 함께 꿈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