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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55화 (55/218)

55화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방과 후.

“시, 실례하겠습니다.”

차은월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행정실 안으로 들어섰다.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가운데, 한 남성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 은월 생도. 이쪽으로 와요.”

서글서글한 말투로 손짓하는 남성.

그는 다름 아닌 마력 심화 수업 및 마법 무기술 심화 과정을 담당하는 김한석 교관이었다.

차은월은 쭈뼛쭈뼛 다가가 그가 권해 준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 상태로 입을 꾹 닫은 채 가만히 눈치를 보고 있자 김한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사실 많이 놀랐어요.”

“……수행평가 점수 말씀이시죠?”

“맞아요.”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김한석은 잠시 속으로 할 말을 골랐다.

이내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은월 생도는 마나 사출이 됐든, 특성 구현이나 적용이 됐든. 굉장히 빠르게 습득했죠?”

“네…….”

“재능이 있다는 뜻이에요. 다른 수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마법은 마나가 알파이자 오메가인 만큼 이를 느끼고, 다루는 감각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런가요? 하지만 저는…….”

칭찬이 흘러나왔음에도 차은월은 말끝을 흐렸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히 전달됐는지, 김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의외였어요. 보통 감각이 탁월한 생도의 경우 대련, 전투도 곧잘 하거든요.”

김한석의 대답에 담긴 의미는 다름이 아니었다.

차은월, 그녀는 가진 바 재능에 비해 전투에 관한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이를 깨닫는 한편, 그녀는 그의 설명으로부터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래서일까, 무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오윤서 생도 같은 이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윤서 생도가 그렇긴 하죠.”

김한석은 쓴웃음과 함께 긍정했다.

실제로 오윤서는 눈앞의 차은월만큼이나 감각을 타고났음은 물론.

그녀와는 달리 전투 센스까지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차은월은 이번 수행평가에서 오윤서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새삼스럽게 이를 떠올린 탓인지.

“……읏.”

차은월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한 감정이 밀려와 두 주먹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어깨를 잘게 떠는 그녀의 모습에 김한석은 난처한 듯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마나에 관한 감각과 전투 센스는 별개의 문제긴 해요. 다만 개인적으로 은월 생도에겐 기대가 꽤 컸거든요.”

“…….”

차은월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자 김한석의 말이 한층 빨라졌다.

“물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좀처럼 마음대로 안 풀린다는 것도요. 사실 생도가 가진 특성이 까다로운 거로 유명하니까요.”

“……까다롭다는 말씀은.”

“마력 역장, 맞죠? 그건 마력형 특성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차은월.

그녀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김한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보유한 초인이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명칭이 동일해도 효과는 저마다 다르니까요.”

그게 바로 마력 역장의 독특한 점이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역장을 전개할 수 있다는 부분까지는 동일하다.

단, 그렇게 전개된 역장의 효과는 제각기 달랐다.

“현재 은월 생도가 활용하는 방어 능력뿐 아니라 반발력을 띠거나, 역장 자체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갖는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존재해요.”

“하지만 상태창에 나타나 있는 설명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요…….”

“그게 바로 마력 역장이 까다로운 이유죠.”

설명이 없다.

때문에 특성 보유자는 자신의 역장에 어울리는 효과를 직접 찾아내야만 했다.

게다가 어떤 효과를 발휘하느냐에 따라 마나의 활용법까지 달라졌다.

이는 곧.

“……그럼 알아내기 전까지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건가요?”

막말로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한석.

그의 대답에 차은월은 낙심한 듯 고개를 재차 떨궜다.

마법 계열에 있어 특성이란 전투력과 전투의 승패마저 좌우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까닭이었다.

“……그럴 수가.”

짙은 좌절감에 차은월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김한석은 그 모습을 한동안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내 그녀를 향해 손을 뻗더니,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난점이 존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김한석이 말을 이어 갔다.

“마력 역장은 잘만 활용하면 어떤 특성보다 훌륭한 무기이자, 방어 수단이 될 거예요. 이를테면 마력 확산 같은 특성보다도 말이죠.”

“……!”

마력 확산.

이는 다름 아닌 오윤서가 가진 특성이었다.

마법 발현과 동시에 순식간에 마나의 구체가 확산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만한 위력을 지닌 특성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말에 차은월은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물었다.

“……방법이 있는 건가요?”

“물론 확답은 드릴 수 없어요. 그건 교관으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니까요. 하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얼마든지 도와줄게요. 언제든 찾아와요.”

김한석은 그녀의 총기 어린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에 차은월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응원할게요.”

인시와 함께 행정실을 벗어나는 차은월.

김한석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동시에 생각했다.

저 총기 어린 눈빛이 어떻게 변해 갈지를 말이다.

‘일단 한 명.’

속으로 헤아리며 묘한 기색으로 미소를 지었다.

* * *

저녁 식사는 평소보다 한층 정신없이 이뤄졌다.

이유는 다름 아닌 오늘 치렀던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안일한, 너도 만점이야?!”

코앞까지 다가와 질문하는 윤설하.

뜻밖의 반응에 나는 몸을 살짝 뒤로한 채 입을 열었다.

“어.”

“부, 분명 너희 수행평가는 고태식 교관님을 스쳐야만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지?”

내 무덤덤한 대답에 윤설하는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괴물 같으니.”

“너도 만점이잖아……?”

“우린 적어도 교관님이랑 대련하진 않았거든?”

윤설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녀의 기세에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심인욱도 만점인데.”

“그러니까 네가 더 괴물이지! 걘 딱 봐도 조기 교육부터 시작해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애잖아!”

“……그건.”

“게다가 수행평가 끝나고 둘이 또 대련했다면서?”

왠지 추궁하는 듯한 물음에 나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이후.

고태식 교관은 심인욱과의 대련을 허락해 줬음은 물론, 나아가 대련의 장까지 마련해 줬다.

저번처럼 단순히 제한된 초식의 교환이 아닌, 제대로 된 실전 대련을 말이다.

그 결과, 나는 심인욱과의 수준차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역시 체급 차이는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어.’

마나 활용의 경지를 제외하더라도, 기본적인 스펙이나 스킬의 등급, 거기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센스까지.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더욱이 심인욱의 심경 변화도 큰 변수로 작용했다.

‘분명 전에는 오만함 때문에 파고들 여지가 있었는데.’

심인욱이 지옥 코스에 지원하여 함께 수업을 받게 된 이후.

무시나 모욕은커녕, 되레 날 인정하고 조언까지 해주는 등. 나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변했다.

이는 대련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마치 일생의 호적수를 상대하듯, 신중하게 임하는 탓에 도무지 파고들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뭐, 실력 향상에는 이편이 더 도움 되겠지만.’

새삼스럽게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엄청났지, 둘 다! 지켜보는 내내 피가 끓어오르더군!”

나를 대신하여 임강철이 나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를 듣고 있는 윤설하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전부 전해 들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 괴물.”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슬슬 낯부끄러워지려는 찰나,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지금 이 자리에 은월이가 없어서 망정이지.”

다름 아닌 차은월.

저녁 생각이 없다며 자리에 불참한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윤설하의 미묘한 뉘앙스에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차은월? 왜?”

“그게 사실 너희 둘 개인 교습 받는 거,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만났거든. 행정실로 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표정이 별로 안 좋았어.”

“설마 수행평가 때문인가?”

“응, 차마 구체적으로 물어보진 못했는데. 아무래도 좀 안 좋게 나온 것 같아.”

윤설하는 씁쓸한 기색으로 말을 맺었다.

‘하긴, 결과가 안 좋은 상황에 옆에서 100점이니 뭐니 하면 좀 그렇지.’

그제야 납득이 가는 한편.

불현듯 몇 주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림자 녀석에게 탈혼지를 받고, 이를 체득하기 위해 무기 훈련실로 향했던 날.

그때도 차은월은 대련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녀의 가상 대련을 지켜보며 느꼈던 어색함을 떠올렸다.

‘특성 활용에서 공격 전개까지, 그 순간 미묘하게 어색함이 느껴졌는데.’

이를 상기하며 물었다.

“혹시 특성을 활용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가?‘

“내가 거기까지 말했었나?”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는 윤설하.

그녀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뭔가 미묘하게 어색해 보였거든.”

“눈썰미 좋네. 아무튼, 그래서 걱정이야. 일단 나는 잘 모르는데, 넌 어때?”

“……나도 마법 계열은 잘 모르겠네.”

대답과 함께 자연스럽게 임강철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당당하게 소리쳤다.

“나도 마찬가지다!”

“…….”

지나친 당당함에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 사이 윤설하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제 수행평가도 끝났으니, 마력 수업도 다음 진도로 넘어가잖아?”

“그렇지?”

“게다가 앞으로 마력은 진태진 교관님이 아니라 마법을 전담하는 김한석 교관님의 수업으로 진행될 테니, 그때 물어볼까?”

확실히 현 상황에선 그게 최선인 듯했다.

미구현 특성인 나는 물론, 눈앞의 두 사람 또한 마법, 특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까닭이었다.

“일단 상황을 좀 지켜보자. 혹시 모르니 차은월한테 직접 이야기도 들어 보고.”

“하긴, 당사자가 원치 않으면 괜한 오지랖이 될 수도 있으니까.”

윤설하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가닥을 짓고는.

‘특성이라. 어떻게, 알아볼 만한 방법이 없으려나?’

다시 한번 특성에 관해 생각하며 식사에 열중했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25%]

-[????의 그림자]가 일정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의 절반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림자는 변화를 체감하며 눈을 떴다.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속으로 헤아렸다.

동시에 걸음을 옮겨 스텟 단련실을 향해 갔다.

곧장 마력 단련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마력 스텟을 점검했다.

그간 단련에 매진한 결과물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력 스텟 27

무려 27스텟.

여타 스텟들보다 앞선 것은 물론.

마력만큼은 D급 초인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아직 턱걸이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최소한의 기준은 충족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된 것이다.

현천강기의 두 번째 활용, 호신(護身).

특유의 은회색 마나는 단순히 호신을 넘어, 그 자체로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이것도 그녀에게 배웠지.’

동기화율 상승의 영향인지, 새삼 과거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련함에 그리운 감정이 드는 한편, 다신 볼 수 없을 거란 사실에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그림자는 이어서 그녀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인 것 같은데.’

이 역시 소임의 일환이었으나, 그보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쪽에 가까웠다.

따라서 그도 기꺼이 들어줄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다름 아닌 접근 방식.

한 몸을 공유하는 입장이지만, 낮은 그의 시간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현시점의 그녀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는지.

아니, 그 전에 그녀와 면식이 있는지의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꼼짝없이 녀석에게 협조를 청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생각을 정리하며 마력 단련실에 들어서는 순간.

“……어? 일한아.”

눈앞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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