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이젠 네 차례다
“다들 내 앞에 집합해라! 오늘은 구태여 코스에 맞춰 정렬할 필요 없다!”
소훈련실에 모습을 드러낸 고태식 교관.
그는 등장과 동시에 거친 목소리로 생도들을 제 앞으로 집합시켰다.
그러고는.
“지금부터 2교시에 걸쳐 수행평가를 실시하겠다! 먼저 간단하게 규칙부터 설명하도록 하지!”
재차 입을 열어 수행평가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방식은 알다시피 나와의 대련이다! 수준은 E+급으로 맞춰 줄 것이며, 제한 시간은 5분, 채점 기준은 철저히 내 주관으로 이뤄질 거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가 될 거라는 말에 대부분 석연찮은 반응을 보였다.
다만 표정으로 나타낼 뿐. 상대가 상대인 만큼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태식 교관은 설명을 이어 갔다.
“채점 기준이 내 주관이라는 건 단순히 유효타, 피격 횟수처럼 눈에 띄는 부분만을 평가하진 않을 거라는 의미다.”
그보다는 자세, 공격과 회피, 방어의 타이밍 등, 대련을 통해 전반적인 역량을 평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대부분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연, 생각보다 본격적이네.’
평소 고태식 교관의 무지막지한 언행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디테일했다.
신기한 감정이 드는 한편,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세세한 부분까지 평가하고 점수를 책정하면 납득 못 하는 생도들도 나올 것 같은데.’
세분화된 기준, 거기에 고태식 교관 개인의 주관으로 결정되는 평가까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때마침 고태식 교관이 설명을 덧붙였다.
“만일 점수에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의를 제기해도 좋다!”
그는 의외로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친절함.
이에 생도들은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내 친절하게 몸으로 알려 줄 테니 얼마든지 하도록!”
고태식 교관은 고태식 교관이었다.
정말이지 그다운 방식으로 설명을 마무리 짓고는 본격적으로 수행평가를 실시했다.
시작은 초급자용 코스에 속한 생도들 중 한 명이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 보자.’
그런 생각으로 대련에 집중하는 순간.
“자, 와라!”
고태식 교관이 거칠게 소리쳤다.
그러나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생도는 우물쭈물했다.
왠지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초급자용 코스는 대부분 초식 교환까지만 진도를 나갔으니까.’
실전 대련은 처음일 터.
심지어 첫 상대가 고태식 교관이다.
충분히 움츠러들 법한 상황이건만 그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10초 이내로 달려들지 않는다면 네 녀석은 실격, 0점으로 처리하겠다. 어찌할 테냐?”
빈정거리는 말투로 도발하는 고태식 교관.
이에 생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달려들었다.
초급자용 코스에 속한 만큼 달려드는 동작은 직선적이고, 단순했다.
때문에 금방 박살 나겠다 싶은 순간.
“자세는 나쁘지 않다!”
고태식 교관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어지는 그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먹에 힘은 충분히 실려 있다! 하지만, 자세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콰직-!
“이렇게 처맞을 수밖에 없는 거다!”
마치 수업 때 자세를 교정해 주듯.
조언과 함께 상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반격을 가하는 것이다.
고태식 교관은 생도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고 반격을 가할 때까지도 빠짐없이 조언을 곁들였다.
그렇게 상대한 끝에 5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결과.
“67점이다! 이의 있나?”
“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당 생도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점수를 받아들였다.
마치 개안한 듯한 표정, 그 모습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분위기도 한결 풀렸다.
불합리하다고 여겼던 시험이 의외로 건설적임을 깨달아서 그런 듯했다.
이어지는 대련도 마찬가지였다.
“정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수업 때처럼 초식을 교환한다고 생각해라!”
초급자용 코스의 생도에겐 주로 실전 대련의 감을 잡게끔 조언을.
“네놈은 버릇부터가 잘못 들었다! 그건 몸으로 깨우치는 게 가장 빠르다!”
숙련자용 코스의 생도들은 안 좋은 습관을 친히 주먹으로 두들겨 고쳐 주는 등.
마치 시험이 아닌, 수업의 연장선처럼 상당히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 정도로 맞춰 준다면…….’
100점,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른 생도들의 수행평가를 쭉 지켜보는 사이.
“이번에는 내 차례군!”
임강철의 차례가 다가왔다.
“잘하고 와.”
“갔다 올게!”
나는 격려와 함께 한층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여태 초급자, 숙련자의 수행평가만이 이뤄졌을 뿐.
나와 임강철, 그리고 심인욱이 속한 지옥 코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코스마다 시험에 임하는 고태식 교관의 태도가 달랐으나, 미리 참고해 두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임강철은 교관과 마주 선 채로 기본적인 스킬, 육합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여타 초급자들과 다름없는 스킬이었으나.
꿈틀-
그를 바라보는 고태식 교관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대련이 시작되자 그의 표정은 한층 다채롭게 변해 갔다.
그만큼 임강철의 활약은 두드려졌다.
단순하지만 위력적인 공세, 거기에 단조롭지만 적절한 타이밍의 방어와 회피까지.
때문에 임강철은.
“아주 잘 배웠구만!”
처음으로 고태식 교관의 입에서부터 격려가 아닌 칭찬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임강철!”
“네엡-!”
“네 녀석은 82점이다! 그대로 정진해라!”
“오오오!”
숙련자용 코스에서도 몇 안 되는 80점대를 얻어 냈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하는 임강철을 맞이해 주는 사이.
“다음은 심인욱, 네놈이다!”
고태식 교관이 소리쳤다.
근처에 앉아 있던 심인욱은 몸을 일으키며 문득 내 쪽을 바라봤다.
미묘한 눈빛, 이내 그는 툭 던지듯 나를 향해 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잘 봐라.”
“……어.”
나는 어색하게 답했다.
미묘한 눈빛 교환과 어색한 문답.
이는 현재 나와 그의 사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과 다름이 아니었다.
‘확실히 더는 저 녀석이 문제 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림자 녀석이 꼽은 심인욱의 가장 큰 문제점, 권태로움은 이미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정확히는 심인욱이 지옥 코스에 합류한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
이는 수업 시간은 물론, 개인 교습까지 자원해서 참여한 모습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얻어터지면서도 끈질기게 달려드니.’
완전히 달라진 모습.
덕분에 더 이상 ‘제거’와 같은 살벌한 생각을 떠올릴 필요는 없어졌으나 다른 의미로 곤란했다.
특히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랬다.
-넌 보기와는 다르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군. 때론 몸을 사리면서 기회를 보는 것도 필요하다.
뜬금없이 내게 조언을 하거나.
-빨리 강해져라, 그리고 날 뛰어넘어 봐라!
이해할 수 없는 텐션으로 나를 북돋아 주는 등.
내 안에 승부욕이 한풀 꺾일 정도로 적응이 안 됐다.
물론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태도 변화와는 무관하게 그의 실력은 나날히 진보하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좋구나!”
대련 시작부터 고태식 교관이 입가를 사납게 비틀었다.
마나의 유형화는 물론.
본인이 스스로 내게 밝힌 A급 스킬, 패왕진군보에 이르기까지.
심인욱은 가진 바 역량을 모조리 쏟아냈다.
그 결과.
츠즛-
묵룡이 서린 일권이 고태식 교관의 팔뚝을 스쳐 갔다.
단지 그 뿐으로.
콰직-!
그는 곧바로 심인욱의 가슴팍에 일권을 꽂아 넣었다.
“……크흑.”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심인욱.
하나 고통에 얼룩진 표정과는 달리 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심인욱, 넌 만점이다!”
약속대로, 한 번이나마 스치는 데 성공했으니 100점을 준 것이다.
입가를 비틀며 선언하는 고태식 교관을 향해 심인욱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최초로 만점을 획득한 심인욱은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시험 직전과 마찬가지로 내게 한마디를 건넸다.
“이젠 네 차례다.”
슬쩍 올라가 있는 입꼬리.
게다가 뉘앙스도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이번에는 네가 증명할 차례’라고 말하는 듯했다.
“……?”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때.
“다음, 안일한! 튀어나와라!”
공교롭게도, 때마침 내 차례가 다가왔다.
고태식 교관의 호출에 나는 한차례 고개를 털어냈다.
‘일단 다른 부분은 신경 끄자.’
그러고는 여태 지켜봤던 두 사람의 대련 중, 특히 고태식 교관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상기해 봤다.
‘대응 수위가 평상시와는 확실히 달라.’
평소 고태식 교관은 그야말로 힘으로 찍어 누르는 편이었다.
수준을 맞춰 주겠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힘, 속도, 거기에 기교까지.
매 순간 감당하기 벅차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몰아붙였다.
그러나.
‘평소라면 힘으로 튕겨내거나, 심지어 마주 공격을 가할 만한 순간도 더러 있었어.’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교묘한 움직임으로 회피하거나, 몸을 당기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등.
적어도 생도가 가진바 무력을 펼칠 기회 정도는 온전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E+급 수준에 맞춰 주시는 거겠지.’
그렇다면 충분히 할 만하다.
결론과 함께 고태식 교관 앞에 마주 섰다.
“와라, 애송이!”
그의 지시에 나는 곧장 흑영보를 발동시켰다.
이내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을 향해 지체 없이 쇄도해 가는 한편.
타닷-
곧바로 탈혼지부터 발동시켰다.
그 순간 스킬의 효과, 불그스름한 반점이 나타났다.
이를 빠르게 살피며 공략하기에 적절한 위치를 살피는 것과 동시에 복마구권을 발동시켰다.
‘여기선 첫 번째 초식이다.’
선공 및 후속타로 이어가기에 용이한 첫 번째 초식.
거기에 맞춰 주먹을 내질렀다.
후욱-!
제법 힘이 실린 일권.
평소라면 광소와 함께 마주 주먹이 날아들었을 터.
하지만.
“기세는 나쁘지 않군!”
반격 대신 그는 교묘하게 왼손을 움직였다.
마치 E+급의 힘을 활용하고 있음을 증명하듯.
타악-!
그저 내 손목을 쳐내는 선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역시나……!’
예상대로 반격의 수위가 달라졌다.
속으로 확신을 더하는 사이.
후웅-!
고태식 교관은 물 흐르듯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재차 복마구권을 발동시켰다.
이번에는 반격에 용이한 4초식이었다.
내 선택에 고태식 교관은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저 스킬의 강맹함에 의지해선 유효타는커녕, 스치는 것조차 불가능할 거다!”
마치 공세일변도의 내 전략을 꾸짖으려는 양, 힘 있게 짓쳐 드는 것이다.
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복마구권을 연거푸 펼쳤다.
동시에 눈으로 끊임없이 고태식 교관의 전신을 살폈다.
정확히는 허를 찌를 수 있는 위치.
즉, 전신에 불규칙적으로 분포한 반점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이윽고 마땅한 부위를 포착해 냈다.
‘……오른쪽 어깻죽지.’
결정을 내린 순간, 한층 더 공세의 고삐를 당겼다.
복마구권의 절기에 해당하는 후반 3초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후욱-! 휘익-!
특유의 연환 동작으로 공세를 퍼붓는 가운데.
면밀히 타이밍을 주시했다.
때마침 고태식 교관이 마주 일권을 날리는 순간.
‘……지금!’
나 또한 순간적으로 자세를 고쳐 잡은 채 마지막 초식을 전개했다.
멸마의 기운을 두른 채 짓쳐 드는 일권.
하지만 이보다 고태식 교관의 일격이 좀 더 빨랐다.
“어째 네놈은 발전이 없는 거냐!”
이대로라면 분명 그의 일권이 한발 앞서 내 가슴팍을 강타할 터였다.
이를 알면서도 나는 오른팔에 힘을 더했다.
동시에 검지를 치켜세웠다.
그로 인해 내 공격의 리치가 순간적으로 늘어났다.
순식간에 복마구권의 마지막 초식에서, 탈혼지의 일초로 변모한 일격.
이거야말로 탈혼지가 구명절초이자, 비장의 한 수로 작용할 수 있는 이유였다.
‘어떤 순간에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초식의 변화가 자유롭다는 점.’
그리고 이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고태식 교관의 허를 찌를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
일순 고태식 교관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신속하게 상체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보다 내 손짓이, 단 하나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탈혼지가 한층 빨랐다.
츠츳-
목표했던 어깻죽지를 스쳐 가는 일섬.
그 순간, 고태식 교관의 주먹이 내 가슴팍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못 보던 초식인데?”
“최근에 익혔습니다.”
“그럼 여태 숨겨 뒀다는 거냐?”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고태식 교관의 입가가 비틀렸다.
이내 그는 사나운 미소와 함께 소리쳤다.
“안일한, 만점이다!”
…
…
…
비슷한 시각.
“차은월, 은월 생도는 유감이지만 40점이에요.”
김한석 교관의 평가에 차은월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