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네놈과는 목적의 근간부터가 달라
들끓는 승부욕, 그림자 녀석의 소임 등.
처음에는 단지 괜한 부담감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했다.
‘반드시 닿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결정적인 순간.
남아 있는 기회를 판돈 삼아 올인한 지금까지도 쭉 이어졌다.
후웅-!
그저 닿기를.
내 전력이 감히 닿을 수 없는 벽을 두드리기를.
그런 일념으로 주먹을 뻗었고,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심인욱에게 닿을 터였다.
하지만.
터엉-!
이상한 소리와 함께 건틀렛이 허공에서 가로막혔다.
“……!”
주먹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마치 투명한 벽에 부딪혀 튕긴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하지만 의문은 찰나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한가로이 의문에 매달릴 틈따윈 없는 까닭이었다.
‘내 기회는 이걸로 끝나 버렸지만…….’
심인욱에겐 아직 기회가 한 번 남아 있었다.
게다가 내 도박과도 같은 한 수로 인해 그는 이미 1점을 획득한 상태였다.
이미 패배가 확정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
그럼에도.
‘이대로 무력하게 질 수는 없어.’
패배할지언정, 끝까지 전력을 쏟고 싶었다.
그런 일념으로 나는 심인욱의 반격을 대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스윽-
최대한 몸을 뒤로 빼는 것과 동시에 대응을 위해 그를 바라봤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
시퍼런 귀화처럼 일렁이는 심인욱의 눈빛.
보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가운데.
고오오-
그의 전신에 패도적인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심인욱은 발을 구르듯, 크게 한발짝 내디뎠다.
쿠웅-!
단 한 걸음.
마치 진군하는 듯한 움직임에 순식간에 간격이 좁혀졌다.
그의 주먹에는 칠흑 같은 용의 형상이 휘감겨 있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간격, 양팔을 들어올린 채 충격에 대비하는 찰나.
“거기까지다, 애송이.”
거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익숙한 음성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교관님? 어, 언제?’
고태식 교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그는 심인욱의 손목을 낚아챈 채로 말을 이어 갔다.
“심철전이. 역시 아비 된 자는 어쩔 수 없나? 묵룡칠권은 그렇다 쳐도, 애송이한테 패왕진군보라니.”
묵룡칠권과 패왕진군보.
명칭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방금 감각을 떠올려보니, 명칭이 참으로 절묘하게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흘리는 나와는 달리.
“크윽……!”
심인욱은 분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로부터 억울함, 패배감 따위의 감정이 느껴졌다.
‘왜지?’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 고태식 교관은 심인욱을 향해 물었다.
“애송이, 내가 처음에 뭐라고 했지?”
“……마나는 신체 강화까지만 허용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호신을 사용했습니다.”
“스스로 알고 있구먼, 왜 실격인지.”
고태식 교관은 혀를 한번 짧게 차더니,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승자는 안일한, 네 녀석이다.”
승패가 가려졌다.
나의 승리, 하지만 기쁨보단 얼떨떨한 감정이 더 컸다.
‘……그게 호신이었구나.’
마나 활용의 두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는 호신(護身).
이를 처음 겪어 봤다는 점, 그리고 대련의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파고드는 건 성공했지만.’
결국 두 번은 통용되지 않을 도박의 한 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마지막, 심인욱의 스킬을 접하면서 느꼈다.
유효타를 가했어도 다음 상황은 장담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네. 역시 더 강해져야…….’
씁쓸하게 곱씹고 있을 때.
“결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여태 침묵하고 있던 심인욱이 입을 열었다.
“……이런 방식의 대련은 여전히 납득되질 않습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실전 대련을 하게 해 주십시오.”
씹어뱉듯 말하는 심인욱, 그의 표정에는 상당히 분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그게 퍽 의외로 다가오는 한편, 여태 미뤄 뒀던 의문이 새삼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나를 꺾고 싶어 하는 거지? 단지 내가 꼴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닌 듯한데.’
물론 대련 내용이 불만족스러운 만큼, 나 또한 여전히 그에게 호승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심인욱의 이유는 나의 감정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이는 비단 나만 느낀 게 아니었는지.
“심인욱. 대련에 시답잖은 감정을 집어넣는 것도 적당히 해라.”
고태식 교관은 낮은 목소리로 을러댔다.
“그, 그건.”
“적대시하는 건 상관없다. 호승심은 성장의 좋은 연료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네놈은 지나쳐.”
“…….”
“본말전도다. 보아하니 같잖은 감정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선 언제까지나 정체되어 있을 수밖에 없을 거다.”
“……!”
가차 없는 말에 심인욱은 두 눈을 부릅떴다.
다만 그뿐으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고태식 교관은 혀를 짧게 찼다.
“제대로 된 대련을 하고 싶다고 했나? 그렇다면 지금 품고 있는 쓸데없는 감정 문제부터 해결하도록.”
“…….”
“불만이 많아 보이는군. 더 듣고 싶거든 방과 후, 소훈련실로 찾아와라.”
“……알겠습니다.”
방과 후라면, 개인 교습 시간과 겹친다.
‘그럼 지도는 잠시 미뤄지는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고태식 교관이 별안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참고로 개인 교습은 그대로 진행할 테니 안일한, 임강철. 네 녀석들은 시간에 맞춰 오도록.”
“네.”
“네!”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 직후, 고태식 교관은 생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구경은 끝이다! 다들 여태 푹 쉬었을 테니, 이제부터 두 배는 더 빡세게 한다는 각오로 임해라!”
잠시 미뤄 뒀던 수업을 재개하는 것이다.
나는 고태식 교관을 한번,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심인욱을 한번 바라봤다.
‘쓸데없는 감정 문제라.’
확실히 대련 중에도 느꼈다.
심인욱, 그가 이상할 정도로 ‘천재’에 집착하고 있음을 말이다.
이를 되새겨보니 문득 그림자 녀석의 소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윤설하의 문제도 트라우마, 결국 감정과 연관되어 있었지.’
어쩌면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뿐으로, 여전히 의문은 산더미였다.
녀석은 단지 내가 이기길 바랄 뿐, 전후 사정에 관한 설명은 따로 해 주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차피 교관님의 말씀으로 봤을 때 당분간 제대로 된 대련은 힘들 것 같으니.’
일단 그림자 녀석에게 물어봐야겠다.
현재 상황을 밝히고, 전후 사정을 파악하면 어떻게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그래야 나도 심인욱과 제대로 맞붙을 수 있을 테니.’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한 채.
“어이, 일한이!”
슬슬 수업을 위해 임강철의 곁으로 움직였다.
* * *
9교시까지 끝난 이후.
“인욱아, 무슨 일 있어?”
“야 심인욱! 어디 가!?”
심인욱은 평소처럼 백유진, 오윤서와 함께 식당을 향하는 대신.
“잠깐 볼 일이 있어. 먼저 가라.”
짤막한 통보를 끝으로 걸음을 틀었다.
그의 발걸음은 2층, 소훈련실을 향해 갔다.
그곳에는 익숙한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교관님.”
다름 아닌 고태식 교관이었다.
심인욱은 먼저 예를 갖춰 인사하고는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래선 정체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관한 설명을 청하는 심인욱의 의도를 바로 알아들었는지.
“네 녀석, 엄한 곳에만 신경을 쏟고 있지 않냐. 당연한 거지.”
고태식 교관은 혀를 짧게 차며 말했다.
“그 말씀은…….”
“평소에는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이나 짓고 있질 않나. 이번에도 안일한, 그 녀석을 짓밟기 위해 그토록 목을 매고 있는 거 아니냐?”
거침없는 추궁에 심인욱은 정곡이 찔린 것처럼 말문이 막혀 버렸다.
실제로도 그랬다. 분명 그는 안일한이 더 자라기 전에 미리 밟아 두려고 했다.
다시는 천재에게 따라잡히고, 나아가 추월당하는 치욕을 겪고 싶지 않았으니까.
마치 이런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양.
“뭐, 그 녀석이 더 성장해서 네놈의 자리를 위협이라도 할까 봐?”
고태식 교관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심인욱은 반발은커녕,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이 퍽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설마 고작 한두 번 밟아 주는 정도로 그 녀석의 성장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
“알면서도 그런 같잖은 생각을 품는다는 건 결국 자기만족이겠군. 나 참, 시답잖기는.”
고태식 교관은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내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심인욱을 바라봤다.
“애초에 안일한이란 애송이는 네놈과 목적의 근간부터가 달라. 고작 한두 번 밟힌 거로 멈춰 설 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거다.”
목적의 근간부터 다르다.
심인욱은 그 말이 꼭 자신은 결국 안일한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마치 어렸을 적, ‘그 녀석’에게 당해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럼 결국 저 같은 놈은 언제나 안일한 같은 천재에게는 따라잡힐 수밖에 없는 겁니까?”
심인욱은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분통함이 가득 묻어나는 말투에 고태식 교관은 표정을 굳혔다.
“그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냐.”
“실제로 겪어 봤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쌓아 올린 모든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렸죠. 고작 ‘천재’라는 두 글자에.”
심인욱은 그때 깨달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진짜’를 넘어설 수 없음을 말이다.
새삼스럽게 떠올리자 어깨가 절로 부들거렸다.
그럼에도 심인욱은 씹어뱉듯 말을 이어 갔다.
“애초에 교관님께선 안일한도 천재라서 따로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는 심인욱.
그를 향해 고태식 교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틀렸다. 전부 다.”
“틀렸다니, 그게 무슨…….”
“첫 번째. 안일한은 확실히 집중력, 판단력, 센스 등. 재밌는 구석이 있지만 결코 천재는 아니다. 무엇보다 네놈도 손을 섞어 봤으니 알 텐데?”
“……하지만 천재가 아니라면 녀석의 성장 속도가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심인욱은 납득이 되질 않는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에 고태식 교관은 의문에 대한 답변 대신, 심인욱을 향해 되물었다.
“여기서 두 번째. 천재한테는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어째서 네놈은 그걸 재능 탓으로 돌리는 거지?”
“제 모든 걸 쏟았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따라잡힐 정도면 그건 재능밖에는…….”
“노력도 노력 나름이란 생각은 안 해 봤나?”
그의 말은 분명 정론에 가까웠다.
하나 감정적으로 납득이 안 됐다.
마치 그런 속내를 꿰뚫어 본 것처럼 고태식 교관은 잇달아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몇 가지 물어보지. 네 녀석은 혹시 구타를 당하면서까지 수련해 본 적 있나?”
“……구타까진 아니어도 자세 교정이나 실전 대련 중에는 많이 맞으면서 배우긴 했습니다.”
“그럼 한계까지 쥐어짜낸 적은?”
“……한창 할 때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퍼졌습니다만. 질문하시는 저의를 잘 모르겠습니다.”
심인욱의 물음에 고태식 교관은 즉답했다.
“안일한은 하루에 최소 세 시간 동안 그 모든 걸 겪는다.”
“……!”
“구타? 이젠 이골이 났을 거다. 한계? 녀석은 한 시간에 최소 10번은 넘게 퍼진다! 그럼에도 일어나서 덤벼들지.”
심인욱은 입을 쩍 벌렸다.
그만큼 그의 지도 방식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자, 아직도 녀석의 성장 속도가 천재성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나? 이래도 네놈이 노력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그렇게 하면 저도 천재를 넘어설 수 있는 겁니까?”
까마득한 열망을 입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떠올린 순간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낯설게 느껴지는 물음에 고태식 교관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건 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라.”
그러고는 손가락 끝으로 소훈련실 입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
안일한이 평소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