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틀을 깨부술 수 있다면
월요일.
7교시 시작까지 대략 5분 정도 남았을 때.
“일한이, 가자!”
“어.”
나는 임강철과 함께 2층 소훈련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임강철이 내게 넌지시 물어왔다.
“그나저나 일한이, 자신 있나?”
“심인욱과 대련? 글쎄.”
심인욱과의 실전 대련,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이를 새삼스럽게 상기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한 것 같은데.”
임강철뿐만이 아니라 윤설하, 거기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함께 해준 차은월까지.
모두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줬다.
덕분에 대련 연습은 물론, 기억 속 감각의 재현, 마지막으로 현천강기의 수련까지.
나름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뭐, 결과는 까 봐야 알겠지만.’
나는 마음을 가볍게 먹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승부욕이나 그림자의 소임 같은 생각은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부담감은 오히려 몸을 무겁게 만드는 까닭이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어째 임강철은 당사자인 나보다 더 투지를 불태웠다.
“난 네가 그 녀석에게 한 방 먹여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
“그만큼 넌 지독했고, 강했으니까!”
“……꽤나 수고로웠을 텐데, 고마워.”
실제로 임강철과 윤설하, 두 사람과의 대련은 큰 도움이 됐다.
둘 다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더하여 둘의 강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한몫했다.
‘스킬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가진 스킬의 등급 차이.
그런 절대적인 격차마저 없었다면 당해내기 힘들 거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뭐, 그만큼 도움을 받았으니 가급적 좋은 승부, 좋은 결과로 돌려줘야…….’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들어가자!”
어느새 소훈련실에 도착했다.
익숙한 내부의 풍경, 그러나 분위기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공기가 무겁다고 해야 할까. 대강 원인은 알 것 같았다.
‘나와 심인욱의 실전 대련 때문이겠지, 아마?’
무려 고태식 교관이 공언한 대련이었다.
때문에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한꺼번에 시선이 쏟아지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이를 무덤덤하게 받아내던 차에 문득 한 생도와 눈이 마주쳤다.
“…….”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고고한 기색이 담긴 표정이며 오만한 태도까지, 그의 모습은 평소와 딱히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눈빛에 담긴 감정은 조금 달랐다.
한줄기의 적의. 그리고 이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도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다.
적개심이 나를 향하는 한, 그만큼 복마구권의 위력은 올라갈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벅저벅-
문득 심인욱이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숨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네가 천재라고 생각하나?”
느닷없는 물음, 거기에 뜬구름 잡는 내용까지.
‘……갑자기 웬 천재?’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특히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죄다 괴물 같은 까닭에 더더욱 그랬다.
영문 모를 질문에 그저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때.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심인욱은 내 반응을 제멋대로 해석하더니, 곧장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좋아. 이제 곧 네 밑천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심인욱이 제 할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수업 시간이다. 집합해라, 애송이들!”
때마침 고태식 교관이 소훈련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생도들이 하나둘씩 그의 앞으로 모여드는 가운데.
그는 별안간 손가락 끝으로 나와 심인욱을 가리켰다.
“두 놈은 앞으로 나와라. 그리고 나머지는…….”
고태식 교관은 잠시 턱수염을 쓸어내리더니, 선심 썼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두 애송이들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긴 어렵겠지. 적당히 구경해도 좋다.”
고태식 교관의 허락하에 생도들은 나와 심인욱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사이 나는 자연스럽게 심인욱과 마주 섰다.
이윽고 고태식 교관은 우리 둘을 눈으로 훑으며 말문을 열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대련을 하되 초식, 즉 공격 기회는 세 번으로 제한한다.”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규칙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어서 고태식 교관은 입가를 비틀며 말을 이어 갔다.
“본래라면 승패처럼 쓸데없는 부분은 대련에서 제외하겠지만, 네놈들의 봐서 이번에는 특별히 추가해 주지. 채점 기준은 유효타의 횟수다.”
이내 그는 심인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나 활용은 신체 강화까지. 같은 맥락으로 특성 또한 사용 금지다. 규칙을 어겼을 시 무조건 실격으로 처리할 거다. 알아들었냐?”
“네, 이해했습니다.”
“안일한, 네 녀석은?”
“저도 이해했습니다.”
내 대답을 끝으로 고태식 교관은 곧장 뒤로 물러섰다.
거기에 맞춰 나와 심인욱은 각자 자세를 취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순간, 고태식 교관이 소리쳤다.
“그럼 시작해라!”
그 즉시 나는 감각을 일깨운 채 상황에 대비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심인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대련, 네 주먹이 내게 닿을 일은 없을 거다.”
으르렁거리며 도발부터 일삼는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거야 뭐.’
이미 고태식 교관에게 누차 들었던 이야기다.
때문에 나는 되레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여태 안 움직인다는 건 선공을 양보한다는 거겠지?’
내게 있어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직 심인욱의 실력은 타인의 평가와 먼발치에서 지켜본 일면으로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겪어 보진 못한 까닭이었다.
‘지금처럼 내 공격을 받아 주는 구도라면.’
한결 차분하게 그의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을 터.
판단과 동시에 나는 곧장 흑영보를 펼쳤다.
전신이 일렁이는 감각 속에 그의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를 포착했다.
그 즉시.
타닷-
신속하게 달려나갔다.
‘첫 공방은 최대한 전력을 가늠해 본다는 마인드로.’
삼재기공의 기운을 담은 마나를 끌어 올리며, 복마구권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나를 향한 적개심이 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미약했다. 자연히 멸마의 기운 또한 세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그런 감정을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한 건가.’
일단 염두에 둔 채, 그대로 짓쳐 들었다.
그의 사정권에 들어섰을 때.
스윽-
그제야 심인욱은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일순 그의 전신에 칠흑 같은 아우라가 일었다.
기수식부터, 그에 따른 현상까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지척에 이르렀다.
‘여기선 전반 1초식으로……!’
판단과 함께 즉시 주먹을 뻗었다.
후욱-!
안정적인 자세에 날카로운 투로까지.
이만한 일격이라면 녀석도 마냥 무시하긴 힘들 터.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어설프다!”
심인욱으로부터 단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는 순식간에 왼팔을 뻗었다.
콰앙-!
마치 맥을 끊어 놓듯, 건틀렛의 손등 부위로 내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윽-
심인욱은 살짝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상체를 반 바퀴, 빠르게 선회했다.
나아가 회전력을 바탕으로 오른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후웅-!
물 흐르듯, 눈 깜빡할 사이에 이어지는 동작.
매섭게 날아드는 그의 일권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내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다급하게 양팔을 옆구리 쪽으로 당겼다.
아슬아슬하게 건틀렛으로 타격점을 가린 순간.
쩌-엉!
녀석의 일권이 작렬했다.
저릿한 충격과 함께 일순 몸이 붕 떴다.
착지하며 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생각했다.
‘빨리 간격을 벌려야……!’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나는 신속하게 물러났다.
동시에 눈으론 상대의 움직임을 쫓았다.
하지만.
“……흥.”
심인욱은 그저 가만히 선 채로 나를 응시할 뿐.
후속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완전히 나를 무시하는 처사였으나, 도리어 나는 이를 한숨 돌릴 기회로 삼았다.
심호흡을 하는 순간 저릿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이를 외면한 채 방금 공방에서 느낀 바를 빠르게 되짚어봤다.
‘일단 스타일은 여태 봤던 것들과 다르지 않아.’
실력, 역량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
단순히 무력으로 압도하는 대신, 정교한 대처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
그게 바로 심인욱의 스타일이었다.
거기서 나는 ‘정교함’에 주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설하와는 달라.’
대련 당시, 그녀는 처음 겪었을 터인 내 수법에 빠르게 적응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의 페이스를 읽고, 거기에 맞게 대응한 것이다.
놀라울 만큼 감각이 예리하며, 눈썰미가 남다르다.
그야말로 재능의 영역이었다.
‘실제로 나조차 눈치채지 못한 현천강기의 유지 시간을 단번에 알아차렸으니까.’
반면 심인욱은 달랐다.
엄밀히 말해 그의 반격은 결코 내 일격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다.
그저 가장 효율적인 방식, 학습된 노하우에 따라 ‘대처’했을 뿐이다.
따라서 그의 반격은 최선의 수이자, 감각보단 경험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진 거라 봐야 했다.
‘그렇다면 만일…….’
한순간이나마 그가 가진 틀을 깨부술 수 있다면.
그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움직임을 취한다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스코어는 0 대 0.
그의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 낸 덕분이었다.
따라서 기회는 서로 2번 남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다음 공격에 건다.’
곧장 승부수를 띄울 작정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무렵.
“일정 경지에 이르면 단 한 번의 교환으로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대뜸 심인욱이 입을 열었다.
“따라서 나도 파악했다. 넌 천재가 아니며, 결코 천재가 될 수 없음을.”
그의 어조에서 가소로움이 짙게 묻어났다.
감정과 생각의 편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가운데.
‘……대체 어쩌라는 건지.’
어이가 없는 한편,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걸 그대로 입에 담았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뭐?”
진짜 천재, 이를테면 윤설하 같은 녀석의 재능은 피부로 느껴진다.
하지만 눈앞의 심인욱은 다르다.
느껴지는 건 다만 탁월한 실력일 뿐, 천재성은 아니다.
그러니까.
“피차일반이라고. 천재가 될 수 없는 건.”
말을 끝마친 순간.
빠득-
심인욱이 이를 갈았다.
더불어 그의 감정이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적개심을 넘어, 살기 수준에 이르렀다.
덕분에 여태 잠잠했던 멸마의 기운까지 끓어올랐다.
‘벌써부터 살기를 뿜어낼 줄 알고 있다니.’
속으로 감탄을 하는 한편.
이때를 노렸던 나는 곧바로 박차고 나갔다.
탓-!
동시에 현천강기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렸다.
쿠구구궁-!
노도와도 같이 밀려드는 현천의 마나.
강 계열 마나 특유의 폭발력으로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래서일까.
“……!”
일순 심인욱의 동공이 커졌다.
단지 그 정도 반응으로, 이내 침착하게 자세를 취했다.
추측건대 강 계열의 마나 심법을 발휘했음을 꿰뚫어 본 듯했다.
하나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현천강기는 다르니까.’
그런 일념으로 출력을 가열차게 끌어올렸다.
쏴아아-!
코어의 마나는 급속도로 줄어들었으나, 출력은 끝없이 증폭되어 갔다.
‘제약을 두지 않기에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끝없이 증폭되는 힘.
그것이 바로 현천의 이치이자, 현천강기의 진가였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마나량이 꽤 늘어났는데도 여전히 감당이 안 될 줄은.’
끝 모를 출력에 비해 마나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머지않아 고갈될 것이다.
이 또한 빠르게 승부수를 띄운 이유 중 하나였다.
새삼스럽게 전략을 상기한 채.
쏴아아-!
현천의 이치에 따른 힘을 두 주먹에 담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복마구권의 절기를 펼쳤다.
후-욱!
공기 째 짓뭉개며 엄청난 속도로 내지르는 일권.
심인욱의 대처는 이번에도 비슷했다.
다만 내 주먹에 담긴 위력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무공으로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의 주먹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칠흑 같은 기운으로 이뤄진 하나의 형상.
이는 마치 한 마리의 용을 연상시켰다.
‘용을 품은 일권이라.’
위력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이를 악문 채로 주먹을 뻗었다.
콰직-!
예상대로 그는 정교하게 대처했다.
궤적 그 자체를 차단한 것이다.
이어지는 동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웅-!
용이 승천하는 기세로 짓쳐 드는 일권.
그가 노리는 곳은 활짝 열려 있는 내 가슴팍이었다.
파악과 동시에 온몸을 내던졌다.
“……무슨!”
당혹성을 터뜨리는 심인욱.
다만 건틀렛 대신 몸으로 막았을 뿐, 의도는 그의 궤적 차단과 동일했다.
결과 역시 비슷했다.
쩌-엉!
오른쪽 어깻죽지로부터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크……흡!”
최대 출력의 현천강기로 상체를 보호했음에도 격통은 이를 뚫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 이 간격을 기다렸다.’
이를 악문 채 왼 주먹을 뻗었다.
좀 전의 일격보다 한층 빨라진 속도를 알아차렸는지.
“……!”
심인욱의 표정에 낭패감이 서렸다.
어떻게든 몸을 뒤로 뺐으나.
‘늦었어.’
멸마의 기운이 담긴 일권이 그의 안면으로 짓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