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대체 그 마나는 정체가 뭐야?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책상을 향해 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지난번의 꿈과 대련 중에 느꼈던 기이한 감각. 과연 둘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어젯밤, 녀석에게 남겨 둔 메모.
지난날의 꿈과 기이한 감각, 그리고 [계승 1단계 –미약한 링크-]에 관한 질문의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책이 펼쳐져 있는 거로 보아 외면하진 않은 듯했다.
확인해 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태창에 나타난 계승, 미약한 링크가 설마 녀석과의 연결을 의미하고 있을 줄이야.’
녀석의 의식, 혹은 경험을 공유하거나, 계승하는 것.
즉, 꿈과 감각은 전부 그림자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깨달은 즉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녀석의 의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니.’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림자는 불완전하게나마 미래를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C급, B급 등 수준 높은 스킬마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비범했다.
그런 존재의 의식,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이점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녀석은 정체가 뭐길래 이런 능력을……. 아니, 그 전에 내 특성의 능력은 어떻게 돼먹은 거지?’
충격과 의문, 설렘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가운데.
메모의 이어지는 내용을 확인했다.
-계승은 그저 주어진 대로 이뤄질 뿐. 내가 제어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어떤 꿈이 나타날지, 또한 어떻게 계승이 이뤄질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읽어내린 순간, 진한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끄응, 제어할 수 없다니.’
게다가 녀석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는 곧 의문은 당분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잠깐 입맛을 다셨으나,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만약 녀석의 정체와 관련된 꿈을 꾸게 된다면.’
굳이 녀석의 기억이 온전치 않아도 의문을 해소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어차피 계승 현상 자체가 내게 나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이로운 현상이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가려는 찰나, 이어지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내용은 내게 전하는 전언에 가까웠다.
-심인욱과 엮였음을 알고 있다.
그는 소임에 관련된 인물에 속하니, 협조를 청한다.
바라는 건 딱 하나. 단지 네가 그를 이기는 것이다.
‘느닷없이 심인욱이 소임과 관련 있다니, 게다가 승부는 또 어떻게 알았지?’
생각지도 못한 전언에 순간 두 눈을 휘둥그레졌다.
이내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쳐 갔다.
‘만약 의식의 공유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으로 이뤄지는 거라면.’
녀석이 현재 내 상황, 심인욱과의 일전을 알고 있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차분하게 전언을 곱씹어 봤다.
‘심인욱과의 승부라.’
녀석의 말대로라면, 소임의 해결에 관해선 특별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미 심인욱과의 일전은 예정된 일이고, 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도전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녀석이 내게 ‘승리’를 원한다는 점이었다.
‘교관님은 공격 한 번 성사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수로…….’
고개를 기울이며 시선을 내리는 순간, 마지막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수단은 이미 찍어 뒀으니, 영상으로 확인하도록.
그 즉시 나는 영상을 점검했다.
녀석은 마력 단련실에 이르러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현천강기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도발적인 선언.
이를 시작으로, 놀라운 내용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확인을 마친 나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거라면…….’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소와 함께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을 헤아렸다.
* * *
몇 시간 뒤, 무기 훈련실.
“준비됐지, 다시 갈게.”
“응.”
윤설하는 대답과 함께 손잡이를 바투 잡았다.
그녀의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즉시.
타닷-
나는 곧장 흑영보를 펼치며 달려들었다.
동시에 삼재기공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우웅-
청량한 마나가 체내를 부드럽게 순환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출 무렵.
윤설하는 검을 비스듬히 세운 채 충격에 대비했다.
콰광-!
격돌과 함께 범상치 않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달려들었다.
마찬가지로 침착하게 보법을 펼치는 윤설하.
그녀를 향해 곧바로 복마구권을 발동시켰다.
콰앙-! 쾅!
역동적인 초식 연계.
더하여 살벌하기 짝이 없는 위력까지.
다만 복마구권의 특수한 효과, 색적과 멸마의 기운은 발휘되지 않았다.
‘투쟁심은 삿된 기운에 포함되지 않는구나.’
윤설하의 감정은 단지 투쟁심일 뿐. 살기, 적개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있어 나는 친구라 그런 듯했다.
나는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 두는 한편, 다시금 대련에 집중했다.
‘어차피 복마구권은 그 자체로 위력이 엄청나니까.’
마침 이를 증명하듯.
쩌-엉!
살벌한 일권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읏.”
주르륵 밀려나는 와중에도 자세를 바로 하는 윤설하.
그간 고태식 교관의 지도하에 쌓아 올린 복마구권의 이해도와 고차원의 무공이 지닌 위력까지.
그녀가 가진 기본적인 스킬로 당해 내기엔 버거운 수준이었다.
타닷-
자연히 구도는 내가 주도적으로 공세를 펼치고, 윤설하는 수세에 몰린 채 방어하는 식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이는 단지 겉보기에 불과할 뿐, 실상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래서 천재라는 건가.’
분명 내 전력은 윤설하를 크게 웃돌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를 몰아치는 것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효타가 전혀 나오질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빈틈이 없어.’
정확히는 합을 교환하면 할수록 빈틈이 시시각각 줄어들었다.
여기서 나는 그녀의 천재성을 피부로 느꼈다.
동시에 ‘천재’에 대해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공세 일변도로 압도하는 것만이 재능은 아니구나.’
압도적으로 몰아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의 호흡을 읽고 알맞게 대응하여 피해를 없애는 것.
그거야말로 천재성의 핵심인 것 같았다.
찰나에 불과한 깨달음이지만, 제법 크게 와닿았다.
‘지금이야 전력 차이로 밀어붙인다지만.’
심인욱과의 대련에선 지금처럼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내가 윤설하의 입장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나는 한층 더 그녀의 대처에 집중하는 한편.
나름의 대책을 강구한 결과, 한 가지 답을 도출해 냈다.
‘빈틈이 없다면.’
어떻게든 비집고 만들어 내야 했다.
이를테면.
‘페이스를 한순간에 끌어올린다거나.’
빈틈이 없다는 건 상대의 페이스에 빠르게 적응하고, 맞춘다는 뜻이었다.
이를 순간적으로 뒤틀 수 있다면 한순간이나마 틈이 생길 터였다.
나는 떠올린 즉시 체내에 잠들어있는 또 다른 마나를 일깨웠다.
그 순간 삼재기공의 마나와는 결이 다른 존재감이 체내에서 약동했다.
쿠구구궁-!
다름 아닌 현천강기, 현천(玄天)의 마나였다.
도도한 흐름이 사지백해를 거침없이 누비며 끓어오르는 활력을 선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쩌-엉!
폭발적인 속도로 짓쳐 들었다.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
이에 윤설하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나는 그녀가 침착함을 되찾기도 전에 완전히 사정권으로 들어섰다.
그 상태에서 복마구권의 절기.
후반 3초식을 연거푸 전개했다.
“흐읍!”
카가가강-!
쩌-엉!
면면부절 이어지는 초식.
이에 따라 권격이 쏟아지듯, 그녀를 향해 쇄도해 갔다.
“으읏!”
거칠기 짝이 없는 공세에 윤설하는 속절없이 밀려났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유효타를 가할 수 있었다.
츠즛-!
오른쪽 어깻죽지.
비록 최후에 타격점이 흐트러져, 스치는 수준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럼에도 성과는 성과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좀 더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선 분명…….’
뇌리에 새겨진 노련한 감각을 떠올리며, 이를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앗!”
손등으로 그녀의 검을 위로 튕겨낸 것이다.
교묘한 손놀림에 당황한 탓인지, 일순 그녀의 두 눈에 낭패감이 서렸다.
‘빈틈!’
그대로 일권을 내지르려는 찰나.
“커, 헉!”
나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갑작스럽게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제한 시간이 다 됐나…….’
그리 생각하며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런 내 모습에 거친 숨을 몰아 내쉬던 윤설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어느 정도 호흡을 정돈하고는 나를 향해 물었다.
“또야? 잠깐 쉴까?”
“……어, 미안.”
간신히 사과를 내뱉은 후, 나는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윤설하는 여태 별말 없이 넘어갔으나, 이번에는 참기 어려웠는지.
“그나저나 방금 그건 마나 때문에 그런 거지?”
의아한 기색으로 내게 물어왔다.
“어.”
“보니까 아예 조절을 안 하는 것 같은데. 혹시 이유가 있는 거야?”
질문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실제로도 현천강기를 아낌없이 발휘했으니 말이다.
이유는 다름 아닌 그림자의 조언 때문이었다.
-너는 현천강기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도발적인 멘트를 시작으로.
-유(柔) 계열의 마나 심법, 삼재기공과의 혼용이라.
-발상은 썩 나쁘지 않다.
내 나름의 현천강기 활용법에 관한 평가부터.
-하나 현천이란 무위(無爲), 따라서 현천의 이치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제약을 두지 않기에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결국 한계를 완전히 외면할 순 없겠지.
현천강기의 묘리, 그리고 마나량의 부재라는 문제점의 인식.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한계의 범위를 끝없이 확장시키면 될 일이다.
-비워 냈을 때 비로소 더 크게 담을 수 있는 법. 계속해서 비우고, 새로이 채워 넣어라.
-그리고 현천강기의 진정한 위력을 깨우쳐라.
현천강기의 올바른 수련법과 진가에 이르기까지.
심인욱과의 일전에 있어 어쩌면 회심의 한 수로 작용할 수도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때문에 나는 우선 녀석이 가르쳐 준 대로 계속 마나를 비우고, 새롭게 채워 넣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이를 되새기며 윤설하의 물음에 답했다.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댄 대답이었으나.
“……그래서 조금씩 유지 시간이 길어진 거구나.‘
윤설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난 아직 체감도 못 했는데 그걸 알아차렸다고?’
숫제 괴물이 따로 없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나와는 달리.
“……하아, 이쯤 되니 네가 괴물 같아 보여.”
윤설하가 한숨과 함께 푸념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그녀는 뺨을 살짝 부풀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렇잖아? 내가 너보다 스텟도 높을 텐데.”
“나도 스텟 꽤 높아졌어.”
실제로 그랬다.
단련 스킬의 효과와 더불어 여태 정신없이 고태식 교관의 지도에 매달린 결과.
-근력 스텟 16
-민첩 스텟 17
-체력 스텟 23
-마력 스텟 18
총합 74스텟, 어느새 E급 반열에 오른 것이다.
특히 마력은 그림자 녀석이 같이 단련해 준 덕분인지 근래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80스텟 넘어?”
“……아니.”
“거봐.”
금방 대답이 궁색해졌다.
‘……진짜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참.’
반박도 못 한 채 그저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뭐, 나도 더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응, 괜찮아.”
윤설하는 기운을 차린 듯,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일으키며 무의식적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맞아. 네겐 특성도 있으니까.”
말해 놓고 아차 싶었으나.
“……응, 그것도 그렇네.”
다행히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을 돌려줬다.
다시금 연습을 이어 가려는 찰나.
“일한이! 이번에는 나와 붙어 보는 건 어때?!”
여태 구경하던 임강철이 다가왔다.
그의 제안에 잠깐 윤설하를 바라보자.
“응, 난 은월이랑 있을 테니 둘이 해.”
얌전히 차례를 양보해 줬다.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준 다음, 임강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슬슬 감이 잡힐 것도 같으니까.’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일요일.
저녁까지 그림자 녀석이 알려 준 수련에 매진했다.
그 결과,
“……대체 그 마나는 정체가 뭐야?”
윤설하로부터 경악 어린 탄성을 이끌어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통해 깨달았다.
회심의 한 수.
현천강기의 진가를 티끌이나마 깨우쳤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