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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47화 (47/218)

47화 이기고, 또 이겨라

“그래, 심인욱. 몸이 근질거리기라도 하는 거냐?”

느닷없이 다가온 심인욱을 향해 고태식 교관은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빈정거렸다.

그럼에도.

“네. 안일한과 붙게 해 주십시오.”

심인욱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를 언급하면서 말이다.

‘……갑자기?’

뜻밖의 언급과 더불어 대련 요청까지.

게다가 그는 당사자인 나에겐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고태식 교관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다소 뜬금없는 상황에 나는 물론, 옆에 있는 임강철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수업은 수업이니, 교관님에게 허가를 구하는 게 맞긴 한데.’

도무지 그 이유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고태식 교관의 대답을 기다리는 한편.

심인욱의 의도를 헤아려보기 위해 표정을 살펴봤다.

그러자 평상시와 조금 다른 기색이 느껴졌다.

‘적개심?’

단지 살짝 상기되어있을 뿐인 표정.

하지만 복마구권을 체득한 영향인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적의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음을 말이다.

‘제 친구들을 상대로 잘 싸워서? 그런 캐릭터는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기울이는 찰나.

문득 고태식 교관이 심인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애송이, 너라면 틀림없이 알고 있을 거다. 네 녀석이 지금 맞붙고 싶어 하는 상대와의 수준 차이를 말이다.”

“……네.”

“그런데도 싸우고 싶다 이건가? 흐음.”

고태식 교관은 묘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더니.

“이런 문제는 당사자의 의견도 들어 봐야겠지. 어이, 애송이!”

이번에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잘 들어라. 네 녀석의 성장은 분명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더없이 진지한 어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서로 전력을 발휘한다면 네 녀석의 필패(必敗)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는다.”

그것조차 모르면 진짜 애송이지. 덧붙이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는 내 첫 실전 대련의 결과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고태식 교관은 결과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애송이지만, 제법 잘 싸웠다!

처음 겪는 2 대 1.

그럼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근소한 차이로 내 쪽이 앞섰다.

그렇다고 내가 이겼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반면 심인욱은?

‘2 대 1 대련을 펼치는 모습은 못 봤어도, 평소의 구도를 생각하면.’

보법, 무공 등의 기교부터 판단력, 대처 등의 센스까지.

모든 부분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게다가 저 녀석은 이미 마나를 최종 형태까지 다룰 줄 아니까.’

마나를 활용한 호신(護身)을 넘어 마나의 유형화에 이르기까지.

아직 신체 강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로서는 그에게 일격을 가하는 건 물론.

심인욱의 전력을 막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할 터였다.

이를 전부 알고 있음에도.

“그래도 기회를 주신다면, 붙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심인욱이 그랬듯, 나 역시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내 대답에 고태식 교관은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손쓸 도리조차 없이 당할 거다. 제대로 된 반격은커녕, 공격을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수준 차이가 극명하니까.”

그래도 해 볼 테냐?

그리 묻는 것 같아 이번에도 역시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여태까지 그랬듯, 맞으면서 배우면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뭐? 맞으면서 배워?”

고태식 교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빤히 기울이더니.

“크핫! 이거 아주 웃긴 놈일세?! 처맞는 법을 배우랬더니, 아주 맛을 들인 모양이군!”

그야말로 광소를 터뜨렸다.

입매가 꿈틀거리는 걸 넘어 사납게 비틀리고 있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대답에 제법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좋다. 허락하지!”

고태식 교관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 즉시.

처억-

심인욱은 무표정하게 자세를 취했다.

나 또한 준비에 임하려는 찰나.

“단, 조건이 있다.”

고태식 교관이 심인욱을 향해 운을 띄웠다.

“조건,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련은 오늘이 아닌, 다음 주 월요일이다.”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네 녀석과 달리 안일한은 이제 막 대련을 마친 직후다. 설마 네 녀석이 바라는 게 그저 약자를 상대로 어깃장을 놓는 건 아닐 테고.”

“……알겠습니다.”

속을 살살 긁는 말솜씨에 심인욱은 마지못해 인정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추가로, 마나 활용은 신체 강화까지. 그리고 대련은 실전이 아닌, ‘세 번의 공방 교환’으로 대체하며, 승패의 기준은 유효타의 횟수로 결정한다.”

“……그건!”

마나 활용의 제약과 세 번의 공방, 거기에 승패의 기준까지.

특히 고태식 교관이 언급한 ‘세 번의 공방 교환’은 주로 초심자용 코스에서 이뤄지는 방식이었다.

초식의 온전한 이해를 목적으로 서로가 한 번씩 공방을 주고받는 것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심인욱한테는 페널티려나?’

하나같이 그에게 제약으로 작용하는 것들이었다.

뜻밖의 규칙에 그저 두 눈을 크게 뜨는 나와는 다르게 심인욱은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마나 활용과 승패의 기준까진 납득할 수 있지만, 말씀하신 방식은 저 녀석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최대한 논리정연하게 말하려 애를 쓰는 심인욱.

하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물론 공방을 교환하는 수준으론 그다지 의미 없겠지. 그러니 서로 3초식의 제한을 두고 대련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3초식만을 활용하는 대련.

이어서 그는 보법 활용은 초식에 포함하지 않을 거라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을 찍듯.

“왜, 설마 네 녀석은 저 애송이를 3초식 안에 제압할 자신이 없는 거냐?”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끝맺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심인욱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제야 고태식 교관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녀석은 뭐, 문제없지?”

당연히 없을 거라 여기는 말투였다.

물론.

“네.”

문제는커녕 불만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이를 기회라 생각하고 있었다.

‘공격 한 번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셨나.’

고태식 교관은 그리 말했다.

그만큼 녀석과 나 사이의 수준 차이는 극명한 듯했다.

이는 곧 대련이 길어질수록 내게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떤 수단을 준비하든, 녀석은 순식간에 파훼할 테니까.’

수준 차이란 그만큼 불합리하고, 절대적이다.

나는 이를 고태식 교관의 수업에서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게 세 번의 공방으로 제한이 된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심인욱의 경지를 단순히 체감하는 데서 나아가 한 번이라도 닿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말이다.

이내 몇 가지, 썩 괜찮아 보이는 수단이 떠올랐다.

‘다음 주 월요일, 시간은 충분해.’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을 때.

“그래야지.”

고태식 교관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10분 쉬고, 다시 집합해라! 이상!”

* * *

몇 시간 후.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위해 모였을 때.

나는 그들에게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가상 대련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아서. 윤설하,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대련에 앞서 친구들의 도움, 특히 윤설하에게 조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내 사정과 부탁을 들은 그녀는 토끼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살짝 망설이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도와주는 건 상관없긴 한데…….”

“고마워. 교관님께 허가를 구하는 건 내가 할게.‘

“으응. 그보다, 괜찮겠어?”

“음?”

“내가 도움이 될까? 솔직히 내 수준이 아직…….‘

윤설하는 대련보단, 자신이 도움이 될지를 걱정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됐다.

윤설하는 천재일지언정, 백유진이나 심인욱과 같은 이들과는 결이 다른 까닭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내 나름의 생각이 있는 까닭이었다.

‘성취는 다를 수 있어도, 천재성의 근간이 되는 센스, 감각, 판단력은 어느 정도 맥락이 비슷할 테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듯.

천재는 천재로 대비하려는 것이다.

‘어차피 실전이 아니면 가상 대련밖에 방법이 없기도 하고.’

아무렴, 정해진 패턴에 따른 가상 대련보단 윤설하와의 대련이 훨씬 도움이 될 터.

더욱이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오늘 대련에서 느꼈던 그 감각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실전은 필요하다.’

무려 두 명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게 만들어 준 감각.

마치 누군가의 경험을 계승하는 듯한 그 감각은 아쉽게도 대련 직후에 사라졌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특정 상황에 어떤 판단을 내렸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이미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진 것이다.

‘잊어버리기 전에 연습해서 이를 체화할 수 있다면.’

분명 커다란 도움이 될 터였다.

이 두 가지야말로 내가 고심 끝에 마련한 대책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윤설하가 문득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뭐가?”

“솔직히 갑작스럽고, 불쾌할 법도 한데.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고 있잖아?”

그녀의 반응은 타당했다.

게다가 기껏해야 대련일 뿐이다.

그럼에도 전력을 다하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래야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심인욱, 그는 지금의 나로선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실력이란, 언제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야 비로소 크게 성장하는 법이었다.

여태 고태식 교관의 수업, 개인 교습을 통해 온몸으로 느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런 내 말에 윤설하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참, 무모하면서도 너다운 것 같아.”

이내 결심한 듯, 이채를 띤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

그녀의 대답이 참으로 든든하게 느껴졌다.

더하여 여태 듣고 있던 임강철도 한몫 보탰다.

“역시 일한이, 너 다운 대답이다! 같은 건틀렛의 길을 걷는 동료로서 나도 한 손 보태도록 하지!”

“고마워.”

그렇게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을 정한 후.

윤설하는 마지막으로.

“은월아, 너도 함께할래?”

여태 유난히 말이 없던 차은월에게 말을 건넸다.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그녀는 더듬더듬 되물었다.

“어? 몇 시라고 했지?”

“오전 10시. 대련 연습 좀 하다가 점심 같이 먹자.”

“으응. 알겠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차은월.

그녀의 상태에 살짝 의아했으나, 이내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다.

‘아, 그리고 오늘 밤 녀석에게 메모를 남겨 놔야지.’

대련에서 겪었던 감각.

그 정체를 한번 물어봐야겠다.

다짐과 함께 다시금 식사에 열중했다.

* * *

그날 밤.

그림자는 마력 단련실의 한가운데에 선 채로 생각했다.

‘심인욱과의 대련이라.’

계승이 아직 기초적인 단계에 불과한 탓에 그가 본 건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소임과 관계된 인원 중 한 명인 심인욱.

예상보다 빠르게 그와 엮였음을 파악하기에는 말이다.

‘나쁘지 않아.’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기존에 상정해 둔 상황과는 다르게 흘러간 것이다.

하나 괜찮았다.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때마침 속도를 한층 끌어올리려던 참이었으니.’

내재된 기억에 따르면 현시점의 심인욱.

그는 스스로의 위치를 온전히 정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범인은 월등히 상회하지만, ‘진짜’에는 미치지 못한다.

어중간한 천재.

불완전한 정체성은 환영 마법이 파고들기 딱 좋은 틈새이자, 균열이었다.

그렇게 악의에 잠식된 녀석은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실제로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해 들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어중간하게 천재의 경지를 넘보는 수준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니.

‘반드시 이겨야 한다.’

물론 한 번으론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리가 계속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이기고, 또 이겨라. 나아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라.’

끝내 심인욱의 인식의 저변을 송두리째 뒤엎을 때까지.

‘너는 그저 승부에 집중하면 된다.’

수단은 내가 제공할 테니.

생각과 함께 그림자는 현재 전력을 가늠했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떠올린 즉시 그는 스마트 워치를 찬 팔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입을 열었다.

“넌 아직 현천강기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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