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네 녀석도 천재라 이거냐?
-잘 들어라. 다수를 상대할 때 핵심은 하나다.
느닷없이 귓가에 흘러드는 쇠를 긁는 듯한 음성.
마치 환청처럼 들리는 이 목소리는 분명 꿈에서 나온 외눈, 외팔의 사내의 것이었다.
‘갑자기 이게 왜…….’
맥락으로 봤을 때, 꿈에서 깨어난 탓에 듣지 못했던 뒷 내용에 해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타닷-!
처음 겪는 실전 대련, 그것도 무려 2 대 1이다.
두 사람이 적의로 가득한 눈빛을 번뜩이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상황.
온 신경을 눈앞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얼마나 도움이 되든, 경청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여태 잠잠하더니 하필 이 타이밍에……!’
나는 혀를 짧게 차며 생각했다.
고민은 찰나에 불과했고, 순식간에 결정을 내렸다.
탓 타닷-
잰걸음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난 것이다.
조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귓가에 환청이 들리는 상황에선 결코 대련에 집중할 수 없을 거란 이유가 가장 컸다.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 사내의 조언이 재차 이어졌다.
-일격필살. 첫 일격은 무조건 죽인다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다수를 상대할 때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시작으로.
-노려야 할 곳은 급소,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부위다. 당연히 첫 격돌 이전에 급소를 포착할 수 있는 환경, 구도를 조성하는 게 선결되어야 한다.
타격점, 그리고 사전 작업.
-이때 발휘해야 할 힘은 전력이다. 더하여 가급적이면 정면보단 사각, 기습을 가하는 구도면 더할 나위 없다고 할 수 있지.
힘 조절과 최선의 구도에 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하나씩 뜯어 보면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은 현실적인 조언들이었다.
하지만.
‘……대련을 시작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단언컨대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설프게 시도했다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그림자 녀석이 경우에 따라서 도움이 된다고 한 건가?’
미간을 찡그리며 녀석의 말을 떠올렸다.
그 사이에도.
“언제까지 꽁무니만 뺄 작정이냐!”
두 사람, 엄준태와 손기욱은 죽일 듯한 기세로 나를 쫓아왔다.
스텟 차이 때문인지, 간격은 빠르게 좁혀졌다.
때문에 나는 또다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소간의 피해를 감수한다.’
그리고 복마구권으로 반격을 도모하리라.
그렇게 판단한 즉시 급하게 멈춰 섰다.
그러고는 정면돌파를 감행할 생각으로 박차고 나갔다.
아니, 달려나가려는 찰나.
-네놈이 보여 준 판단력과 센스라면 실전에서도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또다시 조언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조언에서 그치지 않았다.
“……!”
전신에 스며드는 기묘한 감각.
특히 머릿속으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흘러들었다.
그 순간.
‘여기선 이렇게 움직여야 하는 건가……?’
나는 왠지 모르게 알게 됐다.
현 상황, 다수로부터 추격당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이를 깨달은 즉시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
도리어 당황하는 두 사람.
이내 그들은 침착하게 자세를 갖췄다.
마지막 발악쯤이라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여 밟아 주려는, 그런 느낌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죽어어어-!”
“흐읍!”
녀석들은 각자의 무공을 전개하며 일권을 날렸다.
미세한 시간 차를 두고 날아드는 공세.
거기에 두 녀석은 교묘한 위치 선정을 통해 내 운신의 폭을 제한했다.
본래라면 선택지는 몇 안 됐다.
공세에 맞서 맞불을 놓거나, 아니면 뒤로 물러나거나.
‘어느 쪽도 최선은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순간에 나왔다.
타닷-
곧바로 흑영보를 펼치며 녀석들의 정면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후웅-!
머리칼을 스쳐 지나가는 건틀렛.
소리만으로도 일권에 담긴 위력이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나아갔다.
스윽-
아찔한 차이로 피해내고는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한가운데, 두 녀석의 바로 코앞에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익!”
녀석들의 움직임으로부터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반면 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윽-
등으로 밀어내듯, 배후의 녀석을 튕겨 내고.
후욱-!
이를 반동 삼아 정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목표는 턱.’
아예 박살 내 버릴 기세로 내지르는 일권.
이에 정면의 녀석은 급하게 양팔을 들어 올렸다.
콰직-!
그럼에도 녀석은 살벌한 소리와 함께 주르륵 밀려났다.
거침없이 한복판에 뛰어든 순간부터, 초근접 상황에서 펼친 일련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되짚어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조언이 온전하게 체화됐어…….’
마지막 조언과 함께 스며들었던 기묘한 감각.
그 정체가 바로 ‘누군가의 경험’이었음을 말이다.
‘사내에게 조언을 듣고 있던 누군가인가……?’
결코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감각은 실시간으로 내 몸에서 살아 숨 쉬었다.
기존의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판단과 대처, 그리고 움직임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이어지는 대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이 자식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내게 달려드는 배후의 녀석.
휘익-
매서운 기세로 내 안면을 노리고 일격을 날렸다.
움츠러들 법하건만, 내 안에 깃든 감각은 달리 말하고 있었다.
‘주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건 기회다.
그에 맞게 나는 순식간에 선회했다.
그러고는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타닷-
목을 바짝 꺾는 것과 동시에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대로 녀석의 안면을 향해 쭉 뻗었다.
“……으윽?!”
순간적으로 시야를 차단하고, 그 사이 녀석의 일권을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피해냈다.
이어서.
‘반격 타이밍.’
주저 없이 왼 주먹을 말아쥔 채 그대로 뻗었다.
목표는 심장, 이번에도 역시 필살의 의지를 담았다.
다만.
퍼-억!
노련해진 감각과는 달리 내 몸의 힘은 그대로였다.
따라서 꽂힌 일격은 치명타에 못 미치는, 유효타 수준이었다.
“……윽.”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녀석.
앞서 내 일권을 가까스로 막아 낸 녀석 또한 움츠러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여태까지의 공방이 그들의 예상을 월등히 상회하고 있음을 말이다.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라면.’
짧은 공방에 불과했으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말대로 쓸 만하다는 것을.
아니,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킬로 화한 복마구권을 시험해 보기도 전에 이미 주도권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본격적으로 복마구권의 진가를 발휘한다면 어떨까.’
명약관화한 답에 의욕이 넘쳐흘렀다.
때마침 정신을 차렸는지.
“침착하게 움직이면 돼.”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이야!”
두 녀석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조금 전보다 신중한 기색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타닷-
녀석들은 본격적으로 보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정면에서 내 움직임을 제한시켰고, 나머지 한 명은 배후를 점한 채로 나를 압박해 왔다.
이에 나는 스킬, 복마구권을 발동시켰다.
그 순간.
‘보인다. 아니, 생생하게 느껴져.’
그들의 움직임이, 심지어 배후에 있는 녀석의 것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는 전적으로 복마구권의 효과.
살기, 적개심 따위의 삿된 기운을 감지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이를테면 색적이 가능해진 건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에 고태식 교관이 내게 말했듯, ‘색적’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진가는 전신에 차오르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건 고양감이라고 해야 할까.’
격렬하고, 격정적인 기운.
순식간에 차오르며, 그대로 두 주먹에 스며들었다.
나는 기운의 정체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멸마의 기운…….’
마를 굴종시키고, 나아가 멸하기 위한 기운.
이게 바로 C급 이상 스킬에서 발휘된다는 특수한 효과인 듯싶었다.
‘마나를 활용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찌릿찌릿한 감각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처음엔 악착같이 부딪혀가며 배울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달랐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서 비롯된 노련함.
거기에 색적과 멸마의 기운까지.
조금도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타닷-
녀석들을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 * *
쩌-엉!
건틀렛과 건틀렛.
안일한과 엄준태, 두 사람의 일권이 충돌하며 굉음이 흘러나왔다.
그 즉시 서로 보법을 펼쳐 간격을 벌렸다.
일견 동수를 이룬 듯한 구도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후우!”
전력이 열세일 터인 안일한은 멀쩡하게 물러나는 반면.
“……으윽.”
기본적인 스텟부터 앞설 터인 엄준태는 오히려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것이다.
전력 차를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심인욱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
친구랍시고 따라붙는 녀석들의 졸전 때문에?
아니었다.
그런 건 조금 전의 대련.
진창식이 임강철이란 초보자를 상대로 동수를 이뤘을 때 이미 떠올린 생각이었다.
오히려 심인욱은 다른 이에게 신경이 쏠려 있었다.
‘저 녀석은 도대체.’
다름 아닌 안일한.
눈앞에서 두 명의 숙련자를 상대로 마음껏 날뛰는 녀석만을 주시하는 것이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어제 봤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쯤 되면 단순히 성장이란 표현조차 어색한 수준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개세적인 변화.
그만큼 이해할 수 없으며, 범상치 않았다.
처음엔 스킬 때문이라 생각했으나, 이내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분명 스킬 자체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니야.’
녀석이 가진 보법, 무공은 확실히 훌륭했다.
대체 무슨 수로 그만한 스킬을 손에 넣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심인욱은 저만한 스킬은 물론.
그 이상의 등급을 가진 스킬까지도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핵심은 스킬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 있었다.
‘움직임, 판단력, 대처까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건 이쪽이다.’
이는 최초의 공방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다수를 상대로 한 움직임, 공세에 대처하는 방식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숙련됐고, 노련했다.
철저히 경험을 통해서만 쌓아 올릴 수 있는 산물.
그렇기에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고작 2주 만에 무슨 수를 써야 저만한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거지?’
굳은 낯빛으로 의문을 곱씹고 있을 때.
“일한이! 대, 대체 언제 그렇게까지!”
“크핫! 정말이지, 놀랍구먼!”
별안간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임강철과 고태식 교관, 두 사람의 대화 소리였다.
딱 봐도 안일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심인욱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방과 후에 지독하게 굴리긴 했어도, 이만한 움직임을 보일 줄이야. 여전히 새벽에도 구르고 있는 건가?”
“방과 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관님!”
“저 애송이가 청한 거다. 왜, 네 녀석도 관심 있냐?”
“저도 하게 해 주십쇼!”
방과 후는 물론, 새벽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면 미친 듯이 노력한 건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단언할 수 있다.
이미 겪어봤고, 부족함을 뼈저리게 체감해 봤으니까.
그래서일까, 그는 유일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천재성.’
만일 그렇다면 이는 심인욱, 그가 동 나이대 또래 중 유일하게 인정하는 한 사람.
백유진이 타고난 천재성과도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떠올린 순간.
빠득-
심인욱은 반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네 녀석도 천재라 이거냐?’
‘천재’라는 단어는 그에게 있어 일종의 역린이었다.
고작 두 글자로 인해 한 번, 그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이후부터는 쭉 그랬다.
‘……인정할 수 없다.’
권태로움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분노가 대체했다.
때마침.
“이제 그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고태식 교관이 대련을 끝냈다.
심인욱은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접근을 알아차렸는지, 고태식 교관은 피드백 도중에 고개를 돌렸다.
“애송이, 지켜보고 있었더니 몸이 근질거리나?”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
하지만 눈빛 속엔 이상할 정도로 이채가 가득했다.
어쩐지 속내를 읽혔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내 손으로 저 녀석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릴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판단 즉시 입을 열었다.
“교관님. 안일한, 저 녀석과 붙게 해 주십시오.”
당당한 요청.
이에 고태식 교관의 입매가 사납게 비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