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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느닷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우에 따라선 꽤나 도움이 될 테니까.
누군가의 한마디.
그 말에 나는 꿈을 꾸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 번도 꿈을 꾼 적 없었는데.’
추측건대 미구현 특성이 발현된 이후부터인 듯했다.
그저 눈을 감으면 잠에 들고,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처음엔 의아했으나, 이젠 신경도 안 썼다.
‘그 사이에 뭐가 벌어지는지 알게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당장 자각몽을 인식하고 있음을 제외하고도 그랬다.
이유는 다름 아닌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이곳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서서히 시야가 회복되는 가운데.
가장 먼저 허름한 건물 내부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이서 중앙에 오롯이 서 있는 나이 든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돌아서자 강렬한 외견이 드러났다.
‘팔 하나가 없다……?’
응당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른쪽 눈도 끔찍한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외팔, 외눈의 사내.
대체 정체가 뭔지, 누구길래 내 꿈 속에 나타난 건지.
의문을 떠올릴 틈도 없이 사내의 입이 열렸다.
-뭘 가르쳐 달라고? 게다가 ……도 아니고, 그런 쓰레기들을 처죽이는 법을?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중간에 노이즈가 껴서 그런지, 몇몇 단어가 누락되어 들렸다.
게다가 사내의 투덜거리는 말투가 왠지 나를 향하는 듯했다.
의아함을 떠올리는 사이.
-나 참, 내가 말세에도 ……노릇을 해야 되나? 그것도 이런 시커먼 놈을?
-까짓것, 가르쳐 주지. 그전에 네놈, 실력이나 한번 보여 봐라.
느닷없이 초로의 사내가 달려들었다.
시야가 역동적으로 뒤집히는 게, 꼭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1분간 지속되고 나서야 사내는 물러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접하구먼. 뭐, 당연한 건가?
가차 없는 평가.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다소 뉘앙스가 달랐다.
-그런데 또 판단력, 센스는 있어. ……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 건가.
단점을 지적하되, 장점을 인정한다.
평가가 인색할 것 같은 인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내 선심 썼다는 듯,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뭐, 좋아. 마침 네놈에게 딱 맞는 전투 방식이 있으니 알려 주지.
딱 맞는 전투 방식.
내게 하는 말이 아니었음에도 흥미가 동했다.
귀를 기울이자 사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두 번 설명하는 취미는 없으니 잘 들어라. 쓰레기들, 그러니까 다수를 상대……
본론이 흘러나오기 직전에.
“……이!”
어떤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이내 소리는 급속도로 커져 가더니.
“일한이! 일어나, 아침이다! 지각한다고!”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왔다.
다름 아닌 임강철이었다.
그제야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동시에 깨달았다.
1교시 시작까지 불과 3분 정도가 남았음을 말이다.
‘꼼짝없이 지각이네.’
나는 튕기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잠시 후.
“세, 세이프인가?!”
“아웃이다, 이놈들아!”
1교시를 맡은 교수의 호통에 임강철은 찔끔했다.
결국 꼼짝없이 지각해 버린 것이다.
교수는 다행히 경고로 넘어가고 수업을 이어 갔다.
이내 임강철은.
“푸화하학-!”
어김없이 빛의 속도로 잠들었다.
이젠 익숙해진 상태라 개의치 않고 신경을 돌렸다.
‘오늘 꾼 꿈은 도대체 뭘까.’
낯선 공간과 처음 보는 초로의 사내.
거기에 배움을 청하고, 가르침을 받는 것까지.
전부 기억에 없는 광경이었다.
‘기억에는 없는데. 그렇다면 혹시…….’
그림자. 녀석의 기억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것도 새로운 작용의 일환인가?’
가능성을 떠올린 즉시 상태창을.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동기화율을 살폈다.
[특성]
-????의 그림자
동기화율 20%
계승 1단계 –미약한 링크-
예상대로 19%였던 어제와는 달리 20%로 상승했다.
하나 정작 눈이 가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계승 1단계 –미약한 링크-]
동기화율 아래에 처음 보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다.
‘계승 1단계? 미약한 링크……?’
무엇을 계승한다는 건지.
링크는 또 뭐고, 대체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
단서나 설명이 전무한 탓에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역시 그 꿈은 녀석과 관련되어 있는 건가.’
그림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만 이번 현상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새로운 현상이 대개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준 반면.
이번에는 가늠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일단 의문을 뒤로하고 다음 점검으로 넘어갔다.
‘과연 행동에는 변화가 있을지.’
영상을 재생시키는 순간, 시작부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녀석이 한동안 우두커니 선 채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이다.
즉시 확인해 본 결과.
-무엇을 보게 되든, 똑바로 직시해라.
-경우에 따라선 꽤나 도움이 될 테니까.
꿈을 꾸기 직전에 들었던 내용임을 알 수 있었다.
‘똑바로 직시하라고? 도움이 된다는 건 또 무슨…….’
의미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일단 영상을 계속해서 살펴봤다.
행동 또한 여태까지와는 달랐다.
무기 훈련실 대신 마력 단련실을 향하고, 복마구권이 아닌 마력 단련에 임하는 것이다.
앞선 의문과는 달리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어제저녁에 체득을 끝냈으니까.’
개인 교습이 끝날 무렵, 고태식 교관은 말했다.
슬슬 때가 됐다고 말이다.
마침 나도 느끼고 있었기에 그날 저녁에 지체없이 시도했다.
그 결과.
-복마구권(B)
마를 굴종시키는 아홉 개의 권(拳)
현천강기에 이어 두 번째 B등급 스킬을 획득했다.
‘교관님이 최소 C급 이상이라 하셔서 혹시나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명칭부터 예사롭지 않던 무공, 복마구권은 등급마저도 비범한 B급이었다.
이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앞선 의문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어차피 당장은 고민해도 알 수 없으니까.’
반면 복마구권은 달랐다.
활용이 가능한 건 물론, 머지않아 위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부터 제대로 된 실전 대련이니까.’
스킬로 화한 복마구권의 진가.
그 위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지.
기대감과 7교시, 실전 대련을 기다렸다.
* * *
7교시, 무기술 심화 수업.
시작과 동시에.
“어이, 애송이들! 후딱 뛰어와라!”
고태식 교관은 나와 임강철을 호출했다.
그러고는.
“맞는 법 수업은 이쯤하고, 오늘부터는 때리는 법 수업으로 넘어간다.”
어제 내게 말했던 내용을 그대로 임강철에게 들려줬다.
“오오-!”
임강철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 둘을 향해 고태식 교관은 이어서 짤막한 설명을 덧붙였다.
“방식은 실전 대련이고, 네 녀석들의 상대는…….”
그러고는 곧장 고개를 돌리더니.
“너희 세 명, 이쪽으로 와라!”
숙련자용 코스 쪽을 향해 소리쳤다.
대부분 움찔거리는 가운데.
세 명의 생도가 부리나케 달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쟤네들인가?’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런 생각으로 숙련자용 코스 쪽을 둘러보던 중, 문득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심인욱,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방금 호출된 세 명은 심인욱과 붙어 다니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창식, 엄준태, 그리고 손기욱이었나? 근데 왜 세 명이지? 우린 둘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세 사람이 어느새 고태식 교관 앞으로 다가와 정렬했다.
그는 세 명을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금 우리에게 설명을 이어 갔다.
“이 녀석들이 대련 상대다. 임강철, 네 녀석이 한 명. 그리고 안일한!”
“네.”
“넌 두 명이다.”
“……네?”
“두 명이라고. 2 대 1이다.”
그제야 세 명을 부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하나 무어라 항변하기 전에 그가 선수를 쳤다.
“임강철, 저 애송이는 기본 스킬뿐이다. 반면 네놈은 어떻지?”
흑영보와 복마구권.
무려 C급, B급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응당 난이도가 달라야 한다.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고태식 교관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꽤나 호승심을 품고 있는 모양이던데.”
“……맞습니다.”
“심인욱, 그 애송이를 이기고 싶지?”
“……!”
내 속내를 훤히 들여다본 듯한 말투에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주제에 굼벵이마냥 느긋하게 실력을 키울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그렇게 했다간 그 녀석을 뛰어넘기는커녕, 평생 상대조차 안 될 거다.”
거기까지 듣는 순간.
“하겠습니다, 2 대 1.”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실제로 고태식 교관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한참이나 앞서 있는 녀석이야.’
그런 상황에서 추격하고, 나아가 따라잡으려면 평범한 방식이어선 안 된다.
2 대 1이든, 3 대 1이든.
평범함을 넘어 비범함을 노려야 그나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강해지다 보면.
‘내 목표에도 크게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겠지.’
마음을 완전히 다잡을 무렵.
“그렇게 나와야지!”
고태식 교관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여태 지켜본바, 저 표정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었다.
그렇게 대련을 위한 준비가 끝났을 때.
“그럼 임강철, 네 녀석부터 시작한다. 상대는 진창식, 네가 하도록.”
고태식 교관이 임강철의 대련 상대를 짝지어 줬다.
내 상대는 자연히 남아 있는 두 명, 엄준태와 손기욱이 됐다.
확인과 함께 고개를 돌리자 문득 주변으로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여태와는 다른 수업 방식에 모든 생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그중에는.
“…….”
심인욱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기 불편해 보이는 눈초리, 이를 무덤덤하게 받아넘기고 있을 때.
“그럼 시작해라!”
첫 번째 실전 대련이 시작됐다.
먼저 움직인 건 임강철이었다.
타닷-
그야말로 맹렬한 돌진.
상대는 당황했는지 뒤늦게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난타전이 시작된 가운데.
두 사람의 스타일이 극명하게 갈렸다.
숙련자용 코스에 속한 진창식.
그의 보법과 무공은 제법 세련된 느낌이었다.
반면 임강철은?
“흐아아압!”
삼재보와 육합권.
기본 스킬인 만큼 투박하고, 단순했다.
언뜻 보기엔 전력에서부터 임강철이 열세였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간지러운 수준이다!”
피해를 불사르며 짓쳐드는 저돌적인 공세.
거기에 야성적인 몸놀림까지.
임강철은 가진 바를 십분 활용하여 어떻게든 전력 차를 메우며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그렇게 대략 5분 정도 지났을 때.
“그만!”
고태식 교관이 대련을 끝냈다.
그러고는 영 불만스럽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점수를 매기자면 둘 다 엉망진창이니, 곧바로 평가로 넘어간다. 먼저 진창식!”
“……네!”
“네 녀석의 기본기와 이해도는 쓸 만하다. 하지만 판단력이 쓰레기다. 좋은 무기를 두고 상대에게 휩쓸렸으니 그런 양상이 나온 거다!”
임강철의 페이스에 말려 초근접 난타전을 벌인 탓일까.
가차 없는 평가에 진창식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이어서 임강철을 향해 소리쳤다.
“애송이!”
“네엡!”
“네놈은 자세며, 힘의 배분이며 아주 엉망진창이다!”
한층 더 가차 없는 평가.
하지만 그의 표정은 달랐다.
특히 입매가 사정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하지만 전략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동작의 낭비를 집중적으로 고민해 보도록!”
“넵, 정진하겠슴다-!”
디테일한 칭찬으로 마무리 지었다.
의외로 건실한 피드백을 끝으로.
“다음, 안일한! 그리고 나머지들은 위치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마주 서는 두 명의 생도.
그들은 아주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 대 1? 기고만장한 것도 정도가 있지!”
“저런 멧돼지 같은 녀석처럼 날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다!”
대놓고 적개심을 풍겼다.
그 모습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내가 뭘 했나? 아니면 임강철이 선전해서?’
의아한 것과는 별개로 딱히 상관없었다.
적개심, 살기 등, 삿된 기운은 복마구권의 상극.
한낱 먹잇감에 불과한 까닭이었다.
나는 기꺼이 받아주며 미소로 화답했다.
“우, 웃어?! 이 자식이……!”
두 사람이 거친 반응을 토해내려는 순간.
“그만하면 됐으니, 이제 시작해라!”
고태식 교관이 끼어들었다.
그의 지시에 말문이 막힌 둘은 일순 움찔거리더니.
타닷-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복마구권이 살기 감지에 탁월하다지만.’
1 대 2, 다수와의 대련은 처음이다.
때문에 나는 선공이 아닌, 반격을 노릴 작정이었다.
신중하게 스킬로 화한 복마구권을 펼치려는 찰나.
-잘 들어라. 다수를 상대할 때 핵심은 하나다.
느닷없이 귓가에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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