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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44 드디어 체득할 시기가 찾아왔다
44 드디어 체득할 시기가 찾아왔다
“너희들, 실력이 떨어지면 보는 눈이라도 길러라.”
심인욱의 싸늘한 어조에 세 사람, 진창식, 엄준태, 손기욱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이에 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는 대신.
“아, 아하하! 거슬렸다면 미안!”
“뭐, 저런 놈들을 신경 쓸 시간에 단련이라도 더 하는 게 맞겠지?”
“그렇지! 우리 단련하기도 바쁜데!”
감정을 숨기려는 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정작 심인욱은 그들의 의도를 외면했다.
그저 싸늘한 표정으로 심기 불편한 티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그의 반응에 세 사람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슬슬 참기 어려울 무렵.
“8교시는 이걸로 끝이다! 다들 알아서 다음 수업 장소로 이동하도록!”
때마침 고태식 교관이 수업을 끝냈다.
그 즉시 심인욱은.
“먼저 간다.”
혼자 빠르게 소훈련실을 빠져나갔다.
세 사람은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다.
“하, 진짜. 비위 맞춰 주기 더럽게 힘드네!”
“내 말이! 하여간 그놈의 고고한 척은!”
“진짜 배경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빌빌거릴 필요는 없었을 텐데!”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심인욱의 태도에 질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어휴, 그놈의 배경이 뭐라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진짜 나중에 초인 사회에 진출하면 인맥의 힘이 장난 아니래.”
“나중에 길드 입사할 때도 그렇고, 일정 등급 이상 게이트를 공략하려면 최상위 길드의 협조가 필수잖아.”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도 대지의 혼 길드장의 아들이랑 친해지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시는 거겠지.”
이들의 배경은 기껏해야 중소 길드의 간부 혹은 적당히 이름 있는 가문 소속 정도였다.
즉, 대한민국 4대 길드를 배경으로 둔 심인욱과는 레벨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부모님이 등을 떠미는 건 물론.
세 사람 모두 심인욱이라는 끈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때문에 그저 뒤에서 욕을 하거나.
“백유진이 건틀렛이었다면······. 아니지, 내가 애초에 창을 골랐더라면!”
“유진이는 되게 친절하고 유쾌하다던데.”
“차별 없이 대해주는 게 살짝 흠이긴 하지만.”
심인욱만큼, 아니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는 백유진.
그가 속한 창술 수업을 부러워하는 등.
이렇게나마 끓는 속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푸념 끝에 그들은 다시금 심인욱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인욱이가 지켜보던 그 녀석 있잖아.”
“이름이 안일한이었나? 걔가 왜?”
“거슬려 하는 것 같던데, 손을 봐줘야 하나······?”
의제는 다름 아닌 안일한.
녀석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에 관한 의논이었다.
심인욱의 고고한 성향으로 인해 뒤에서 손을 쓰는 건 언제나 그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잘못했다가 걸리면······?”
“게다가 우리 교관님, 완전 호랑이잖아.”
“징계는 물론이고 그냥 아작날 것 같은데······?”
교관의 허가 없는 대련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괴롭힘이나 린치에 관한 체벌에 이르러선 두말할 것도 없을 정도였다.
초인 지망생이라곤 하나, 이들의 힘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까닭이었다.
거기에 고태식 교관의 무지막지함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냥 적당히 위협하고 그쳐야 하나? 나대지 말라고.”
“그 정도로 될까?”
“오히려 그 녀석이 먼저 싸움을 걸게 만든다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세 사람.
너무 열중한 탓일까.
그들은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를 알아차린 건.
척-
두툼한 팔뚝이 그들의 목에 감겼을 때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히익?!”
“누, 누구!?”
그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애송이들, 재미있는 이야기 중인 것 같은데. 안일한을 뭐 어쩐다고?”
두꺼운 팔뚝, 그 위를 가로지르는 끔찍한 흉터, 거칠기 짝이 없는 목소리까지.
다가온 이는 다름 아닌 고태식 교관이었다.
파악한 순간 세 사람은 한마음 한뜻으로 생각했다.
‘······조졌다.’
작당 모의 단계에서 걸려 버렸다.
하필이면 무섭기로 소문난 고태식 교관에게 말이다.
변명의 여지도 없어 곧장 머리부터 숙이려는 찰나.
“뒤에서 입으로만 나불거리면 쓰나! 그러지 말고, 그 감정 잘 간직해 둬라. 그리고.”
고태식 교관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판을 깔아 줄 테니, 마음껏 표출해 봐라. 내 말 알아들었지?”
영문 모를 지시였다.
하지만.
“······네!”
세 사람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방과 후, 소훈련실.
“자, 25%의 힘이다! 이것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초인이 되겠다는 말이냐!”
고태식 교관은 변함없이 속을 긁으며 짓쳐 들었다.
그의 접근에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꾹 눌러 참으며 자세를 갖췄다.
‘25%는 무슨······!’
그대로 일격에 반응, 타이밍 맞게 흑영보를 펼친 순간.
후웅-!
매서운 일권이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
하나 이미 익숙했다.
그렇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며들었다.
스스스-
마치 어느새 발밑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여 그의 사각을 점했다.
동시에 상체를 비틀어 온몸의 힘을 끌어올렸다.
‘이 각도라면······.’
알맞은 초식이 있다.
복마구권 제4초.
모든 초식이 필살의 기세를 담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네 번째 초식은 특히 반격에 용이했다.
‘목표는 왼쪽 가슴.’
정확히는 심장 부근이었다.
쏟아지는 살기, 그 자체를 분쇄할 기세로 주먹을 뻗는 순간.
터업-!
귀신 같은 속도로 솟구치는 왼손바닥에 막혀 버렸다.
그 이후의 결과는 뻔했다.
‘······망했다.’
고통을 떠올리며 미리 이를 악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직-!
예상대로 옆구리에 강렬한 충격이 틀어박혔다.
“커헉······.”
숨이 턱 막히는 수준의 격통.
하나 이를 악문 채로 버티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만큼 고통에, 맞는 법에 익숙해졌다.
2주간의 지옥 같은 개인 교습의 성과였다.
그럼에도 서글픔이 밀려드는 한편.
‘시간상으로 봤을 때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열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반격의 기회를 잡아채기 위해 뛰쳐나갔다.
아니,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
“그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고태식 교관이 종료를 선언했다.
그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떨구었다.
‘제길, 오늘도 반격은커녕 스치지도 못했네.’
개인 교습을 시작한 지 대략 2주 차.
성장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내 역량은 빠르게 늘었다.
그럼에도 방금과 같은 양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내가 성장한 만큼 힘과 속도를 끌어올리고 계시니 원.’
흑영보의 활용이 능숙해짐에 따라 내 움직임은 한층 더 은밀하고, 기민해졌다.
하나 그 이상으로 고태식 교관이 내지르는 주먹의 속도가 빨라졌다.
반격도 마찬가지였다.
복마구권의 각 초식에 내재된 묘리, 응용, 활용 타이밍까지.
무공의 이해도는 나날이 깊어져 갔다.
하지만 최적의 순간에 가하는 반격조차 고태식 교관은 반응 속도를 끌어올려 죄다 막아냈다.
그게 반복되니, 결코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절대 25%일 리가 없어.’
그가 처음에 공언했던 25%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럼에도 매번 25%를 강조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사로운 감정과는 별개로 소득만큼은 확실했다.
‘첫 주에는 복마구권을 펼치기는커녕, 속절없이 처맞기만 했으니까.’
반면 지금은?
한 시간 동안 대략 10번 넘게 고태식 교관의 움직임에 반응하게 됐다.
나아가 실패했으나, 복마구권의 묘리를 살려 반격에 나서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이라 그런지, 이제는 부정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확실히 처맞으면서 배우는 것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긴 하네.’
떠올리는 것만으로 서글펐지만, 사실이었다.
덕분에 슬슬 체감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시도해 봐도 되려나?’
이전에 그림자 녀석이 복마구권의 구결과 함께 내게 전해 준 메시지.
스킬을 체득할 시기가 머지않았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별말씀 없으시니까.’
동작을 알려 준 것도, 실전을 통해 이해도를 끌어올려 준 것도 고태식 교관이다.
그러니 섣부르게 시도하기보단 조금 더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통증도 제법 가라앉았다.
‘슬슬 밥을 먹으러 가 볼까.’
인사와 함께 자리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아, 참고로 내일부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고태식 교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보해 왔다.
예상치 못한 내용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음 단계라는 말씀은······.”
“실전 대련이다. 여태 처맞는 법을 배웠으니 이젠 때리는 법도 배워야겠지.”
“······!”
투박한 표현이었으나, 분명 어감이 달랐다.
단지 의문이 드는 건 ‘실전 대련’이라는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건 실전 대련이 아닌 건가?’
동시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다른 사람, 수업을 같이 듣는 생도와 실전 대련을 한다거나?’
자연스럽게 적당한 대련 상대까지 떠올랐다.
나는 곧장 고태식 교관에게 질문했다.
“혹시 실전 대련 상대가 임강철 생도인지······?”
다름 아닌 임강철.
개인 교습은 아니어도 그 또한 나와 함께 맞는 법 수업을 온몸으로 겪었다.
덕분에 임강철도 처음과 비교해 눈부시게 성장했다.
‘심지어 얘는 나처럼 특별한 스킬도 없이 삼재보, 육합권만으로 교관의 움직임에 반응할 정도니까.’
재능, 자질만 놓고 보면 오히려 나보다 한 수 위인 듯했다.
때문에 제법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오르는 호승심에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그 녀석은 아직 일러. 네 녀석의 상대는 따로 있다.”
“······?”
고태식 교관이 영문 모를 답을 내놨다.
‘아직 이르다니, 그보다 상대가 따로 있다는 건 무슨 의미지?’
의문 속에 불현 듯, 뇌리에 한 생도가 떠올랐다.
‘설마······.’
명실상부 건틀렛 심화 수업의 1등이자, 엘리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한 사람.
“심인욱 생도인가요?”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뭐어? 심인욱?”
고태식 교관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아무리 그놈이 애송이라 한들, 아직 네 녀석 수준으로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스텟 차이부터 무공의 숙련도, 실전 경험까지. 모든 면에서 네 녀석을 월등히 상회하겠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는 수업 시간에 몇 번 심인욱의 대련을 보면서 느꼈다.
‘언제나 같은 숙련자들 상대로 압승을 거둘 정도니까.’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래,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이거지.’
호승심이 가열차게 끓어올랐다.
묵묵히 전의를 다지고 있을 때.
“아, 그나저나 애송이.”
고태식 교관이 돌연 한마디를 덧붙였다.
“슬슬 때가 됐으니 시도해 봐라.”
“그 말씀은.”
“스킬 말이다. 내일까지 준비해 오도록.”
복마구권.
드디어 체득할 시기가 찾아왔다.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그림자는 이채 가득한 눈빛으로 허공의 메시지 세례를 지켜봤다.
-현재 동기화율······ [20%]
-[????의 그림자]가 평범한 수준의 분별력과 온전한 기억의 절반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는 뚜렷해지는 의식 속에 분명하게 인지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동기화율이 꽤나 낮습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의 효율이 크게 하락합니다!
-스킬 [초진화(SS)]가 [초성장(B)]으로 변경됩니다!
-모든 종류의 단련 효과가 8배 상승합니다!
-스킬 [초재생(SS)]이 [초회복(B)]으로 변경됩니다!
-모든 종류의 휴식 효과가 8배 상승합니다!
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됐음을.
동시에.
-동기화율이 일정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기초적인 단계의 [계승]이 이뤄졌습니다!
-의식의 편린이 미약하게나마 연결됩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연결, 그 첫 번째 단추가 꿰어졌음을 말이다.
이로써 녀석도 머지않아 여러 가지를 알게 될 터였다.
다만 그 시작이 무엇이 될지는 그림자도 알 수 없었다.
“무엇을 보게 되든, 똑바로 직시해라.”
경우에 따라선 꽤나 도움이 될 테니까.
마치 누군가에게 전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