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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를 굴종시키는 권법
42 마를 굴종시키는 권법
스킬은 능력부터 종류, 등급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인 가운데, 일정 등급 이상의 스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첫 번째, 스킬 본연의 능력 이외에 특수한 성질, 효과가 발현된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런 스킬들은 어지간한 방법으론 구하기 힘들지.’
희소성으로 인해 수급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특히 수급의 난점은 A급 초인 고태식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그가 눈앞의 애송이, 안일한에게 의문을 품는 건 타당했다.
‘수업 시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저 무공은 최소 C급 이상이다.’
제대로 된 마나 활용 없이 잔상처럼 일렁이는 움직임을 발휘하는 보법부터.
예사롭지 않은 살기가 묻어나는 권법, 무공까지.
하나같이 아카데미의 생도가 가질만한 수준의 스킬이 아니었다.
‘심인욱처럼 탄탄한 배경을 갖춘 애송이라면 모를까. 저 녀석은 그것도 아닌 듯하고.’
거대 단체의 수장을 부모로 둔 생도라면 그럴 수 있다.
제 자식이 시작점부터 앞서나가길 바라며 분에 넘치는 스킬을 전수하곤 하니까.
하지만 살짝 알아본 결과, 녀석의 배경은 평범했다.
즉, 스킬의 출처가 불분명한 것이다.
때문에 처음에는 녀석의 정체를 의심했으나, 금방 배제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멀리 갔어.’
굳이 수업에 참여해 가면서까지 그에게 처맞을 이유가 없었다.
제아무리 빌런들의 사고방식을 알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고태식은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오히려 그릇된 경로를 접해 손대선 안 될 부류의 무공을 접했을 수도.’
이쪽이 훨씬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래, 애송이. 그 살기 짙은 무공은 뭐고, 어디서 그런 걸 구했지?”
대놓고 질문을 던진 이유는 말이다.
뜬금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답하기 껄끄러운 건지.
“······.”
애송이 녀석은 침묵했다.
하나 이는 예상했던 반응이다.
따라서 대책도 미리 세워 둔 상태였다.
‘거짓말을 하거나, 침묵할 순 있어도, 무공으로 내 눈을 속일 순 없을 테니.’
다름 아닌 무공.
A급 초인쯤 되면 대강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나아가 한 번이라도 손을 섞어 보면 무공의 특징, 강점 정도는 완벽하게 파악이 가능했다.
즉, 고태식은.
‘힘으로 알아내는 수밖에.’
직접 실토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어차피 그릇된 루트로 손에 넣은 거라면.’
이는 아카데미 차원에서 중징계로 다뤄질 터.
빌런, 뒷세계와 연관된 문제는 언제나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나 고태식은 그의 선에서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애송이니까.’
징계가 됐든, 스킬로 인한 심마(心魔)가 됐든.
하찮은 문제로 새싹이 망가지게 내버려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재차 물어보려는 찰나. 녀석이 입을 열었다.
“이 무공은 제 손에 들어오게 될 스킬입니다.”
“······들어온 것도 아니고, 들어오게 된다?”
“네.”
녀석은 무표정하게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늘어놨다.
그 뻔뻔함에 고태식은 일순 할말을 잃었다.
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위협하듯 으르렁거렸다.
“뭐, 나중에 들어올 걸 미리 손에 넣었다 이거냐?”
“네.”
“하, 네놈은 지금 그게 말이 되는······.”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전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녀석으로부터 한층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뭐? 지금 장난······.”
“그게 제가 가진 미구현 특성의 능력입니다.”
“······!”
미구현 특성.
그 한마디가 상식을 벗어난 녀석의 주장을 단번에 납득시켰다.
급속도로 생각이 깊어지는 한편.
‘그러고 보니 태진 교관의 제자 중에 미구현 특성이었던 녀석이 한 명······.’
고태식은 문득 진태진에 관한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덩달아 8년 전의 참사에 생각이 가닿은 순간.
‘설마 태진 교관이 여태 녀석을 싸고돌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것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뜻밖의 연결고리에 표정이 절로 굳어지고 있을 때.
“이 무공은.”
별안간 애송이가 입을 열었다.
“복마구권(伏魔九拳)이라고 합니다.”
마(魔)를 굴종시키는 아홉 가지 권술.
명칭에서부터 분명한 의도가 느껴지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그게 무슨.”
고태식은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세를 취했다.
기수식, 무공을 펼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동시에 녀석은 재차 말을 이어 갔다.
“무슨 무공인지 질문하셨습니다.”
“······그랬지. 그래서?”
“대답은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
고태식은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동시에 녀석의 충격 선언 때문에 잠시 잊고 있던 본래 목적을 떠올렸다.
그래서일까.
“크핫! 정말이지 당돌한 놈일세?”
입매가 절로 꿈틀거렸다.
녀석의 행동은 둘 중 하나였다.
‘정말 켕기는 게 없거나, 아니면 어지간히 강심장이라 연기를 기똥차게 하고 있거나.’
어느 쪽이든, 손을 한번 섞어 보면 알게 될 터였다.
우드득-
고태식은 손목을 꺾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래, 무공의 명칭으로 봐선 별문제는 없어 보인다만 네 녀석이 그리 말한다면 봐주는 게 도리겠지.”
말을 끝맺는 것과 동시에.
탓-
고태식은 지면을 박차며 쇄도해 갔다.
녀석은 곧장 자세를 취했다.
이내 녀석의 두 주먹으로부터.
스윽-
복마구권(伏魔九拳).
마를 굴종시키는 권법이 펼쳐졌다.
*
다음날, 오전 수업.
평소처럼 그림자의 동향을 파악하던 중.
“······미친.”
무의식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영상 속 상황이 경악스러운 까닭이었다.
‘고태식 교관님이라니. 갑자기 왜?’
고태식 교관이 명백한 의도를 갖고 찾아왔다는 점부터.
심상치 않은 태도로 무공에 관해 묻는 부분까지.
그야말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사실 언젠간 일어날 일이긴 했지만······.’
그 대상이 하필 고태식 교관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질문도 상당히 곤란한 내용이었다.
녀석이 아닌 내가 그 상황에 처했어도 답변하기 껄끄러울 만큼 말이다.
때문에 나는 마음을 졸이며 과연 그림자 녀석이 어떻게 대처했을지를 지켜봤다.
이윽고 해당 장면이 드러났다.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는 순간.
“······.”
입이 쩍 벌어졌다.
예지 능력, 녀석은 대놓고 미구현 특성의 존재를 밝힌 것이다.
‘······물론 그 이상의 대안은 없긴 한데.’
단지 망설임 없는 행동에 잠시 말문이 막혔을 뿐.
그것과는 별개로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처였다.
실제로 나 또한 진태진 교관과의 면담에서 그렇게 대답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태식 교관은 별다른 반박 없이 그저 표정을 굳혔다.
‘일단락된 건가······?’
간신히 마무리되는가 싶었으나.
-이 무공은 복마구권이라고 합니다.
그림자 녀석이 뜬금없는 대답으로 말문을 열었다.
복마구권.
현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자, 여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무공이 뜻밖의 타이밍에 드러난 것이다.
‘복마구권, 마를 굴종시키는 아홉 가지 권술?’
관심이 확 쏠렸다.
무공에 관해선 여태 일언반구도 없어 의문만이 가득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대답은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림자 녀석은 직접 손을 쓸 기세로 자세를 취했다.
어이가 없는 한편, 그 이상으로 무공에 관한 호기심이 차올랐다.
‘······잘하면 제대로 된 동작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와 분통을 터뜨린다 한들,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의문은 잠시 미뤄 둔 채, 일단 무공에 관한 호기심부터 해소하기로 했다.
때마침.
-······네 녀석이 그리 말한다면 봐주는 게 도리겠지.
고태식 교관이 달려들었다.
맞닥뜨린 순간, 영상 속 장면이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널뛰었다.
따로 장비를 사용한 게 아닌,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로 녹화한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밀려왔다.
“제길, 어떻게 볼 수 없나?”
일단 집중해서 지켜본 결과, 무공의 느낌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와, 살벌하네.’
굉장히 역동적이고, 속도감이 빼어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살기에 이 정도 수준의 반응이라면······, 실전에서는 제법 볼 만하겠어.
고태식 교관의 탄성, 그리고 그의 어조에서 여실히 묻어나는 짙은 흥미.
-네 녀석은 미래에서 대체 무엇을 봤길래 이만한 권법을 손에 넣은 거지?
거기에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재차 출처를 묻는 등.
그의 반응만으로도 무공의 위력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걸 못보다니.’
한층 더 진한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대략 5분간 짧은 공방이 이어진 끝에.
-이만하면 됐다.
대련이라기보단 시연에 가까운 공방이 끝났다.
맨 처음 보인 사나운 기세와는 달리 고태식 교관은 별다른 반격을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마치 무공을 관찰하려는 양, 그는 간단한 동작으로 받아넘기기만 한 것이다.
‘하기야, 제대로 맞았으면 당장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알았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확실히, 문제가 있는 무공은 아닌 듯하군.
고태식 교관이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시인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찰나.
-오히려 스킬 자체만 놓고 보면 썩 훌륭하다. 네 녀석이 가진 보법보다도 말이지.
그로부터 무공에 관한 평가가 흘러나왔다.
C급 스킬 ‘흑영보’보다 뛰어나다.
그 말은 곧 최소 C급 이상이란 뜻과 다름이 아니었다.
‘C급도 엄청난데, 그 이상이라고······? 이 녀석은 대체.’
감탄과 함께 지켜보고 있을 때, 별안간 그의 어조가 일변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군.
뜻밖의 지적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어서 영문 모를 말이 흘러나왔다.
-어째 부자연스러운가 했더니 이제야 이유를 알겠구먼. 보아하니 네 녀석도 알고 있는 듯한데, 맞나?
부자연스러운 이유.
짐작조차 가지 않는 나와는 달리 그림자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아가.
-부탁이 있습니다.
-뭐? 알려 달라고?
-네.
당돌하게 가르침을 요구했다.
‘······와, 얘는 진짜 눈에 뵈는 게 없나?’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이런 감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하, 당돌한 녀석 같으니.
고태식 교관 또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쏘아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내 감상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입가를 사납게 비틀더니.
-내일 수업이 다 끝나면 소훈련실로 와라.
의외로 그림자 녀석의 요청을 받아들인 까닭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고태식 교관은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방과 후라면.’
녀석이 아닌 나의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
녀석은 한동안 스마트 워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내게 뭔가를 말하는 듯한 눈치였다.
‘이번에도 내 몫이라 이건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이후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공 단련에 매진했다.
혹시 몰라 영상의 나머지를 빠르게 확인한 결과, 마지막쯤 책상을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메모다.’
그 즉시 나는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들었다.
끝부분이 접힌 페이지를 찾아 펼치자 예상대로 녀석의 메모가 남아 있었다.
거기에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건 기회다.
앞으로 닥쳐올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은 필요한 까닭이다.
복마구권의 구결을 남겨 둘 테니 때가 되면 체득을 시도해라.
그 시기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전언과 함께 한 페이지에 걸쳐 복마구권으로 추정되는 구결이 적혀 있었다.
이에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역시 지난번의 격변도 그렇고, 앞으로 뭔가가 일어난다는 건가.’
오늘 점검은 유난히 많은 의문이 남았다.
때문에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일단 당장 확인이 가능한 부분부터 집중한다.’
앞으로 닥쳐온다는 ‘사건’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는 ‘체득의 시기’까지.
녀석을 붙잡고 물어보지 않는 한, 알아낼 방도가 없다.
하지만 앞서 영상에서 언급된 ‘무공의 문제’, ‘해결책’은 다르다.
‘방과 후, 소훈련실이라고 했지.’
고태식 교관과의 개인 교습.
그거라면 무공에 관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물론.
‘잘하면 제대로 된 복마구권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때문에 나는 고태식 교관의 지도에 대한 긴장감 반.
강해질 기회라는 설렘 절반의 마음으로 방과 후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