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39화 (39/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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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아주 조금은, 흥미가 생기는 것 같다

39 아주 조금은, 흥미가 생기는 것 같다

다음날, 7교시.

무기술 심화 수업의 시작까지 불과 5분쯤 남았을 때.

“상당히 줄어들었구만!”

“그러게.”

나는 임강철과 잡담을 나누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말대로 소훈련실 내부의 풍경은 첫 수업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인원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벌써 30명 정도가 무기를 변경했을 줄이야.’

대략 70명 정도였던 첫날과는 달리, 지금은 고작 40명에 불과한 것이다.

이유는 대강 알 것 같았다.

‘어차피 바꿀 거, 미리 변경해야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거겠지.’

고태식 교관이 제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최소한 갖춰야 할 자격이라 내세운 조건.

기간 내 체력 20스텟을 달성하라는 지시를 불합리하다고 여겨서 그런 모양이었다.

특히 아카데미에서 처음 무기를 접하는 생도들은 더더욱 그랬다.

‘1학기 기말부터는 실전 대련이니까.’

가상 대련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감해 본바.

대련은 소수의 타고난 이들을 제외하면, 절대적인 시간 투자만이 전부였다.

그러니 당장 체력 스텟 때문에 열외되는 상황에 조바심을 느끼는 것이다.

‘교관의 성격도 좀 이상하다는 점도 한몫했으려나.’

때문에 그들의 선택 또한 나름 합리적이라 느껴졌다.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쯧, 아직도 40명이나 남아 있군.”

거친 목소리와 함께 하루 만에 익숙해진 얼굴이 소훈련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틀렛 심화 수업을 담당하는 고태식 교관이었다.

그는 가타부타 말없이 생도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와서 체력 스텟 검사 맡고 20스텟 이상은 저쪽, 미만은 저쪽으로 정렬해라.”

과연,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생도를 분류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눈 결과.

“7명이라. 제법 많구먼.”

체력 20스텟이 넘는 인원은 고작 7명뿐이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심인욱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태식 교관은 7명을 따로 모아 두는 한편, 나를 포함한 33명에게는 그저 성의 없이 손을 휘저었다.

“네녀석들은 소훈련실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알아서 해라. 단, 멋대로 대련을 벌이는 녀석은 내 권한으로 불이익을 아주 야무지게 때려 줄 테니 염두에 두도록.”

행동부터 내용까지, 말본새가 참으로 고약했다.

하지만 까라면 깔 수밖에 없었다.

‘수행평가에 기말고사 시험 내용까지 아예 전권을 쥐고 있으니까.’

무기에 따라 교관이 제각기 다르고, 당연히 커리큘럼에도 크고 작은 차이가 존재했다.

때문에 1학기 기말고사의 실기 시험 과목인 실전 대련은 구체적인 시험 내용부터 채점 기준까지.

전부 전담 교관에게 달려 있는 탓에 꽤 악명이 높았다.

‘꼬우면 무기를 바꾸면 될 일이지만.’

내겐 기꺼이 감수할 이유가 있다.

건틀렛의 파괴력에 매료됐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두고 보라고! 우리도 금방 저쪽에 낄 테니까!”

불만스럽게 웅성거리는 여타 생도들과는 달리 임강철은 투지를 불태웠다.

나 또한 불만에 동조하는 대신, 미리 준비해 둔 체력 단련용 조끼를 걸쳐 입었다.

“아니, 일한이! 그건 언제 준비한 거지?!”

“어제.”

“제길, 왜 말 안 해 줬나!”

“넌 2스텟만 올리면 되잖아.”

“그건 중요치 않다!”

“?”

“질 수 없지, 나도 방과 후에 챙겨온다!”

“······허락은 맡아야 된다?”

대충 임강철을 상대해 준 다음, 나는 체력 스텟을 확인했다.

-체력 스텟 14

‘어제가 12스텟이었으니.’

하루 만에 2스텟이나 올라갔다.

이는 내가 어제 개인 정비 시간 내내 체력 단련에 매진한 것과 더불어.

‘그림자 녀석, 고분고분 따라 줘서 다행이야.’

그림자 녀석이 밤새 체력 단련용 조끼를 착용하고 수련해 준 덕분이었다.

녀석이 내 정중한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이대로 가면 20스텟도 충분히 할 만할 거야.’

미소와 함께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침에 녹화 영상을 통해 확인한 녀석의 행동을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여간, 예고도 없이 새로운 걸 시작할 줄은.’

여태 마력 단련실에서 마나 호흡에 매진해 왔던 것과는 달리 어제는 무기 훈련실을 향했다.

그야말로 전조도 없이 새로운 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서 펼치는 행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춤사위 같기도 하고, 기기묘묘한 동작이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것도 그렇고.’

언제나처럼 괴상한 느낌을 주는 가운데.

나는 직감적으로 정체를 눈치챘다.

‘분명 무공이겠지? 흐름상.’

새로운 행동.

그게 곧 [무공] 스킬을 뜻하고 있음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고태식 교관의 폭거를 기꺼이 감수해야 할 두 번째 이유였다.

‘보법도 그렇고, 주먹을 휘두르는 걸 보면 권술 기반의 무공 같은데.’

이쯤 되면 다른 무기로 전향할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오히려 넌센스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엉성하게 짝이 없는 동작들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할 뿐.

무공의 명칭, 구결 등.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하나 개의치 않았다.

‘때가 되면 어련히 손에 쥐게 될 테니까.’

그러니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녀석의 또 다른 선물이 완성될 때까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게 지금은 체력 20스텟을 달성해 교관이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었다.

‘이 정도 장애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는.

스윽-

기억 속에 담아둔 그림자 녀석의 기수식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하기 시작했다.

*

세 시간 후, 행정실.

“어이, 태진 교관!”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고태식의 부름에 행정실에 들어선 진태진이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고생했네. 이쪽으로 와 앉지.”

고태식은 그의 인사를 받아준 다음, 옆자리를 권했다.

진태진이 앉는 걸 확인하고는,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태진 교관. 그, 자네가 아끼는 제자 말인데.”

“안일한 생도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이름 이상한 녀석. 정말 그놈이 맞아? 임강철이란 놈이 아니라?”

이름을 입에 담은 까닭인지, 고태식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두 명의 생도가 떠올랐다.

한 명은 딱 봐도 비실비실하고, 한 명은 기골부터 장대한 게 천생 무투술 체질이었다.

‘안일한이라, 스텟만 놓고 보면 딱 태진 교관이 선호할만한 인재상이긴 하겠다만.’

전체적으로 스텟이 높진 않지만, 균형이 잡혀 있다.

이는 온갖 무기를 다루는 진태진이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고태식, 그는 달랐다.

‘다른 스텟보다 일단 육체의 내구성이 받쳐줘야 무투술과 시너지가 제대로 날 테니까.’

단순히 근육의 부재라는 외견상의 문제가 아닌, 적합성을 따지는 것이다.

스텟 뿐 아니라 체격, 성향 등, 타고나는 조건에 맞게 적합한 무기를 선택하는 것.

그게 바로 고태식이 가진 지론 중 하나였다.

때문에 그는.

“이번에 자네가 맡은 무기가 검이었나? 차라리 그쪽이 낫지 않겠나?”

은근한 어조로 전향을 권유하길 종용했다.

이에 진태진은 난감한 듯 침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선배님.”

“하기야, 무기 선택은 어디까지나 애송이들의 몫이지.”

선택은 자유이며,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

국립 초인 아카데미의 철칙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무리 자네가 아끼는 제자라 해도, 알지?”

“예, 선배님의 기준을 넘지 못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생도 스스로가 감당해야겠지요.”

진태진은 잘 알고 있었다.

고태식에게 적성을 따지는 세 가지 기준이 있음을.

그가 가르치는 생도에겐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적용됨을 말이다.

때문에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으나.

“흐음, 자네는 정말 칼 같구먼.”

오히려 그런 무덤덤한 반응이 고태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역으로 고태식 또한 진태진의 대쪽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도대체 그 애송이에게서 무엇을 봤길래.”

눈앞의 진태진은 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초인 중 한명이었다.

초인으로서의 역량도 그렇지만, 특히 제자를 길러내는 안목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때문에 더더욱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지켜보면 알게 될 거란 말씀밖에는······.”

“흐음.”

“굳이 말씀드리자면 밤늦게 스텟 단련실······. 아니, 무기 훈련실을 한번 들러 보시지요.”

“무기 훈련실? 밤늦게?”

“예. 그럼 적어도 제가 믿는 이유 정도는 설명이 될 것 같네요.”

늦은 밤, 무기 훈련실.

고태식은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노력이라······.”

노력, 물론 중요한 가치였다.

하지만 자질이 받쳐 주지 않는 노력은 허망할 뿐이었다.

제대로 된 결과를 낼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그럼에도.

“태진 교관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지켜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고태식은 그 정도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날, 소훈련실.

“체력 20스텟 이상은 이쪽으로 정렬해라.”

고태식의 지시에 총 8명의 생도가 모여들었다.

어제 인원에서 생도 한 명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일한이, 기다릴게!”

“어, 잘하고 있어.”

다름 아닌 임강철.

첫 대면 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던 바로 그 생도였다.

고태식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속으로 생각했다.

‘하루 만에 2스텟 정도면 자질은 그럭저럭 쓸 만하고.’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근육에 처지진 않는다, 그 정도로 평을 수정했다.

그렇게 다소 짠 평가를 내리며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문득 안일한이란 애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저놈은 제 친구와 격차가 벌어진 건데 아무렇지도 않나?’

애송이는 일말의 감흥조차 없어 보였다.

그저 어제와 마찬가지로, 체력 단련용 조끼를 걸치며 제 할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고태식은 코웃음을 쳤다.

“흥.”

심기가 깊은 건지, 아니면 원체 무덤덤한 건지.

‘태진 교관이랑 성격이 비슷한데, 그래서 감싸고 도는 건가?’

자연스레 시답잖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 딱 거기까지였다.

“나머지 32명은 어제와 동일하다. 통과한 8명은 잘 들어라, 지금부터······.”

관심을 거둔 채 수업을 진행했다.

···

···

···

안일한이라는 애송이의 행동은 금요일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결같네.’

열외된 상황 속에서, 그것도 나날이 한두 명씩 줄어드는 주변환경에도 초연했다.

그저 조끼를 걸친 채 제 할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게다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가 더있었다.

‘저건 분명 무공인 것 같은데.’

연거푸 발의 위치를 바꾸거나, 몸의 무게중심을 못 찾아 헤매고, 주먹을 뻗는 각도를 이리저리 조절하는 등.

어설프게 짝이 없었다.

마치 교본, 혹은 뭔가를 눈대중으로만 보면서 익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 애송이의 덜떨어진 동작이 특정 무공의 기수식이란 점이었다.

전문가인 그의 입장에선 지켜보는 것조차 고역인 수준이었으나.

‘뭐, 수련하지 말란 말은 안 했으니까.’

그 정도로 생각하고 관심을 거뒀다.

···

···

···

그날 밤.

밀린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던 고태식은.

-밤늦게 스텟 단련실······. 아니, 무기 훈련실을 한번 들러 보시지요.

문득 진태진의 말이 떠올랐다.

‘노력이라, 중요하긴 하다만. 그래 봐야 기본일 뿐, 가장 중요한 건 자질이거늘.’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나, 고태식은 속는 셈 치고 무기 훈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24시간 운영되는 만큼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내부에는 생도 한 명이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수업에 발을 들이민 애송이 중 한 명인 안일한이었다.

“거 참, 한결같네.”

고태식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애송이를 바라봤다.

체력 단련용 조끼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부터, 묵묵히 수련에 몰두하는 점까지.

일관성 하나는 인정한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

애송이의 동작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어느새 수준을 저렇게까지 끌어올린 거지?’

오후에 봤던 동작과 눈앞의 애송이가 펼치는 동작.

둘 사이에서 상당한 괴리감을 느낀 것이다.

‘마치 급하게 배운 것처럼 동작이 죄다 딱딱하고 부자연스럽긴 하다만······.’

딛고 선 발의 위치, 몸의 중심이 일정한 자세, 거기에 주먹을 내지르는 투로까지.

결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후에 보인 허접한 동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도 사실이었다.

“안일한이라.”

눈앞의 애송이는 그의 세 가지 기준 중, 첫 번째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주 조금은, 흥미가 생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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