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38화 (3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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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거야말로 내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38 이거야말로 내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임강철? 안일한이 아니고?”

“넵! 임강철임다-!”

차려자세로 우렁차게 답하는 임강철.

그의 대답에 고태식 교관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안일한은 누군데.”

“제 옆에 있는 이 친구가 바로 안일한입니다!”

그제야 고태식 교관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안일한입니다만······.”

그는 별안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내 인상을 팍 구긴 채로 중얼거렸다.

“이 비실비실한 애송이가 안일한이라고?”

고태식 교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도 그럴 게.

‘······어쩜 반응까지 임강철과 똑같을 수가 있는 거지?’

입학 전, 임강철과 처음 마주쳤을 당시.

그가 내게 보인 반응과 정확히 일치하는 까닭이었다.

새삼스레 눈앞의 고태식 교관이 ‘중년 임강철’처럼 보이는 한편,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어라 항변할 수도 없어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때.

“그렇지 않습니다!”

대뜸 임강철이 나서서 소리쳤다.

“그렇지 않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물론 일한이가 겉으로 볼 땐 비실비실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녀석의 가슴 속엔 엄청난 게 들어 있다고요!”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부터 아무도 못 말리는 집념, 뼈를 깎는 노력까지.

임강철은 그야말로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로 내 얼굴에 금칠을 퍼부었다.

눈앞에서 고태식 교관이 지켜보는 탓에 나는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만, 제발 그만.’

그저 속으로 되뇌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흥, 지켜보면 알겠지.”

더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고태식 교관은 콧방귀를 끼며 임강철의 말을 끊어냈다.

이내 몸을 돌리더니 한마디를 덧붙이며 멀어져 갔다.

그 말은 왠지 선명하게 귓가에 꽂혔다.

-물론 그 전에 버틸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마치 폭풍이 몰아치듯 정신없이 지나간 상황, 거기에 마지막으로 남긴 의미심장한 말까지.

‘······도대체 이게 뭔 일인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잠깐 대기하고 있도록.”

고태식 교관은 소훈련실 안쪽에 마련된 창고에 들어가더니, 뭔가를 꺼내왔다.

정체는 다름 아닌 샌드백이었다.

무려 5개나 들고나온 샌드백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표면의 재질이 이질적인 느낌인데.’

아무래도 아카데미에서 사용되는 여타 기구와 마찬가지로 특수 제작된 듯했다.

고태식 교관은 5개의 샌드백을 모두 설치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내 수업을 듣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체력 20스텟 이상일 것. 최소한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그렇게 만들어 와야 할 거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조차 못하는 애송이들은 내 수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다음 주 월요일, 즉 5일 만에 체력 20스텟 이상 달성.

터무니없는 조건에 생도의 절반은 술렁거렸다.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체력 20스텟이라니.’

그간 내 스텟은 스텟 서킷 트레이닝에 매진한 덕분에 제법 성장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체력이 20스텟에 못 미쳤다.

체력은 물론.

-근력 스텟 15

-민첩 스텟 14

-체력 스텟 12

-마력 스텟 11

가장 높은 근력마저 15스텟에 불과했다.

총합 52스텟으로 나름 꿀리지 않는 스텟을 가졌음에도 기준에 미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태식 교관의 존재감, 위압감 때문일까?

대놓고 반발하는 생도는 없었다.

그저 하나같이 표정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을 때.

“보아하니 납득이 안 되는 모양이군. 내 특별히 이유를 설명해 주지.”

그는 혀를 한 번 짧게 찬 다음,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체력은 건틀렛, 즉 무투술의 전제 조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어서 상세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맨몸 전투의 특성상 초근접전을 펼쳐야 한다는 점.

더하여 무투술은 온몸을 활용하는 역동적인 전투 방식이라는 점 등.

여타 무기들보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사실을 의외로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줬다.

“사실상 위력, 회피, 방어까지 고려하면 중요하지 않은 스텟이 없다. 그럼에도 체력만을 자격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고태식 교관이 단호한 어조로 덧붙였다.

“체력이야말로 무투의 길을 걷는 초인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기본이자, 수업을 따라오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씩 집중해서 들은 감상은 다름이 아니었다.

‘납득은 되는데 어째 단점으로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하나같이 무투술의 부족한 점, 감수해야 할 부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이런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인 양.

“그럼 다른 무기들에 비해 비효율적인 게 아닌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떠올리는 머저리들도 있겠지.”

으르렁거리듯, 단호하게 말했다.

“단언하지, 그건 틀린 생각이다. 이유는 직접 보여 주도록 하지.”

고태식 교관은 별안간 생도들을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한 생도에 이르러 멈춰 섰다.

“애송이, 나와 봐라.”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네!”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그는 한걸음에 달려나갔다.

고태식 교관은 다짜고짜 샌드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력을 다해 쳐 봐라.”

“······마나까지 활용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답변을 들은 순간.

우우웅-

심인욱의 주먹에 희끄무레한 빛무리가 서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마나의 유형화, 벌써 마나 활용의 최종 형태까지.’

물론 어제 본 진태진 교관의 마나 활용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도임에도 벌써 마나의 유형화까지 이뤘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과연 4대 길드 출신이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심인욱이 샌드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

일견 패도적인 기세까지 느껴졌다.

크게 휘청거리는 샌드백을 힐끔 바라본 고태식 교관은 짤막하게 말했다.

“대충 이런 샌드백이다. 애송이 수준의 마나의 유형화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심인욱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들어가라.”

“······네.”

고태식 교관은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건틀렛, 무투술이 여타 무기들과 비교해 꿀리지 않는 이유이자, 강점. 지금 보여 주지.”

그는 방금 심인욱이 가격한 샌드백을 향해 느긋하게 다가갔다.

“무투술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을 마친 순간,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그의 손에는 마나는커녕, 건틀렛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대로 휘두르는 순간.

콰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샌드백이 말 그대로 터져 버렸다.

“······!”

나를 포함,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고태식 교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이게 주먹이고.”

이어서 그는.

“이게 발차기다.”

두 번째 샌드백을 향해 발을 휘둘러 찼다.

쩌-엉!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샌드백이 그야말로 박살 난 채, 파편이 되어 어지러이 흩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무릎.”

콰앙-!

“손바닥.”

파-앙!

“마지막으로 손가락.”

푸욱-!

고태식 교관은 느긋하게 말을 맺었다.

마지막 샌드백의 정중앙을 검지로 꿰뚫은 채로 말이다.

그야말로 파멸적인 위력이었다.

그는 천천히 팔을 거둬들이며 사납게 미소 지었다.

“온몸을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무투술의 강점이다.”

그의 말에 조금 전의 파멸적인 위력이 합쳐지는 순간.

‘······이게 건틀렛.’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아, 강점을 하나 더 꼽자면.”

고태식 교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빌런이나 몬스터 중에는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뭉개져도 멀쩡히 활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어서 그는 입가를 사납게 비틀었다.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꽤 효과적이다. 무투술은 제압 같은 말랑한 짓은 안 하거든. 적의 육편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분쇄하고, 박살 내는 것.”

그게 바로 건틀렛이자 무투술이다.

듣는 순간, 여태 품고 있던 의구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빈자리를 대신해서 채운 생각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거야말로 내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적의 육편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쳐부수는 파괴력.

그 부분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체력 20스텟.’

반드시 찍고 말겠다고, 강하게 다짐했다.

*

그날 저녁.

친구들과 식사와 함께 무기술 심화 수업의 첫 소감을 나누던 중.

나와 임강철의 이야기에 윤설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되물었다.

“뭐? 체력 20스텟을 5일 안에 찍어야 한다고?!”

고태식 교관이 제시한 터무니 없는 조건에 경악하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비단 체력 스텟뿐만이 아니었다.

“괜찮겠어? 아무리 그래도 달성하지 못하면 수업에서 열외를 시키겠다니······.”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내게 묻는 차은월.

그녀의 말대로 고태식 교관은 마지막에 악랄한 사족을 하나 덧붙였다.

-월요일까지 체력 20스텟을 찍지 못하는 녀석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질 거다.

-다른 무기로 전향하거나, 무기술 심화 수업 내내 열외를 당하거나. 좋을 대로 선택하도록!

제 발로 떠나거나, 아니면 제 발로 떠날 수밖에 없게끔 상황을 조성하거나.

그야말로 불합리한 선택지를 강요한 것이다.

“뭐, 나는 여태 ‘근력 – 체력’ 트랙을 맡아서 하루 이틀이면 20스텟을 찍겠지만. 정말 괜찮겠나, 일한이?”

임강철은 여태 근력과 체력에 몰두한 덕분인지, 체력이 무려 18스텟이었다.

그러니 문제는 체력을 8스텟이나 올려야 하는 나였다.

‘5일 만에 8스텟이라.’

본래 내 형편없는 자질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성장 스킬이 있으니까.’

모든 종류의 단련에 있어 효율을 2배로 늘려주는 스킬, 성장(D).

잠시 미뤄뒀던 성장 스킬의 효과를 드디어 체감할 때가 온 것이다.

‘2배라면 다소간의 부족함은 채워 줄 테니까.’

다만 성장 스킬에만 의존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만으론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가지, 오직 나만이 가능한 수단을 추가할 셈이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다름이 아니었다.

‘일단 저녁 먹고 교관님을 찾아가서 허가부터 구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능할 것 같아.”

친구들을 향해 대답을 돌려줬다.

그러고는 다시금 식사에 열중했다.

*

잠시 후.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곧장 행정실로 가서 진태진 교관을 찾았다.

목적은 다름이 아니었다.

“체력 단련용 조끼를 휴대하게 해 달라는 건가?”

스텟 단련실의 비품 사용의 허락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개인 정비 시간의 단련만으론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수업이 됐든, 단련이 됐든 상시 착용한 채로 지낼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기간 내 체력 20스텟을 찍으려는 것이다.

내 사정을 전해 들은 진태진 교관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래 비품은 개인 휴대가 불가능한 게 원칙이다. 하나 외부로 발출하지 않는 선에선 허가하지. 이유는 충분히 알 것 같으니.”

“······!”

“단, 생도가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그의 진지한 분위기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몸을 해칠 정도로 무리하진 말도록.”

다행히 흘러나온 말은 걱정 어린 조언이었다.

“네.”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 행정실을 벗어났다.

‘이제 나머지는······.’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뿐이었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18%]

어김없이 그림자가 눈을 떴다.

곧장 몸을 일으키는 순간.

팔랑-

웃옷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

그림자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내 줍기 위해 상체를 숙이자, 왠지 몸이 무거웠다.

때문에 고개를 숙여 상체를 바라봤다.

그제야 그는 이상한 조끼를 입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

설마 하는 심정으로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뭘 하든, 입고 해 줘.

그림자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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