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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전무후무한 친구입니다
37 전무후무한 친구입니다
잠시 후, 행정실.
“고생하셨습니다, 진태진 교관님.”
개인 교습을 마치고 돌아온 진태진을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성이 반갑게 맞이했다.
“김한석 교관님.”
다름 아닌 김한석.
1학년 B반의 담임이자, 마법에 관한 전반적인 과목을 담당하는 교관이었다.
진태진은 그를 향해 간단히 목례한 후, 제 자리를 찾아갔다.
자리에 앉는 순간 김한석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아까 식당에는 오지 않으신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 있으셨나요?”
그의 말에 진태진은 생도 한 명을 떠올렸다.
더불어 조금 전, 개인 교습 때 생도가 보여 준 의외의 일면이 자연스레 생각났다.
‘그만한 가치의 스킬을 얻었다면 자칫 사고가 매몰될 법도 한데.’
생도는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열린 사고방식으로 숙고한 끝에 그가 염두에 둔 정답을 찾아내기까지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자연스레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제가 담당하는 생도 한 명에게 조언을 좀 하고 오느라 시간이 애매해져서요.”
“생도 한 명이라면, 혹시 이름이 안일한이었나? 맞나요?”
“네 맞습니다.”
“자질이 꽤 훌륭한 생도인가 보네요? 교관님이 그토록 신경 써 주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전무후무한 친구입니다. 여러 방면으로 말이죠.”
진태진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김한석은 묘한 기색으로 탄성을 흘렸다.
“와, 그 정도인가요? A반에 인재는 윤설하 생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잣말을 하던 김한석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그 생도는 어떤 무기를 택했죠? 내일부터 무기술 심화 수업 시작되잖아요?”
“건틀렛입니다.”
“건틀렛이라면 분명 그분이······.”
김한석이 찔끔하는 기색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건틀렛이 뭐 어쨌다고?”
행정실 입구에서부터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태진은 목소리만으로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고태식 선배님, 오셨군요.”
그의 인사에 상당히 인상적인 외견의 중년 남성이 천천히 다가왔다.
사자 갈기 같은 산발 머리와 태산 같은 덩치.
마지막으로 양 팔뚝을 빗금처럼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그가 바로 ‘맹호’라는 이명을 가진 A급 초인, 고태식이었다.
“그래, 자네들.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
고태식의 굵직한 목소리에 김한석이 나서서 대답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1학년 무기술 심화 과정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인재가 많아 기대가 크거든요.”
김한석은 사람 좋은 얼굴로 생도들의 이름을 읊었다.
그 모습에 고태식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한석 교관, 자네는 정말 인재에 대한 관심이 많군.”
“건틀렛 쪽도 한 명 있을 겁니다. 심인욱이라고. 대지의 혼 길드장 아들이 올해 입학했거든요.”
“대지의 혼? 심철진이? 뭐, 싹수는 있겠구만.”
고태식은 4대 길드의 길드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했다.
이어서 그는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그래 봐야 코흘리개겠지만.”
“하하, 맞는 말이네요.”
그저 웃으며 대꾸하는 김한석은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그러고 보니 한 명 더 있네요. 안일한 생도라고.”
“뭐? 안일한? 그게 이름인가?”
희한하다는 양 대꾸하는 고태식을 향해 진태진이 대신 대답했다.
“네, 저희 반 생도입니다.”
“진태진 교관님이 상당히 아끼는 제자 같더라고요.”
김한석이 잽싸게 덧붙였다.
이에 고태식은 두 눈에 이채를 띤 채로 입을 열었다.
“태진 교관이 아끼는 제자라.”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곧장 진태진을 향했다.
“제법 기대가 되는구만. 내일이면 보겠군. 그래, 전할 말이 있나?”
사납게 미소를 지은 채로 묻는 고태식.
그를 향해 진태진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건가? 크핫! 그것참 기대가 되는구만!”
고태식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태진은 고개를 기울였다.
의미가 다소 이상하게 전달된 느낌을 받은 까닭이었다.
‘상관없나.’
딱히 별문제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 송곳은 결국 튀기 마련이다.
그러니 구태여 정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물론 처음은 험난하겠지만.’
그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생도는 반드시 원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터였다.
‘하던 대로만 하면 충분히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마치 누군가에게 전하듯, 진태진은 속으로 되뇌었다.
*
다음날.
“7교시는 마력 스텟의 활용에 관한 이론 강의로 수업을 진행하겠다. 마력 스텟, 즉 마나의 활용은 세 가지 단계로 나뉜다.”
언제나처럼 교관의 설명과 함께 7교시 수업이 시작된 가운데.
개인 교습 때 이미 들었던 내용이었음에도 나는 복습할 겸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는 체내 마나 순환을 통한 신체 강화, 두 번째는 체외 발출을 통한 호신, 마지막 세 번째는 마나의 유형화에 따른 전투력 강화다.”
신체 강화, 호신, 마지막으로 전투력 강화.
여기서 호신(護身), 즉 마나의 체외 발출 단계부터가 진정한 마력 스텟의 활용이었다.
그래서인지.
“1학기 기말의 마력 스텟의 활용 시험은 마나의 체외 발출까지다. 신체 강화는 이전에 설명했으니 넘어가고, 체외 발출은 호신의 유지 시간을 테스트하게 된다.”
스텟 서킷 트레이닝을 통한 신체 강화 테스트.
더하여 체외 발출, 호신의 유지 시간까지 시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나를 체외로 발출하는 요령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마나량이다. 그러니 제5단계, 마나 스킬을 습득한 이후에도 마나 호흡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마나량, 시험의 과제가 유지 시간을 보는 이상 당연한 이야기였다.
동시에 강 계열의 마나 심법.
마나 소모가 극심한 현천강기를 지닌 내겐 불리한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현천강기뿐이라면, 말이지.’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제저녁, 해결책을 손에 넣은 까닭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 진도에 맞게끔 실습을 진행한다.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하도록, 이상이다.”
교관의 지시에 제각각 교본을 펼치거나, 마나 호흡에 들어가는 가운데.
나 또한 미리 챙겨 둔 ‘삼재기공’ 교본을 꺼냈다.
삼재기공이야말로 현천강기에서 비롯된 제약을 해결해 줄 키포인트인 까닭이었다.
‘현천강기의 제약을 삼재기공으로 메운다.’
맹렬한 순환 속도, 그리고 강맹한 출력을 토대로 발휘되는 파괴력까지.
현천강기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강점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라고 해야 할까.
제어의 난점과 극심한 마나 소모라는 제약이 따랐다.
‘제어는 세밀한 컨트롤로 해결했지만, 아무래도 마나 소모는 당장 해결하기 힘들지.’
때문에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지만, 신체를 강화하는 것조차 유지 시간이 턱없이 짧았다.
그러니 기말시험 범위에 속하는 체외 발출은 당연히 어림도 없을 터.
삼재기공을 떠올린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유 계열의 마나 심법에 속하는 삼재기공은 유지력과 효율이 좋으니까.’
그러니 삼재기공을 마나 운용의 토대로써 활용한다.
거기에 현천강기를 부가적으로, 필요한 순간에 폭발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 제약을 메울 수 있을뿐더러, 현천강기를 비장의 한 수처럼 사용할 수 있을 터.
이러한 판단은.
-삼재기공의 마나를 기반으로 현천강기의 마나를 활용한다라. 훌륭한 발상이다.
교관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비록 E급이지만 안정성이 탁월하여 현천강기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관은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효능을 설명해 줬다.
-두 심법은 머지않아 체내에서 조화를 이룰 거다. 생도가 가진 스킬에 삼재기공의 마나가 스며들겠지.
-그렇게 조화를 이룬 마나는 생도의 날카로운 창이자,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마나 활용의 두 번째 단계인 호신부터, 마지막 단계이자 교관이 직접 시범을 보인 마나의 유형화까지.
본디 현천강기가 지닌 위력, 그 이상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말의 마력 스텟 활용 시험은 물론.
‘당장 오늘부터 시작될 무기술 심화 과정, 실전 대련에서도 큰 힘이 될 터.’
생각만으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게다가 삼재기공의 마나 로드는 단순하다고 했으니.’
머지않아 스킬 습득까지 이뤄낼 수 있을 터.
덕분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교본을 살폈다.
*
두 시간 후.
“이걸로 8교시를 마치겠다. 9교시는 예고했듯 무기별 전담 교관의 지도하에 진행될 테니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로 이동하도록. 이상이다.”
7, 8교시에 걸친 마력 스텟 수업이 끝났다.
하나둘씩 이동하는 가운데, 친구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윤설하였다.
“9교시는 따로 움직이겠네.”
왠지 아쉬운 듯한 말투에 차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설하는 검이니까 1층인가?”
“응. 은월이 너는?”
“난 3층. 따로 마법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교실이 있는 것 같더라고.”
처음 팀을 구성한 이후, 언제나 붙어 다녔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아쉬운 기색을 띠었다.
그런 둘을 향해 임강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모이도록 하지!”
아쉬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차은월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채로 무어라 지적하려다 말았다.
그러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따가 봐!”
아무래도 3층까지 가야 하는 만큼 미리 이동하려는 듯했다.
나도 슬슬 움직일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윤설하, 잘하고 와.”
“으응.”
“가자, 임강철.”
“그래!”
기대와 함께 나는 2층, 소훈련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생도들이 모여있었다.
A반의 인원뿐 아니라 처음 보는 이들도 더러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반 생도들인 듯했다.
‘무기술 심화 과정은 이동 수업 개념이니까.’
가만히 둘러보고 있을 때, 다른 반이었음에도 낯익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심인욱. 역시 건틀렛이구나.’
그는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단순히 배경뿐만이 아니라, 그의 행동부터가 그랬다.
다들 알게 모르게 주변을 경계하는 반면, 그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고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고상한 척······ 음?’
시답잖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문득 심인욱과 눈이 마주쳤다.
찌릿-
그는 한차례 눈을 흘기더니, 이내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지난번부터 대체 뭐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때.
“쯧, 올해도 역시 애송이들이 잔뜩 모였군.”
소훈련실의 입구에서부터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자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덩치며, 헤어 스타일이며, 마치 한 사람을 연상케 했다.
‘······중년이 된 임강철?’
그런 생각으로 슬쩍 옆을 돌아보자.
“어, 엄청난 분이시군!”
임강철이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그의 덩치, 특히 근육에 매료된 듯한 느낌이었다.
중년 남성은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건틀렛을 담당하는 교관, 고태식이다. 반별로 모여 봐라.”
그는 대충 손짓을 하며 A, B, C반을 나눴다.
그러고는 C반의 생도들부터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훑었다.
그중에서 한 생도의 앞에서 멈춰 섰다.
“네가 심인욱이냐?”
“그렇습니다, 선배님. 아버지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교관이다. 애송이의 선배가 된 적은 없다.”
“예, 교관님!”
무게를 잡고 있던 모습과는 달리 깍듯한 태도를 보이는 심인욱.
그것만으로도 중년 남성, 건틀렛 담당 교관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사람인가 보네.’
대지의 혼 길드장과 통하는 사람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교관은 빠르게 B반을 거쳐 A반에 이르렀다.
천천히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춰 섰다.
‘······난가?’
묘하게 내 쪽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이는 단지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았다.
씰룩-
입가를 비틀며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게 교관은 코앞에서 멈춰 선 채로 입을 열었다.
“기골이 장대한 게, 태진 교관의 말대로 한눈에 알아보겠군! 네가 안일한이냐?”
“······저는 임강철인데요?”
내가 아니라 임강철한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