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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제 아들은 조금 다를 겁니다
31 제 아들은 조금 다를 겁니다
‘아빠.’
무려 5년 만에 정면으로 마주 섰다.
고개를 들어 두 눈으로 마주하기까지.
온갖 두려움과 공포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깨가 가늘게 떨렸으나.
‘더는 물러날 수 없어.’
스스로를 세뇌하듯, 되뇌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 순간, 눈앞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하야, 참 대견하더구나.”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도, 거친 고함을 내지르는 것도 아니었다.
추억 속 자상하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을 건네는 것이다.
다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죄책감, 비통함에 그녀는 가슴 속이 먹먹해졌다.
울컥하는 감정을 간신히 참아 내고 있을 때.
“미안하구나. 이제 와서 염치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네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아버지가 문득 사과와 함께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아빠는 결국······, 초인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대신이라기엔 부족하겠지만 지금은 초인 협회 산하의 연구 기관에 들어가 있어.”
회안 어린 표정으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시인했다.
하나 그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따라서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으면, 사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비록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했지만, 그래도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초인분들을 위해 필요한 연구를······.”
“실패하지 않았어요.”
단호하게 말했다.
동시에 본능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가슴팍에 가만히 얼굴을 파묻었다.
“······설하야.”
여전히 자랑스러워요,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해요, 이렇게 만나러 와 줘서 고마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목이 매여 도저히 내뱉을 수가 없었다.
작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을 때.
“고맙구나.”
익숙한 손바닥의 촉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 감촉이 너무나 포근해서 그런 걸까.
윤설하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더더욱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품에 안긴 채로 윤설하는 생각했다.
‘이대로 계속······.’
지금 이 순간이 계속되기를, 저도 모르게 바랐다.
그런 상념에서 깨어나게 된 건 정확히 1분 후.
“······야, 임강철! 잠깐!”
아스라이 들려오는 목소리와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거대한 존재감 때문이었다.
“으음?”
그녀의 아버지가 고개를 기울이며 침음을 흘렸다.
자연스럽게 윤설하의 고개도 살짝 돌아갔다.
이내 접근하는 존재를 확인한 순간.
“어?”
그녀의 고개도 따라서 기울어졌다.
“임강, 철?”
멍하니 중얼거리는 순간.
“그러니까, 이젠 나서지 않아도 괜찮······.”
임강철의 등 뒤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추가로 눈에 띄었다.
그 사람 또한 그녀에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너 내 말 안 듣지?”
다름 아닌 안일한.
그는 평소와는 달리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사고가 따라갈 수 없을 때.
“윤설하 아버님 되시죠?!”
순식간에 다가온 임강철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저는 윤설하의 친구! 임강철이라고 합니다!”“······.”
“······.”
느닷없는 자기소개에 윤설하와 그녀의 아버지는 말없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그의 곁으로 다가온 안일한이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미안.”
갑작스러운 임강철의 난입과 안일한의 사과까지.
윤설하는 눈물을 미처 닦아낼 틈도 없이 두 눈을 끔벅거렸다.
···
···
···
잠시 후.
“······그렇게 된 거야, 혹시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어떻게든 환기시킬 겸, 나서서 인사를 드리기로 했거든.”
나는 꼼짝없이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이를 전부 전해 들은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임강철이었다.
“오, 다행히 잘 풀렸나 보군!”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 태평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는 까닭에 한차례 쏘아붙였다.
“너 그렇게 눈치 없지 않았잖아.”
“음? 그치만 그 윤설하가 울고 있었다고!”
그제야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하기야, 평소의 당당한 모습을 생각하면······.’
때문에 더 이상 따질 수도 없었다.
그저 다시 한번 산통을 깬 부분에 사과를 하려는 찰나.
“······읏!”
별안간 윤설하가 황급히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빠르게 소매를 들어 눈가를 슥슥 훔치는 것이다.
‘윤설하답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행동이 새삼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다 닦아 냈는지,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빛은 촉촉했으나 눈매와 입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덩달아 처음 뵙는 그녀의 아버지 또한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아하하, 설하는 좋은 친구분들을 뒀구나.”
그의 말에 윤설하는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소개했다.
“제 친구들이에요, 아빠. 덕분에 굉장히 즐겁게 생활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윤진호라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스스로를 윤진호라 밝히며 정중하게 악수를 청해 왔다.
그녀와 같은 생도임에도 정중하게 대해 주는 것이다.
이에 임강철이 쏜살같이 앞서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넵, 전 임강철임다-! 굉장히 잘생기셨네요!”
“아, 아하하. 강철 군도 남자답게 생겼어요.”
그는 난처한 듯 웃으며 임강철의 인사를 받아 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자 윤설하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참 고마운 친구예요. 이름은 안일한이고요.”
임강철 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였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아버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렇구나. 일한 군, 딸아이와 잘 지내 주어 고마워요.”
내게도 역시 정중하게 악수를 청해 왔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요.”
대답과 함께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일한······, 부디······
머릿속에 노이즈가 일었다.
동시에 시야가 점멸하더니.
“······!”
눈앞의 풍경이 일순 뒤바뀌었다.
이내 처절한 목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군, 불쌍······ 우리······, 제발······!
시야가 한차례 일렁이더니, 눈앞에 처음 보는 백발의 중년 남성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절규하면서 이름 하나를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분명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 어째선지 모습이, 목소리가 묘하게 낯이 익었다.
‘이, 이게 대체.’
그림자의 작용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기현상인지.
뜻밖의 상황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군?”
정돈된 목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들려왔다.
“일한 군? 괜찮나요?”
“네? 아.”
다름 아닌 윤설하의 아버지였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과 동시에 시야도 본래대로 회복됐다.
나는 뒤늦게 악수를 하며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은 거죠?”
“괜찮습니다.”
간단하게 악수를 하고 한 발짝 물러서자, 이번에는 윤설하가 내게 다가왔다.
“저기, 괜찮아······?”
“어, 잠깐 현기증이 일었나 봐. 이제 괜찮아.”
“다행이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누군가를 찾듯, 별안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은월이는? 함께 있는 거 아니었어?”
“아, 그러고 보니.”
차은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우리를 찾아오지 않고, 참관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고개를 기울이고 있자, 별안간 임강철이 손가락 끝으로 용맹관의 입구를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여자애, 차은월 아니야?”
“······어, 맞는 것 같은데.”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두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아닌 것 같은데.’
백발의 노신사를 연상케 하는 사람 한 명,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3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둘 다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고 있어서 그런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때.
-잠시 후, 8교시가 시작될 예정이니 A반 생도들은······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벌써 쉬는 시간이 끝난 것이다.
“면담이 있으니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자, 설하야.”
“네, 아빠.”
짤막한 대화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먼저 행정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우리도 가자.”
그렇게 나는 셋이서 무기 훈련실로 돌아갔다.
*
이십 분 후, 행정실.
“안일한 생도의 아버님 되시죠?”
“네, 안주해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안일한 생도가 속한 A반의 담임을 맡고 있는 진태진입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다음, 진태진은 미리 출력해 둔 안일한 생도의 생기부를 펼쳤다.
동시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많이 궁금하셨을 아카데미 생활 전반에 관한 부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우선 안일한 생도의 경우,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교우 관계가 그리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함께 어울리는 생도들은 많이 의지하는 것 같더군요.”
“그렇습니까?”
무덤덤하게 되묻는 안주해.
그를 향해 진태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네. 뿐만 아니라 성취, 자질도 탁월한 편에 속합니다. 습득이 빠르고, 무엇보다 향상심이 강해 언제나 노력하더군요.”
“그렇군요.”
“아마 안일한 생도에겐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생도일수록, 빠르고 탄탄하게 나아가는 법이죠. 때문에 앞날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만······.”
진태진은 문득 말끝을 흐렸다.
이내 생도의 미구현 특성을 떠올리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깐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역시 교관님께서도 보셨군요.”
여태 경청하던 안주해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반응에 진태진은 흠칫하며 입을 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자식의 일입니다. 모를 리가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괜한 걱정을 했나.’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 안주해로부터 예상 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녀석이 사실 안사람을 닮아 외골수적인 기질이 조금 있습니다.”
“······외골수,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외골수적인 기질이라니.
핀트가 어긋났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네. 더욱이 고작 7살 때 그런 참사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해 버리는 바람에······.”
안주해로부터 심상치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여태 무덤덤했던 표정에 살짝 그늘이 드리웠다.
진태진은 한층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참사라는 말씀은 혹시 부인께서.”
“네. 10년 전, 범람에 휘말렸습니다. 아니, 맞섰다고 보는 게 맞겠죠.”
대량의 몬스터들로부터 수많은 사람을 구했으니까요.
안주해가 나직한 말투로 덧붙였다.
진태진은 계속해서 침묵한 채로 기억을 더듬었다.
‘10년 전 범람이라면······.’
이따금씩 게이트의 불안정성 문제로 인해 내부의 몬스터가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
이를 두고 ‘범람’이라 일컬었다.
동시에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수원 근교에서도 발생한 일이었다.
‘C급 게이트의 변질이었나.’
진태진은 그로 인해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를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인께선 초인 선배님이셨군요, 유감입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하지만 아들에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더군요.”
“······!”
“혹시 녀석이 초인을 지망하는 이유, 알고 계십니까?”
그의 물음에 진태진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최대한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싶다, 그렇게 들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때 생도들은 으레 큰 꿈을 품는 법이니······.”
“제 아들은 조금 다를 겁니다.”
안주해는 단언했다.
안일한 생도, 그의 목표는 조금 다를 거라고 말이다.
그의 확언에 진태진은 침음을 흘렸다.
‘단순히 핀트가 어긋난 줄 알았는데.’
그가 걱정했던 부분은 다름이 아니었다.
미구현 특성의 상식을 벗어난 능력의 여파가 생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지 모른다는 점.
그러니 많은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
하나 방금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로 심상치 않은 사정이 있다면······.’
틀림없이 생도의 가치관에 모종의 영향을 줬을 터.
거기까지 생각한 진태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려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