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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무리 생각해도 질 것 같진 않은데
28 아무리 생각해도 질 것 같진 않은데
다음날, 오전 수업.
여느 때처럼 영상으로 그림자의 행적을 파악하던 중.
“······이 상황은 대체.”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영상에서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진 까닭이었다.
‘뜬금없이 윤설하가 나온다고? 게다가 그림자 녀석, 말도 할 줄 아는 거였어······?’
새벽에 느닷없이 마력 단련실을 찾아온 윤설하부터.
그녀를 향해 태연하게 육성으로 대꾸하는 그림자까지.
하나같이 경악스러운 가운데, 나는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영상 속 상황을 살폈다.
‘······일단 들키진 않은 것 같은데. 얘는 어제부터 상태가 안 좋더니,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비통한 감정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그림자를 향해 감정을 토해내는 윤설하.
미구현 특성에 관한 그녀의 하소연은 절규에 가까웠다.
상당히 몰려있는 듯한 모습에 다소 신경이 쓰였으나.
“······!”
더 이상 그녀의 상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한층 더 골 때리는 상황이 이어진 까닭이었다.
-그런 결말, 내게는 일어나지 않아.
-직접 보여줄 테니, 나와 내기 하나 하지.
그림자 녀석이 윤설하에게 느닷없이 ‘내기’를 제안한 것이다.
녀석의 궤변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갑자기 내기를 하자니, 대체 무슨······.
-네가 말한 결말의 원인은 미구현 특성이 가진 한계점 때문이겠지.
-······맞아. 그 어떤 노력도 보상받지 못하고, 결국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문제다.
-뭐, 라고?
-거기에 대한 증거로써 지금의 내가 너보다 강해.
-갑자기 그런 말이 왜 나와······!
-그걸 직접 보여주기 위한 내기다.
‘······내가 윤설하보다 강하다고? 거기다 내기라니.’
갑작스러운 도발부터,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말까지.
그야말로 궤변이었으나, 윤설하는 녀석의 말에 휘둘리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상당히 몰려있어서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질 않는 것 같은데.’
미구현 특성에 관한 사정 때문인지,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심히 불안정해 보였다.
그림자는 그런 윤설하의 상태를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림자 녀석, 묘하게 내기에 집착하는 것 같은데······?’
그 사이, 그림자는 계속해서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내가 이기면 너는 내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그럼 내가 이기면.
-네가 바라는 모든 걸 들어주지.
-뭐? 너 지금 그 말, 감당할 수 있어?
-물론.
-아까부터 대체 너······!
-자신없나?
-······이잇!
명백한 도발에 윤설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내 그녀는 씹어뱉듯 말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기대하지.
원하는 답변을 받아낸 녀석은 한술 더 떠서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 8시. 가상 대련의 점수로 승부라는 거지.
-어.
-알겠어.
윤설하는 그림자를 한참이나 노려본 끝에 천천히 단련실을 빠져나갔다.
그 뒤로 녀석은 근래와 동일하게 흑영보와 비슷하면서 느낌이 조금 다른 걸음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정도를 빠르게 넘겼을 때.
‘책상으로 갔다고?’
기숙사로 돌아온 그림자는 곧장 책상을 향해 갔다.
이전처럼 또 공책에 뭔가를 쭉 적어 내리고는, 스마트 워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치 나를 바라보듯, 한참을 주시하더니.
톡톡-
스마트 워치를 두어 번 두들겼다.
그게 마치.
-나머진 부탁한다.
······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곧장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챙겨두길 잘했다.’
녀석과의 필담 이후.
또다른 메시지가 있을까 싶어 항상 아침마다 챙기고 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끝부분이 접혀있는 페이지가 대번에 눈에 띄었다.
‘그래, 어디 어떤 변명을 늘어놨는지 보자.’
녀석이 남긴 메모는 총 세 줄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첫 번째 메모부터 읽어내렸다.
확인한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소임을 다하기 위해선 윤설하의 심신 안정, 트라우마 해결이 필수. 내기는 이를 위한 초석.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의문스러웠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존재했다.
‘······소임?’
다름 아닌 소임.
즉 그림자는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메모에는 녀석이 내기에 집착한 이유도 언급되어 있었다.
‘내기가 윤설하의 심신 안정,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도발부터 궤변, 거기에 내기까지.
녀석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움직인 것이다.
‘어쩐지. 단순히 윤설하를 납득시키는 게 목적이었으면 특성이 구현됐다는 사실을 밝혔으면 그만일 테니까.’
다만 그 사실을 밝히면 윤설하에게 있어 나만 예외가 될 뿐.
트라우마는 그대로일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구현 특성인 채로 윤설하를 꺾어서 충격을 주려는 건가? 모르겠네.’
그런 생각과 함께 두 번째 메모를 확인했다.
그 순간.
“하, 참나.”
반사적으로 헛웃음이 새나왔다.
-윤설하의 소원 세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남겨둘 것. 이 또한 소임의 일환.
녀석이 남긴 메모.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윤설하를 이길 거라 보는 건가?’
수석 입학생이자, 수행평가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띄웠으며, 첫 가상 대련에서 C+랭크를 띄운 괴물.
녀석은 그런 윤설하를 내가 꺾을 수 있다고 보는 것과 다름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를 증명하듯.
-흑영보의 전 초식을 관통하는 요체(要諦), 신출귀몰(神出鬼沒).
녀석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메모로 ‘수단’을 남겼다.
그것도, 근래 들어 내가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말이다.
‘······그럼 설마 흑영보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움직임이 바로 그거였나.’
그제야 녀석의 미묘한 동작에 이해가 가는 한편.
녀석이 의미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삼스레 깨달았다.
“하.”
모든 전언을 확인하고 나니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소임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제시해 준 수단을 통해 해결해달라. 이건가?’
어이가 없는 한편, 야릇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내가 윤설하를 꺾을 수 있다니. 그렇게 본다 이거지, 너는.’
여기서 한 번.
‘게다가 네가 가진 소임에 내 역할이 필수라는 거고.’
여기서 또 한 번.
그렇게 나는 두 번에 걸쳐 묘한 감정을 느낀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래, 해주지.’
천재이자 괴물, 윤설하를 향한 투쟁심, 승부욕부터.
친구인 그녀를 도울 수 있다는 점.
거기에 같은 팀원으로서 중간고사를 함께 치러야 하는 만큼 그녀의 컨디션 회복이 필수라는 점까지.
수긍의 이유는 여럿 있었다.
다만.
‘네게 목적이 있든, 수단을 제공했든. 마냥 끌려다니는 건 사양이다.’
수긍과는 별개로 한 번쯤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 소임이 있다고 했지? 너와 나는 마냥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거지?’
그걸로 되레 협박을 해볼까.
아니면 다음에는 배를 째볼까.
‘일단 내기부터 먼저 집중하자.’
주도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새로이 손에 쥐어진 수단, ‘신출귀몰’을 곱씹었다.
*
그날 저녁.
“그나저나 일한이, 어제 새벽에 윤설하랑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윤설하의 부재가 신경 쓰였는지, 임강철이 내게 질문해왔다.
차은월 또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때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다 같은 친구니까. 그림자 이야기만 빼면 상관없겠지.’
대수롭지 않게 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 돌아왔다.
“뭐?! 윤설하와 가상 대련으로 내기를 하겠다고?”
“내기라니. 정말 괜찮은 거야······?”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임강철과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내게 되묻는 차은월.
특히 차은월은 내가 윤설하와 대립한다는 사실 자체를 걱정하는 듯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다 같이 사이가 좋았는데, 대체 왜······.”
반면 임강철은 조금 달랐다.
“그래, 일한이. 자신은 있고?”
한없이 진지한 말투로 승부의 행방부터 묻는 것이다.
참으로 임강철다운 질문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어. 해볼만 할 것 같은데.”
내 대답에 차은월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면 잠깐 침묵하던 임강철은.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내 어깨를 탕탕 쳤다.
“역시 일한이, 내 호적수답다!”
“······?”
“사내가 한 입으로 두 말할 수는 없지! 기왕 벌인 거, 이기면 돼!”
이 또한 임강철다운 말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한 번 웃어주고는 차은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그렇게 됐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으, 응.”
차은월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녀도 더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부터 맹훈련인가?”
“어. 시험해볼 게 좀 있어서.”
흑영보의 전 초식을 관통하는 요체.
‘신출귀몰.’
당장 오늘 저녁부터 연습해 볼 생각이었다.
‘토요일 저녁이면 대략 이틀하고도 절반 정도 남았네.’
빠듯하지만, 왠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크으! 응원할게, 일한이!”
“어.”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식사에 열중했다.
*
한 시간 뒤.
“그럼 일한이, 파이팅하라고!”
“힘내!”
두 사람의 응원을 뒤로한 채, 나는 가상 대련실을 향해 갔다.
기왕 흑영보의 마지막 활용을 익히는 김에 가상 대련까지 함께 연습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들어서는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람을 발견했다.
“어?”
“······!”
다름 아닌 윤설하였다.
그녀 또한 나를 발견했는지 동공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읏.”
그녀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 뿐.
내게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잠깐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힘겨운 기색으로 먼저 고개를 돌렸다.
‘화가 났다기 보단, 복잡한 느낌이네.’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꼈다.
그녀도 나와 다른 팀원들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을 터놨다는 사실을 말이다.
방금 망설였던 이유도 그 때문인 듯했다.
‘뭐, 일단은 내기에 집중하자.’
내기가 어떤 식으로 트라우마 해결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그림자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주게 될 터였다.
그러니 그녀를 생각한다면, 일단 내기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사정을 듣는 건 이기고 난 다음에도 충분할 테니까.’
그렇게 납득하고는 생각을 비웠다.
온전히 연습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해보자.’
나는 곧장 가상 대련실로 들어가 대련 준비에 임했다.
장비 착용과 설비 조작을 끝마친 순간, 대련 상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끼익-
삐그덕거리며 자세를 갖추는 녀석.
나 또한 자세를 갖추며 우선순위를 정했다.
‘일단 간단하게 흑영보의 각 초식의 활용부터.’
그대로 녀석과 격돌했다.
···
···
···
다음날, 개인 정비 시간.
‘일단 신출귀몰의 의미 정도는 알 것 같은데.’
의외로 나는 하루만에 요체에 가닿았다.
원인은 다름이 아니었다.
‘그림자 녀석이 밤마다 몸에 각인시킬 작정으로 반복하는 것도 있고.’
나 또한 영상을 통해 뇌리에 각인시키고, 따로 연습해 몸에 각인시켰다.
그 결과, 전 초식을 한꺼번에 전개하는 데 성공했다.
비결은 다름이 아니었다.
‘따로 펼칠 땐 눈에 보이는 그림자를 밟는 느낌이라면, 한번에 펼칠 때는 그 그림자에 녹아드는 느낌인가.’
마지막 초식으로 상대의 호흡에 완전히 스며들었을 때.
마치 상대의 그림자와 일체가 된 것처럼 흑영보를 계속해서 펼친다.
그 상태에서의 움직임이야말로 신출귀몰 그 자체였다.
즉, 신출귀몰이란 내가 염두에 둬야 할 이미지이자,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제어가 잘 안 되네.’
처음 흑영보를 체득했을 당시.
무아지경 속에 움직이다가 교관의 가슴팍에서 정신을 차렸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시전하는 순간, 의식이 그림자와 동화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덕분에 피격은 상당히 줄였으나, 상대를 타격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제어 문제만 해결하면.’
윤설하를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까닭이었다.
‘될 때까지 해보자.’
그렇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가상 대련에 몰두했다.
···
···
···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토요일.
내기 시간까지 불과 몇 시간 정도 남겨뒀을 때.
나는 확신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생각해도 질 것 같진 않은데.’
가상 대련의 결과이자, 점수를 나타내는 랭크.
이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