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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게는 일어나지 않아
27 내게는 일어나지 않아
진태진을 비롯한 모든 생도들의 시선이 홀로그램 화면에 고정되어 있는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이는 다름 아닌 안일한 생도였다.
다만 반응은 제각기 달랐다.
“큭, 기껏해야 가상 대련인데 꽁무니나 빼고 있기는!”
“냅 둬, 주먹을 쓰는 방법을 까먹었나 보지!”
“아예 못 배운 건 아니고? 큭큭!”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비웃는 생도들.
주로 배경을 가진 경험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하나 그중에서도 예외는 존재했다.
“저 걸음걸이, 뭔가 신묘한 것 같은데······?”
“쟤, 스텟 서킷 트레이닝에서 1등 했던 14팀 아닌가?”
“비경험자라고 들었는데 보법을 익혔을 줄이야. 제대로 봐둬야겠다.”
일부 눈썰미가 좋은 경험자들은 안일한 생도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뭔가를 느끼거나, 정체를 추측하는 등.
잠재적 경쟁자로 판단하고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체적인 반응을 훑어본 진태진은 속으로 생도들의 평가를 수정했다.
‘비경험자들은 그렇다 쳐도, 경험자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있다.’
마땅찮은 눈빛으로 경험자들을 바라보던 진태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홀로그램 화면에 가닿는 순간.
‘안일한 생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다시금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이유는 다름 아닌 안일한 생도.
그가 보여 주는 대련의 내용 때문이었다.
일견 단순히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아슬아슬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하고 있어.’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보법의 숙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보법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상이긴 하나, 처음 겪는 대련에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빠르게 적응하고, 나아가 발전하고 있었다.
‘분명 동작이나 타이밍의 미숙함은 존재하지만, 불과 이틀 전에 체득했음을 고려하면······.’
미숙함은 어디까지나 시간 부족에 따른 숙련도의 문제일 뿐이었다.
즉, 단점이라기보단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게다가 생도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올바른 이상, 해결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저번에는 체득 속도로 놀라게 만들더니.’
실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 올바른 방향성 등.
이번에는 또 다른 자질로 두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줬다.
만족스러운 감정과 함께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
일순 진태진의 동공이 커졌다.
방금 막 안일한 생도의 움직임이 변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상대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대신.
타닷-
마치 상대의 호흡을 끊어내듯, 보폭을 순식간에 좁히며 반 박자 앞서 움직이는 것이다.
때문에 더미 데이터의 공세의 맥이 툭 하고 끊어졌다.
‘저건 분명 세 번째 걸음이다. 그렇다는 건······.’
바로 옆에서 스킬 체득 과정을 전부 지켜본 진태진은 알 수 있었다.
방금 생도가 적재적소에 펼친 보법과 거기에 담긴 의미를 말이다.
‘각 초식에 담긴 효용을 벌써 파악했다는 건가.’
가능성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생도의 움직임이 또 한 번 급변했다.
탓-
단지 상대의 호흡을 끊어내는 데서 나아가 스며들었다.
마치 그림자처럼, 녀석에게 밀착한 채 두 눈을 번뜩이는 것이다.
끼익-
입력된 움직임에 따라 행동을 취하는 더미 데이터로선 생도의 보법에 대항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녀석이 무리한 공격 시도로 인해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
휘익-!
생도가 주먹을 내질렀다.
첫 번째 유효타가 터져 나온 것이다.
보법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일격.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네 번째 초식까지 그 효용을 통찰했을 줄이야.’
생도의 스킬을 봐줬을 당시.
진태진은 초인으로서 오랜 연륜을 통해 단숨에 스킬의 효용과 진의를 꿰뚫었다.
더불어 단순히 혼자 연습하는 것만으로 효용을 깨우치기 어렵다는 점 또한 파악했다.
하지만 생도에겐 일부러 설명해 주지 않았다.
‘충분히 고민하고, 고찰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제 것이 될 테니까.’
생도는 그걸 지금 눈앞에서 해냈다.
대련 중에 감각적으로 익히며 활용까지 이뤄낸 것이다.그렇게 생도는 네 번째 초식으로 조금씩, 천천히 유의미한 타격을 축적해 나갔다.
그 결과.
“······안일한 생도 C랭크다.”
예상보다 높은 결과물을 냈다.
비경험자들을 앞서는 건 물론, 차후 경험자들까지 앞서갈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결과를 확인한 안일한 생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모습에 진태진 또한 옅게 미소 지었다.
‘이제 겨우 보법으로 이 정도라면.’
1학기 기말 과정부터 시작될 무기술의 심화 과정.
[무공]을 익혔을 때는 과연 어떤 활약을 보여 줄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고, 그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
···
···
몇 시간 후.
“가상 대련은 여기까지다. 다들 겪어 봤듯, 가상이라곤 하나 결코 만만치 않다. 가상 대련실 또한 여타 단련실처럼 24시간으로 운영되니, 재량껏······.”
9교시가 끝나기까지 약 10분쯤 남았을 때, 가상 대련이 모두 끝났다.
교관이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사이, 나는 속으로 가상 대련의 성과를 되새겼다.
‘대충 각 초식의 효용 정도는 파악한 것 같은데.’
스킬을 체득한 후, 연습과 실험에 매진하며 세운 가설.
나는 이를 대련 속에서 직접 활용함으로써 증명했다.
‘역시 생각대로 구결과 관련이 있었어.’
다름 아닌 흑영보의 구결.
선문답과 같은 내용이 곧 각 걸음의 효용과 맥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특히 네 번째 걸음을 파악한 건 큰 수확이다.’
마지막 초식은 혼자 연습할 땐 오리무중 그 자체였다.
하나 이는 보법을 펼칠 상대를 눈앞에 두고 나서야 깨달았다.
‘애초에 목적 자체가 상대의 호흡을 끊고, 의표를 찌르는 움직임이니. 연습에선 보이지 않을 수밖에.’
즉, 처음부터 상대가 있어야만 알 수 있는 효용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뒤늦게 깨달았으나, 결과적으론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온 것이다.
성과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흑영보는 아직 더 발전할 수 있어.’
단순히 네 걸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처음 흑영보를 체득했을 당시, 무아지경 속에서 펼쳤던 움직임.
흑영보의 모든 초식을 관통하는 움직임은 아직도 활용이 요원했다.
이는 곧 앞으로도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그림자 녀석이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영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만 육안으로 구분이 어렵고, 별다른 메시지가 없는 만큼 구체적으론 확인이 불가능했다.
‘뭐,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는 녀석은 아니니까.’
스텟 단련부터 마나 호흡법, 거기에 흑영보까지.
여태 그림자가 보여 준 행동은 하나같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
‘중간고사까지 앞으로 한 달 조금 안 남았나.’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니 앞으로 더더욱 강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을 마무리 지을 무렵, 교관의 조언 또한 슬슬 끝나갔다.
그대로 수업을 끝낼 것 같았으나, 교관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다음 주 월요일에는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을 예정이며, 이미 연락이 들어간 상태다.”
다름 아닌 학부모 참관 수업.
깜짝 발표에 대부분이 술렁였다.
이들을 향해 교관은 참관 수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생도들이 전투 계열 초인을 위한 다소 과격한 수업을 듣는 만큼, 걱정하시는 분들도 제법 계신다. 그분들을 위한 수업이라 보면 될 거다.”
즉, 학부모들에게 수업이 안전하게 진행됨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오실 수 있으려나.’
멍하니 생각하고 있을 때.
“······!”
옆쪽에서 문득 기척이 느껴졌다.
“음?”
고개를 살짝 돌리자, 어째선지 새파랗게 질려있는 윤설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 있나?’
근래 들어 괜찮아진 줄 알았더니.
안색이 파리한 게,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였다.
무어라 말이라도 붙여보려는 찰나.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다들 고생했다. 이만 해산하도록.”
윤설하는 다급한 기색으로 훈련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때.
“일한이, 저녁 같이 먹자! 차은월, 이쪽이야!”
“으, 응!”
임강철과 더불어 차은월까지 내 쪽으로 합류했다.
이내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게 물었다.
“윤설하는?”
“몸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것 같던데.”
“별수 없지! 그럼 우리끼리 먹자!”
그렇게 셋이서 식당을 향했다.
이후 나는 임강철과 함께 저녁 일과까지 충실하게 보낸 다음.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
···
···
그림자에게 의식을 넘겨줬다.
*
늦은 밤.
“······하아, 하아, 하아.”
잠에서 깬 윤설하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호흡을 고르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읏.”
관자놀이가 찌르르 울리는 바람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더욱이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흘러 웃옷을 흠뻑 적셨다.
가늘게 몸서리치며 힘없이 양팔을 감싸 안는 찰나.
-네가 대체 뭘 안다고······!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재생됐다.
-그래, 너는 제대로 된 특성을 각성했다 이거지?!
-그래서 너까지 부모인 나를 무시하는 거냐!?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 거칠게 돋아난 이마의 힘줄, 비수처럼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파는 고함까지.
‘······단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그때 이후로 이미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가슴 속 깊은 곳에 화인처럼 남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는 기숙사를 박차고 나갔다.
그렇게 나아간 끝에 도달한 곳은.
“······윤설하?”
스텟 단련실이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는 임강철.
그를 뒤로한 채 윤설하는 비틀거리며 마력 단련실을 향했다.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인영이 시야에 들어왔다.
“······.”
변함없이 무감정한 얼굴로 돌아보는 청년.
같은 반 생도이자,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 친구들 중 한 명.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은 미구현 특성의 소유자.
‘······안일한.’
안일한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그녀는 두통이 한층 심해졌다.
‘저번처럼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악몽이 한층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노력할 수 있는 거야?”
쥐어짜내는 듯한 물음.
하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미구현 특성은 구현의 조건도, 시기도 알 수 없다는 거, 알아?”
“······.”
“아무리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해도, 돌아오는 건 고통스러운 결말뿐이란 건 알고 있어······?”
“······.”
“나는 실제로 봤어. 줄곧 거기에 매달렸음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사람을.”
“······.”
“그렇게 초인 사회에서 배척받다가 결국 가정까지 잃고 만 사람을 봤다고, 나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다.
때문에 윤설하는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게 미구현 특성을 가진 초인의 결말이야.”
눈앞의 친구가 나아갈 과정의 고통과 끝내 마주하게 될 결말의 참혹함을 말이다.
하지만 안일한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칠흑 같은 눈빛만이 그림자처럼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윤설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일한, 왜 하필 네가······.’
더불어 그녀는 생각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아니, 애초에 마음을 주지 않았더라면.
옆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 볼 일도.
그로 인해 가슴 아플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결국 그 노력은······.”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차마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 말로 말미암아 아버지와의 관계가 무너져내린 까닭이었다.
‘······의미 없을 거야, 라니. 말 못 해, 절대로.’
그녀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선택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개인의 몫이니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는 그대로 돌아섰다.
“······방해해서 미안, 못 들은 거로 해 줘.”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가려는 순간.
“그런 결말.”
안일한의 입에서 고저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아.”
“······!”
일어나지 않는다니.
말투의 이상함을 느낄 틈도 없이 그녀는 홀린 듯 돌아섰다.
“······어떻게 그토록 확신할 수 있는 거야?”
“알고 싶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다시 한번 그에게서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직접 보여줄 테니, 나와 내기 하나 하지.”
느닷없는 제안에 윤설하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