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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생도의 속도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군
25 생도의 속도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군
벽에 막혀 버린 보법 스킬의 체득.
나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교관을 떠올렸다.
‘스킬은 아카데미 자체적으로도 교육이 진행되니 교관님이라면 틀림없이 알고 계시겠지.’
그러니 그에게 조언을 구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하나 여기엔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 존재했다.
‘배경도, 스킬도 없는 내가 어떻게 보법의 동작과 구결을 구했는지.’
출저를 설명하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그 해답을 [미구현 특성]에서 찾았다.
‘미구현 특성에는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능력들이 즐비하다지?’
그러니 사실을 전부 털어놓지 않고, 각색해서 말해도 미구현 특성의 특징으로 인해 내 이야기는 성립될 터.
즉, 내 말을 마냥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여긴 것이다.
이는 실제로 교관의 반응을 통해 증명됐다.
“······자세히 말해 주겠나.”
예상대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일단 시작은 나쁘지 않다.’
나는 침착하게 생각해 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전에 물어보셨죠. 이상한 체험을, 그러니까 흐릿한 영상 같은 걸 본 적 있는지.”
“······설마 생도에게도 영상 같은 게 보이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이는 며칠 전에 이뤄졌던 교관과의 면담 내용.
그가 묘한 기색으로 언급했던 ‘흐릿한 영상’에서 단초를 얻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교관은 그런 종류의 미구현 특성이 존재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한층 더 올라간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자신감있게,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언젠가부터 꿈을 꿨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나타나 제게 뭔가를 보여줬죠.”
“보여 주다니, 설마?”
“네 걸음을 무수히 반복하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게 꼭 구결을 읊는 것 같았습니다.”
“······!”
교관은 내 말에 잠시 침묵했다.
이내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지 계열인가. 대상은 불분명한 듯한데.”
“네?”
“음, 실례했다.”
교관은 양해를 구한 다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잘 생각했다.”
“그 말씀은.”
“지도해 주지. 스킬을 익히는 법에 관해서 말이다.”
“······!”
교관으로부터 원하는 답변이 흘러나왔다.
내 계획이 완벽하게 먹혀 들어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표정을 가다듬으며 조언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전에 한 가지, 명심해야 될 부분이 있다.”
교관으로부터 기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분명 생도가 겪는 현상은 특별하다. 하지만 그게 생도가 유별나고,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힘주어 강조하는 교관.
말투로부터 조심스러우면서, 단호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의 심중을 헤아릴 수 없는 까닭에 나는 가만히 경청했다.
“말했듯, 미구현 특성의 능력은 결코 개인이 헤아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말씀은······.”
“혹여 생도가 목격한 영상과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들, 그건 절대 생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개인이 헤아릴 수 없는 영역, 불미스러운 일.
계속해서 범상치 않은 말을 듣게 되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미구현 특성에 관해서 무언가 깊은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단지 보법의 조언을 듣기 위해 꺼낸 이야기였다.
때문에 나는 그가 이토록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 덕분일까?
“굳이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좋다. 이번처럼 특성과 관련하여 의문이 생기면 본 교관을 찾도록. 언제, 어떤 경우라도 절대 생도를 외면하지 않고 도울 것을 약속하겠다.”
기대 이상의 답변을 받아 버렸다.
마치 교관이 보증하는 조언 및 도움의 백지 수표를 받은 기분이라 해야 할까.
나는 얼떨떨한 감정을 추스르며 천천히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사설이 길었군. 보법, 즉 스킬 체득에 관하여 조언이 필요하다고 했나.”
어느새 무표정으로 돌아온 교관이 짤막하게 물었다.
드디어 본론이 나온 것이다.
기대감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일어나지.”
교관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의미를 알 수 없어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는 나를 향해 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체득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스킬은 몸으로 체감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흘렸다.
교관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따라와라. 저녁 식사 시간까진 직접 봐줄 테니.”
다름 아닌 개인 교습.
기대 이상의 답변에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
교관을 따라 도착한 곳은 무기 훈련실이었다.
아무래도 저녁 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때마침 잘됐군.”
교관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내게 질문하는 것으로 개인 교습을 시작했다.
“먼저 생도는 스킬의 습득 원리를 알고 있나?”
“유물로 직접 습득하는 것, 그리고 동작과 구결을 통해 체득하는 것. 이 두 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다. 그중 생도는 두 번째 방식의 구체적인 요령에 대해 알고 싶은 거겠지.”
“맞습니다.”
“그럼 먼저 알고 있는 보법을 펼쳐 보도록.”
교관의 지시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내 정신을 집중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흑영보를 펼쳤다.
스윽- 스윽-
여전히 보폭은 뒤죽박죽이고 자세는 엉성하게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여태 노력한 덕분인지, 균형을 잃지 않은 채로 끝까지 펼칠 수 있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교관은 이채를 띤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호오, 얼마나 연습했지?”
“아직 일주일 조금 안 됐습니다.”
“요령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취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교관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뭔가를 보여 주려는 양 자세를 잡았다.
“지금부터 본 교관이 직접 요령을 보여 줄 테니, 집중해서 지켜보도록.”
지시와 함께 교관은 두 눈을 감았다.
이내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모든 걸음은 바르게 내딛음으로써 시작되니.”
범상치 않은 멘트.
동시에 교관의 오른발이 움직였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동작이었으나, 느낌이 묘했다.
‘······자연스럽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가지런히 정돈된 느낌.
다소 이상한 감상일지 모르나, 방금 교관의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자, 그가 내게 말했다.
“지금 보여 준 움직임은 ‘삼재보’라는 스킬이다. 추후에 아카데미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스킬 중 하나지. 생도는 조금 전의 움직임에서 무엇을 느꼈지?”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마치 교관님의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 같았습니다.”
“눈썰미가 좋군. 이것이 바로 동작과 구결을 통해 스킬을 체득하는 방법이다.”
“······!”
“구결에 따른 움직임이 전신에 각인되는 순간, 동작과 구결은 합치되어 스킬로 화한다. 즉, 구결에 먼저 몸을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감이 오질 않는다면 육성으로 구결을 읊는 게 도움이 될 거다.”
구결에 몸을 맡긴다, 육성으로 구결을 읊는다.
속으로 되뇌고 있을 때, 교관이 설명을 이어 갔다.
“그렇게 스킬이 형성되면, 이런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교관은 가타부타 말없이 한발짝 내디뎠다.
그러자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 나왔다.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우면서도 예리해진 것이다.
“더 이상 구결을 떠올릴 필요가 없어지지. 또한 보법의 최종적인 활용 형태는 이렇다.”
어김없이 교관의 오른발이 올라갔다.
그 순간.
파직-!
바로 눈앞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이내 교관의 모습이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
두 눈을 부릅 뜨자, 바로 등 뒤에서부터 교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참고로 말하자면 방금 건 삼재보가 아닌 ‘섬전칠보’다. 본 교관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킬이지.”
“아······.”
교관은 여전히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를 향해 나직하게 덧붙였다.
“최종적인 활용은 마나 호흡법 5단계를 거쳐 마나에 관련된 스킬이 생성됐을 때나 가능하다. 그러니 꾸준히 정진하도록. 질문 있나?”
진정한 보법의 위력에 흠뻑 젖어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여태 품고만 있었던 의문을 하나씩 풀어놨다.
“혹시 스킬 습득까지는 얼마나 걸리죠?”
“개개인의 타고난 감각에 따라 다르다. 짧게는 수일, 길게는 1, 2주 정도 소요되더군. 대개 동작을 완전히 숙지하는 부분에서 오래 걸리지.”
“그럼 스킬이 생성되면 무투술과 동시에 펼칠 수 있는 건가요?”
“무투술이라. 그건 각 보법이 지닌 특징과 강점, 그리고 숙련도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교관의 말에 따르면 보법은 특징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용도로 나뉘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이동 및 회피.
두 번째는 운신, 즉 몸놀림이었다.
“아무래도 운신 쪽에 특화된 보법이라면 보다 무투술과의 연계가 원활하겠지만, 그보다는 숙련도가 중요하다. 숙련자의 경우, 단순히 기회를 활용하는 데서 나아가 직접 창출하기도 하니까.”
나는 교관의 설명을 머릿속에 담아 두며 생각했다.
‘숙련도······.’
잘만 활용하면 가상 대련은 물론, 그 이후에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터.
머릿속으로 가능성을 마음껏 확장시키고 있을 때.
“무투술과의 연계를 질문하는 이유가 혹시 이틀 뒤에 있을 ‘가상 대련’ 수업 때문인가.”
문득 교관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정확히는 최대한 빠르게 체득하는 게 목표였다.
스킬을 체득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까닭이었다.
‘능숙하게 펼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야 할 테니까.’
더욱이 저번 주의 무기 체험 시간 때 깨달았다.
무기술은 스텟 서킷 트레이닝 이상으로 경험자들과의 격차가 심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평범한 방식으론 저들을 넘어서기는커녕, 가면 갈수록 경쟁조차 힘들어질 터.
‘그러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그런 내 의중을 파악했다는 듯 교관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최소 D급 수준은 되는 것 같더군.”
별안간 등급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하는 교관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이어지는 교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의도를 헤아릴 수 있었다.
“생도가 얻은 보법의 이야기다. 그 정도로 특색 있는 보법을 가진 생도들은 결코 많지 않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 말도록.”
다름 아닌 격려였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에 나 또한 옅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아직 10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좀 더 봐주도록 하지.”
교관의 지시에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소리 내서 읊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지.’
먼저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내 흑영보의 구결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림자는 늘 이면에 함께하나니.”
한 구절을 읊은 순간, 나는 완전히 몰입했다.
그래서일까.
“······!”
어떤 소리가 들렸으나, 의식하지 못했다.
다만 청각은 물론 시각까지 희미하고 아득할 뿐이었다.
완전한 무아지경 속에서 나는 목격했다.
‘그림자? 저기로 움직이면 되는 건가.’
유난히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시야를 가득 채운 광경을 말이다.
본능적으로 그림자를 향해 잇달아 발을 내딛는 순간.
“······일한 생도!”
코앞에서 교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
정신을 차려보니 양팔이 뭔가에 억세게 잡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째선지 눈앞이 캄캄했다.
뒤늦게 깨달았다.
“······교관, 님?”
내가 교관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음을 말이다.
어안이 벙벙한 나를 향해 교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철회하지.”
“네?”
“생도가 가진 보법. 결코 D급일 수가 없으니, 본 교관이 했던 말을 철회하겠다는 말이다.”
이어서 교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정도로 빨리 체득할 줄이야. 생도의 속도는 정말이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군.”
“······그 말씀은.”
“축하한다. 생도는 방금 스킬을 체득했다.”
교관의 치하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