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24화 (24/218)

────────────────────────────────────

────────────────────────────────────

24 네가 바라는 모든 것

24 네가 바라는 모든 것

다음날 아침.

등교하기 전, 나는 책상에 있는 공책부터 챙겼다.

‘과연 그림자가 답장을 했을지.’

어젯밤, 나는 그림자와의 필담을 시도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녀석에게 네 가지 질문을 남긴 것이다.

-대체 정체가 뭔지.

-목적이 무엇인지.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내게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걸음걸이에 관한 문제는 잠시 미뤄 둔 채, 짧지만 핵심적인 질문을 남겨 뒀다.

‘어차피 필담이 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질문이야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할 테니까.’

앞선 네 가지 질문의 대답이 급선무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임강철과 함께 시간에 맞춰 등교했다.

“일한이, 가자!”

“그래.”

교실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공책부터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기대 반, 떨림 반으로 질문을 적어 놨던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

짧고 강렬한 문장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네가 바라는 모든 것.

자신의 정체도, 목적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바람, 그걸 마치 알고 있다는 듯 광오하게 적어 놨을 뿐이었다.

의문을 해소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한 내용이다.

하지만 왠지 입가에는 미소가 짙게 떠올랐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라고?’

짧게는 아카데미를 무사히 거쳐 초인으로 오롯이 거듭나는 것부터.

길게는 초인 시대의 이면에 도사린, 통제불능의 위협에 맞설 힘을 갖추는 것까지.

그림자의 답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모든 걸 내게 줄 수 있다는 뜻이리라.

한참을 바라보고, 곱씹어보는 가운데,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

녀석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정말로 사실이라면.

당신께서 품었던 유지(遺志).

그것을 이어 갈 수 있게 만들어 줄 힘을, 가능성을 손에 넣은 거나 다름없었다.

원하는 답변은 아니었으나,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뭐, 자기가 내키는 대로 답했을 뿐이지만. 적어도 필담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알게 됐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공책을 덮으려는 찰나.

“음?”

문득 페이지의 윗부분이 접혀있는 걸 발견했다.

그게 꼭 뒷장으로 넘겨 보라는 표시처럼 느껴졌다.

‘설마 이것도?’

본능적으로 녀석을 떠올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이내 예상치 못한 내용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

‘무려 다섯 줄이나 적어 놓으셨네.’

조금 전의 짤막한 문장과는 확연히 다른 정성에 어이가 없는 한편.

나는 녀석이 남긴 다섯 줄의 메모를 읽어 내려갔다.

-흑영보(黑影步)

그림자는 늘 이면에 함께하나니.

그것은 마치 움직임을 담아 내는 거울과도 같다.

반 호흡 앞서 내디딘 한 걸음으로 맥을 짚는다면.

제아무리 현란한들 본(本)을 통찰할 수 있으리라.

‘흑영보, 검은 그림자의 걸음······?’

‘흑영보’라는 의미불명의 단어부터, 그 아래에 적혀 있는 선문답 같은 내용들까지.

그림자의 메모는 마치 고서(古書)에서나 볼 법한 구결들을 연상케 했다.

‘······걸음걸이와 구결.’

두 키워드를 반복해서 되뇌던 중.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설마 이거, 보법(步法)인가?’

[보법].

[무공]과 더불어 무도 차원의 유물에서 비롯된 스킬의 한 종류였다.

이를 떠올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동작에서 현기(玄機)가 느껴진다는 점이나 영문을 알 수 없는 구결이 존재한다는 점까지.’

그림자가 선보인 걸음걸이와 메모로 남겨 둔 구결.

이 두 가지가 보법에 관해 세간에 알려진 내용과 상당히 유사한 까닭이었다.

깨달은 순간, 왠지 녀석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내게 필요할 거다, 이거지?’

보법은 근접전을 펼치는 초인에게 있어 무공만큼이나 필수적인 요소였다.

즉, 건틀렛을 택한 이상 언젠간 필히 갖춰야 할 스킬이라는 뜻이었다.

제대로 익히기만 한다면 ‘무기술’ 수업과 실기 시험은 물론, 나아가 정식 초인이 돼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대체 스킬을 어떻게 구했는진 모르겠지만. 구결까지 적어 줬다는 건 필히 익히라는 뜻이겠지.’

[스킬]을 익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존재했다.

첫 번째는 스킬의 기원인 [유물]로 직접 습득하는 것.

두 번째는 스킬의 구결과 동작을 배워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었다.

‘내 경우는 아마 두 번째 방식일 테고.’

구결과 동작은 이미 손에 넣었다.

단 한 번도 해본적 없고,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너머에 있을 보상에 비하면 그저 자잘한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 까닭이었다.

‘해 보자, 한번.’

*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초인 실기 수업.

사전에 예고한 대로 본격적인 무기술 수업의 진도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교관은 각자 정한 무기를 지급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카데미 차원에서 제공되는 무기들은 전부 E급이다. 대부분의 평가 및 시험에선 모두 지급용 무기를 써야 하니 개인적으로 무기를 가진 생도들은 참고하도록.”

이어서 각 무기별 기초적인 동작과 해설이 담긴 교본을 배포했다.

그러고는 앞으로의 수업 방식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이번 주는 무기의 기초적인 운용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겠다. 기본적으로 교본을 통해 개인이 학습하되, 본 교관이 교정과 지도를 해 주는 방식이다.”

교본을 통한 개인 학습.

생각지 못한 방식이었으나, 이어지는 이유를 통해 납득할 수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는 교본으로 숙지한 기초 운용을 토대로 ‘가상 대련’을 진행한다. 무기술이란 곧 전투다. 그리고 전투는 언제나 실전을 토대로 습득해야 비로소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즉, 실전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수준과 안전을 고려하여 1학기 중간까지는 ‘가상 대련’으로.

즉, 특수 설비를 활용한 ‘대련 시뮬레이션’으로 수업과 시험을 진행하는 듯했다.

추가로 1학기 기말부터 각 무기별 전담 교관을 통해 심화 과정을 배운다고 덧붙였다.

설명을 마친 교관은 각 무기별 시연으로 넘어갔다.

“단순히 교본으로는 감이 안 잡힐 수도 있을 테니 지금부터 무기별 활용 예시를 보여 주겠다. 필요한 생도들은 스마트 워치를 통해 녹화하도록.”

교관이 선보인 시연은 그야말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십여 가지가 넘는 무기들을 전부 능숙하게 다룰 뿐 아니라,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 준 것이다.

교관의 시연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한편, 제법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건틀렛은 온몸을 무기로 쓰는 구나.’

건틀렛은 단순히 주먹만이 무기가 되는 게 아니었다.

발길질부터 무릎, 팔꿈치, 손바닥, 거기에 손가락 끝까지.

과장 조금 보태서 신체의 모든 부위를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내 눈길을 사로 잡는 건 교관의 ‘움직임’이었다.

‘분명 무기술뿐만 아니라 보법도 함께 보여주셨어.’

보법, 정확히는 보법의 활용.

교관의 위치는 시시각각 변했으며, 운신과 공격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가상의 적이 있다고 가정하면, 상대의 움직임을 모두 흘려내는 동시에 반격으로 이어 가는 것이다.

‘저 공방일체의 움직임이 내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라 이거지?’

머릿속에 교관의 움직임을 새겨 두고 있을 때.

“그럼 지금부터 각자 자율 단련을 진행한다. 궁금하거나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언제든 질문하도록.”

교관의 무기 시연이 모두 끝이 났다.

생도들이 하나둘씩 흩어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팀원들과 뭉쳤다.

“일한이, 연습 같이하자!”

“어.”

“차은월, 윤설하! 이쪽이야!”

저마다 교본을 통해 기본적인 동작들을 따라해 보거나, 숙지하는 가운데.

‘흑영보를 펼치며 교본에 나온 기초적인 동작을 따라할 수 있을까? 한번 해 봐야겠다.’

나만이 홀로 조금 특별한 연습에 들어갔다.

*

본격적으로 무기술 진도가 나간 이후 맞이하는 세 번째 주말.

나는 이전과 다름 없이 아침부터 팀원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중간고사는 F+난이도로 치를 테니 틈틈이 스텟 서킷 트레이닝도 연습해 두자.”

윤설하의 말처럼, 대략 한 달 뒤에 시작될 1학기 중간 고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무기술을 포함, 마력, 거기에 스텟 서킷 트레이닝까지.

모두 실기 시험 범위에 속했다.

심지어 스텟 서킷 트레이닝은 수행평가보다 한 단계 높은 F+난이도로 진행된다.

때문에 살짝 걱정했으나.

“윤설하는 70점대고 나 포함 60점대인가. 다들 많이 올랐네.”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점수의 상승세가 썩 나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스텟 서킷 트레이닝 또한 스텟 단련의 일환인 만큼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 스텟이 올랐다.

-근력 스텟 12

-민첩 스텟 11

-체력 스텟 10

-마력 스텟 5

각각 1스텟씩 올라 총합 38스텟을 달성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가운데, 그중에는 윤설하의 컨디션 회복도 포함되어 있었다.

변함없이 점수가 제일 높은 건 물론, 안색도 어느 정도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이젠 괜찮아 보이네.”

윤설하는 내 말에 잠시 침음을 흘렸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신경 쓰이게 했다면 미안.”

“아니 뭐, 그 정도로.”

간단한 대답과 함께 넘어가려는 순간.

“······그런데, 괜찮겠어?”

윤설하가 왠지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게 물어왔다.

“괜찮다니?”

“무기술. 네가 가진 특성이······, 그.”

그제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며칠 전, 회식에서 그녀가 보인 반응을 떠올렸다.

‘왠지 미구현 특성을 의식하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상태가 조금 이상했던 것 같다.

뭔가 있나 싶으면서도 일단은 나직하게 답했다.

“뭐, 애로사항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그랬다.

단, 이는 무기술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보법, 그림자가 전해 준 ‘흑영보’가 문제였다.

‘일단 네 걸음을 전부 펼치는 것까진 어떻게든 성공했는데.’

여태 반복해서 시도한 끝에 몸의 균형을 잃지 않은 채로 네 걸음을 전부 내디딜 수 있게 됐다.

다만 그뿐이었다.

흑영점을 펼칠 시, 단순히 주먹을 내지르는 동작조차 제대로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림자 녀석도 구결을 전해 준 이후, 감감무소식인 것도 문제라면 문제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아직 흑영보를 접한지 일주일도 안 된 상황이다.

즉, 시간의 여유는 충분한 것이다.

‘주말에 그림자에게 한 번 더 물어볼 수도 있고.’

그게 안되면 직접 방법을 찾아내서라도 어떻게든 익힐 테니 별 문제 없다.

그녀의 질문과는 조금 다른 맥락으로 답하긴 했으나, 윤설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잘할 수 있을 거야.”

“어, 고마워.”

“그럼 다시 연습해 보자. 오후에는 무기 훈련실에 가는 거로 하고.”

“그래.”

그 정도로 대화를 마치고, 다시금 연습에 매진했다.

···

···

···

예상과는 달리 주말이 다 지나도록 보법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림자 또한 첫 필담 이후로는 대답이 없었다.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도구는 줄 테니, 알아서 활용하라는 건가?’

그림자의 다소 불친절한 방식을 말이다.

하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마냥 의지할 생각도 없었어.’

그래 봤자 원하는대로 이뤄지지 않음은 요 며칠을 통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 녀석도 뭔가 목적이 있겠지.’

하나 그건 내쪽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분명 말했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그렇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도구 정돈 제시해 줄 터.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머진 내 손으로 직접 이루면 되는 문제니.’

그렇게, 나는 교관이 예고한 ‘가상 대련’을 이틀 앞두고 결심했다.

내 손으로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그 때문이었다.

“교관님, 실례하겠습니다.”

월요일 방과 후.

교관을 직접 찾아간 것은 말이다.

“음, 안일한 생도. 할 말이 있나?”

변함없이 무표정하게 맞이해주는 교관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언을 구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무엇에 관한 조언을 말하는 거지?”

“보법입니다.”

“······보법, 스킬을 말하는 건가? 생도는 그걸 어떻게 익혔지?”

교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타당한 의문이다.

분명 첫날, 나는 그에게 배경이 없음을, 스킬이 없음을 설명했으니까.

하지만.

‘괜찮아, 계획대로만 말하면 문제없어.’

그렇기에 미리 준비해뒀다.

“아직 익히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특성을 통해 동작과 구결을 접하게 됐습니다.”

“특성으로 접하게 됐다? 설마······.”

“네. 제가 가진 미구현 특성이 구현된 것 같습니다.”

내 거침없는 답변에 교관의 동공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0